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설날
뭐야..? 너 어디 안 간다더니 여긴 웬일이야? 여행? 좋겠네.. 응? 나는 왜 여기 웬일이냐고? 그러니까 그게 설명하자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를 깨워주는 이모님의 기상 알림과 함께 나는 일어나 간단하게 씻은 후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숙소를 나서 서울역으로 갔어.
모자랑 마스크는 왜 했냐고..? 전에 안 하고 나갔더니 사람들이 알아보는 통에 제대로 일 처리를 할 수 없었거든.
다른 오빠들은 안 그렇다는데 유독 나한테만 그러네. 이것이 인기인가!
아무튼 울산 가는 기차표를 뽑고 승차 플랫폼으로 가 조금 기다리자 열차가 도착했고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어. 설이라 그런지 진짜 사람 많더라..
울산에 도착한 나는 택시를 탔고
"기사님. 하늘 공원으로 가주세요."
"울주군에 있는 하늘 공원 말씀하시는 거죠? 알겠습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기사님은 조용히 운전에만 집중해주셔서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어.
'아직은 아니야.. 조금만..'
이내 택시는 하늘 공원에 도착했고 나는 어머니가 모셔진 곳으로 가 어머니의 사진을 봤고 끝내 택시에서부터 쌓였던 감정이 터져 나와 한참을 목 놓아 울었어.
한참을 울고 나서야 나는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낼 수 있었는데..
"엄마.. 나 티비 나왔어요.. 엄마도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는데.. 아마 그곳에도 티비가 있겠죠..?"
"엄마.. 왜 그렇게 먼저 가셨어요.. 아니다.. 아니야... 엄마.. 사랑해요. 그곳에서도 내 모습 지켜봐 줘요."
"꼭.. 우승해서 그곳에서 엄마의 이름 불러드릴게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다 나온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어.
나는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할머니를 볼 생각에 설렜어.
이윽고 택시는 한참을 달려 집에 도착했고
"할머니"
"우리 큰 공주 왔나~ 와 이래 말랐노.."
할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집 안엔 이미 할머니가 모두 준비하신 명절 음식으로 가득했어.
집에는 삼촌 내외도 올라와 있었기에 나는 작게
"올해도 이거를 혼자 하신 거에요? 먹을 사람도 없다면서 맨날 작게 해야지 하면서 손도 크셔 진짜.."
"허허.. 맨날 작게 한다 해도 어느 정도는 하게 되네. 저 영감이 하도 지랄을 해싸가"
"힘드시겠다.. 숙모라도 불러서 같이하시지.."
"내가 힘들어도 고생하는 게 낫지 부른다고 올 아도 아이고 아무튼 드가자!"
집 안은 이미 사촌 여동생과 삼촌, 숙모.. 그리고 아빠까지 와있었다.
"안.. 녕하세요?"
"어.. 그래 왔구나"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재잘거리는 숙모
"어머 얘 너는 어쩜 더 이뻐졌대? 혹시 서울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거야?"
"아니에요.. 그냥 방송 출연하다 보니까..."
"가시나가 방송 출연은 무슨.. 그거 맨날 게임 해봤자 돈 얼마나 번다고.. 고등학교나 가서 빨리 일이나 할 것이지"
역시 할아버지는 마음에 안 든다. 내가 참다가 한 소리하려던 때 아빠가
"아버지. 요새 게임 잘하면 돈 잘 법니다. 상금이 억 단위에요."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듣고 조금 놀란듯했다.
"큼흠.. 빨리 드가라! 어른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
"..네"
나는 서둘러 그리웠던 내 방으로 들어갔고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봤다.
"응? 속도가 조금 느린데..?"
느려진 컴퓨터 속도에 남은 용량을 확인해보니..
"이게 뭐야!"
C 드라이브 빨간 불, D 드라이브 빨간 불 나는 뭐가 깔려있기에 빨간 불인지 프로그램 추가 제거에 들어가 확인을 해봤더니... 무슨 이상한 게임과 각종 백신.. 쓸모없는 프로그램 등등
나는 한숨을 쉬고는 지워나가기 시작했고 한참을 검색해가며 지운 끝에 겨우 다 지울 수 있었다.
"혜나야! 밥 무라"
벌써..? 시계를 보자 저녁 시간이기는 했다. 얼마나 프로그램이랑 씨름한 거야..?
정말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두 모인 밥상. 삼촌이 얘기를 꺼냈다.
"저희 이번에 이사합니다. 1층엔 형님이 들어와서 사세요."
"어? 왜 이사 가는데?"
"아.. 그게 와이프가 쌍둥이를 임신해서요. 자식 3명 키우기에 지금 동네는 적합하지도 않고.. 애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말인데 아버지..."
"나는 돈 없다. 근데 한번 들어나 보자 얼마가 필요한 건데?"
"회사에서 주택 지원받고 그동안 모아둔 거랑 해서 은행에 대출 좀 받으면 한.. 3,000 정도가 모자랄 것 같네요..."
"흠... 저 가시나한테 빌리면 되겠네. 상금이 억 단위라고 하니"
응? 나..? 거기서 내가 왜 나와? 나 아직 미성년자라고 이 사람들아!
시선이 내게 쏠리자 나는
"저 아직 상금은커녕 연봉도 적은 데.."
"그러면 그거 왜 하고 있는데? 당장 때려치우고 고등학교나 가라!"
"하고 싶던 일이고 또 미래엔 성공할 거니까.."
"아이고.. 답답하다 답답해!"
"이 노인네가..? 와 밥상에서 고함을 지르고 아 기를 죽이노! 쟈 연봉이 3천이라! 어디 이 자리에 쟈 나이에 3천 받아본 사람 있나! 그리고 적금 그거 깨면 되는 거 아이가!"
"그 적금을 깨면 노후자금은 어디서 끌어올 건데! 생각이란 걸 좀 해라!"
두 분의 부부싸움이 시작되자 그 싸움의 발단이 된 삼촌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셨고 결국 식사 자리는 할아버지가 자리를 피하시는 거로 끝이 났다.
이후 할머니가 내 방에 들어오셔서 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돈은 안 건드린다. 걱정하지 마라."
"아니야 할머니.. 없는 셈 칠 테니까 할머니가 알아서 써줘..."
나는 결국 내 첫 연봉을 포기하는 셈 치고 할머니에게 온전히 맡겨버렸다.
···
다음날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깨버린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밖으로 나가봤다. 역시 사촌 동생이 와있었고 사촌 동생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나에게 달려와..
"온니다! 노라죠!"
나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유진아. 언니 피곤해.. 할머니는 어디 갔어?"
"음... 몰라! 노라죠!"
하아.. 진짜 피곤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컴퓨터를 희생하기로 했는데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을 찾아 설치한 뒤
"이렇게 움직이고 이렇게 동그란 거 먹으면 되는 거야. 알았지?"
"오아... 응! 아라써!"
이걸로 한동안은 조용하겠지..? 나는 마음을 놓고 잠시 화장실로 갔고 돌아왔더니..?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기계음과 키보드 위로 엎어져 있는 모니터. 울고 있는 사촌 동생.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잠시 얼떨떨했지만 이내 키보드 위로 엎어져 있는 모니터를 들어봤다.
'아..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구나...'
모니터는 처참히 깨져있었다.
"야.. 이거 왜 이래..? 이거 왜 깨진 거야아아!!!!"
"아니야.. 쟤가 쟤가 그래써! 내가 안 그래써!"
누가 봐도 범인이 명백한 상황에서 아니라고 우겨대는 사촌 동생 탓에 내 멘탈을 무너질뻔했으나 타이거즈전을 겪어서일까.. 간신히 멘탈을 잡을 수 있었다.
"후... 이따 삼촌 오면 말해야지.."
내가 자신을 혼내지 않자 기가 살아 나에게 배고프다며 징징대는 사촌 동생
"온니 나 배고파 밥죠"
"..? 너희 집 가서 먹으면 되는 거잖아."
"엄마랑 아빠랑 어디 가써 업써"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랑 아빠도 안 보이던데 어른들끼리 다들 어디 갔나 보다.
"그래.. 해준다."
나는 밥과 반찬을 데워 상을 차려 사촌 동생과 함께 먹었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놀아달라며 매달리는 사촌 동생에게 인형을 던져준 뒤에야 설거지를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촌 동생에게 시달리고 나서야 어른들이 돌아왔고 나는 삼촌에게 모니터값의 변상을 약속받은 뒤 다시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새벽 6시 30분..
첫차를 타고 서울로 가면 딱 맞은 시간이라 할머니에게만 조용히 인사를 하고 나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택시를 탔다.
"기사님 고속버스터미널이요."
"예."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내내 그리웠던 할머니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두려 눈을 감고 바깥의 풍경을 보지 않았다.
"아가씨 맞지?"
"네?"
"아니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하하.. 아가씨도 고향 왔다가 돌아가나 봐요?"
"아.. 네."
"요즘 사람들이 죄다 서울로 가니까 울산에 젊은 사람이 없어요. 하하하."
..? 의미를 모르겠을 말뿐이었다.
"아이고 내가 말이 많았네. 미안해요."
"아니에요."
그렇게 나는 터미널에 도착해 서울로 가는 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어. 내 이야기는 이게 끝이야. 별거 없지? 그냥 평범하게 사촌 동생에게 시달리고 평범하게 잔소리 듣고 하는 거지 뭐.
나는 이제 택시 타러 가 볼 게 그럼 다음에 봐!
-아버지-
내가 방치했던 혜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나는 밖으로 겉돌기만 했다.
결국 그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뭐 한놈을 패버린 후 혜나를.. 내 딸을 다시 만나는 자리 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아버지가 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딸의 직업에 대해 공부를 했고 데뷔조차 못 하고 사라지는 선수들이 많은 세계란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으나 우연히 전해 듣게 된 딸의 데뷔전
화면 속 아름다운 소녀는 승리를 거머쥐고 웃고 있었고 내가 저런 딸의 모습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안 나는.. 아니 얼굴을 본 기억도 나질 않았다. 어느새 딸은 환한 웃음으로 뭇 사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여인으로 성장해있었다.
"혜나야.. 아빠가 늦었지만.. 진짜 늦었지만..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