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하얀 거짓말 에피소드 2. (부제; 별당 아씨와 머슴의 첫날밤)
*별당 아씨와 머슴의 첫날밤[上]*
"재준씨는?"
"오늘 나 너 만난다니깐 형준이랑 술 한 잔 하고 온다고 하던데."
"키킥.. 혼자 집에 들어가기 싫다, 이거네?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나 몰라. 칫.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
난감한 기색이 뚜렷이 보이는 현수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도영은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약속을 정하던 현수를 떠올렸다.
물어 보고 싶은 일이란 게 혹시 재준의 과거(그러니깐 재준을 스쳐 지나갔던 남녀들)를 묻는 것이라면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잠시 고민했다.
그 일 외에 현수가 자신을 따로 만나 조용한 곳에서 물어보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한 도영의 생각과 달리 조심스러운 현수의 말은 충분히 도영에게 충격적이었다.
"뭐??"
"그, 그러니깐 내가 아는...게이가 없으니깐..."
"형, 잠깐. 지금 나한테 게이는 어떻게 섹.스.를 하는가, 에 대해 물어본 거 맞아??"
"뭐 대충 알기는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인터넷을 뒤져도.. 잘 모르겠고 차라리 네가 나을 것 같아서... 내가 곤란한 질문을 한 거니?"
"형 재준씨네 집으로 들어간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잖아!!!"
이주 전에 살림을 합쳤다고 아는 몇 사람 초대해서 재준이 마련한 새 아파트에서 저녁을 먹었었다.
큰 방 외에 작은 방이 두 개 더 있었지만 여분의 침대가 없어 이불을 깔고 거실바닥에서 뒹군 게 기억이
선명한데 그사이에 침대가 하나 더 들어왔을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서..설마... 한 침대에 자면서 아직까지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 거야????"
"하기는 하는데..."
"패팅만 하고 있어? 삽입은 하지 않고?"
적나라한 표현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어차피 얼굴 달아오르는 것쯤은 각오하고 왔기에 제법 담담한 표정으로 현수는
'그래'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안색이 별로 변하지 않은 현수에 비해 도영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되어 흥분하고 있었다.
"미쳤어? 형 미쳤구나.응?"
"야! 심하잖아. 그럴 수도 있지 뭘.."
"말도 안 된다고!!!! 새삼 플락토닉러브니 뭐니 그런 말 할 셈이야? 왜 그랬어? 왜 안 한 건데? 왜!!!"
"내 탓이 아니야."
"그럼 재준씨가 싫대?? 아우씨. 답답해 미치겠네. 제대로 좀 이야기해봐!!!"
농밀한 패팅까지는 종종 하곤 했다.남남 커플들이 다 삽입섹스를 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어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오럴섹스도 가끔 재준이 해주기도 하고 삽입까지는 아니지만 그 직전까지는 가는 편이라 느끼는 쾌감은 언제나 최상급이었다.
직접적인 삽입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자들과 했을 때보다 훨씬 진한 만족감을 느끼었고 그 연유가 사랑이라는 감정이 베이스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래서 현수로서는 재준과의 관계가 만족스러웠지 단 한 번도 불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의 키스가 좋았고 잠잘 때마다 그가 빌려주는 가슴팍이 좋았다.
양가 어른들의 허락하에 동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고 그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현수는 동거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만 했었고
재준 역시 몸과 마음 모두 만족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어제 그 현장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잠이 없는 편이기도 하지만 매일 6시에 퇴근하는 재준이 종종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오곤 했기에 잠자리에 같이 눕지만 자신이
잠이 들면 조심스럽게 일어나 서재로 가서 일을 마저 처리하고 잠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새벽 갈증으로 잠을 깨
텅 빈 옆자리를 보고도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일거리가 많은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가던 걸음이 열려 있는 욕실에서 멈추었다. 지나치기엔 이상한 신음 소리.
의아한 생각에 소리를 죽이고 다가갔다. 작은 틈으로 보이는 것은 재준의 등뿐이었지만 한 손이 앞으로 향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의 마스터베이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 침실로 들어와 버렸다. 이것은 남자 자존심 문제였다.
사랑하는 이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에 불만을 토로하던 감정이 시간이 흐르자 화살이 연인에게 흘렀다.
삽입섹스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비록 남자와는 해보지 않았지만 상대가 재준이라면, 그의 얼굴이 자신으로 인해
진한 쾌감을 느끼는 표정을 지어준다면 아픔 따위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준은 여태 한 번도 불만을 표현한 적도
없었고 자신에게 그런 의사를 말한 적도 없었다.
그래놓고선 뒤에서는 현수의 이름을 부르며 자위를 한다. 서로 솔직해지자 해놓고선 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괘씸한 생각에 획 돌아 누우니 곧 재준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고 있는데
재준의 손이 자신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혹시 깰까 봐 조심스러운 움직임, 그리고 벗은 등에 입을 맞추는
입술의 뜨거움, 자세히 듣지 않는다면 들릴지 않을 조용한 음성에는 거짓이 하나도 없었다.
"현수야... 사랑해...."
괘씸이 봄볕에 눈 녹듯 사르르 사그라들었다. 상대에게 쏘았던 화살이 반사되어 다시 돌아왔다.
재준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자신의 문제가 생각하며 잠을 설친 현수가 내린 결론은 남자와의 섹스를
조금 더 깊게 알아서 거사(?)를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재준이 머뭇거리는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나?
라는 생각의 끝에 그 카운셀러로 적합한 사람이 도영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다음날 약속을 잡은 것이다.
"싫은 거네."
현수가 말하는 어젯밤의 일을 들은 도영이 내린 결론에 현수는 화들짝 놀랐다.
"..뭐??"
"싫은 거라고."
"뭐가..누가?"
생각의 꼬리는 길어 질수록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재준의 밤늦은 고백이 진심임을 그 누구보다도 현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깊은 섹스가 결여된 관계가 의미하는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재준이 자신과의 섹스를 싫어서 그렇다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가슴이 도영의 찌르는 말에 놀라 긴장을 한다.
"재준씨는 역시 이성애자였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이야!!"
"진정해. 재준씨가 형을 사랑하는 건 맞아. 하지만 마음이 간다고 몸도 가? 패팅까지는 어떻게 간다고 해도 삽입은 무리라는 거지."
"그..그런게 어디 있어."
"여기 있지. 왜 게이들이 일반에게 감정을 품어도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줄 알아? 안 되기 때문이야.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와의 섹스를 즐기던 사람이 느닷없이 남자에게 물건이 설 리가 없잖아. 재준씨가 형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역시 삽입까지는 무리인가 봐. 그 예로.."
"예??"
"형에게 고백하기 전에 재준씨 방황 많이 했거든. 한창때 아니야. 그때 몇 번 게이바에 갔었는데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남자랑 했었대. 그런데.."
"그..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이건만 재준을 스쳐 지나간 남자에 대한 불쾌함보다는 그 결과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역겨웠대."
차라리 좋아 죽겠다, 라는 말을 듣는 게 나을 뻔했다. 비록 그 상대가 다른 남자라 할지라도.
"그 이후로 재준씨 몇 번 시도를 해보긴 했는데 안 되어서 여자랑 했잖아."
"어..어떻하지?"
"형."
"왜."
"하고 싶어?"
"응?"
"재준씨랑 하고 싶냐고. 그.. 삽입까지 말이야."
현수는 지금의 현 섹스패턴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더 깊은 것을 원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재준이 불만족이다. 그가 요구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게이의 성생활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여태 기다린 재준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눈뜬장님처럼 재준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뒤를 따라오며 그의 말대로
머슴처럼 자신을 살피던 재준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이제는 자신이 해주고 싶다.
"하고 싶어."
"형이 깔릴 텐데?"
"좀..두렵기는 해. 처음에는 ... 아프지?"
"어. 하지만 상대의 테크닉에 따라 달라. 무서워?"
"응..조금."
"다시 여자랑 하고 싶지는 않아? 패팅이 기분이 좋아도 여자와 하는 거랑 다르잖아."
"다르지. 그런데.. 재준이와 하는 게 더 좋아. 더..더 좋아.."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여자와 할 때 침대에서 이성을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재준과 할 때는 종종 이성을 잃고
오로지 본능만이 남은 야수가 되어 재준에게 덤벼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가 좋았다. 그의 손이 좋았고 그의 낮은
목소리에도 가끔 발정했다. 유난히 땡기는 날 체면을 차리지 않고 퇴근하는 자신을 반기는 재준에게 그대로 덤벼들고
난 후 둘이서 쫄아 붙은 미역국을 보며 웃은 적도 있었다.
재준의 손이 자신의 성기와 재준의 성기를 맞잡고 할 때가 제일 좋았다. 그의 단정한 눈매가 흐릿하게 풀어지는 것을
마주보며 입을 맞추는 게 좋았다. 그의 끊임없는 사랑한다는 말은 달콤했고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곤 하는 그의 욕정이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좋았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여태 이 얼굴을 보고 어떻게 참았냐 싶을 정도로 재준과의 섹스라이프는 매우 좋았다.
여자? 여자와의 섹스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 되었어!!!"
"응?"
"형은 재준씨랑 하는 거 좋다며? 받는 입장이 되어도 좋다며?"
"그렇긴 하지만.. 재준이는?
"재준씨도 형과 패팅할 때는 좋아할 거 아니야."
"그렇지."
"그럼 문제 끝~!!!!"
"하지만 재준이 남자랑 잘 안 되는 건데 뭐가 끝이야?"
"바보."
"야!!"
"형. 몰라?"
"뭘??"
"안 되면 되게 하라."
"응??"
"간단해. 재준씨 남자랑 되게 하면 되는 거야."
"어떻게?"
대답은 하지 않고 도영은 그 귀여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은 중년변태와 같은 목소리로 흐흐 하고 웃고 있었다. 현수가 대답을 재촉하자 그제야 도영의 입이 열렸다.
"형에게 삽입하고는 못 견디게...............꼬시는 거지."
**
"너, 고자야?"
"큭.."
대답대신 웃어버리고 마는 재준이 고자가 아님을 형준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것외에는 답이 없지 않은가.
"네가 현수 얼마나 기다렸는지 내가 아는데 너 고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기다렸던 현수 네 침대에 눕히고도
아직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데 그럼 그게 정상이야??"
"내 침대 아니야."
"뭐?"
"현수와 나, 우리 침대야."
"에라이~ 이 빌어묵을 놈아!!!!!"
형준은 전장에서 굵어진 커다란 손으로 아낌없이 재준의 뒤통수를 갈겨버렸다. 요즘은 몸싸움을 하지도 않은
녀석이 맞는 것에 이골이 난 사람처럼 몸을 잠깐 휘청거리고는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머리를 친 사람을 보고도 눈이 하트다. 하트.
한 마디로, 형준이 재준의 뒤통수를 갈기는 보복이 두려운 과감한 액션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우리
침대'를 떠올리는 재준의 상상을 현실로 이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냐? 좋아?"
"................어"
너무 늦게 나온 대답에 흘낏 재준을 살펴보니 또 눈이 풀려있다. 현수를 만나기 전에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갈
틈이 없던 아이였고 현수를 만나고 난 뒤에는 외줄 타는 피에로처럼 흔들거리는 재준이 시한폭탄처럼 여겨졌었다.
편안히 쉴 수도 없고 마음을 밀어 붙이지지도 못하는 녀석의 속내를 알 수 있기에 불안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생각나지도 않은 꼬맹이 때 만난 재준이건만 요즘처럼 행복해 보이는 적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전에 형준의 아버지 장원과 재준의 아버지인 태호가 식사하는 자리에서 꺼낸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떻게 남자인 현수를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냐고, 재준이 여자를 만나 아이를 낳아 후계자로 키워야 한다고,
형님이 재준을 설득해야 한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부탁하는 장원을 내려다보며 태호는 형준을 보았다.
"너는 알고 있느냐."
"네. 어르신."
거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아들이 초를 친다고 생각한 장원이 벌떡 일어나 형준에게 호통을 치려 할 때 태호가 장원을 불렀다.
"장원. 장인어른 뵌 적이 있었지?"
"네."
"그 어른은 자존심이 무척 높은 분이라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간섭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당신께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끔찍이 싫어하시는 분이셨지.
재준이 에미가 그렇게 되고 나서도 벼락같이 화를 내시기보다는 조용히 청솔과의 거래를 끊어 버렸어. 어른이 손을 떼신 후 명동의
큰 어른께서 청솔과 연을 끊었다는 소문에 한동안 일거리가 줄었던 것 기억이 나나?"
"형님."
"내 말 계속 듣게. 그런 분이시지. 누군가에게 호통을 칠 일도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일도 하지 않으신 분이 재준이 청솔을
나가자마자 부탁을 하셨네. 아랫사람을 시켜 재준을 부른 것도 아니고 재준의 집까지 찾아가 재준에게 부탁을 하셨지.
친손주도 아닌 재준에게 당신의 뒤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하셨지. 그때 재준이가 말한 요구사항이 뭔지 아나?
사촌들 들썩이지 않게 당신 선에서 해결 하실 것. 그리도 두 번째는 현수였네."
"그 무슨..."
"그 대쪽같던 어른에게 남자인 현수가 성역임을 할아버지께 말했지. 하하.. 그 어른 놀라셨을 거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아?
이래도 모르겠나? 그 사람 그렇게 죽고 난 재준이 포기했었네. 청솔은 둘째치고 이 녀석 밖으로 돌면 내 선에서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 녀석 어떤 고집과 아집이 있는 걸 아니깐. 그랬던 녀석이 지발로 들어와 착실히 학교도 다니고 정상적인 고등학생처럼 행동했지.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던 찰나에 재준이 데리고 온 현수를 보게 되었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그 녀석이 처음으로 내게 생일선물을 요구한 거 기억나?"
"그럼요. 그 황당한 생일선물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후후. 그래. 마음잡은 녀석이 기특해 녀석이 요구한 평범한 이층 양옥으로 이사를 하면서도 원인을 몰랐는데
그 다음해에 현수를 데리고 왔을 때 알 수 있었네. 이 녀석이야 말고 재준을 잡을 유일한 끈이라고 말이야.
난 있지도 않은 손자보다 재준이가 더 중요해. 있지도 않은 손자를 만들기 위해 재준이와 등 돌릴 생각 없다.
자네도 이제 인정해야 할 거야. 재준이를 청솔의 가족으로 들이고 싶다면 현수부터 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나?"
어른의 눈과 마주친 형준이 고개를 숙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 했다.
"내가 장인어른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현수때문이지."
"네?"
"일전에 장인어른께서 먼저 전화가 와 만났을 때 대뜸 물으시더군. 그 현수라는 놈 어떤 녀석이냐고.
그러시면서 재준과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씀하시더군. 어른께서도 인정한 사람이야."
"좋아..."
재준의 나직한 말에 형준은 더듬던 기억을 후다닥 접고 재준을 바라보았다.
"좋으면 더 깊은 관계..맺어도 되잖아. "
"그렇긴 한데..."
"그럼 왜 안 했어? 설마...너 남자랑은 전혀 안 되어서.."
"응?"
"저번에 그렇게 말했잖아. 남자랑은 역겹다고.."
"아...그런데 여자랑 해도 역겨웠는 걸 뭐."
"여자는 왜? 너 여자랑은 잘했었잖아."
"상대가 역겨웠는 게 아니라 내가 역겨운 거였어. 마음은 현수를 향하고 있는데 몸은 다른 사람에게 욕정하고 있는 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현수를 떠올리는 것이.. 난 다만 내가 싫었을 뿐이야."
"그럼 문제가 뭐야? 왜 현수랑 안 하는 건데?"
"패팅이라도 좋아."
"더 깊은 걸 원할꺼 아니야."
"당연하지."
"그럼!!!"
처음 같은 집에 살게 되던 날 밤. 재준은 패팅만 하던 관계를 더 깊게 나가도 될 시간이 흘렀다 생각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했었다.
그의 것을 먼저 사정시키고 난 후 나른한 그의 몸을 쓰다듬으며 그의 엉덩이 골짜기로 젖은 손을 뻗으려고 할 때 재준의 움직임은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현수의 나른하게 풀려 있던 몸이 순식간에 긴장을 하고 엉덩이는 딱딱해졌다. 놀라 현수의 얼굴을 살펴보니 두 눈을 질끈 감은 채였다.
감은 두 눈은 각오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가늘게 떨리는 손은 무언가. 준비되었던 젖은 손가락을 휴지로 닦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현수를 끌어안자 재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현수의 입에서 기나긴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그 안도의 숨을 듣고 현수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재준은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완벽한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조금 더.. 그를 가지고 싶어. 하지만 난 불안해."
"재준아.."
"욕심 내었다가 옛날 생각하면서 참아. 열리지 않은 이층 창을 올려다보면서 저 문만 열리기를 바랬어.
그에게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여겼어. 후후.사람의 욕심이란.. 그런거야.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사랑한다는 고백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어. 여기서 내가 뭘 더 바래."
"그럼 계속 패팅만 하고 살 거야?"
"그럴 수는 없지. 그런데 나 예전에 남자랑 할 때 깨달은 게 있는데..."
"뭘?"
"남자와 하는 거 어려웠어. 현수 이성애자였잖아. 여자에게 자신을 세우던 녀석이야.
그런 녀석이 아무리 나 사랑한다고 해도 갑자기 받는 입장이 되는 게 말이 쉽지 잘 되겠어? 이상하지?
사정까지 가는 패팅과 삽입을 하는 섹스가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마음이 안 그러네. 더...더 그를 느끼고 싶어...."
"그래서 어쩔건데."
"어쩌긴. 현수가 안 되면 내가 하면 되지."
"허헉....서..설마...너....."
"우리 섹스가 더 깊어지길 원해. 하지만 무리하고 싶지는 않아. 누가 누구에게 삽입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잖아.
서로가 서로의 몸에 들어간다는 게 중요하지."
"미..미쳤어?"
"후후..그럴지도."
"이게 웃을 일이야!!!! 네가 깔린다고?? 그게 그림이 되냐고!!! 네 키가 얼마고 몸무게가 얼마인데???"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깐."
"그럼 뭔가 문젠데!!!!"
"관계를 가지는 것."
"그 애널섹스를 위해서라면 네가 깔려도 상관이 없다는 거야??? 그럴 거면 하지 마!!!!"
"현수는 깔려도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야?"
"너...."
"이왕이면 내가 현수의 몸에 들어가고 싶지만 안 된다면 내 몸에 그가 들어오는 것도 괜찮아.
그를 느낄 수만 있다면.. 더 완벽하게 그를 잡을 수 있다면..."
"..................너....정말 사랑하는구나. 도 재준이가 깔려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사랑하는구나."
"몰랐냐? 아.. 마음 먹은 김에..."
도영을 사랑하지만 받는 입장이 되라고 한다면 과연 자신은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던 형준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는 재준을 바라보았다.
"오늘 바텀이 되어 볼까나?"
"제발..재준아.. 너 카리스마를 생각해."
"카리스마는 뭔 카리스마. 됐네요. 그나저나 현수녀석, 오버해서 나 정신 못차리게 만들면 네가 좀 와줘라. 알았지?"
"재..재준아.."
"나 간다. 오늘 밤 넌 오 분 대기조야. 오케이?"
"도 재준~!!! 안 되에에에에에에에에~!!!!!!!!!!!"
형준의 절규에 가까운 부름을 못 들은 척 뒤로하고 재준은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현수도 도영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이라 해서 기분 좋게 전화를 끊으며 잠시
침실에 있던 물건들을 머릿속으로 점검을 해보았다.
일전에 현수에게 쓸 요량으로 사 두었던 젤이나 콘돔이 있기는 하지만 동성애에 무지한 현수가
콘돔도 안 쓰고 일을 저지를까봐 근처 약국에 들러 연고와 진통제 그리고 관장약까지 샀다.
남자인 이상 그에게 자신의 것을 넣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현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형준에게 말했듯 누가 탑이니
바텀이니 하는 것이 재준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 욕심으로 현수에게 싫은 일 시키고 싶지 않았다.
누가 되었든 백버진을 서로 가진다는 것. 그 처음의 관계를 서로 가진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역사적인 날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재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별당 아씨와 머슴의 첫날밤[下]*
다행히 계획대로 시간이 움직여졌다. 재준이 빨리 도착할까 봐 집에 도착하고도 집에 가는 길이라 거짓말하고
(이제 현수도 거짓말 잘한다) 욕실로 들어가 꼼꼼하게 씻었다. 안 그래도 거부감이 있는 녀석이 꾀죄죄한 자신의 몰골을 보고
아예 등을 돌리게 될 가봐 신경을 쓰며 씻었다. 문득 어? 라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재준은 현수가 씻었던 씻지 않았던 크게 신경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신과의 섹스(라고 할 수 있다면)
도 꽤나, 아주 꽤 좋아하는 눈치였고 현수가 종종 그랬던 것처럼 재준도 가끔 욕정을 숨기지 않고 덤벼들던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남자와의 관계를 역겨워한다고??
뭔가. 어딘가 모르게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재준이 삽입하는 걸 꺼리는 건 맞는 사실이고 오늘은
그를 유혹하는 과제가 남아 있기에 씻는 것에 다시 집중했다.
[젖은 손가락으로 한 개를 넣는 거야. 처음에는 좀 힘들겠지만 천천히 해봐야 해. 어차피 형은 처음이라서 준비해도
재준씨와 할 때 준비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그래도 최소한 재준씨가 손을 뻗쳤을 때 긴장하거나 딱딱하게 경직돼서는
안 되잖아. 그걸 연습삼아 하는 거야. 그래서 몸까지 준비되면 더 좋고. 형 손으로 세 개까지는 들어가야 해.]
"우씨...이..이걸...어떻게 해....."
쪼그리고 앉아 해보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 개도 힘든데 무려 세 개란다. 허긴 재준의 것을 떠올리면 세 개도 턱없이 작기는 하지만.
그 크기를 떠올리니 슬쩍 두려운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욕심이 먼저였다.
지금이야 부족한 것을 재준이 마스터베이션으로 해결한다고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모르지 않는가.
밖에서 해결할지도...
하지만 재준이 그럴 리가 없다. 그걸 현수도 물론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다른 곳에 가서 타인과 몸을 섞는
일이 없을 것을 스스로 확신을 하듯 재준 역시 그럴 것이다. 그걸 믿지만 재준에게 불만족을 심어줄 수는 없다.
그가, 자신에게 100% 만족하기를 원하고 현수 스스로도 그를 완벽하게 잡고 싶었다.
[재준씨는 일이 일이다 보니 클럽 같은 데 많이 가서 드러내놓는 야한 거에는 무감각할지 몰라.
그러니.. 준비되지 않은 우연한 섹시함으로 가장해야 하는 거야. 알았지?]
"뭐, 별로 그렇지도 않은데? 집에서는 맨날 나 홀딱 벗기려고 애쓰는데.."
도영의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럴싸했던 말들이 되씹으니 뭔가 말이 안 맞는 것 같아 중얼거리면서도 도영이 당부한 대로 목욕 가운을 입었다.
[이래서 어디 한 번에 풀이겠어? 다시 해봐. 이렇게 묶으라고!!! 슬쩍 잡아당기면 확 풀려야 한다니깐. 형처럼 질끈 묶어서 속살 비출 수나 있겠냐고!]
"참내.. 이래야 하나?"
묶은 것을 잡아당기니 휙 풀어져버린다. 스스로 잘했다 칭찬을 하며 다시 묶는 현수는 다음 행동으로 들어갔다.
[절대 과음하면 안 돼!! 알았어? 취한 모습보고 발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형은 술만 마시면 얼굴이 잘 붉어지니깐 딱 한 잔만 해. 알았어? 한 잔이야!]
꿀꺽 목을 넘어가는 한 잔의 술이 얼굴이 아니라 온몸을 뜨겁게 하는 것 같았다. 몸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슬금 일어서는 아랫도리를 보며 도영이 자위를 해서라도 조금 일으켜 세워두라는 말은 실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띵~동!
올 것이 왔다. 침을 꿀꺽 삼키며 문을 열어 주었다. 재준의 환한 얼굴에 몸이 저절로 달려가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손을 돌려 문을 닫으며 한 손으로 현수를 받아내던 재준의 낮은 웃음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후후.. 나 기다렸나 봐?"
"응"
"야..이거 기분 좋은데? 어? 술 마셨어?"
"한 잔만. 너도 한잔 할래?"
"아니 괜찮아. 이리 와봐. 우리 현수 한 번 안아보자."
양팔을 벌린 재준의 가슴에 안겼다. 그의 끊임없는 고백이 아니고도 재준의 눈에서 말에서 움직이는 손가락 끝에서도 사랑이 감추어지지 않고 묻어 나왔다.
재준의 것을 다 가지고 싶고, 자신의 것을 다 주고 싶었다.
슬쩍 몸을 떼면서 욕실로 쫓아 보내고 난 다음 목욕 가운의 매듭이 잘 풀리는지 다시 한 번 실험해보았다.
그리고 재준이 나왔을 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그의 손을 잡고 안전한 거실로 이끌었다.
"왜?"
[연기인 게 들키면 끝장이야. 자연스럽게 쓰러지는 거야.]
[내가 여자도 아니고!!!! 그리고 요즘 여자들도 픽픽 안 쓰러져!!! 이런 방법은 너무 고전이야!!]
[어허, 고전이 왜 고전인데? 잘 통하니깐 고전이라고. 그리고 고전이면 어때? 중요한 건 형이 재준씨 품으로 탁 쓰러지는
순간 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매듭을 푸는 거야. 알았어?]
[내..몸매가 그렇게... 괜찮나?]
[형 몸매가 괜찮은 게 아니라.. 재준씨의 콩깍지 때문에 그런 다니깐 그러네. 알았어? 자연스럽게!! 이게 키 포인트라고!!!]
"할 말 있어?"
"어..그러니깐...."
"음?"
"오늘...어..컨디션도 좀 별로고..."
"어디 아파?"
"아니아니. 그건 아니고.."
쓰러지는 것에 대해 연막을 치려고 해도 이렇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니 아무 일도 아니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거리를 눈대중으로 가늠하면서 재준이 있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주스 좀 가져다 주............"
쿵.........
"윽!!!!!!!!"
"현수야!!! 괜찮아? 괜찮아?????"
계획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지긴 했다. 비록 찰나의 순간이라 가운의 매듭을 끄르지는 못했지만.
문제는 재준의 품이나 아니면 최소한 거실 카펫에 우아하게 쓰러져야 할 자태가 .... 아닌 거실바닥에 코를 박는 그런 엎드려진 자세라는 것이다.
그리고 찌르는듯한 코의 통증.
그러니깐... 그 자연스럽게를 위해 재준에게 등을 돌린 채 재준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넘겼는데 재준이
현수가 넘어오는 것도 모르고 주방 쪽으로 몸을 빼내었던 것이다. 재준이 빠진 것도 모르고 넘어지던
현수가 잡아줄 사람을 잃어 하늘을 날 것처럼 팔을 퍼덕이다가 상체를 틀면서 바닥에 그대로 코를 박게 되어 버렸다.
아슬아슬하게 현수를 잡는 것을 놓치게 된 재준이 놀라 다가왔고 그런 재준을 보며 눈물이 질끔 나오는 아픔에 성질이 확 나버렸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 재준이 입고 있는 목욕 가운의 매듭을 확 풀어헤쳤다.
놀란 두 눈이 묻고 있지만 못 본척해 버렸다.
"젠장!!! 몰라!! 야, 하자!!!!"
"어?"
"하자고!!! 지금 하자고!!"
"혀..현수야? 너 괜찮아?"
"이게 날 정신병자 취급하고 있는 거야 뭐야? 아, 긍께 하자고요."
"무..뭘?"
"빠.구.리."
"헉.."
"우씨. 너 내 말 씹냐? 나 무지하게 꼴리니깐 하자고!!! 엉!!!"
"후후..그래. 해. 하고말고.. 오늘 마음이 통했네? 나도 오늘 밤 그냥 안 넘어갈려고 했는데 말이야.."
재준의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 현수는 단호하게 재준에게 말했다.
"그냥 하는 거 말고, 진짜로."
"응. 나도 진짜로."
"너 무슨 말인지 알고 진짜라는 거야?"
침실문을 열고 재준이 현수의 손을 침대로 잡아끌었다. 현수의 가운끈을 풀고 자신도 몸에 걸친 유일한 천을 떼어냈다.
놀란 눈동자를 보면서 기대고픈 이마에 귀여운 눈두덩에 꽉 깨물고픈 양 볼에 달콤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자신이 불을 지폈으면서도 선뜻 나서니 놀란 모양이다.
"사랑해...."
"준아.. 너 괜찮아?"
"뭐가?"
"나랑..하는 거, 나랑 진짜로 하는 거 괜찮아?"
"넌? 넌 나와 진짜로 하는 거 괜찮아?"
"음.. 너무 아프게만 하지 않는다면.. 좋아. 하고싶어."
다가오는 입술을 받았다. 부드러운 입술은 뜨거움을 담고 뜨거움은 사랑을 품고 있었다. 입술을 겹치면서 재준이
이끄는 침대 위에 눕자 침대가 출렁거렸다. 재준의 손이 위에서 아래로 옆구리를 쓸자 오싹할 정도로 자극이 되어 나직한 신음이 벌써 흘러나왔다.
키스하다가 동해서 하는 것과 달리 일찌감치 작정을 했던 관계여서 그런지 작은 손길 하나에도 온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곤두서 쾌감을 기대하고 있었다.
기대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심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재준이다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라면..
그라면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선까지 부드럽게 이끌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현수에게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느긋하게 그가 주는 슬슬 타오르는 불을 즐겼다.
"네가 남자랑 하는 거 싫어하는 줄 알았어."
"이 바보 아메바."
"너 이런 분위기에 그런 말이 나오냐?"
재준이 손으로 현수의 아래를 쓱 훑자 반쯤 발기되었던 것이 완전히 제 형태를 갖추는 것을 느끼며 흥분된 눈빛을 감추지 않은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다른 남자라면 당연히 싫지. 그런데 너잖아. 너 현수잖아. 내가 싫을 리 있냐?"
"그런가?"
"넌? 넌 남자인 나와 하는 거 괜찮아? 할 수 있겠어?"
"오늘 도영이 만나서 교육받고 왔어. 너무 아프게만 하지 않으면.."
"네가 할래?"
"뭐??"
입술을 내려 현수의 유두를 덥석 물으며 슬쩍 올려다보니 놀란 눈동자 가운데 기대감이 서린 것을 재준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슬쩍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바텀의 입장이 그렇게 부담스러웠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끌지 않고 진작에 말해볼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내가 해도 돼?"
"도영이한테 배웠다며? 잘 되었네. 많은 건 안 바란다. 찢지만 말아줘."
"준아.."
"싫어? 싫으면 관두.."
"아니!! 좋아!!!"
성급한 대답에 키킥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얻어터져 몸이 아픈 것과 그곳이 아픈 것의 통각은
다를 테지만 평범하게 자란 현수보다 몸에 상처를 종종 달고 살았던 자신이 통증에 익숙할 것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의 욕심을 차린다 말인가.
재준은 현수의 몸을 껴안은 채 한 바퀴 돌아누워 현수를 자신의 몸 위로 올렸다.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어리어리한 눈을 보며 자신의 배 위에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현수의 사랑스러운 것을 잡으니 그제야 현수의 몸이 움찔하며 반응을 했다.
"안 해?"
"너... 야해...."
"후..그럴 때는 섹시하다고 하는 거야."
"정말.. 내가 해도 돼?"
"할 줄 몰라서 자꾸 물어보는 거지? 나도 받는 건 처음이니깐 먼저 손가락으로 잘 풀어줘야 해. 젤 저기 있다."
받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사라진 현수는 아까 욕실에서 했던 것처럼 젤을 손가락에 바르고 천천히 재준의 뒷문을
두드렸다. 꽉 다물어진 입구는 어떠한 침범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 걸쇠를 걸어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몸의 주인이 유일하게 허락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이 또 다른 만족감이었다.
손가락 하나가 힘겹게 들어섰지만 재준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봐도 몸속을 침투하는
이물질의 느낌이 생경해 저절로 인상을 그었는데 재준은 오히려 두 손을 뻗어 키스를 해왔다.
천천히 손가락을 돌리며 풀어주었다. 언제쯤 두 번째 손가락을 넣어야 하나 고민을 하며 현수는 자세가 힘든지
쿠션을 자신의 허리 밑에 넣는 재준을 보며 물었다.
"넌... 나한테 안 하고 싶어?"
"또 분위기 망치고 싶지?"
"나랑 하면 괜찮다며? 그래서 물어보는 거다. 뭐."
"후우...."
두 번째는 역시 조금 버거웠는지 깊은숨을 내쉬며 몸에 긴장을 푸는 재준의 손이 현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너무 다정해 현수의 손가락이 들어서다가 멈칫 서버렸다.
"내가 얼마나 너와 하고 싶었는지 너 알면 까무러칠 거다. 나, 혼자 얼마나 많은 상상 했는지 아냐? 이런저런 변태스러운 짓도 상상했다고."
"그런데 왜 나보고 하래?"
멈춘 손을 보며 재준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빨리 안 하면 나 마음 바뀔지 몰라 라고 말하며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한 현수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너, 아픈 거 싫어서.."
그 소리에 현수는 재준의 상태를 고려하지도 않고 손가락을 푹 빼버렸다. 여태 인상도 쓰지 않던 재준이 제법 놀랐는지 윽,
하는 소리를 내며 현수를 보았다. 현수는 그런 재준의 시선을 알면서도 재준의 몸에서 내려와 옆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야, 네가 해."
"현수야?"
놀란 재준의 시선을 느꼈지만 눈물이 흐를 것 같아 팔을 눈동자 위에 올렸다.
속에서 뭔가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뭐가 네가 아픈 거 싫다는 거야!!! 별 변태스러운 상상까지 다 했다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참았다면서!!!!
재준의 손이 현수의 팔을 내렸다. 그래서 흐르는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문디 자슥, 이 병신 같은 놈, 너 왜 이렇게 물러 빠졌어. 어?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 살아가려고...이 바보!!"
섹스를 다짐했던 벌거벗은 두 남자의 침실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설교조의 음성이건만 두 사람은 이미 감정의
홍수에 빠진 듯 섹스보다 더한 일체감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야, 도 재준!!!"
"울지마.. 왜 울어."
안타까운 음성으로 현수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재준의 손은 현수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고 다정하게 얼굴을 배회했다.
"사랑해.. 너.. 사랑해..준아."
재준에게 숨막히게 끌어안긴 채 현수는 벗은 재준의 가슴에 대고 사랑을 고백했다.
"진짜? 진짜지?"
"아직도 못 믿냐? 사랑해...네가 날 사랑해줘. 오랫동안 힘들었던 널 내가 품을 수 있게 널 내게 줘."
고통에 대한 긴장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차라리 아프면 더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플 정도로 재준이 자신의 감정에 몰두했으면 했다. 빨리, 한시바삐 그와 한 몸이 되고 싶었다.
그런 격렬함이 현수를 휘감았고 그런 현수를 보며 재준 역시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과의 섹스에 이성을 챙길 여유도 없이 현수와 사랑을 나누었다.
"괜찮아?"
밤새 듣던 말을 눈 뜨자마자 들으니 쿡,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넌..."
얼마나 비명을 지르며 소리를 내었는지 노래방에서 몇 시간 논 사람처럼 목이 팍 쉬어버려 목을 다듬고서야 제대로 된 말이 나왔다.
"그 말 지겹지도 않냐?"
제정신이라고는 한 톨도 없어 보이던 녀석이 드디어 자신의 것을 다 밀어 넣고서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압박에 신음 소리 밖에 뱉어내지 못하는 현수의 얼굴을 보며 괜찮아? 라고 물었었다.
물론 몸은 당장 빼! 라고 하고 싶었지만 재준의 얼굴에 스며든 욕망과 자신의 내부에서 느껴지는
그의 것이 너무 가깝게 느껴져 그에게 손을 뻗어 다가오게 했다. 재준이 고개를 숙이며 움직이자 내부에서
덩달아 움직이는 그의 것이 아프다기보다는 사랑스러웠다.
'네 것이 내 몸속에 있어. 더.. 느끼고 싶어' 라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말과 그의 귓불을 살짝 깨물어주는
대단치 않은 일로 재준의 이성이 확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도영이 말한 그 포인트라는 것은 아마 찾지 못한 듯싶었다. 하지만 그 포인트라는 게 없어도 현수는 어제 충분히 쾌감을 느꼈고 만족했다.
재준이 이성을 잃고 현수를 끌어 안으며 자신의 이름을,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는 게 아니라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그가 감추었던 오랜 사랑의
확인처럼 느껴져 덩달아 자신도 사랑한다고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부드러운 사랑나눔이 아닌 연인들의 마지막 밤처럼 뜨겁고 정열적인 밤은 왜 여태 이런 관계를 나누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화끈하고 좋았다.
"너 안 잤지?"
"걱정이 되어서..."
"그런 녀석이 그렇게 발정했냐?"
"후후.."
아마 개운한 몸의 상태나 뽀송뽀송한 시트를 봐서 재준이 뒤처리까지 한 모양이다.
하지만 어제의 일이 다 거짓인듯한 그 깔끔한 뒤처리와는 달리 앉으려던 현수의 몸 한 부분은
격렬했던 어젯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듯 현수가 윽,소리를 지를 정도로 아팠다.
"아파? 괜찮아?"
"으윽.. 아프지는 않은데.. 암튼 이상해."
"연고 발라두었어. 그리고 현희한테 전화해서 오늘 너 월차 쓴다고 조취를 좀 취해달라고 했어."
"야, 너 맘대로.."
"이렇게 해서 어떻게 출근해."
"그렇긴 하다만..."
"괜찮은거지?"
"거참, 그래!! 괜찮다고요!!!"
"뭐 먹을래? 죽도 끓여두었고 밥도 했는데, 북어국 끓였어. 먹을 수 있겠어?"
이른바 말하자면 '아씨근성'일 것이다. 어제 자신이 재준을 안았다면 자신이 해야 할 뒤처리나 음식준비 절대 못한다.
차라리 안기고 이런 대접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픽 웃었다.
"조금 있다가 먹지 뭐."
"거기.. 아프지 않지?"
"괜찮다니깐!!!!"
버럭 고함을 지르고 난 뒤 올려다본 재준의 얼굴은 걱정스러운 기색이 아니었다. 침대 위에서 무릎걸음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양이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면서 현수가 조심스럽게 재준의 이름을 부르려고 할 때였다.
전화가 울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에 현수가 전화 왔다고 다가오는 재준에게 경고하듯 말했지만 재준은
예의 그 말 '괜찮아'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현수가 침대 헤드에 몰려 더 이상 뒤로 가지 못해 멈추었을 때 재준이 시트를 확 제쳤다.
벌거벗은 자신의 알몸 위에 재준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제 그렇게 막판까지 몰려 숨겨두었던
씨앗을 다 뱉어낸 주제에 재준의 뜨거운 입속에 들어가니 어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웅트림하는 것에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윽, 너..그 괜찮다는 말이...헉..."
이른 아침이건만 쾌감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현수는 앤서링머신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현수와 재준의 집입니다. 지금은 외출중이오니...' 뭐시기로 녹음했던 것이 똑똑히 기억나는데
어느새 재준의 낮고 반항기 잔뜩 서린 위협적인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경고합니다!!! 급한 용무가 있으신 분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주일 동안 그
어떠한 전화도 방문도 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나 방문이 있을 때에는........그 보답을 분.명.히 할 것입니다.'
아마 누군가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음성을 남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갈등이 여실히 드러나 보이는 침묵 뒤 전화가 조용히 끊어졌다.
"윽, 야, 준아..윽.. 그만 좀 해! 일주일이라니..허...헉.. 무, 무슨.."
여전히 현수의 것을 입에 문 채 재준이 눈만 치켜들어 현수를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월차...... 나머지 일주일은 연차."
"으윽...야, 너~"
"괜찮지?"
라고 싱긋 웃는 연인의 물음에 현수는 대답할 정신을 챙기지 못하고 연인의 화려한 기술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침실과 거리가 먼 서재 안에 있는 책상 위에 핸드폰이 외롭게 진동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형님, 일주일만 기다리면 되겠죠? 부디 일주일만.. ㅠ,.ㅠ'
민의 초조함이 잔뜩 들어가 있는 문자건만 재준이 그 문자를 본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늦게 배운 도둑질은 밤새는 것으로 모자라 날이 밝아서도 계속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