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바츠의 친구들 -- > * 6화 *
바츠는 공부가 싫었다. 그저 다른 15살 또래들처럼 영웅담과 노는 것이 좋았고, 굳이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봤자 어차피 나중에는 기술학교에 가서 외부 엔지니어가 되어야 했고, 운이 좋으면 내부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비단 바츠뿐만 아니라, 레벨1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학업에 관심을 갖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에 회의적인 아이마저도 있었다. 그들에게 학교는 의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때문에 레벨1의 아이들에게 헌터가 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하지만 테라치는 달랐다. 테라치는 늘 뭔가를 갈구했다. 집착했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1등이라는 성적을 만들었다. 이런 테라치 앞에서 바츠는 그저 평범했고, 테라치는 그런 바츠를 종종 자신의 집으로 부르고는 했다.
테라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외부로 나가게 되면 고아나 다름없었다. 그로인해 외로움을 느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바츠를 불러 학교 수업이나 검술 등 학업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가르쳐주고는 했다. 바츠에게는 개인교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바츠가 누나와 다투고 집을 나오면 대신 재워주기도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누나보다도 훨씬 더 가족 같았다. 그래서 바츠는 테라치를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바츠는 이런 사실들에 항상 감사했다. 테라치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에게 항상 상냥한데다가 꿈꾸던 헌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도 주었으니 말이다. 만약 테라치를 몰랐다면 바츠는 지금쯤 성적이 모자라 미사훈련소가 아닌 일반학교 6학년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테라치는 미사훈련소에 진학이 결정되었을 때에도, 헌터가 아닌 내부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처럼 보인다. 테라치의 꿈이 크루엘라를 치료할 백신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테라치의 신분으로는 연구원이 될 수 없었다. 연구원이 되려면 최소한 레벨2에 거주해야만 했고, 그 중에서도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테라치에게는 그 재능이 있었지만, 레벨1에 거주하는 탓에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내부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한 것이다. 내부 엔지니어가 되어서 운이 좋다면, 연구원으로 뽑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테라치의 성적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테라치는 내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기술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미사훈련소의 교관들에 의해 반강제로 미사훈련소에 입학한 탓이었다.
엔지니어가 되려면 반드시 기술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그리고 기술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라면 미사훈련소가 아닌 일반학교를 졸업해야하니, 테라치는 올해 미사훈련소에 입학을 해서는 안됐다. 그러나 이미 재작년부터 테라치를 어떻게든 미사훈련소에 입학시키고자 했던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테라치가 가진 검술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츠는 그들이 집까지 테라치를 찾아왔던 것을 수없이 봤다. 그리고 테라치를 일반학교에 입학하던 해부터 쭉 지켜봐왔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테라치의 진학이 이제야 결정이 난 것은 테라치 본인의 의사도 의사지만, 그의 아버지의 반대 때문이었다.
테라치의 아버지는 바츠의 아버지처럼 외부 엔지니어다. 그래서 바츠와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오랜 기간 떨어져야 하는데, 그로인해 생긴 둘만의 신뢰가 굉장히 강했다.
그는 테라치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해주었다. 그로인해 레벨1 주민이라면 자신의 아이가 미사훈련소로 진학할 기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과 다르게 오히려 완강하게 거부했다. 테라치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헌터가 된다면 주거지가 바뀔 수도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테라치가 헌터가 될 수 있다는 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테라치는 올해 바츠와 함께 미사훈련소로 진학을 했다. 그의 아버지가 외부에 나가있는 사이, 테라치 본인이 결정한 것이었다. 바츠는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조금 불행해 보이기는 했지만, 테라치가 함께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부터는 전처럼 가볍게 하지 않을 거야. 각오하는 게 좋아.”
“그래, 알겠어!”
바츠는 테라치의 엄포에 더욱 신이 났다. 테라치에게서 오랫동안 검술을 배워왔지만, 테라치의 진짜 실력을 제대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다칠까 우려스러운 마음에 그랬던 것이겠지만, 바츠는 그것이 조금은 답답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싶고, 배우고 싶었는데 꼭 커다란 돌에 짓눌려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기분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미사훈련소에서 이루어질 좀 더 강도가 높은 훈련이 기대되기도 했다. 기본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전문적인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헌터가 된다는 것은 군인 그 이상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테라치가 아직 훈련장으로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또 한 번 진지한 당부를 했다.
“훨씬 더 집중하고 조심해야 돼.”
“어서, 가자!”
바츠는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지금 당장 검을 휘둘러보지 않는다면, 영원히 못할 것만 같은 조바심도 밀려들었다. 그래서 테라치의 손을 낚아채 잡아끌며 앞으로 달렸다. 갑작스러운 바츠의 행동에 테라치가 깜짝 놀랐는지 비명을 질렀지만, 바츠는 멈추지 않았다. 테라치가 위태위태하게 뒤따르며 손을 놓으라고 할수록 더욱 힘을 내서 달렸다. 나중에 테라치에게 꿀밤을 얻어맞을 것이 분명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테라치는 3-1 구역을 지나 3-2 구역에 도착했을 때, 망설임도 없이 바츠의 뒤통수에 꿀밤을 놓았다. 팔로 목도 조를 것처럼 보였지만,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것까지는 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동무를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훈련장으로 나란히 함께 걸었다.
훈련장에는 아직 많은 학생들이 남아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얼굴들이 대부분 낯선 것을 보면 레벨2에 사는 아이들인 것이 분명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더라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거주지에 따라 졸업할 때까지 항상 다른 반을 쓰기 때문에, 다른 레벨에 사는 아이들끼리는 어지간해서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바츠는 그래서 훈련장에 들어서는 것이 괜히 망설여졌다. 학교 수업으로도 수없이 와봤고 테라치와 따로도 자주 와봤지만,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레벨2의 아이들에게 있어 레벨1에 사는 아이들은 놀림의 대상이었데, 그러한 이유로 거부감이 생긴 것이었다.
바츠는 이럴 때마다 벨리타가 떠오른다. 그녀는 레벨2에 살 뿐만 아니라 테라치만큼 성적이 뛰어난 아이였다. 테라치와 동급생이었는데, 아마 테라치가 없었다면 일반학교에서의 1등은 그녀 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성적이 뛰어난 데다 더 높은 등급의 주거지에 사는 그녀가 레벨1의 아이들을 괴롭히는 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바츠는 그녀가 좋았다. 특히 마음씨만큼 예쁜 얼굴이 너무 좋았다.
“2반 아이들은 아니지?”
“글쎄, 미사훈련소 아이들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맞아, 나 저 녀석을 일반학교에서 본적이 있어. 일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확실해.”
바츠의 물음에 테라치가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되물었다.
“왜? 겁나?”
바츠는 자신을 돌아보는 테라치를 향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겁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훈련장에 들어서는 것이 망설여지고 있다는 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벨리타를 떠올린다고 해도 저들 사이에 끼어야 한다는 건 큰 결심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바츠, 저 녀석들은 모두 일반학교에 다니는 애들이라고. 미사훈련소에는 레벨2 아이들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저 녀석들은 아무리 검술을 연마해도 결국 엔지니어가 될 테고, 기껏해야 군인이 될 거야. 하지만 우리는 달라. 우린 헌터라고. 헌터는 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아. 아직 군인이 되지 않은 꼬맹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테라치가 이번에는 반대로 바츠의 손을 잡아끌었다. 바츠는 싫은 척 괜히 몸을 뒤로 뺐지만, 테라치가 힘들 정도로 발악을 하지는 않았다. 테라치가 한 말에 왠지 자신감이 생긴 까닭이었다. 물론 여전히 위축되어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용기가 피어올랐다.
“어서 들어가자. 별 거 없다고.”
테라치가 먼저 앞장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