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각자의 길 -- > * 26화 *
아델리나의 손은 굉장히 거칠었다. 억지로 잡아 뺀다면 피부가 벗겨질 것만 같을 정도로 까끌거렸다. 여자아이의 손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케일리의 손만 해도 굳은살을 찾아보는 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케일리는 거친 일을 꺼려했다. 그래서 엔지니어가 되는 일도 일찌감치 포기해버렸다. 그것 외에는 각 지구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데도 엔지니어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물론 그녀의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녀가 이미 지금의 성적으로는 기술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엔지니어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 와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노력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계나 연장을 만지는 것보다 자신의 몸을 돌보고 가꾸는 데에만 관심이 많았다. 아델리나와는 전혀 달랐다.
“많이 시끄럽지? 그런데 여기만큼 조용한데는 없을 걸?”
바츠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폐기물 처리장이었다.
아델리나는 절대 출입금지라고 붉은 글씨로 쓰여 있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문을 개방할 수 있는 버튼을 힘껏 눌렀다. 그러자 도착하기 전부터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요란한 기계의 마찰소리가 잠에서 깨어난 아기울음처럼 세차게 들려왔다.
폐기물 처리장은 주거 지구 끄트머리에 위치한 처리시설장 중 한 곳이었는데, 이곳에서부터 나오는 악취와 소음은 레벨1 거주자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다.
바츠는 처리시설장 중 가장 시끄러운 곳으로 자신을 안내한 아델리나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조용하다라는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고 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폐기물 처리장은 양쪽 벽을 따라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크기의 난간이 좌우로 이어져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대체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강철로 제작된 거대한 원형기계가 쉴 틈 없이 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아르크의 모든 폐기물들이 그 안에서 해결되고 있을 거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 그 주변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많은 수의 크랭크들로 바라보는 시선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기계자체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어서 애초에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 가끔씩 한숨처럼 길게 내뱉는 뿌연 수증기가 좌우로 벽을 타고 이어진 난간과 함께, 일정간격으로 매달려 있는 주황색 불빛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나 감상해야 했다. 멀리 시선을 두면 얼핏 음산해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모두가 이곳에 겁을 먹고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고작 출입을 경고하는 문구만 달랑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제대로 된 통제를 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달아난 것이다.
“아무도 없는 거야?”
아델리나는 바츠의 물음에 웃는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가까운 난간에 등을 대고 서더니, 자신의 가슴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크게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바츠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악취가 풍기고 있는데도, 깊은 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쉴 수 있는 그녀가 놀라웠다. 그녀는 레벨1 거주자들을 통 털어 이 악취에 가장 익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츠는 그것보다도 크랭크가 움직이며 반복적으로 철그렁거리는 소리와 수증기가 쌕쌕대는 소리 그리고 이와 어우러지는 주황색 불빛에 비춰지고 있는 그녀의 앞모습에 훨씬 눈길이 쏠렸다.
“후, 어때 괜찮아?”
아델리나가 턱을 치켜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바츠는 그때마다 살짝 붉어진 것 같은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작은 가슴이 부풀었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을 보며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계의 열기 때문이 틀림없었다.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아.”
바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때까지도 그녀의 손아귀에 있던 자신의 손을 살며시 빼냈다. 그리고는 바로 옆으로 가서 기계를 마주보고 정면으로 섰다. 뜨거운 열기로 인해 손바닥으로 방패 막을 만들어야 했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세세히 살펴보기 위해 노력했다.
심한 악취를 계속해서 토해내는 거대한 기계는 저 밑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마치 레벨5까지 닿아있을 것만 같을 정도로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추락한다면 무사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온몸이 산산조각이나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게 될 것이다.
바츠는 아르크에 이렇게 위험한 곳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아무리 이곳이 꺼려진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출입이 쉽게 되어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힘들어.”
바츠가 고개를 돌린 건 아델리나가 탄식하듯 말을 내뱉었을 때였다. 소음으로 인해서 첫마디가 ‘너무’인지 ‘나는’이었는지 제대로 들을 수는 없었지만, 지친 얼굴을 보면 ‘너무’인 것 같았다.
“힘내.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지루한 건 많이 없어졌잖아? 뭐, 검술 훈련 할 때면 손목이랑 팔까지 다 욱신거리기는 하지만...게다가 넌 혼자서 연습도 굉장히 많이 하잖아. 연습을 조금 줄여보는 건 어때? 내가 지난 번 했던 말 기억해? 우리랑 함께 하자고 했던 거. 지금도 아닌 거야?”
바츠는 아델리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츠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지 여전히 고개를 들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껏해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차가운 아니 뜨거운 금속 벽면 밖에 없었는데도 그녀는 많은 것을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집중하고 있었다.
바츠는 그녀의 시선이 멀리 떠나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슬쩍 그녀의 가슴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약간의 미동밖에 없었지만, 옆에서 보고 있기 때문인지 그 윤관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왜? 궁금해?”
바츠는 되묻는 그녀의 말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고개를 다시 기계로 돌렸다. 그녀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틈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까랑거리는 마찰음을 내는 크랭크들이 더욱더 빨라진 것 같고, 내뿜어지는 수증기들이 더욱더 거칠게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기는 했지만 민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소리쳤다.
“궁금하지 않아! 그냥...그냥 물어본 거라고!”
“그냥...물어...본 거야?”
아델리나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츠는 그녀의 말 중 중간부분이 묘하게 작게 들렸다. 정확히는 들리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말해봐.”
아델리나가 부드러운 손길로 바츠의 턱을 잡아끌었다.
바츠는 자신의 얼굴이 아델리나와 마주보게 되자, 마구 꼬집힌 것처럼 여기저기가 따끔거렸다. 기계의 열기가 너무 뜨거운데다가 그녀의 체온까지 더해져, 얼굴이 녹아내릴 것만 같을 정도로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마티프의 무서운 얼굴을 마주했을 때처럼 악을 쓰지 않으면 정신을 잃을 것처럼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뭘! 뭘 말하라는 거야!”
“힘든 게 뭔지 말해보라고. 걱정하고 있는 것 있잖아.”
바츠는 아델리나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욱 진한 미소를 보여주며 대꾸했다. 마치 벨리타가 꼭 안아주며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별 거 아냐, 그냥...오늘 있었던 사고, 내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서 그래...버니가 가이즈카와 하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바츠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쳐야 한다고 머릿속에 메아리쳐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거짓말한 것을 고백하는 것처럼 아까 있었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녀가 남은 손까지 거들어 바츠의 양 볼을 감싸 쥐더니 몸도 정면으로 돌려세웠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모두가 잘못이지. 우리는 아예 그런 것조차도 몰랐는 걸? 너니까 그래도 조금이나마 눈치 챌 수 있었던 거야. 우린 완전히 바보였지. 검은 개는 어떻고. 이번 사고는 검은 개가 막아야 하는 일이었어.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지.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마.”
바츠는 그녀가 분명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많이 슬퍼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넌 뭔가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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