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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감염-7화 (7/268)

< --   1. 바츠의 친구들   -- >         * 7화 *

테라치가 다가서자, 유리문이 스스로 바람소리를 내며 좌우로 열렸다. 그리고 출입을 알리는 단음의 알림음이 울렸고, 바츠는 그 뒤를 따랐다.

훈련장은 가로세로 3m의 크기로 만들어진 단상이 여러 개 마련되어 있는 널찍한 공간이었다. 100명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공간이었지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냄새나니까 여기에 오지 말라고!”

가까운 단상 위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막 들어오는 바츠와 테라치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킥킥거렸다. 레벨1 주거지역에 있는 폐기물 처리장이 문제였다.

매주 셋째 날 이루어지는 폐기물 처리는 지독한 악취를 동반하는데, 그 냄새가 정화되는 데에는 최소 3일이나 필요했다. 대게는 그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항상 악취가 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른 레벨에 사는 아이들은 레벨1에 사는 아이를 발견하면 멀리서부터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틀어막는다. 레벨1 아이들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는 심드렁한 태도로 그냥 무시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몇몇은 바츠와 테라치를 무시한 채, 훈련에만 매진했다. 하지만 못마땅한 얼굴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인상을 찌푸리며 노골적인 조롱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비렁뱅이라는 말은 견디기 힘들었다.

바츠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의 왼쪽 상단과 등에 거주지를 나타내는 흰색 프린팅을 숨기고 싶어졌다. 저들과 다르다는 게 창피했다. 하지만 테라치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들의 태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운 얼굴로 반대쪽 입구를 가리켰다.

“저기, 벨리타 아니야?”

바츠는 테라치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테라치의 손끝에 한 눈에도 예쁜 소녀가 막 또래 친구들과 훈련장을 빠져 나가고 있는 옆모습이 보였다. 살짝 불게 상기된 얼굴에 검은 머리칼이 눌러 붙어 있었는데, 함께 걸어 나가는 친구들을 향한 환한 미소가 그것마저도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바츠, 가봐. 인사라도 해야지. 이제 학교가 달라져서 만나기 힘들잖아. 나중에 벨리타가 기술학교로 진학해서 연구원 반이 되면 더 만나기 힘들게 될 걸?”

바츠는 테라치의 말에 몸이 절로 기울었으나, 선뜻 걸음을 떼지는 못했다. 저 반대편까지 가게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아이들의 눈에 띌 것이고, 그만큼 자신을 향한 조롱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보다도 그녀가 더 빨리 훈련장을 빠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앞섰다.

“아니야, 다음에 만나지 뭐. 지금은 테라치랑 연습해야 하잖아.”

“그래? 그럼 그러자.”

바츠는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바보처럼 놀림감이 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애꿎은 속만 태웠다. 테라치의 말대로 그녀가 나중에 기술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면 그곳에서는 검술을 배울 필요가 없으니, 정말 영영 만나기 힘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테라치와 구석에서 연습하는 내내, 그 생각으로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테라치가 열의를 다해서 가르쳐주는 새로운 것들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간결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놀라운 기술들이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덕분에 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몇 번이나 알려주던 테라치가 결국 핀잔을 늘어놓았으나, 그래도 집중력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서러워져 의지마저도 사라졌다.

결국 테라치는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리 연습을 그쳤다. 더 이상 연습을 이어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츠는 그런 테라치를 보자 너무 미안했다. 혼자였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큼 훈련을 했을 텐데, 자신이 방해한 것 같았다. 먼저 와 있던 다른 아이들 때문에 단상 위에서 제대로 된 연습도 할 수 없었는데, 자신이 방해까지 했으니 단단히 화도 났을 것 같았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훈련장을 빠져나갈 때, 사용한 연습용 검을 제자리에 가져다 두지 않고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테라치에게 따로 사과도 안 했다. 미안한 마음이 오히려 사과를 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테라치는 다행히 화가 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바츠를 위로했다.

“조금 어려웠지? 다음에는 좀 더 쉽게 가르쳐 줄게. 그러니까 포기하면 안 돼. 알겠지?”

바츠는 집 앞에서 헤어지기 직전, 테라치가 웃는 얼굴로 해주는 격려에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잘못한 것은 본인인데, 테라치가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겨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정말 최악이었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테라치는 이미 집으로 들어갔고, 그런 테라치를 다시 찾아가는 짓은 차마 할 수 없었다. 테라치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땅히 갈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롤로는 2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고, 아델리나의 토라진 마음이 풀리려면 적어도 하루가 필요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루 종일 달려도 끝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얼마나 넓은지 상상조차 안됐다. 하지만 지금 바깥세상으로 뛰쳐나가면, 슬퍼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을 것 같아 바로 마음을 접었다. 특히 벨리타가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절대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집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뭐야, 이제 오는 거야? 나보다도 늦게 오다니, 미사는 역시 다른가보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돌아와 있던 케일리가 빈정거렸다.

바츠는 케일리의 이런 모습이 그녀만의 반가움의 표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꾸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녀가 심각한 얼굴로 방까지 쫓아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테라치랑 훈련장에서 검술 연습을 하고 왔더니 힘들어서 그래.”

바츠는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자신으로 인해 케일리가 호들갑 떨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난 검술이라면 딱 질색이야. 왜 검술을 배우는지 모르겠어. 그런 건 군인들이나 쓰는 거야.”

바츠는 케일리가 그만 방에서 나가줬으면 했지만, 사이좋게 지내고 있으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떠올리고는 애써 마음을 다 잡았다.

“누나, 군인이 아니라 헌터야. 군인들은 검을 거의 쓰지 않는다고.”

바츠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군인도 검술을 배우지만’이라는 말은 속으로만 했다.

“어쨌든. 그런 건 나 같은 여자들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다고.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케일리의 말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단 여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결국 대부분 엔지니어가 되기 때문에, 검술을 배우고도 써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바츠는 아델리나를 떠올려 케일리와 비교했다.

아델리나는 일반학교를 다닐 때부터 항상 군인이 될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리고 그만큼 승부욕도 강했고, 검술 수업에서 만큼은 남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열의를 보였었다. 동급생 중에서 세손가락에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런 아델리나가 케일리가 지금 한 말을 들었다면, 아까 수업을 막 끝내고나서처럼 단단히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바츠는 아델리나를 데리고 와서 케일리가 한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흥분한 아델리나를 앞에 두고 쩔쩔매는 케일리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일반학교나 미사훈련소나 어차피 검술을 가르치는 걸? 그래서 군인들도 소총을 쓰지만 검도 가지고 있다고.”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애초에 나처럼 군인이든 헌터든 전혀 관심 없는 사람에게까지 검술을 가르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걸 배우겠어. 내 친구 중에 엘 샤라이라는 녀석이 있는데, 헌터가 꿈인 녀석이야. 하지만 이제 내년이면 졸업이라서 더 이상 기회가 없잖아. 그러니까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더라. 정말 바보 같아. 그 녀석 성적이면 내부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거든, 물론 외부 엔지니어가 되겠지만. 어쨌든! 그런데도 군인이 되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어.”

바츠는 문득 케일리의 꿈이 궁금해졌다. 예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케일리가 알아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식물연구원이 될 거야. 그러면 항상 예쁜 꽃들과 함께 있겠지. 많은 꽃들을 만들어서 레벨1에 꽃이 가득하게 만들 거야. 여긴 너무 지저분하잖아.”

바츠는 그거야 말로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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