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연습생
이모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자 밖에서는 그릇이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혜나야 이제 나가보렴. 애들이 항상 밥 다 먹으면 보드게임을 하거든."
그렇게 말씀을 하시며 등을 떠미는 이모님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고
"할리갈리로 하자니까?"
"아니 빨리 끝나는 젠가가 있는데 왜 할리갈리를 해?"
"난 부루마블 하고 싶은데"
"..."
코치님이 방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어 혜나야 이리 와봐 이제 정식으로 팀원들 소개해줄게"
나를 불렀다.
"여기 제일 키 큰 아저씨는 장기환이라고하고 firebat이란 닉네임을 쓰고 있고
저기 안경 쓰고 편해 보이는 사람은 너도 알지? 너 추천한 병기, 배성환"
"저기 병기 옆에 약간 통통한 사람은 배준석 bbang이고 어 마침 잘 왔다.
얘는 fox 이재영이야 너한테 방 양보해준 사람"
"감사합니다."
"에이 뭐 그 정도야 반가워"
"재영아 상학이는 어디 갔니?"
"모르겠는데요? 방에 있나?"
"그래? 음... 지혁아 잠시 와봐"
안경을 쓴 마른 남자가 다가왔다.
"코치님."
"아 혜나한테 너 소개 좀 해주려고 여기 지혁이 아이디도 이지혁이야."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상학이는 음.. 아 저기 나오네! 상학아!"
"네 코치님."
"여기는 테이커 이상학 알지?"
"네.."
나는 테이커 선수의 팬이었기에 그를 쳐다봤는데
그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눈빛이 부담스러웠나..
"테이커님 같이 사진 한 장만..."
"아... 네"
그 모습을 본 코치님은
"야 너희 이제 같은 팀이야, 콜 할 때도 '님님' 할 거야?"
""아뇨""
"후.. 그래 바로 편하게 지내라고는 안 할 게 대신 케스파컵 전까지는 편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네""
"그래 상학이는 가보고 애들 보드게임 정했나 보다."
"혜나야, 우리 애들이 숫기가 없어. 처음 인터뷰할 때는 떨려서 말도 못 하고 그랬다니까?"
"아.. 저도 봤어요."
"그래.. 나는 너의 빠른 적응을 위해서라도 네가 먼저 다가가 줬으면 좋겠어.
이쁜 여자애가 오빠 오빠 하며 다가가면 솔직히 안 좋아할 남자가 어딨어? 나도 좋은데"
"...?"
"흠흠.. 아무튼 저기 지금 보드게임 하는데 가서 같이 해봐"
"네.."
나는 코치님의 말대로 보드게임을 하는 식탁으로 다가갔고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어.. 어.. 이거 지는 사람은 설거지하기인데... 하긴 너는 요리한 거 같으니 져도 시키면 안 되겠다."
"그럼 다시 하는 거지? 휴.. 다행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거지가 걸린 보드게임 참여자는 테이커, 폭스, 빵 세 명의 96년생 트리오와 00년생인 나로 나는 벌칙이 면제된 상황이었다.
오늘의 게임은 젠가.
젠가는 블록을 원하는 모양대로 쌓아 놓고 순서대로 번갈아 가며 블록을 빼서 무너뜨리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고
뺄 때는 무조건 한 손, 꼭대기로부터 3층 이내의 블록은 빼낼 수 없었다. 또한 빼낸 블록은 맨 꼭대기에 얹어야 했다.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했는데 테이커는 보, 폭스는 바위, 빵도 바위였지만 내가 가위를 냄으로써 다시 해야만 했고
"어.. 첫 번째는 제가 하고 테이커.. 님이 두 번째, 폭스님이 3번째, 빵님이 4번째에요."
가위바위보를 내가 이겨 순서를 정했다.
나는 첫 번째 젠가를 뽑았고 역시나 첫 번째는 무난하게 뽑혀나왔다.
뒤이어 테이커가 뽑았고, 폭스가 뽑았고, 빵이 뽑아 무난하게 첫 번째 턴이 끝났다.
5번째 턴까지 진행했을 무렵 나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젠가 중 가장 안정적인 곳을 찾아내 뽑았고
맨 꼭대기에 올렸다.
"이제.. 상학 오빠 차례에요."
저런... 타격이 컸나 보다. 테이커는 매혹에 걸린 것처럼 비틀대는 젠가를 뽑아버렸고 젠가는 무너져 설거지는 테이커의 담당이 되었다.
"아싸!"
"우후~"
"..."
fire bat의 옆에 앉아 TV를 시청하던 나는 우연히 설거지를 하는 테이커의 씁쓸한 뒷모습을 봤다...
···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운 나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소풍 가기 전날 밤의 어린애처럼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빈이와 진아와의 단톡방을 보았고
<혜나는 도착했으려나?>
<도착했겠지 이 톡도 안보고 있는 거 보면 바빠 보이는데?>
<아아아!!! 벌써 혜나 보고 싶어!!!>
<으휴.. 라기엔 나도 보고 싶네..>
<어 1 사라졌다!>
<혜나야!!!>
<잘 도착했어?>
<응. 여기 지금 숙소>
<거기는 역시 남자들만 있지?>
<아니? 이모도 있어. 이모 성격 짱 좋음!>
<또? 또? 썰 좀 더 풀어봐!>
<음.. 굉장히 넓은 곳이야. 그리고 음.. 내가 좋아하던 테이커님도 만났어>
<아~ 그 게임 잘한다는 사람? 성격은 어때?>
<오늘 처음 만난 거지만 다들 잘해주셔>
<그래..? 후~ 혜나는 좋겠다. 학교도 빠지고..>
<ㅋㅋㅋ.. 후... 얘들아 보고 싶다...>
<나두..♡>
<자야지.. 안녕!>
<앗.. 잘자!>
그 후로도 한참이나 핸드폰을 만지며 침대에 뒹굴뒹굴한 끝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다음 날 누군가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음.. 할머니 5분만 더요..."
"일어나렴"
"음... 칽!"
비몽사몽 한 채로 나를 깨운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자 이모님이었다.
"아.. 이모님..."
"일어났니? 씻고 아침 먹으렴."
"죄송해요. 아침부터 저 때문에.."
"응? 아니야 아니야 호호 나도 딸 뒷바라지 할 때가 생각나서 좋았어."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미 식사를 마친 채 소파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는 Firebat, byunggi, easyhyuk과
뒤늦게 식사를 하는 96년생 트리오가 있었고 나는 밥그릇에 밥을 덜어 식탁에 앉았다.
"음... 혜나야 잘 잤어?"
fox가 말을 걸었고
"네. 좋은 방을 양보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아니야. 아니야. 아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돼."
"아.. 네 아니 응."
"하하하.. 밥 먹자"
오늘의 아침 메뉴는 김치 햄 볶음, 북엇국, 고구마 크로켓이었고
맛을 느끼며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먹고 있는데 Firebat이 다가왔다.
"막내야. 어제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 나는 장기환이라고 해"
"아. 안녕하세요"
"편하게 해도 돼. 근데 딱 한 가지 조심해줘야 할게 있어."
진지하게 말하는 Firebat을 보며 침을 삼키자
"나는 상하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야. 그거만 주의해주면 내가 너한테 화낼 일은 없을 거야."
"네.."
"또 한 가지가 있는데.."
긴장한 나를 두고는
"오빠라고 불러라."
내 머리카락을 헝클이고는 웃으며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네..? 네."
"그래. 할 얘기는 끝났으니까 밥마저 먹어."
후일담이지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던 건 긴장했던 나를 보고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랬다고 한다.
나는 96년생 트리오 중 제일 편한 fox에게 말을 걸었다.
"원래 저런 분이에요..?"
"어.. 원래 저거보다 더 무서운 사람인데.. 모르겠다?"
나는 밥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퍼온 밥의 양이 워낙 적었기에 금세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내 몫의 밥그릇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 양치를 끝마치자
코치님이 나를 포함한 선수들을 불러 모았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차를 타고 연습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