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바츠의 친구들 -- > * 5화 *
“그럼 왜 이야기 안 해줘!”
바츠는 이롤로의 교본을 대신 주워주며, 여전히 떼를 쓰고 있는 아델리나에게 대답했다. 흥분한 그녀를 달래기 위해,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했어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바탕 크게 다툰 누나에게 말할 때처럼 무뚝뚝했다.
“아까 내가 졸다가 검은 개한테 걸렸을 때, 이롤로가 도와줬거든. 그 이야기 하고 있었어. 고마웠다고.”
“뭐야, 정말 별 거 아니네.”
“그래...”
이번에는 바츠가 턱을 들어 천장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델리나는 바츠와 이롤로 모두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오히려 즐거워했다. 둘에게서 풍겨지는 짜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다시 조금 전처럼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테라치는 어디에 있어? 테라치랑 같이 헌터 놀이하지 않을래? 헌터 놀이를 하지 않은지 벌써 열흘은 됐을 거라고.”
아델리나의 제안에 이롤로가 그녀의 팔을 뿌리치며 대꾸했다. 짜증이 고스란히 묻어난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엊그제도 분명 우리는 헌터 놀이를 했어. 테라치와 내가 헤러티커였고, 너와 바츠가 헌터였지. 네가 테라치를 죽인 거 벌써 잊었어?”
“정말? 그게 엊그제야?”
아델리나가 그런 이롤로의 어깨에 다시 팔을 두르며 그때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틈에 바츠와 이롤로는 동시에 그녀의 팔을 떨쳐냈다. 아델리나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둘을 번갈아 노려보았지만, 이내 다시 따라붙으며 이번에는 둘 모두에게 팔짱을 끼었다.
“그럼 오늘도 하자. 오늘은 나랑 테라치가 헌터를 할게. 어때?”
“아니, 싫어. 너만 만날 헌터를 하잖아. 너는 여자인데도 말이야.”
이롤로의 핀잔어린 투정에 아델리나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게 어때서? 내가 여자라서 안 된다는 거야?”
“여자는 대부분 집사가 된다고. 안 그래, 바츠?”
바츠는 아델리나의 눈치를 피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델리나가 팔짱을 낀 자신의 팔을 훽 풀어내며, 자신의 교본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나 네들이랑 안 놀아. 바츠, 너까지 그럴 줄 몰랐어. 여자도 헌터가 될 수 있어. 프리샤가 있다고. 남자 헌터 둘도 상대한다고 했어. 나는 프리샤처럼 될 수 없다는 거야?”
바츠는 머뭇거리며 그녀의 교본을 주웠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솔직히 헌터 중에 여자는 거의 없어...”
아델리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바츠의 손에서 자신의 교본을 홱 빼앗아갔다. 그리고는 둘을 다시 한 번 무섭게 쏘아보고는 콧방귀와 함께 휙 먼저 가버렸다. 이롤로가 그런 아델리나를 애써 불렀지만, 그녀는 들은 체도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 바츠는 어색하게 남은 이롤로와 마주보며 어깨나 으쓱해야 했다.
“걱정하지 말자. 아델리나는 항상 저러잖아. 내일이면 또 헌터 놀이하자고 우리를 못 살게 굴 걸?”
“맞아. 아델리나는 항상 저래. 늘 제멋대로지. 그만 가자.”
이롤로와 바츠는 서로를 애써 위로했다. 하지만 아델리나에 대해 나눈 이야기는 정말 사실이었다. 그녀는 항상 밝고 쾌활했지만 자주 토라졌고, 토라졌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아지고는 했다.
엊그제 헌터 놀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헤러티커가 된 테라치와 이롤로가 너무도 잘 숨는 바람에, 게임이 끝날 때까지 바츠와 아델리나는 허탕을 치며 레벨1을 헤매기만 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헤러티커가 승리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헤러티커의 승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아델리나는 불평을 토로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 테라치가 일부로 들켜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달아나지 못하고 붙잡히며 헌터가 승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확히는 아델리나가 이기게 해주었다. 그러자 조금 전만 하더라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다른 층에 숨어 있을 거라며 투덜거리던 아델리나가 환하게 웃었다.
사실 애초에 배식표를 교환할 수 있는 1-3의 상업 지구에 한정해서 숨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괜히 초조해진 아델리나가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었는데, 테라치가 아니었으면 아델리나가 어떤 고집을 피우며 난리를 쳤을 지 안 봐도 뻔했다. 아마도 게임이 끝나고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려 곤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전에도 헤러티커를 전부 찾지 못한 것에 격분해,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으니 말이다. 그때도 테라치가 아니었다면, 방금처럼 놀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델리나는 바츠와 이롤로 사이에서 프레이라고 불렸다.
“어이!”
바츠와 이롤로가 막 걸음을 다시 옮기려는 찰나, 뒤에서 금발 머리의 소년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델리나처럼 바츠와 이롤로 사이를 파고들며, 둘 모두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수업 중 유일하게 마티프를 흐뭇하게 만들었던, 그 소년이었다.
“헌터 놀이하지 않을래?”
“테라치,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돼. 오늘 아빠가 오시는 날이거든.”
이롤로가 아델리나를 대할 때와는 완전 다르게, 정말 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테라치도 아델리나처럼 토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며 이롤로의 등을 떠밀었다.
“정말? 어서 가보라고! 지금쯤이면 이미 빅애스가 열렸을 거라고!”
물론 테라치라면 이롤로가 진심이 아니었더라도 아델리나처럼 삐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벌써 도착하셨을 지도 모르겠다!”
바츠는 그런 테라치를 도왔다. 2년 만에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는 이롤로를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자신도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이라면 미안을 감수하고 플랫폼으로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롤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바츠와 테라치가 조금도 서운한 기색 없이 이해를 해주자, 활짝 웃는 얼굴로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한차례 되묻고는 먼저 빠르게 뛰어갔다.
바츠는 그런 이롤로를 보자 괜히 아버지가 보고 싶어졌다. 내년이 되어서야 돌아오시겠지만, 오늘 오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바츠, 그럼 우리 검술 훈련장에 들렀다 갈래? 나중에 우리가 일반학교에서 배운 것과 완전히 다른 검술을 배울 텐데, 제법 어렵다고 하더라. 내가 좀 더 가르쳐 줄게. 내가 가르쳐 주면 수업에 뒤처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이롤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츠의 어깨를 테라치가 잡아채며 물었다.
바츠는 테라치의 뜻밖의 제안에 절로 입이 귀에 걸렸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우울한 마음이 단 번에 날아가 버릴 정도로 정말 기뻤다.
“정말? 정말 그래줄 거야?”
“정말이래도. 아직 레벨3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은 족히 남았으니까, 연습할 시간은 충분해.”
바츠는 정말 기뻤다. 테라치는 자신보다 겨우 한 살 많았으나,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내며 항상 훨씬 형처럼 굴었다. 하지만 바츠는 그 모습에 단 한 번도 이질감이나 반발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친절한데다가 생각이 어른스러웠고, 바른 행동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성적도 우수해 일반학교를 다니는 동안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미사훈련소에 입학 할 때까지도 이어졌다. 테라치는 미사훈련소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바츠는 이런 테라치가 자신의 바로 옆집에 사는 것이 너무 좋았다.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던 자신을 이번에 미사훈련소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준 것도 어떻게 보면 테라치 덕분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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