하얀 거짓말 [11]
"여기 사장이 내 친구거든"
좁기는 하지만 조용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빈자리가 없는 테이블의 손님들 역시 낮은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바의 뒤편에 BLUE라는 글씨로 파란 색의 네온이 밝히고 있었고 한 쪽에는 술병들이 빽빽하게 줄을 지어 서 있는데 밑에 불이 있어서 그런지
환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했다. 현수는 바텐더인 병우가 직접 테이블로 와서 인사를 건네고 가자 우진의 놀란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 좀 뿌듯해했다. 작은 규모의 바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른 나이에 독립을 해 이런 작은 가게라도 가지고 있는 게 어딘가.
물론 깡패라는 직업과 병행하는 듯했지만.
"아, 이번에 아산에 같이 갔던 친구?"
"응."
유일한 입사 동기인 우진은 현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았지만 말을 트고 지내고 있었다. 우진이 친구들 모임에 가서 무슨 게임을 했는데 일등의
상품이 바로 아산온천 무료 이용권이었다고 했다. 받기는 했지만 애인도 없고 마침 부모님도 안 계셔서 줄 사람이 없어 평소 친하게 지내고 있는
입사 동기에게 주게 된 것이다. 현수가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한 우진에게 저녁을 한 끼 대접한다는 게 어찌하다 보니 블루까지 오게 되었다.
현수는 재준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접어두었다.
온천에 갔다오고 난 뒤 일이 바빠진 듯 이십 일 이상이나 재준을 보지 못했다. 물론 전화는 매일 밤에 하지만.
괜히 바쁜 그에게 전화해서 -또 문제는 재준은 실제로 바쁜지 안 바쁜지 모르겠지만 현수가 술을 마신다는 전화에 백발백중 온다는 게 이제는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은영의 말이 신경쓰이는 것도 있었지만 - 번거롭게 하는 것도 자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기에 그렇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재준을 비롯한 재준의 동생들- 민과 두식, 상준-도 안 보이는 것을 보니 바쁘긴 한가보다 생각을 하면서도 현수는 좀 허전했다.
저녁을 먹고 가까운 바에 가서 술이나 가볍게 한잔 하자고 했을 때 저녁을 먹은 곳에서 블루가 좀 멀기는 하지만 이리로 온 것은 우연히 재준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쪽 좀 시끄러운 것 같은데?"
"응?"
우진의 지적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예쁘장하게 생긴 스물 다섯 살 가량 쯤 된 듯한 청년이 그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에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며 덩치의 화를 돋우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동그란 눈을 가진 청년이 뭐라고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말이란 게 덩치와
그 덩치와 맞먹는 덩치를 가진 친구덩치에 기분 좋은 말이 아니었는지 금세 인상이 구겨지는 것을 보며 현수는 우진을 바라보았다.
"뭐 친구들끼리 말싸움하는 거겠지."
"친구들..치고는 체급이 많이 다른걸?"
"쿠쿡..그런가? 그나저나..."
제법 시끄러운데도 아무도 제재하지 않아 바텐을 보았더니 역시 지배인을 겸하고 있는 병우가 보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들었던 젊은 바텐
두 명이 안절부절 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점점 작은 실내는 분위기가 험악해져 갔고 그 세 명의 목소리가 제일 위치가 먼
현수네 테이블에도 들려왔다.
"네가..말려야 되는 거 아냐? 저쪽은 알바로 보이는데?"
"그러게."
"하긴 너랑도 급수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럴 땐 그냥 못 본 척 하는 게 최고지."
"음.그렇긴 하지만..이래서는 다른 손님들이.."
현수가 우려했던 대로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블루를 찾아왔던 두 테이블의 손님들과 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 일행을 보며 이맛살을
찌부리고 나가버렸다. 졸지에 현수와 우진만이 남아 세 사람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이제 그들의 거친 말싸움은 멱살을 잡는 것까지 발전하고 있었다.
"뭐야? 밤톨만한 게 이제 와서 어디서 게겨??"
"그래, 나 밤톨만 하게 클 때 네가 밥을 줘봤냐? 빵을 줘봤냐? 왜 내 키까지 여기서 들먹거리는 건데? 그러는 넌 왜 이렇게 박살로 생겼는데?
그럼 너 할말 있어? 있냐고!!!! 이제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응?"
멱살이 잡힌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죽은 기색이 보이지 않은 청년의 목소리에는 이쪽에서 봐도 심하게 꼬여있었다.
"참아, 현수야."
현수는 일어섰다가 자신의 손을 잡는 우진을 내려보았다. 자신이 말려서 뭐가 될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재준의 가게에서 이런 모습을 참고 볼 수는
없었다.
"비열해야 오래 산다니깐. 저 덩치의 주먹에 한 번 휩쓸려봐라. 넌 최소한 사망이다. 사망. 지난달에 동네 깡패들한테 맞은 거 기억 안 나냐?
또 맞고 싶어?"
"그때랑 다르잖아."
"뭐가 달라? 얻어맞는 것은 똑같겠구만."
"그래도 그때는.."
"좋은 말 할 때 앉아. 아까 재네들 어딘가 전화하던데 아마 아까 본 그 바텐이나 네 친구라는 사장 불렀을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경찰을 불렀을 수도
있고. 그때까지 좀 보자. 응?"
경찰은 아닐 것이고 분명 재준이나 그 바텐을 불렀을 테다. 재준이 이 광경을 봤다면... 최소한 저 세 명은 심각한 중상일 게 뻔하다.
현수는 재준이 싸우던 때를 떠올리며 상상이 되는 세 사람의 몰골에 우진의 손을 뿌리쳤다. 자신이 말릴 수 있다면 말려야 할 것이다.
또다시 재준이 어떤 이유건 간에 주먹을 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말로는 깡패 생활 접었다고 하나 몇 달 전에 보았던 그 파이프는 뭐며
그의 발아래 낭자했던 피들은 뭐란 말인가. 그 차가운 눈동자를 다시 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에 현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의 생활을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자신이 보는 앞에서는 그 깡패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현수의 뒤에서 피비린내를 풍기는 깡패생활을
하고 있을지언정.
"참으라니깐!!!"
우진이 다시 현수의 손을 잡았을 때 였다. 찰싹거리는 소리와 함께 청년의 몸이 뺨을 맞은 반동으로 바까지 처박히고 말았다. 그걸로 성이 차지
않은지 두 덩치가 쓰러진 청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는지 청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지만 그래도 입은 여전했다.
"아아..이거 크..너무한 거 아냐?"
"네 놈의 간이 어디에 나와 있는지 한 번 꺼내보자. 응? 감히 우리를 놀려?"
"케켁...이거 놓고 이야...기 하자고."
"어때? 이제 마음이 바뀌었어? 그 겁없이 씨부리던 입 다시 한 번 놀려보지그래? 앙?"
"쿠쿠쿡.. 어디 내 간.. 한 번 빼내봐. 으... 윽."
"그래도 입은 살았군. 네 상판대기를 봐서 앙탈 정도는 봐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날 화나게 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지."
말과 동시에 굵은 팔이 뒤로 스윙을 했다. 팔이 청년의 배로 꽂히려는 순간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잠깐을 외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신기하게 청년의 배에 멈추어버린 주먹을 보며 안도의 숨을 쉬면서 현수는 자신을 노려보는 두 덩치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저기.. 방해해서 미안한데요."
"미안하면 꺼져."
사장이면 영업방해니 뭐니 말할 수 있겠지만 사장친구는 손님과 다름이 없다. 손님이 말할 수 있는 것이란 시끄럽다 정도일 테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험악한 면상이나 덩치로 봐서 그런 말 벙긋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보기 싫다.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이분. 아파보이는데.."
"꺼지라고 했다."
뒤에 서 있던 다른 덩치가 다가와 현수의 어깨를 툭 하고 밀쳤다. 우진이 현수의 옷자락을 잡으며 자꾸 말렸지만 현수는 듣지 않고 오히려 청년의
멱살을 잡고 있는 덩치의 팔을 잡았다.
"이곳은 영업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리니 세 분의 일은 다른 곳에서 해결하시고.."
"앗, 당신이었군. 이거 고마운데~"
느닷없는 청년의 말에 청년의 멱살을 잡고 있던 덩치가 그제야 손을 놓으며 청년을 아니 꼰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 목이 해방되자 덥석 현수의 손을 잡고 반갑게 흔들자 현수가 오히려 놀라 그에게 물었다.
"저..를 아세요?"
"그러엄~! 이클립스의 유명하신 분 아냐. 설마 날 기억 못 하는 거야?"
"이..이클립스??"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청년에게 물어보자 청년은 현수가 아닌 호기심 어린 눈으로 현수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두 덩치에게 현수를
소개했다.
"이클립스의 제일 잘 나가는 분이라고. 나랑 한 번 크루징 했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네. 허긴 그때는 유달리 사람들이 많았으니깐."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는 하지만 크루징이 무슨 말인지 정확한 뜻을 몰라 현수는 어리어리하게 서 있었고 두 덩치의 눈이 현수에게 더 다가오자
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아까의 험악했던 사이를 잊었는지 다정하게 청년이 덩치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을 보며 현수는
어찌되었던 다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뒤돌아 서려고 했다. 덩치가 현수의 팔을 잡아 돌려세우지 않았다면 말이다.
"아야,"
"이봐. 우리 둘이랑 어때?"
"네? 뭐가요? 그것보다 이것 좀 놓아주시겠습니까?"
"이런.. 역시 베스트 원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숭을 떠는 건가?"
베스트 원을 아이스크림 이름으로밖에 인식하고 있지 않은 현수의 인내심은 급기야 덩치가 큰 손으로 현수의 뺨을 쓰다듬었을 때 바닥을 드러냈다.
혼자 자라서 그런지 스킨십을 유난히 좋아하는 현수였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엄마나 재준 정도였다. 낯선 사람이, 그것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면서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쫓는 사람에게 몸을 만지게 할 만큼 현수의 인내심은 깊지 않았다.
"이거 뭡니까?"
제법 정색을 하며 덩치의 손을 뿌리쳤지만 팔은 여전히 잡힌 채였다.
"오..제법 성깔이 있는 걸?"
"성깔이 없으면 또 재미없지 않아?"
"도영, 확실하지?"
"훗, 그쪽 취향 내가 아는데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엄한 사람 끌어들이겠어? 하는 거 봐. 딱 그림 나오지 않아?"
"그러게..흐흐.."
느끼하게 웃으며 다시 몸을 더듬는 시선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현수가 덩치의 손을 이빨로 꽉 깨물었다.
"으앗!!!"
놓인 손 덕분에 잠깐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덩치에게 아예 등 뒤로 손이 묶이고 말았다. 뒤에서 조여오는 팔의 조임에
현수는 사태가 심각해짐을 깨달았다. 저쪽에서 우진이 현수를 구해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눈짓으로 말렸다. 우진까지
가세한다고 해도 이 두 사람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어디로인가 연락을 하긴 했는지 계속 문쪽을 바라보는 두 바텐더 역시 마찬가지다.
다행이 심각한 일이 발생되기 전에 현수가 아는 사람이 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현수는 문득 재준이 보고 싶어졌다.
"이빨 자국까지 나버렸잖아!! 젠장!!"
"베스트 원을 꺾는데 그 정도는 감지덕지지. 안 그래?"
이 일의 원흉인 도영이라는 청년은 현수의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듯 여유롭게 팔짱을 낀 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때? 우린 네 명도 괜찮은데 말이야."
"아아..사양하지. 세 분이서 실컷 날이 밝도록 섹스에 한 번 미쳐보시라고. 응?"
과연 무엇 때문에 이들이 자신에게 이러는 지 이해할 수 없었던 현수는 섹스란 말에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그건 뒤에 서 있던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세 명이 함께 섹스를 한다는 것 자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무려 세 명 다 남자다. 슬쩍 자리를 비켜준 도영에게 고개를 숙이는
걸로 인사를 다한 덩치가 현수를 밖으로 데려가기 위해 현수를 끌었고 다른 한 명은 이제는 참을 수 없다고 여긴 우진이 덩치의 등을 향해 덤벼들자
가볍게 몸을 틀어 강하게 틀어쥔 주먹을 몇 번 우진의 배에 꼽은 후 휘파람을 불려 따라오고 있었다.
현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발을 들어 덩치의 구두 위에 힘껏 체중을 실었다. 엄지발가락을 노려 내리꽂은 게 주효했는지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큰 손에서 풀려났다. 무조건 덩치의 손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한 현수가 달아나기도 전에 다시 뒷덜미가 잡혀 버렸다.
발가락이 제법 아픈지 험악하게 인상을 쓴 덩치가 큰 손을 올려 그대로 현수의 뺨을 갈겨버렸다.
"이 자식이.."
"크크..뭐 무대가 꼭 침대일 필요는 없지 안 그래?"
"뭐, 꼭 원한다면..우리야 상관없지.흐흐.."
"우리 못지않게 지저분한 돈 있는 놈들이 노는 이클립스의 베스트라.. 거기서는 그룹섹스만 한다지? 어떤 기술을 가졌기에 베스트로 불리나? 응?"
"말해보라고. 설마 이런 sm틱한 놀이만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좀 더 그럴싸하게 비명을 질러보라고."
테이블 위로 내동댕쳐져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현수에게 다가오며 음탕한 말을 주고받는 남자에게 현수가 이번에는 옆에 구르고 있는 의자를
던져버렸다. 덩치가 가까스로 피했지만 넘어지는 의자의 반동으로 정강이를 맞았다. 윽 하는 신음과 함께 기분이 상한 덩치는 현수의 배와 허리에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다른 한 명은 다시 다가오는 우진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합세를 한 바텐더 두 명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힘겨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가뿐한 모습이었다.
현수의 입에서는 저절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달에 맞았을 때는 통증보다는 구타를 가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느라 아픈 줄도 몰랐는데
이번에는 그 고통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지 시야마저 흐려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은 생각을 했을 때 떠오른 사람은 재준.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그 때 마치 현수의 마음을 읽었는 양 어디선가 재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주...."
늦게 왔다고 인마. 나 죽는 줄 알았는데 네가 왔으니 살 수 있겠네. 그런데 보고 싶었어. 준.
이런 말을 하고 싶어 입술을 달싹이고 현수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
"뭐? 현수가 왔다고?"
- 네. 친구분과 같이 오신 것 같은데 두리번거리시는 게 사장님 찾으시는 것 같던데요.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간다. 오늘 분명 역삼동에서 일전에 온천 티켓을 준 회사동료와 저녁을 함께 먹는다고 했었는데 2차로 술 생각이 나
청담동까지 간 모양이다. 어쩌면 오래 안 봐서 보고 싶어 술 핑계 삼아 온 건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해석을 하며 재준은 맞은 편에 앉은 형준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 손으로 전화기를 가리켰다.
형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재준의 미소는 한층 더 짙어졌다.
"그래, 지금 곧 출발하마. 음..시간이 보자.....지금 밀리겠는 걸. 그리고 오늘 집에 일이 있다 하지 않았나?"
- 네. 그래서 현수형님도 오셨는데 제가 자리 비우기도 그렇고 해서 겸사겸사 전화 드렸습니다.
"그럼 바로 퇴근하고 현수에게는 내가 간다는 말 하지 마라."
- 네. 사장님.
"이런 팔불출. 그렇게 생각 안 해?"
옆에 앉아 술 시중을 들고 있던 은영에게 형준이 동의를 구하자 은영 역시 형준의 말에 장단을 맞추어 새초롬하게 눈웃음을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 말에는 그렇게 박하던 웃음이 그 분의 이름만 나와도 그렇게 바보 온달처럼 되다니요. 저, 상처받았어요. 사장님."
"그러니 이 녀석이 머슴이지. 어디 머슴이 별당 아씨의 손길을 거부할 리가 있나."
"그만해."
"그만하긴 뭘 그만해!! 바쁜 네놈 일정 맞추느라 벼르고 별러서 여기까지 왔는데 네 아씨의 호출도 아니고 블루에 왔다는 말만 듣고 쌩하니
가겠다는데 오냐 하면 난 누구랑 술 먹냐고!!"
"도영이는?"
"도영이 자식 이야기도 하지 마."
"왜?"
어쩐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시계를 슬쩍 보자 형준이 아예 재준의 재킷을 재준에게 던져버렸다.
"가라. 가."
"음?"
"내가 도영이 이야기 풀어놓은들 네 귀에 지금 들어오겠어? 얼른 아씨한테로 달려가. 이 머슴 같은 놈아."
"후후.. 나중에 빚 갚으마."
"오냐, 섭섭하게 하기만 해봐. 내 손에 죽을 줄 알어. 그나저나 오늘 은영이 차인 날이라고 위로 주 사는 날이라고 했는데 이거 은영이한테 너무
섭섭하게 대하는 거 아닌가?"
"아..그런가?"
재준의 눈길을 받자 은영은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작게 투덜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끝까지 이러시면 저 정말 섭섭합니다. 사장님."
하지만 미인의 투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지 재준은 이미 일어서 형준이 건네준 재킷에 팔을 꿰었다.
"다음에 또 한잔 하지."
재준은 은영의 서운한 눈길에 고개만 끄덕여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민와 두식이 재준에게 다가와 머리를 조아렸다.
블루라는 짧은 말로 행선지를 통보하고 차의 뒷자리에 앉아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대었다. 아, 그러고보니..
"소나타는?"
"청담동에 있습니다."
"아, 다행이군."
"중간에 바꿀까요?"
"그래."
병우가 연락이 온 걸 생각하고 있을 때 그제야 상준도 오늘 자리를 비운 것이 떠올랐다. 별일은 없겠지만 현수의 곁에 상준이 없는 게 신경이 쓰였다.
블루 안이라면 병우라도 신경을 써 줄 텐데. 일전에 그 일 역시 블루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밟아."
"네."
가서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지만 길이 막혀버리자 점점 조바심이 났다. 결국 재준이 현수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화마저 받지 않는다.
재준은 한 번 더 운전을 하고 있는 두식에게 명령을 내렸다.
"더."
"네."
재준의 불안한 마음을 알았는지 평소 이런저런 이야기로 조잘거리던 두식도 이것저것 보고할 일이 많았던 민도 입을 다물고 그저 현수에게 무슨 일이
없기만을 내심 기도했다.
심장이 멎는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재준은 블루의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재준의 뒤를 따르던 민이
실내를 보자 짧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재준은 문가에 서 움직일 수 없었다.
"어, 재준씨??"
반가운 듯한 목소리가 조용하던 가게 안에 떠올랐지만 재준은 시선은 처음 그대로였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이 덩치들을
제압하는 동안 기절한 듯 움직임이 없던 몸이 움찔하고 튀어오르자 뛰다시피 누워있던 연인에게 다가갔다.
"혀,현수야"
"으.....주....."
"그래, 나야. 준이. 쉿, 괜찮아. 응? 괜찮아. 내가 왔어. 현수야.."
어느새 정신을 놓아버린 현수를 끌어안으며 심호흡으로 거칠어지는 심장 박동을 조정했다. 차를 주차하고 온 두식이 재준의 곁에 다가와 현수의
상태를 눈으로 살폈다.
"다행이 뼈는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 박사님께 연락 넣겠습니다. 청담동으로 가실껍니까?"
"아니. 병원으로 간다."
대답조차 할 수 없어 가만히 있자 무언의 말을 알아들은 두식이 알았다 대답을 하며 자리를 비켰다. 민의 사인을 받은 두식이 뒤처리를 하고 민이
슬금 블루를 빠져나와 현수네 일가의 주치의인 김 박사에게 전화를 넣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여진 블루의 문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민이
폴더를 열어 전화 한 곳은 형준이었다.
"형님. 민입니다."
- 그래. 알아. 재준이한테 무슨 일 생겼냐?
"형님이 아니라.."
- 음? 진짜 무슨 일 생긴 거야?
농담으로 건낸 말이 진실성을 내포하고 되돌아오자 형준의 다급한 음성이 전화기로 넘어왔다.
"현수형님께서 다치셨습니다"
- 뭐?? 왜!! 어쩌다가? 블루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네. 블루에 계신데.."
- 구체적으로 말해봐. 블루안에 있는 사람이 왜 다쳐!!
"그건 아직 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 문제?
"블루에 도영이도 있었습니다. 살짝 들으니 아무래도 그쪽에서 사고를 친듯 싶어서 전화드립니다."
- 하, 그 말썽꾸러기가. 알았다. 다행이 나도 블루 갈까 하고 이미 출발했으니깐 십 분이면 도착한다. 그리고 재준이 한테 도영이..아, 아니다.
현수가 다친 마당에 도영의 안부를 당부할 수 없는 형준이 말을 끊었다. 민은 긴 한숨을 내쉬며 블루의 문 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퓨즈가 끊어져 버린 재준에게 진정제 역할을 할 현수도 정신을 잃어버렸으니 이제는 형준뿐이다. 어떤 어쩔 수 없는 사태가 벌여져 현수가 그렇게
다쳤다고 해도 그 어쩔 수 없는 사태의 제공자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가져나온 CLOSE 팻말을 걸어두고 민은 블루 안으로 들어섰다.
현수를 곱게 눕혀 놓고는 서서히 일어서는 재준은 아무런 생각도 들어 있지 않은 사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살의로 가득 찬 오오라는 재준을 십 오 년 넘게 가까이에 있었던 민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모골이 송연해질 만한 살기였다.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이때 현수라도 깬다면 그의 살기는 일단 잠시 보류될 테인데 현수는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누가 설명 할 텐가."
두식이 무릎을 꿇린 두 덩치를 뒤에 서 있었고 그 옆에 나란히 두 바텐더와 도영이 서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재준의 분위기에 이미 만신창이가
된 덩치들은 기가 죽어 입을 다물었고 사장이라고 하나 말 한번 제대로 섞어 보지 못했던 알바 두 명 역시 잔뜩 졸아 입을 벌리지도 못했다.
우진 역시 구석에 쳐 박힌 채 신음성만 뱉을 뿐이다. 누구에게서도 대답이 없자 재준이 도영을 바라보았다.
당장 살인이라도 저지를 듯한 눈빛을 한 재준이 익숙하지 않은 도영 역시 대담한 그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왜..그래? 재준씨. 무서워."
"말해."
"저 사람...아..는 사람이야?"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지 못한 도영으로서는 그저 자신의 가게에서 다친 사람을 살피는 것만으로 봤기에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말하라고 했다."
온몸을 난도질할 것 같은 살기 어린 목소리지만 도영은 재준이 아는 사람은 거의 안다고 생각했다. 사업상 만나는 사람이나 원나잇 상대라면 모를까
사교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재준이 자주 어울리는 사람은 형준과 함께 자리한 적이 많았기에 그런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
리고 그 자신감이 포함된 도영의 사랑은 마음에 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도영을 뻔뻔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깐 어떻게 된 건가 하면...아마 여기 두 사람과 저기 두 사람이 여기서 크루징을 하게 되었나 봐."
도영의 말에 눈이 동그래진 민과 두식이 도영이 가리키는 네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식이 잡고 있는 두 덩치야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 두
사람은 현수와 우진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도영에게로 향했다. 조금 안타까운 시선으로. 하지만 여기서 아닐 거라고 도영의
입을 막는다면 그건 재준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기에 둘 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3P 하는 사람들이야 4P야 뭐 대수겠어? 그런데 서로 요구하는 금액이 좀 달라서..."
민은 차라리 도영의 입을 막고 싶었다. 저 눈치 빠른 사람이 보는 눈도 없는가. 재준의 짙어지는 검은 눈동자 속에 타오르고 있는 분노를 왜 모르는지..
재준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초조해진 도영의 입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말들이 줄줄 나왔다.
"좀 터무니없는 액수를 저 두 사람이 요구했나 봐. 여기 이 덩치들이 그러면 다른 상대를 찾는다고 했지만 저 두 사람이 먼저 말해놓고서는 이러면 안
된다고 난리 치고 그러다가 주먹이 오고 갔어. 에..그러니깐 저 둘이 사실은 이클립스의 걸레라고.."
도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재준의 손이 거침없이 도영의 뺨에 작열했기 때문이다. 쿵하고 넘어지는 도영을 내려다보는 재준의 눈은 상대의
모습까지 다 보일 만큼 칠흑과도 같은 검은빛이었다.
"뭐라고 했나. 다시 한 번 말해봐."
"재..재준.."
"걸레?"
재준의 발이 도영의 배를 파고들었다. 윽 하는 신음과 함께 몸을 움츠리면서도 도영은 재준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몰랐다.
이번에는 잘 닦여진 구두가 이번에는 턱밑을 세게 올려 찼다. 벌여진 입에서 피가 툭 튀어나왔지만 재준의 얼굴은 더 차가워질 뿐이었다.
축 늘여진 도영의 목에 재준의 구두가 도영의 목젖을 강하게 눌렀다. 낮은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곧 숨이 넘어갈 듯 손 발이 가늘게 떨리자 재준의 구두가 제 자리로 돌아갔다.
"형준을 봐서 여기까지 한다. 하지만 두 번은 없을 거다. 민 도영"
재준이 다시 현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서 현수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고 있을 때 형준이 도착했다. 헐레벌떡 들어오던 형준이 블루의 안을
살펴보다가 몸을 움츠리고 있는 도영과 재준의 품에 쓰러져 있는 현수에게 시선이 멈추어졌다. 사정을 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형준이 도영보다
재준에게 다가가 청솔의 어른에게나 하는 깊은 인사를 했다. 굽혀진 시선 안에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부을 대로 부은 현수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 전 현수가 다쳤을 때보다 훨씬 심하다. 그때 재준이 얼마나 놀랬었는지 아는 형준으로서는 이런 방법으로 친구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재준아."
등을 돌린 채 돌아다보지도 않은 재준이지만 형준의 숙여진 고개는 세워지지 않았다. 도영도 중요하지만 형준에게는 재준이 더 중요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서 있기까지 재준이 없었다면 형준의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재준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얻은 사람이 현수였다.
그를 상처 입히는 만 분의 일의 가능성마저 없애기 위해 재준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버리고 그의 곁을 선택했었다.
그렇게 아끼는 사람이 이렇게 다쳤다. 비록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고는 하나 형준은 재준의 들끓는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도영이, 내 사람으로 봐줘서 인정 둔 거 안다. 미안하다. 팔이라도 하나 내놓으라면 놓으마."
두 사람의 작태를 지켜보던 도영이 급기야 소리를 빽 질렀다.
"형준!!! 미쳤어?? 그깟 일에 팔이라니!!!"
그깟 일이라니, 형준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행여 재준이 도영의 말에 겨우 잠재운 화를 폭발시킬까 봐 내심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재준은 도영의 말보다 현수의 상태가 더 걱정이 된 듯 도영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재준은 현수를 조심스럽게 눕히고 이제 몸을 추스를 기운이 생겼는지 일어서는 우진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누워있기는 했지만 흘러가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던 우진이 재준의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 아까까지만 해도 살벌한 냄새를 풍기던 사람이 힘겨워
보이기는 하지만 정중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는 것에 놀라 마주 고개를 숙였다. 살짝 뒤를 돌아다보니 형준이라는 사람은 아직 구십
도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도 재준입니다."
"아, 네 박 우진입니다."
"일전에 주신 온천 티켓 덕분에 잘 썼습니다."
"아...여기 사장님이라던 친구분?"
"네. 접니다."
"그렇군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저야 뭐, 현수가 많이 다친 것 같은데..제가 차마 못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된 거냐 하면은.."
"되었습니다."
도영의 말에 울분이 터져 기운을 차린 우진은 자세한 정황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재준에게 저지당하고 말았다.
"혼자 댁까지 가실 수 있겠습니까?"
"네. 전 괜찮습니다만."
"현수는 제가 아는 의사분이 계시니 그분께 보여드릴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댁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두식아."
"네. 형님."
"이 분 정중히 모셔다 드려라."
"네."
두식이 다가오자 당황한 우진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택시 타면 금방인걸요."
"괜찮습니다. 티켓까지 선물로 주셨는데 저녁 식사는커녕 이런 일을 겪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꼭 보답해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사양하지 마십시요."
재준의 사인에 두식이 다가와 우진에게 가기를 권했고 우진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두식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때까지 형준은 재준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고 그런 형준에게 도영은 똑바로 서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재준이 형준에게 일별조차 하지 않고 현수에게 다가가 그의 목과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미안하다. 재준아."
재준은 현수의 얼굴을 한 번 내려다보고 눈앞에 있는 블루의 계단을 바라보았다. 이기적이라 해도 할 수 없지만 재준에게서 형준이라는 인물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여기서 돌아서 나가면 가끔 아쉽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수의 이런 모습을 두 번 보게 할 형준이라면 안 봐도 하나도
섭섭할 게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현수는 아닐 테다. 현수는 자기 때문에 재준이 형준과 만나지 않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재준 스스로 의지였다고 해도 말이다.
"재준아. 어떻게 하면.."
"두 번은 절대 용서하지 않아."
"물론이다."
형준에게 시선조차 두지 않은 재준이 민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 둘은 청담동 지하실에 넣어 두고 손대지 마라. 직접 처리한다."
"네."
현수를 안은 재준과 두 덩치를 끌고 가는 민이 자리를 뜨자 그제야 허리를 펴는 형준에게 도영이 다가갔다.
"저 인간 도데체 뭐기에 형준이가 이래야 되는 거야? 응?"
재준을 바라보았던 눈빛과 같은 눈빛이었다고 볼 수 없는 형준의 불 같은 눈길에 도영이 몸을 사리기도 전에 도영의 뺨을 형준이 올려붙였다.
"혀..형준?"
어떠한 자신의 부당한 행동에도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미소로 일관하며 살펴주던 형준의 느닷없는 행동에 도영이 연이어 맞은 뺨의 통증보다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하고 형준을 올려다보았다.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한 거야?"
"도대체..그 사람이..누구.."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해도 상관없다. 내가 다 받아주면 되니깐. 하지만 재준은 아니라고 했잖아. 재준이 건드리지 마.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는거다. 재준이를 도발하게 되면 너나 나나 둘 다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서..설마.."
"도데체 어떤 일을 벌였기에 현수가 그 모양까지 된 거야? 어찌되었던 이번 기회에 너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다시 한 번 네가 날 무시하고
재준이를 건드린다면 그 땐 내 손으로 직접 널 죽여줄 거다. 단순한 협박이라고 생각하지 마. 민 도영!!."
"그..사람이...설마..."
"이제 알았나? 재준의 뒤를 그만큼 쫓아다니면서도 그를 그렇게 몰라? 재준이의 그 화난 모습이 네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어?"
"그 사람이..바로.."
"그래!! 도 재준의 하나뿐인 아씨. 청솔의 어르신께서 점지한 유일한 가족이다. 네가 뭘 건드렸는지 이제야 알겠어?"
그제야 자신의 한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실감한 도영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고 형준은 그를 보면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이 부디 어르신께 안 들어가길 바랄 뿐이다. 재준이야 형준과 현수를 생각해서 도영을 가만히 두었겠지만 어르신은 안 그러실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