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각자의 길 -- > * 16화 *
한편, 집으로 달려가는 바츠의 머릿속은 오로지 자신이 쥐고 있는 물건으로 가득했다. 헤러티커의 엄지손가락으로, 영약이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물에 24시간동안 끓여 마시면, 아주 오래 전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던 만능세포인 GCP와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레벨4의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수개월 치 배급표가 오고갈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소문으로는 헌터들이 가져온 헤러티커의 엄지손가락 대부분이 사령관을 연명시키는데 쓰이고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귀한 물건이 더더욱 값이 치솟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유독 오랫동안 살아있는 것을 보면 그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덕분에 레벨1 거주자들에게는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지상으로 나가면 극히 드물지만 헤러티커의 시체를 통해 우연히 얻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인간의 문명이 지상 위에 꽃피우고 있을 때 로또라고 불리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누나! 이것 봐!”
바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케일리를 향해 헤러티커의 엄지손가락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주방에서 팬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는데, 잔뜩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이상하게 생긴 건 뭐야?”
“모르겠어? 자세히 보라고!”
케일리는 별로 내켜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애써 바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물건을 살펴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조금씩 인상이 펴지고 눈이 커다랗게 변하더니,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맞아! 바로 헤러티커 엄지야!”
바츠는 케일리의 품안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케일리가 양팔로 꼭 안아주었다가 놓아주었다.
“대체 이걸 어디서 구했어?”
케일리가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전에 ‘라파엘’이 왔는데, 그가 줬어!”
케일리는 바츠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케일리도 빅애스가 언제 개방되고 폐쇄되는지, 헌터 ‘라파엘’이 누구인지 그리고 헤러티커의 엄지손가락이 어떤 물건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츠는 몇 번이고 조금 전 일들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설명이 거듭될수록 이야기는 조금씩 더 세세하게 변했다. 물론 그 전에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은 꺼내놓지 않았다. 이미 부어오르기 시작한 왼쪽 볼에 대해 케일리가 물었지만, 학교에서 놀다가 부딪혔다고 둘러댔다.
“나 주려고 만든 거야?”
바츠는 케일리가 겨우 자신의 말을 믿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녀가 요리하고 있던 주방에 팬케이크를 가리켰다. 시럽은 비싸서 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요리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달콤함이 느껴졌다.
케일리가 부끄러운지 수줍게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분명 지난 번 일을 화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바츠는 케일리가 용기를 낸 만큼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오히려 먼저 말을 꺼냈다. 그때 심하게 화를 낸 것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였다. 그러자 케일리가 고개를 가로젓고는, 훨씬 더 미안해하며 정중하게 용서를 구했다.
바츠는 케일리와 함께 팬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그때를 완전히 잊었다. 식사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다. 불현듯 아버지가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이롤로는 여전히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그의 빈자리가 당연하게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이롤로를 신경 쓰는 사람은 바츠말고는 없다. 바츠는 아직도 가끔씩 그의 빈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곳을 왜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한다. 한참 뒤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눈시울을 붉히는 일은 없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그가 사라진 것처럼 바츠의 눈시울도 그 감정을 잊고 있었다.
“또, 또! 거짓말하지 마!”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을 맞아, 아델리나가 이롤로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테라치가 그 앞자리에 앉았고, 바츠는 그들에도 다시 한 번 며칠 전 그때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말이라니까. ‘라파엘’이 틀림없어. 검은 개도 함께 있었단 말이야.”
둘은 바츠가 겪었던 그 때의 일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가 건네주었던 헤러티커의 엄지손가락을 보여주면 단 번에 믿을 테지만, 값비싼 물건은 아무도 모르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케일리의 말 때문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티프를 언급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바츠가 마티프를 자신 있게 언급할 때만 조심스럽게 변했다.
“못 믿겠으면 검은 개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바츠, 자꾸 거짓말하면 혼날 줄 알아. 우리가 검은 개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게 만들어서 곤란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지?”
테라치가 바츠의 이마에 꿀밤을 때릴 것처럼, 모나게 쥔 주먹을 보여주며 말했다.
테라치와 아델리나는 바츠의 입에서 마티프가 언급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을 졸이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 맞아! 일부로 우릴 골탕 먹이려는 거지? 정말 못 됐다!”
바츠는 둘의 반응에 답답해서 온 몸에 경련이 일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저 둘이 믿을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골치가 아팠다.
하루 더 열려 있었던 빅애스는 이미 닫혔다. 테라치와 아델리나가 믿지 않을 것 같아, 호기롭게 그 둘을 데리고 플랫폼에 가봤지만 빅애스는 거짓말처럼 굳게 잠겨 있었다. 이미 개방 시기를 초과했던 문이 또 하루를 개방한 채로 보내고 있을 거란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스타드를 찾아가볼 수도 없었다. 부사령관과 함께 갔다면 분명 레벨4에 머물고 있을 텐데, 레벨1 거주자들에게는 레벨4의 출입 권한이 없었다. 게다가 그가 아직까지 아르크에 머물고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상식적으로라면 그는 분명 빅애스가 다시 닫히기 전에 이미 아르크를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럼 남은 것은 이제 마티프에게 물어보는 일뿐이었다. 그라면 충분히 증인으로서 자격이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며, 선생이었다. 그가 힘을 실어준다면 테라치와 아델리나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츠는 물론이고 테라치와 아델리나까지 그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별도로 찾아가 얼굴을 마주보고 물어야 했다.
바츠는 전에 자신이 마티프에게 했던 짓이 떠오르자 온 몸이 오싹했다. 그때는 미쳤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일반학교에 오늘 전학생이 왔다고 하던데?”
그런데 이러한 바츠의 고민이 너무도 간단하게 풀렸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일반학교에 친구를 만나고 온 지훈이 뜻밖의 소식을 가져온 덕분이었다.
지훈은 점심시간만 되면 일반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인 챠오웨이를 만나고 오고는 했는데, 자리로 돌아가던 중 바츠 일행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지 싱거운 말투로 툭 내뱉었다.
“거봐! 내말이 맞잖아!”
바츠는 지훈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뒤에서 버니에투와가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자신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온 정신이 팔렸다.
전학생이 왔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출입을 뜻하는 것이자, 새로운 거주자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츠는 그 날 스타드와 함께 왔던 4명을 떠올렸다. 그들은 분명 가족으로 보였다. 30대 초중반의 남녀와 또래로 보이던 여자아이 그리고 10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 여자아이의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자창으로 보이는 흉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뺨에 선명하게 나 있었는데, 얼핏 보면 불에 덴 것처럼도 보였다.
그럼에도 테라치와 아델리나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미 그 전날 유입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바츠는 그들이 아닐 것이라고 외치기는 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를 직접 만나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그 여자아이가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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