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각자의 길 -- > * 19화 *
미사훈련소에 입학을 하기 전, 그의 집에 놀러갔을 때였다. 바츠는 이롤로에게 버니에투와와 어울리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았다. 당시 버니에투와는 비정상적으로 큰 덩치 때문에, 거부감으로 기피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바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어울리는 아이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바츠의 행동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아이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글쎄, 너와 이렇게 지내는 것과 같은 건데. 물론 너는 좀 더 특별하긴 하지. 하지만 그 녀석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그냥 친구일 뿐이지. 그게 그렇게 이상해?”
이롤로는 오히려 되물었다. 버니에투와를 다른 눈으로 쳐다보던 바츠와 다른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이롤로는 그를 전혀 겁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피하지도 않았다. 가끔은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도 했다. 그냥 다른 친구들처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렇게 대했다. 덕분에 버니에투와와 어울리는 이롤로에 대해 수군거림이 있던 적도 있었지만, 이롤로는 같은 학년에서 성적이 1등인데다 싸움도 잘했기 때문에 버니에투와처럼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다. 버니에투와와는 달랐던 것이다. 버니에투와는 커다란 덩치에 비해 어리숙해 보였고, 성적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호전적인 경향이 전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그의 모습에 대해 수군거리면, 거기에 대고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슬쩍 자리를 떠나고는 했다.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훈이나 가이즈카보다도 더욱 조용한 친구였다. 늘 풀이 죽어있었고, 말수도 없었다.
이롤로는 버니에투와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굉장히 착한 애야. 겁도 많고. 아마 네가 소리를 지르면 놀라서 도망갈 걸?”
바츠로서는 믿기 힘든 말이었다. 그 커다란 덩치가 겁이 많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현재의 마티프만큼 괴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버니에투와가 언젠가부터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자신을 보고 달아나는 아이를 쫓아가 혼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아이에게 다가가 무서운 눈으로 겁을 주었다. 마치 크루엘라처럼 느닷없이 나타나 난폭하게 굴었다. 아이들은 그에게 옴짝달싹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 아마 같은 학년에서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아이는 없을 것이다. 특히 같은 반 아이 중에서는 손에 꼽기도 힘들었다. 여자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이 겁을 줘서 울리고는 운다고 또 다시 조롱했던 것이 버니에투와였다. 정말 잔인했다.
이롤로는 버니에투와가 절대 건들지 않는 아이 중 하나였다.
그는 이롤로 앞에서라면 언제든지 예전의 버니에투와로 돌아갔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대꾸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롤로의 말이라면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부탁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한 살 많은 테라치가 정면으로 맞서서 버니에투와로부터 아이들을 구해준다면, 이롤로는 간단한 몇 마디로 그를 돌려세울 수 있었다.
바츠는 그때가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용기가 샘솟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바짝 다가서며 외쳤다.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이런다고 달라질 것 같아!”
바츠의 외침에 버니에투와가 깜짝 놀랐는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롤로가 이야기했던 것이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두 눈에 불을 켜며 또 다시 손찌검을 했다. 이번에는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이, 이게!”
“때릴 테면 때려! 하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걸? 이롤로도 분명 이런 널 보면 실망할 거야!”
바츠도 지지 않았다. 되레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더욱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시 또 때린다면 그가 지칠 때까지 맞아줄 의향도 있었다. 물론 겁은 났다. 이롤로의 말과 다르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검술을 연습하는 게 어때?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내가 헌터가 되지 못할 거라고? 웃기지마! 난 반드시 헌터가 될 거야! 왜인지 알아? 난 이롤로를 찾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야! 넌 바보처럼 애들이나 괴롭히다가 결국 퇴학을 당해서 군인이 되겠지? 그럼 영원히 이롤로를 만날 수 없을 걸?”
바츠가 발악하듯 외치자, 버니에투와가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대로 휘두르면 바츠의 이마를 정확히 내리칠 수 있었다.
바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이롤로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보고 싶었고, 케일리에게 미안했다. 또 아버지가 보고 싶었고, 벨리타가 떠올랐다. 테라치가 생각났고, 아델리나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런 감정들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뭐하는 짓이야!”
그때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그 감정들을 전부 밀어내며 달려왔다. 바츠가 두려움을 떨쳐내고 눈을 뜰 수 있을 만큼, 안도할 수 있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괜찮아?”
테라치였다. 전학생을 보러갔던 테라치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던 것이다.
“가만두지 않겠어!”
테라치가 바츠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그의 어깨너머로 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 버니에투와가 보였다. 마치 한참 전에 자리를 떠난 것 같이 굉장히 먼 거리였다.
“무슨 일이야? 왜 저 아이가 널 괴롭히는 거야?”
벨리타도 함께였다. 그녀는 테라치가 버니에투와를 완전히 쫓아내려는 것처럼 몇 발짝 더 옮기는 동안, 붉게 물든 바츠의 볼을 양손으로 감싸며 살펴주었다.
바츠는 다른 때였다면 지금 모습이 너무 창피해서 어딘가로 숨고 싶었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묘하게 기분이 차분했다. 머릿속이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그의 뒷모습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별 일 아니야.”
바츠는 다시 돌아온 테라치와 함께 걱정스런 얼굴을 한 벨리타를 되레 위로하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테라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나 버니에투와를 향해 불만을 늘어놓았다. 내일 교실에서 만나면 따끔하게 혼내줄 것이라고 단단히 별렀다. 바츠는 그의 불만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다가, 그가 버니에투와를 혼내줄 것이라는 의지를 불태울 때 비로소 반응했다. 그가 버니에투와를 꾸짖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테라치가 그 소리를 듣고 답답해하며 고집을 부렸지만, 간곡한 부탁에 결국 의지를 꺾었다. 하지만 또 다시 괴롭히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바츠는 테라치가 너무 고마웠지만, 그 역시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까지 만류하게 되면 그가 서운해 할 것 같아서 그것만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지만 다음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점심시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다들 각자가 가져온 도시락이나 가까운 매점에서 사온 음식으로 식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버니에투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덩치가 큰 만큼 먹는 양도 제법 많았다. 가져온 도시락으로도 모자란 지, 매점에서 입가심용으로 에르텐 스프를 사왔다. 그러나 그는 그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그가 손을 대기도 전에 책상 밑으로 전부다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벨리타! 그러지마!”
이 엄청난 짓을 벌인 장본인은 바로 벨리타였다. 잔뜩 벼르고 있었는지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찾아와서는 바츠에게 인사도 하기 전에, 버니에투와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음식들을 손으로 전부 밀어내버린 것이다.
바츠는 갑작스런 소란에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바닥으로 무엇인가가 요란하게 떨어지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함께 도시락을 먹던 아델리나의 비명이 아니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벨리타는 난데없는 상황에 크게 놀라, 어안이 벙벙한 버니에투와를 무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너 맞지? 네가 바츠를 괴롭히고 있는 거지?”
바츠는 그 모습을 테라치가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과는 다르게, 서둘러 그녀를 말려야 했다. 그가 화를 낼까봐 두려웠다.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테라치가 지켜주겠지만, 혹시라도 벨리타가 봉변을 당할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버니에투와는 바츠의 우려와 다르게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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