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외전 - 백합 한 송이
- 금다빈 -
"··· 다음 소식입니다. 202X년 4월 1일부로 동성 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성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대법원의 판례가 나왔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공식으로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국가가 됨과 동시에 1호 커플이 탄생했습니다. 유명 연예인 홍XX과 그의 애인 김OO이며 그들은 이른 시간 내에 결혼식을 올려 다른 커플들에게... 한편 거리에는 드디어 성 소수자들의 인권이 존중받게 되었다고 환호하는 성 소수자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현장에 나가 있는 조현덕 기자가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현덕 기자."
"네! 여기는 이태원의 거리입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현장에는 성 소수자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고 있으며 한편 종교계에서는 거센 반발과 함께 ···"
···
TV의 불빛만이 방을 밝히고 있는 방안 무엇인가 꼼지락꼼지락 움직였고 이내 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나야, 일어났어?"
"으..응.. 잘 잤어?"
다빈이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나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했고, 나도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라 받아주었다.
처음엔 여동생 혹은 친구로밖에 안 느껴졌던 그녀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우리 둘은 연인 사이를 넘어 그보다 깊은 관계가 되었다.
"혜나야."
"응? 왜?"
"우리.. 결혼하자!"
"어..?"
"왜..? 싫어?"
"아니..?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방금 허용한다는 뉴스가 나왔어. 우리 이제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정말?!"
소식을 전하는 다빈이의 목소리는 촉촉이 젖어있었고, 우리는 곧 서로를 감싸 안아 함께 한참을 흐느꼈다.
···
웨딩 식장을 함께 정하고 다빈이의 부모님에게는 허락을 받은 상황..
"안 된다!"
"왜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요!"
나는 지금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 맞부딪히고 있었는데..
"나는 너를 그렇게 손가락질받을 자식으로 키우지 않았어!"
"아빠가 키웠다고..? 할머니가 키웠겠지! 아빠는 날 버렸어! 방치해두고 겉으로만 돌았잖아!"
나는 전생의 서러움까지 합쳐 감정을 터트렸고
"됐어! 아빠 허락 따위 필요 없어!!"
서로의 이해 점은 평행선을 달린 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가셨고 나는 그대로 집을 나와버렸고 나는 그날 아버지와 다툰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갔다.
···
"잠시 후 임혜나 양과 금다빈 양의 결혼식이 거행될 예정이 오니, 참석하신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식장 안에 마련된 좌석에 착석해주시고, 정숙한 예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결혼식 사회는 우리의 친구 진아가 해주었고 우리 둘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바쁘신 가운데 임혜나양과 금다빈양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시기 위하여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께 양가를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짝짝짝짝-
"저는 오늘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결혼식의 사회를 맡게 된, 두 사람의 친구 이진아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진아는 기자가 되어 활발한 취재를 하고 있었고, 오늘 이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 유일한 기자가 되었다.
"오늘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주실 주례 선생님을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김정근 선생님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짝짝짝짝-
"김정근 선생님은 전 SK의 감독으로써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임혜나양의 스승이시기도 한데요. SK의 코치로 입단. Worlds 5회 우승, MSI 3회 우승, LCK 9회 우승, 리프트 라이벌즈 1회 우승, 올스타전 1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김정근이라고 합니다. 우선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참.. 제 제자 중에 기환이 다음으로 결혼을 하는 사람이 혜나가 될 거라곤 생각을 못 했는데... 이 자리에 와있는 얘들아. 너희도 빨리 가자."
-하하하하-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입장할 텐데요. 하객분들께서는 잠시 뒤쪽을 바라봐주시고 우렁찬 박수로 오늘의 주인공들을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인공! 입장!"
-짝짝짝짝-
다빈이와 나는 손을 마주 잡고 앞으로 꽃길만 걷자는 의미로 뿌려진 꽃들을 지르밟으며 진아와 김정근 감독님이 있는 앞으로 걸어갔고 길이 왜 이렇게 짧은 건지.. 어느새 도착해버린 단상 앞.
'예쁘다. 혜나야.'라고 말해주시는 감독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진아에게 눈인사를 하자 눈치 좋게 다음 식순을 진행하는 진아
"이어서 여러 증인과 가족 앞에서 부부의 예를 드리는 맞절의 순서가 있겠습니다. 두 사람 맞절."
-짝짝짝짝-
"다음은 주례 선생님의 말씀에 앞서 '성혼선언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성혼선언문 낭독은 진아가 해주기로 했고 미리 건네준 성혼선언문을 읽기 시작했다.
"제가 낭독하겠습니다. 먼저 귀한 시간을 내어 제 친구, 여러분의 가족, 동생, 누나,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과 가족 친지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제 옆에는 저의 사랑하는 친구들, 혜나와 다빈이가 긴 인고의 시간 끝에 사랑이란 싹을 틔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여러분 앞에서 두 사람의 약속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내 친구 혜나야.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다빈이를 아끼고 사랑해줄 것을 맹세합니까?"
"네."
"역시 내 친구 다빈아. 언제나 혜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줄 것을 맹세합니까?"
"네.."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는 진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큼.. 다들 잘 들으셨죠? 임혜나 양과 금다빈 양의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짝짝짝짝-
"다음으로는 김정근 감독님의 주례사가 있겠습니다. 결혼생활의 선배로써 좌우명으로 삼을 귀한 말씀이니 경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두 사람은 우리들 앞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함께 하겠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의 두 주인공을 위해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 결혼생활이 아름다운 꽃밭으로만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먼지만 가득한 황무지 같은 삶의 순간도 있습니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듯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잠시 어둠이 드리운다 해도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지나가길 기도하겠습니다."
-짝짝짝짝-
"다음은 두 분의 사랑의 결실을 축하하는 축가가 있겠습니다. 축가에는 ···"
···
"이로써 오늘의 두 주인공 임혜나양과 금다빈양의 결혼식을 모두 마칩니다. 계속하여 사진 촬영이 ···"
···
"진아야 오늘 고생 많았어."
"아니야. 오히려 불러줘서 고마운걸."
"난 잠시 오빠들이랑 인사하고 올게. 바쁠 텐데 와줬네."
"응 갔다 와~"
그렇게 행복만 가득할 것 같던 생활은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아버지의 장례식. 나는 아버지가 그날 밤 나에게 남겼던 닳고 닳은 편지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내 읽고는 눈물로 후회를 하고 있었다.
평범..하진 않았지만 잘 자라준 내 딸.. 혜나야. 다시는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건만.. 이 못난 아비는 또다시 너를 힘들게 하고 말았구나.
내 딸 혜나야. 이 아비는 네가 힘든 길을 걷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힘들었던 만큼... 긴 암흑 속을 지나 마침내 빛을 보고 있는 너에게 꼬리표가 따라붙을까 봐 이 아비는 걱정되는구나...
혜나야. 내 딸.. 사랑한다.
아버지는 이 편지를 남긴 채, 나를 평생토록 보지 않으셨지..
"아빠.. 엄마와 그곳에서 행복하세요.."
-IF루트 - 금다빈 끝-
-닿지 못한 마음-
오늘은 혜나의 결혼식이다..
"후.. 이럴 줄 알았으면... 지금 와서 늦었지..."
설령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멀어지는 선택이었더라도... 용기를 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지...
나는 뒤늦은 후회로 가득했다.
언제나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나를 바라보며 웃던 모습, 다정하게 불러주던...
이제는 너는 다른 사람의 연인이 되어...
"상학아 뭐해? 들어가자."
"어? 어..."
"··· 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귀빈 여러분은 순서를 지켜주세요. 먼저 가족, 친지분들 ··· 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친구분들? 서주세요."
나는 멍하니 아름다운 혜나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모습 같았다.
"오빠? 뭐해? 그러고 있지 말고 같이 사진 찍자. 헤헤.."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온다... 안 돼.. 하지 마... 밀어내야 해...
"어... 어..."
결국 난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인형처럼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저 멀리 떠나가는 너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어...
-닿지 못한 마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