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거짓말 [22] (22/28)

하얀 거짓말 [22]

"하이고 피곤해 죽겠습니다. 왜 빵빵한 전산망 두고 이런 쌩고생을 하나 몰라요. 이건 이 글로벌 시대에 뒤처지는 행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뒤처지는 행정이라고 해도 꼭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니깐 뭐. 그리고 사실 본사에서 직원들 수시로 내려와야 정신 차리는 사람도 있으니깐 할 수 없지."

"휴, 그래도 이제 한 일주일만 하면 되겠죠? 역시 집이 최고라니까요. 그런데 이 대리님."

"왜?"

"보통 실사에 평사원이 오지 않나요? 이 대리님이 먼저 자청하셨다고 들었는데 왜 이런 고생길 하신다고 하셨어요?"

"아..그냥. 내가 평사원일 때는 관리부가 아니었거든. 기분 좋게 전국일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어휴. 징그러. 전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안 할 겁니다. 이게 뭐예요. 집에도 한 달 넘게 못 들어가고 잠도 

이런 꼬질꼬질한 여관방에서 자고, 아침도 대충 때우고 백화점 갔다가 바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고. 역시 사람이 할 짓은 못된다니깐요."

민재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현수는 머리카락을 말리던 수건을 툭 던져버리고는 버릇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알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누우니 민재가 방에 불을 껐다.

골목 안쪽에 위치한 모텔이어서 그런지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조차 새어들어 오지 않자 방 안은 그야말로 칠흑과 같이 어두워졌다.

서울이라면 상상도 못할 한밤의 어둠이 낯설지만 그만큼 편안해져 왔다.

"그런데 대리님."

"왜."

"그거 아세요?"

"뭐?"

"대리님 꼭 핸드폰을 보시는 시간이 정확히 12시라는거요."

".....내가 그랬어?"

"정말이라니까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가만히 보면 그랬어요. 나중에 알고 얼마나 섬뜩했는지 알아요?"

"섬뜩할 건 또 뭐야."

"왜 있잖아요. 공포영화 같은 거 보면 커다란 괘종시계가 땡~땡~ 하고 울리고 그 시간은 꼭 12시 정각!!! 뭐 그런 거요."

"꼭 너 같은 거 봤구나?"

벌떡 앉은 민재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현수는 어둠 속에 가려진 낯선 지방의 낯선 모텔방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자한테 차였어요?"

"또 소설 쓰냐?"

"뭔가 있다니깐요. 평소에 대리님이 아니라고요. 저의 이 예리한 감각 못 속이십니다. 빨리 불어보세요. 네?"

첫 키스가 어땠는지를 요구하는 여고생처럼 현수의 이부자리까지 침범한 민재의 재촉에 현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냐."

"에..그럼 뭔가 고민거리가 있기는 하지요?"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너 피곤하다며? 안 자? 내일은 오전에 울산 가야 해. 알지?"

"잠이 안 와서 그래요. 이상하게 많이 피곤한 날은 잠이 오히려 안 온다니깐요."

마치 당장에라도 잠 잘 것처럼 현수가 눈을 감아버리자 쫑알쫑알 떠들던 민재도 포기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누웠을 때가 되어서야 꾹 닫혔던 현수의 입이 열렸다.

"만약에..."

"만약에 뭐요?"

아까처럼 채근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연장자의 느긋함이 배여 든 민재의 목소리는 나른했다.

"누가 나한테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는데, 그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용서해 줘야 할까?"

"용서해주고 싶으면 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죠."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어떤 생각요?"

"내가 과연 용서해주고말고 할 자격이 있는가.. 뭐 그런 생각. 내가 마치 신이라도 된 양 용서가 되니, 안 되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사랑하는 동안에만 용서할 수 있다. 용서하는 것은 가장 고결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 

용서는 이 세상에서 듣지 못할 평화와 행복을 그 보답으로 주나니. 와~ 이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대단해. 후후. 만약 대리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용서해주시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라면 용서하지 않은 건 어때요?"

"사랑하는 동안에만 용서할 수 있다라.."

"그 사람 사랑하니깐 고민하시는 거죠?"

"어..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와?"

"그러니깐 그런 갈등하는 거잖아요. 평소에 미워하던 사람이라면 이사람 용서해줄까 말까 그런 고민 왜 해요. 

안 그래요? 대리님이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속으로는 용서를 했다는 거 아닌가요?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용서해버리세요. 사랑이 꼭 사랑해~ 

라고 고백해야하는 건가요. 뭐. 용서도 사랑의 한 형태 라잖아요."

문득 예전에 재준의 아버지가 한 부탁이 떠올랐다.

단 한 번만 재준이 잘못을 한다면 용서해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배포 좋게 그러마,

 라고 대답을 했었는데 새삼 용서하다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깨달았다.

아니 거짓말이고 용서고 한 달이라는 시간의 거름종이를 거치니 남는 것은 보고 싶다는 감정뿐이다.

앙금처럼 남아 있는 그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그리고 믿음에 배신을 했다는 점이 아프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보고 싶다는, 

이제는 쥐어짜면 물기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푹 절은 감정만이 가슴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 달 넘게 못 본적이 있었던 것도 같다. 가끔 해외에도 나가곤 하던 녀석이었고 또 일이 바쁘다며 한 달 이상

 못 본적이 자주는 아니라고 해도 일 년에 두 번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해외에 있을 때조차 꼬박 안부전화를 하던 재준이었다.

목소리도 차단되고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물론 스스로 자초를 하긴 했지만 어쩜 그리 무심하게 짧은 소식조차 없는 것인지, 

정말 이대로 완벽한 '절교'를 하게 되는 건 아닌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했다.

한 번은 만나봐야겠다고, 절교라고 대범하게 외친 가슴이 보고픔에 쪼그라들어 자존심 다 버리게 하였다.

어쩐지 떨려오는 가슴을 토닥이며 언제 그를 만나러 가야할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어머니의 호출이 왔다.

현수가 최여사의 전화를 받은 것은 한 달이 넘은 긴 출장 끝에 찾아온 하루뿐인 휴가로 집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놓고 있을 때였다.

"목소리가 왜 그래?"

내색 없이 전화를 받는다고 받았는데 어머니가 예민하신 건지 아니면 마음을 숨기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현수는 단번에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편안하게 말을 하려고 나름대로 애썼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목소리가 왜 다 죽어가."

"죽긴 뭘. 그냥 그럴 일이 있어서.."

"무슨 일"

"그냥..재준이랑 좀 다퉜어."

"재준이와?"

"응 별일은 아니야."

별일 아니라는 말로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현수의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어머니는 끈질기게 그 이유를 캐물었다.

"다 큰 애들이 싸웠다고 하니깐 그러지."

"재준이가...."

"그래."

뭘 알고 싶으신건지, 꼬치꼬치 캐묻는 어머니의 대꾸를 피하지 못해 현수는 이실직고를 했다.

"나한테 거짓말을 했거든. 그것도 상당히 중요하고 심각한 건수로 두 번씩이나 연타를 날렸지 뭐야. 

내가 속이는 거 제일 싫어하는 줄 아는 녀석이 그래서..... 절교했어."

그 거짓말의 내용까지 캐물으면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하나 고민을 하던 현수에겐 다행히도 어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생각지도 않은 말은 꺼냈다.

"뭐?? 절교???"

"헤헤.. 우리 나이에 절교라는 단어는 좀 그런가?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라는 말을 삼킨 것은 어머니가 재준을 크게 달갑게 생각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말을 멈추었을 때였다.

"이번 주 토요일 대구 내려와."

명령에 가까운 강압적인 말투가 들려왔다. 

"네?"

"대구 오라고. 토요일날 아침 아홉 시까지 꼭 와라. 알았지?"

보통 현수가 대구 내려가는 건 명절 때외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서울에 친구분이 다 계시는 어머니가 주로 서울로 나들이 하시는 편이기도 했고 주말에 현수가

 대구 내려오는 것보다 선을 하나라도 더 보는 걸 요구하셨기 때문에도 그 이유가 있었다.

 물론 현수가 귀찮아서 집에 있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그럴 것이 어머니가 내려오라고 재촉이라도 하면 못 

이기는 척하며 내려갈 텐데 여태 무리하게 내려오라고 말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엄마. 나 웬만하면 가겠는데 나 기분도 별로.."

"잔말말고 내려와!!! 아홉 시까지 안 내려오면 다시는 안 볼 줄 알아!!!"

호통에 어안이 벙벙한 현수에게 또 생각지도 못한 어머니의 몇 가지 당부를 듣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뭐라고? 웬 카페??"

주택가 안에 위치한 카페는 책방과 미용실 사이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그 모양새가 불협화음이었다.

 전면유리로 된 것까지는 좋은데 진한 선팅을 한 탓에 어딘가 음침한 불법술집 같은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유럽풍의 흔들거리는 작은 팻말과 세 개 있는 계단에 놓인 이상한 모양의 로그는 매우 독특해서 눈길을 끌었다. 

이른 아침시간에 문을 열겠나 싶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청명한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문에 달려 있었는 모양이다.

주인인듯한 삼십대의 편안한 인상을 가진 여성이 다가와 서성대는 현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 빨간 지붕 집 최 선생님의 부탁으로 오신 분이시지요?"

현수는 아마 엄마가 이 동네에서는 '빨간 지붕 집 최 선생님'으로 통하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언질을 둔다고 하시더니 이걸 말하는 모양이다.

"여기 자리에 앉으세요. 글 쓰시는 분이라 조용히 해드리라는 당부를 꼭 하셨습니다. 오늘 오후 내 계실 거라고 식사도 챙겨드리 라고요. 

걱정마시고 책 보세요. 휴식을 필요하신 분께 방해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깍듯한 대접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지만 안면이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뭐 하긴 명절 때만 왔다가 가는 

빨간 지붕 집 최 선생님의 아들이 마주보고 있는 집이라고 해서 알 턱이 없다.

읽을 책을 많이 들고 와서 시간이나 죽이라고 하시더니 뭔 말인가 싶었는데 이건 완전히 고문이다.

놓인 따뜻한 차를 한 모금 훌쩍 마시며 현수는 엄마에게 묻듯 마주 보이는 대문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문은 며칠 전 통화한 엄마의 목소리처럼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엄마의 당부란 토요일 아침 아홉 시까지 이 카페에 와서 오후 다섯 시까지 죽치고 있으라는 거였다. 

밖으로 나오지도 말고 하루종일 책이나 보면서 엄마 집 대문을 보라는 주문이었다. 

얼토당토않은 주문에 몇 번이나 왜 그러냐고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잔말 말라는 단호한 음성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뭐 딱히 나쁠 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한가하게 책이나 보며 주는 차나 마시며 오래간만에 

느긋함을 즐기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수도 있을 테다. 한 잔의 차를 다 마시고 차와 함께 나왔던 커다란 

보온병에서 다시 물을 찻잔에 따르고 있을 때였다. 눈에 익숙한 차가 보였던 것은. 

구형 소나타. 낡았다고 투덜거리던 차는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다. 그 거짓말처럼 어머니의 집 대문 옆에 차가 세워지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내렸다. 

".....재준이?"

놀라 검은 유리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성큼 들어서는 재준의 뒷모습에는 어색함 하나 묻어나오지 않았다.

**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며칠 굶은 사람 같네."

"아..요즘 일이 좀 많아서 잠을 며칠 못 자서 그런가 봅니다. 괜찮아요 어머니."

"그래? 현수는?"

재준은 잠시 갈등을 했다. 솔직히 현수를 붙잡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절박함이 온 심장을 죄이고 있었다.

 들어주실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요 근래 들어 자신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시는 현수네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현수를 생각한다면 어머니께 현수의 마음을 좀 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썩 괜찮은 방법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재준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의 선택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던가. 그의 의지로 선택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면 예전에 그를 강제적으로 어떻게 했을 것이다.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는 감기로 고생 안 하셨어요?"

하지만 재준은 현수가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떤지 전혀 몰랐다. 상준도 따라 붙이지 않았고 민에게 보호차원에서라도 현수의 뒤를 살피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의 안부가 미칠 듯이 알고 싶지만 모든 정보의 선을 다 끊어 버렸다. 마치 그것이 현수에게 사과라도 하는 방법인 듯 그렇게 잘랐다. 

"뭐 나야 원래 감기 안 달고 사니깐. 그나저나 오늘 단단히 각오는 하고 왔겠지?"

"하하.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좀 불안해 보이는 걸. 어째 오늘따라 부실해 보여."

"서울 도착해서 당장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김장은 제 손으로 다 하고 갈 겁니다."

"시작하기 전에 마음 바꿔. 괜히 몸살나서 서울까지 운전도 못한다 하지 말고."

"그럼 어머니께서 재워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흥. 어림없는 소리. 내가 설마 네놈을 우리 집에 재울까 보다. 그럴 욕심이면 당장 돌아가!!"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자, 뭐부터 할까요?"

"자식 복이 없어 내가 너한테까지 손을 빌리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네가 자청했다는 거 명심해라."

"그럼요. 마당에 있던 독부터 씻을까요? "

"그전에 우선 대문부터 열어. 오늘 날도 따뜻한데 마당에서 하지. 작년처럼 배추 툭툭 던지기만 해. 음식 귀한 줄 모르는 놈한테 김장 못 맡기니깐."

"네!! 명심,또 명심하겠습니다"

며칠 굶은 재준의 상태를 아시는지 밥부터 권하는 어머니의 권유가 속에서는 반가울지 몰라도 재준의 입은 여전히 깔끄럽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국에 밥을 말아 훌훌 넘기는 모습을 빤히 보시던 어머니가 아무런 말 없이 마당으로 나가시자 재준은 몰래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마당으로 나갔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김장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공기가 차갑기는 하지만 며칠 전 추위를 생각하면 그다지 춥지도 않은 날씨다.

따뜻한 날씨에 또 한 번 현수를 생각한다.

춥지 않으니 다행이긴 한데 옷 챙겨입기 귀찮아 하는 녀석이 날씨를 우습게 보고 가벼운 옷차림을 하다가 감기나 덜컥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매일 밤 전화를 할 때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더라, 내일은 춥다고 하더라, 등등의 일기예보를 챙겨들어 전해주곤 했었다.

 처음에는 일기예보라 깔깔거리며 웃던 녀석이 나중에는 먼저 묻곤 했었다.

내일은 더울려나? 내일 또 황사 아냐? 라는 식으로..그러면 웃으며 들어둔 일기예보를 전해주면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작은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나를 필요로 해준다는 생각에 뉴스를 보더라도 일기예보는 꼭 빼놓지 않고 챙겼다.

그런 생각 끝이 다시 한 번 재준의 가슴을 꾹 찔렀다.

보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

멀리서라도 보면 안 될까, 라는 유혹이 잠깐 들었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허락없이, 몰래 무언가를 하는 일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그의 눈물을 보며 다짐했다. 그 결심만은 지키고 싶었다. 비록 그가 알 수 없더라도.

하지만................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한계는 오래전부터 다다랐다. 남은 것은 그날 현수의 눈물을 떠올리며 주먹구구식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정말, 다시는 그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그 상상하지도 못할 고통의 시간을 상상하며 또다시 참아 내는 것이다.

익숙한 인내의 시간이건만 하루가 한 시간이 일 분이 일 초가 아파 왔다.

보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

"실연당했냐?"

배추를 버무리던 손길을 따르며 조심스럽게 배추를 나르던 재준의 걸음이 멈추어졌다. 

놀란 재준에 비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듯 최여사의 손놀림은 내색도 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머니.."

"네 꼴이 하도 가관이라서 그런다. 한 달 동안 어쩐 일로 안 왔다 싶더니 해골 같은 몰골로 와서 허허 웃는 꼴이 무서워서 그런다. 왜 실연당했어?"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어 한 달 동안이나 오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마침 이번 주에 

김장을 한다고 하셔서 날름 달려온 것이다. 때맞추어 전화를 드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끓는 용암을 품고 있는 활화산 같은 이 참을성 없는 속을 어머니를 뵙는 것으로 조금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배도 있었다.

"아니요. 저 실연 안 당했습니다."

"그래?"

"실연은..사랑을 잃어버리는 거지 않습니까. 저 사랑.. 안 잃어버렸습니다. 어머니."

"그럼?"

"현수 속 상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 하지만 어머니 ..........제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

"허이고, 잘한다. 늙은이 앞에 두고 사랑타령은. 낯 두꺼워졌구나. 처음에는 뻔뻔하게 내색도 안 하던 녀석이."

"하하. 그런가요? 뭐 제가 말을 안 해도 어머니께서는 다 아셨지 않습니까."

잠시 처음 재준이 이 집을 방문했을 때를 생각하던 최여사가 재준을 보며 눈을 흘겼다.

"내가 눈치가 빠른 게 아니라 니놈이 질질 흘리고 다녔으니깐 그렇지. 왜 우리 아들 마음 상하게 했어?"

"어머니께서 종종 말씀하셨던 게 들킨 거죠 뭐."

"내가 뭐?"

"저 여기 처음 왔을 때 음흉한 속 숨긴 거 다 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 속 들켰거든요. 현수.. 속이는 거 질색하지 않습니까."

"뭘 속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요. 너무 많이 속였어요. 저. 벌 받아도 할 말이 없을정도입니다.."

"현수 녀석 거짓말이라고는 질색하는 거 알면서 왜 그랬어?"

어머니의 맞은 편에 털썩 앉으며 재준은 쓰게 웃었다. 결과적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만약 다시 그때의 상황이 닥친다면 또 거짓말을 할 것이다. 그만큼 당시엔 진실보다 그를 잡고 싶은 욕심이 먼저였다.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는 작은 것부터였어요. 그리고 그때는 현수가 그렇게 속이는 걸 싫어하는 지도 몰랐구요.

 현수가 오락실에서 친구들끼리 하는 말 들은 적이 있는데 현수는 싸움하는 녀석들과 부자들 제일 싫다고 하더군요. 

그 소리 듣고 얼마나 찔리던지..그땐 현수가 절 모를 때였는데도 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인가..하구요. 그러다가 현수 정면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저절로 거짓말이 나오더라구요.

 우정이라도 움켜쥐고 싶었으니깐..나름대로 절박했거든요.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 손을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거짓된 말이 먼저 나온 겁니다. 아버지가 이끄는 큰 규모의 조직을 평범한 회사로 만들어 버리고 

양가에서 내려온 저희 집 재산이나 제 소유로 된 자금들 다 종이조각으로 만들면서 그에게 용돈이 궁하다 하소연하며 분식도 얻어먹었습니다."

"잘하는 짓이다."

"그러게요. 그렇게 거짓말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면 .. 아니, 알았다고 해도 어쩌면 거짓말을 했을 겁니다. 

그만큼 그때는 당장 눈앞에 보여진 현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상상조차 하기 싫었으니깐요. 

처음엔 그렇게 시작한 거짓말이 점점 눈덩이처럼 부풀려지더라구요. 현수도 자잘하게 캐묻지도 않았고 저도 일부러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거짓된 인생으로 살고도 네 사랑이 올바르다는 거야? 거짓말은 도둑질과 똑같아.

 한 번 손을 타게 된 도둑은 좋은 물건만 보면 도벽이 생기는 거야. 

넌 네 식대로 편하게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네가 궁지에서 빠져 나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 

진실은 네가 거짓으로 우정을 만들었다는 거다. 현수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지는 않겠지?"

어느새 김장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바람도 차가워졌지만 두 사람은 싸늘한 공기도 인식하지 못한 채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거짓으로 시작된 마음이었고 그렇게 거짓으로 만든 우정이었습니다. 전 애초에 그를 단 한 번도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깐요."

"거짓으로 시작한 데다가 제대로 된 고백조차 하지 않는 녀석을 우리 아들이 좋아할 리가 있어?"

"하얀 거짓말이었습니다."

"뭐?"

"알아주길 바라는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얗다는 건 맑고 선명하다는 뜻이지요. 

제가 하는 선명한 거짓말을 알아주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현수는 자세히 보면 다 알 수 있는 거짓말을 한 번도 알지 못했어요.

 바쁘다고 말하면서 전 현수의 집 앞을 서성거렸고 그의 호출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뛰어갔습니다.

 네가 특별하다는 말은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감춘 거짓말이었고 네가 소중하다는 말은 내 목숨보다

 네 한순간의 숨이 더 중요하다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원래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거짓말 뒤에는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직접 해주고 싶어서 요리학원을 다닌 진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속에서 

술 안 받는다는 거짓말은 그가 술을 마신 뒤가 걱정이 되어서 했습니다. 그에게 따뜻한 남향의 

집을 선물해주고 싶어서, 비싼 전세금 걱정하는 꼴 보기 싫어서 그 집 제가 사서 밑에 놈 시켜 

그에게 모른 척 전세를 놓으라 했습니다. 또 말해볼까요? 어머니?"

"..."

젖어드는 그의 목소리를 못 본척하며 최여사의 손은 부지런히 배추를 버무리고 있지만 열린 귀로 들어오는 애잔한 감정 때문에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현수를 지키고 싶어 모질게 집을 나와서 처음 시작한 것이 블루라는 칵테일바였지만 나중에는 결국 외할아버지께서 하시던 소비자금융까지 떠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채가 남의 등 처먹고 산다고 말하던 현수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 이 세상에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지만 현수.. 무섭거든요. 화내는 거, 저에게 등 돌리는 거,

 무서워서 상상하기조차 싫었습니다.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저 벌 받나 봅니다. 어머니. 현수가.... 알아 버렸습니다.

  한 달 전에 회사로 찾아오고 말았지요. 감정에 기생하던 거짓들을 다 발라서 늘려놓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이제 와서 또 무슨 거짓을 말하며 순간을 모면하겠습니까. 맞다고, 네가 말하는 거 다 맞다고 했더니 절교를 선언하고 가버리더군요. 어머니.."

울컥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절교'를 뱉는 음성은 재고의 여지조차 두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는 못 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일 년이 되던 십 년이 되던 백 년이 되던, 그가 마음이 돌아설 때까지, 용서해 줄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이 두 눈으로 보고파 눈병이 나더라도 , 목소리가 듣고 싶어 고막이 귀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오더라도,

 심장이 보고픔에 찌그러들어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더라도 기다릴 것이다.

재준은 현수의 어머니 앞에 흐르는 진통의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감출 수 있는 것은 컨트롤을 할 수 있는 경우였다. 하지만 현수에 대한 보고픔은 더 이상 이성으로 조절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

"어머니..저 어떻하죠? 어떻하죠? 현수가..현수가 저 진짜로 안 본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요? 네? 가르쳐주세요. 어머니.. 

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발 좀 가르쳐주세요.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고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는지..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하나도.." 

다 큰 사내놈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처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꾸만 묻는 것을 최 여사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처음 현수가 짝이라고 집에 데리고 왔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친구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닌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을 하고 있는 재준을. 

어쩌다가 재준을 바라보면 재준은 항상 현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밥을 먹을 때도 표시가 나지 않게 현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주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도 현수가 급하게 밥을 먹는다 싶으면 마치 자기가 마실 것처럼 물을 따르고 잔을 현수와 자신의 중간쯤에 

두어 현수가 우연히 손을 뻗기 편하게 하였고 생선에 손을 대더라도 먼저 발라놓고 그 중 한 점을 집어 먹곤 했었다.

그래서 선을 서둘렀고 인연이 안 되려고 했는지 현수 역시 제 짝을 찾지 못했다.

결혼할 의사도 분명 있고 참한 여자 골라서 선을 주선했지만 현수와 인연이 닿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것도 운명인가, 라는 자조적인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다.

"현수가 아버지 이야기 안 했지? 현수아버지는 유난히 다정한 사람이었어. 가정일도 잘 도와주었고 현수와도 정말 사이가 좋았지. 

어린 아이와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는 양반이었고 주말이면 곧잘 나들이도 갔었다. 현수가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나에게 곧잘 사랑한다는 중년의 아줌마가 듣기 힘든 말도 종종 들려주었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가장을 뽑으라면 서슴지 않고 

뽑을 수 있을 정도로 가족에게 헌식적으로 잘하는 사람이었어."

현수에게 우연히 아버지의 일을 물으면 거짓말쟁이라는 말과 함께 얼굴이 금세 우울해졌기에 더 이상 묻지 못했던 재준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과거를 더듬는 최여사의 눈빛은 아련하게 흐트러졌다.

"그런데 현수 중 3 크리스마스 날 웬 여자가 찾아와서 불륜영화처럼 내 머리칼을 쥐어뜯는 일이 생겼지.

 내 남편 돌려 달라고 울부짖는 그 여자는 현수보다 서너 살 어린 아이까지 데리고 왔었어. 기가 막힌 노릇이었지.

 마침 그때 현수아빠가 막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었고 여자는 이번에는 현수아빠에게 덤벼들며 

네가 그럴 수 있냐고 대성통곡을 하더군. 나중에서야 현수아빠한테 사정을 들을 수 있었어. 

거래 은행의 점장 딸인 그 여자가 예전부터 사랑한다고 따라다녔다고 하더군. 그러다가 현수 

어렸을 때 사업이 어려워졌는데 대출을 받을 수 없으면 당장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나 봐.

 그 기회를 여자가 노리고 나와 잠자리를 하면 아버지께 말씀드려 준다고 했다는군. 그래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 사태를 해결했는데 그 여자가 덜컥 임신이 되어 버린 거지.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눈앞에 벌려지자 

그 양반은 이 사실이 우리 가족의 귀까지 들려올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었고 여자는 그 기회를 빌미삼아 

세컨드라도 좋으니 살림을 살자고 했다는군. 법적으로 성립된 부부관계는 아니더라도 자긴 상관이 없다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에 와서 다 불어버릴 거라고 협박을 했을 정도로 그 양반을 마음에 둔 모양이야. 

그 세월이 십 삼 년 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 좋았던 여자가 점점 욕심이 생겨서 나와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더라. 그 문제로 차일피일 미루던 양반을 참지 못해 여자가 크리스마스를 

우리 집에서 보내게 된 사실을 알고 우리집까지 처들어오게 된 거야. 믿을 수 없었지. 다른 누구도 아닌 현수아빠라니,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길로 그 양반과 헤어졌고 또 아버지를 따랐던 만큼 현수의 실망도 상당히 컸지. 

아버지의 바람보다 십 년을 넘게 가족을 속인 게 제일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현수 마음 돌아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잖아. 사랑했던 만큼 배신감도 들었을 거다. 

아무리 사정이 있다고 해도 돈 때문에 넘어간 것도, 그 기나긴 세월동안 진실을 숨긴 아버지의 거짓도 끔찍했을 테지."

"그런..일이 있었는 줄..몰랐습니다."

"속내를 다 털어놓는 것처럼 말을 풀어내는 녀석이지만 네게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네게 말을 할 정도의 가치도 두지 않았을 거다.

 그 녀석은 그런 녀석이니깐. 그런데 몇 해전부터 그 양반이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 자신은 가정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고 

진실로 사랑하는 것은 현수와 나라고 말이야. 그 사람이 묻더군. 만약 처음부터 진실을 털어놓았다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었냐고.

 물론 아니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이건 뭔가 싶더군. 뭐가 옳은지 뭐가 그른지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말이야. 

그 양반 아직까지 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현수 생일 때 여기로 케이크와 꽃다발을 보내고 있어. 그쪽의 생활 역시 힘이 든 모양이야.

 마음이 없는 상대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고 그 여자의 집착이 여간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지. 난 아직도 그 양반 용서하지 않았어. 

하지만 모르겠구나. 네 말대로 그 양반은 나름대로 선의의 거짓말을 한 거겠지? 재준아.."

"네. 어머니."

"네가 토요일마다 대구에 내려온지도 벌써 오 년이 넘었지. 현수가 모르던데.. 그것도 네 거짓 중에 하나인 거냐?"

"네"

송구스러운 마음에 작은 소리로 재준이 대답을 했다.

"내 아들 흉거리 만들 수 없어 처음엔 널 박대했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매 한결같은 네 모습에 내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는 말 못할게다. 

그래도 난 아직까지 우리 아들이 참한 여자 만나서 결혼해 손주 안겨다 주었으면 하는 게 내 꿈이다. 하지만 재준아.."

최여사는 자신의 아들보다 자신을 더 자주 만나러 온 재준의 손을 잡아 보았다. 따뜻한 체온을 가진 재준이지만 해골같이

 마른 몸이 그의 시린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힘내거라."

"어..어머니.."

"널 응원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녀석아, 이렇게 살까지 내려놓고 머슴이라는 녀석이 기운 하나도 없는 모습 보기 싫다."

"어..머니..고..고맙습니다."

그제야 진심으로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재준의 손을 두드리며 최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호기심에 감정부터 불쑥 들이대는 마음이 아닌 것을 알기에, 치밀한 계산으로 매주 대구로 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두 손을 잡아 준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던지 이제는 자신에게 또 다른 아들이 되어버린 재준의 손을 툭툭 치며 김장을 재촉했고 

재준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일을 거들었다.

최여사는 대문 밖으로 시선을 한 번 던지고 이제야 편한 미소를 보여주는 재준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이래서 미운 정이 무섭다는 옛말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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