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13화 (13/268)

< --   2. 각자의 길   -- >         * 13화 *

다음날, 바츠는 여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오금이 저렸다. 있는 힘껏 앞으로 내달리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레벨1부터 레벨5까지 쉬지도 않고 오르락내리락한다면 그나마 좀 나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각 층마다 각각의 출입허가가 필요했는데, 레벨1 거주자들에게 허락된 것은 고작해야 레벨2와 레벨3에 잠시 머물 수 있는 권한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우 짧았다. 레벨2는 한 시간이었고, 레벨3은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면 결코 머물 수 없었다. 레벨4나 레벨5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만약 이를 초과하거나 어길시 경보와 함께 수배가 된다. 범죄인 것이다. 괜히 발이나 한 번 굴러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조급함을 느끼는 건 바츠뿐만이 아니었다. 왼쪽 줄의 아델리나도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곁눈질로 몇 번이나 바츠와 이롤로의 빈자리를 힐끗거렸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불안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침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이롤로의 소식을 용케 듣고는 교실로 들어서는 바츠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바츠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랐었지만, 울먹이며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이내 진정할 수 있었다. 비록 발음이 엉망이었지만 알아듣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옆에 있던 테라치가 달래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울었다. 중간에 맨 뒤 자리의 버니가 그녀를 향해 시끄럽다고 면박을 주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바츠는 이유도 모르면서 아델리나를 향해 윽박지르는 버니가 얄미웠지만, 그를 한 차례 노려보는 것으로만 그쳤다. 쓸데없이 그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 미사에 입학한 아이 중 덩치가 가장 컸다. 일반학교에서도 같은 학년 내에서 그보다 덩치가 큰 아이는 없었는데, 덩치만큼 힘도 쌔고 성격도 거칠었다. 며칠 전, 바츠가 수업시간에 졸다가 마티프에게 혼날 때 즐거워했던 것도 바로 그였다.

“버니에트와, 모르면 가만히 있어.”

테라치가 그에게 차갑게 굴지 않았다면, 아델리나는 그의 핀잔을 들으며 더욱 울었을 것이다. 그에게 유일하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건 테라치뿐이었다. 테라치는 바츠보다 기껏해야 손가락 두 마디 밖에 크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보다 작은 테라치에게만은 관대했다.

버니의 원래 이름은 버니에트와로 이롤로와 같은 구역에 사는 아이다. 버니는 애칭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스스로 거칠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증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바츠와는 일반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마주칠 일이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무리였다. 서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가끔 그가 이롤로와 어울리기도 했지만 썩 친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온 뒤로 그가 바츠를 노골적으로 싫어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전까지 말 그대로 남일 뿐이었는데, 유난히 신경 쓰며 눈에 거슬려 했다. 입학 당일만 해도 그렇다. 이롤로와 나란히 서 있던 바츠의 다리를 걷어차 바츠를 바닥에 쓰러뜨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나는 길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헌터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건, 결국 아르크의 주민들이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령관을 보호하고, 아르크를 지켜야 한다. 그것을 잊는 순간 헌터는 그저 살인기계일 뿐이다.”

마티프가 진지한 얼굴로 당부를 하며 수업을 끝냈다. 바츠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없었다.

“바츠, 훈련장에 가자.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검술 수업이 시작 될 거야. 그러면 우리가 따로 훈련할 시간도 없어.”

테라치가 넋 놓고 있던 바츠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롤로가 아르크를 떠났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전에 비해서 조금 얼굴이 굳어진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아델리나만 보더라도 하루 종일 울상이었던 걸 떠올리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바츠만큼 이롤로와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슬퍼할 수 있을 만큼의 관계였다.

바츠는 테라치의 냉정한 모습을 보자, 그가 이롤로와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고작 한 살이지만 그 나이차 때문인지 둘 사이에는 조금 미묘한 이상 기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여태까지는 의아해하는 정도에서 멈췄지만, 지금은 그것이 매우 신경 쓰였다. 거리감이었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버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테라치는 이롤로와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신에게 선뜻 공부는 물론이고 검술도 가르쳐주면서 이롤로에게는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다. 전혀 친하지 않은 다른 반 아이가 물어봐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테라치였다. 그런데 이롤로에게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물론 이롤로가 먼저 물었던 적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롤로는 지훈에 이어서 미사훈련소의 입학 성적이 세 번째였고, 검술만큼은 지훈보다도 더 뛰어났다. 테라치가 아니었다면 검술은 분명 제일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일반학교에서 있었던 대회에서 테라치를 꺾은 적도 있었다.

어쨌든 바츠는 테라치의 제안에 전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 나는 가지 않을래.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냥 집에 갈래.”

테라치와 검술을 연습한다고 해서 이롤로가 다시 돌아올 리가 없었다. 헌터가 되려 했던 의지마저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바보야, 너 이롤로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무슨 소리야? 이롤로는 아르크 밖으로 쫓겨났다고. 어차피 영원히 만나지 못 할 거라고!”

바츠는 괜한 억울함으로 자신도 모르게 테라치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롤로의 추방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나온 태도였다. 테라치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그의 매정해보이기까지 한 모습이 그냥 미웠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헌터가 되면 이롤로를 찾으러 갈 수 있다고. 헌터는 엔지니어와 다르게 행동이 자유로우니까 말이야. 이롤로를 찾아서 네가 지켜주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강해져야겠지. 그리고 반드시 헌터가 되어서 전진기지로 나가야하고 말이야. 지금 네 성적과 실력으로는 졸업도 하지 못할 걸? 미사훈련소를 졸업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바츠는 미사훈련소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르크를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운이 좋으면 전진기지에 한두 번 가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롤로를 만난다는 건 불가능했다. 영영 이별이었다.

“가자. 가서 열심히 연습하는 거야. 그리고 당당하게 헌터가 되어서 밖으로 나가자. 그럼 분명 이롤로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야.”

테라치의 말이 옳았다. 바츠는 자신이 나중에 헌터가 된다면 반드시 이롤로를 찾아 아르크로 데려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때 다시 함께 지내면 되는 것이다.

“바츠!”

바츠는 결국 기분을 털어내고 테라치를 따라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벨리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연구원이 될 것이면서도 검술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이롤로 이야기 들었어. 가여워라.”

벨리타가 훈련장에 들어서는 바츠를 꼭 안았다. 이미 한창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의 체온이 굉장히 뜨거웠다. 진한 땀 냄새도 함께였다.

바츠는 그런 그녀를 있는 힘껏 안았다. 그녀의 슬픈 얼굴이 다시 마음을 우울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녀를 부둥켜안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다.

“정말 슬픈 일이야. 하루 빨리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벨리타,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정말?”

“응. 나 반드시 헌터가 될 거야. 테라치가 도와준다고 했어. 테라치와 함께라면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럼 이롤로를 찾을 수도 있고, 이롤로와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벨리타가 몸을 빼내더니, 이번에는 바츠의 양손을 잡았다.

“그래. 너라면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난 네가 그러는 동안 꼭 연구원이 되어서 치료제를 개발해낼게.”

바츠는 벨라타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테라치없는 일반학교에서 항상 1등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벨2에 살고 있었다. 테라치보다도 연구원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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