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각자의 길 -- > * 27화 *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처럼 한 것뿐이다. 그녀의 슬픈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그녀에게 이제는 머리까지 울리기 시작하는 심장소리를 들킬 것만 같아 관심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
“너도 힘든 게 있잖아. 그렇지?”
그녀를 곤혹스럽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처럼 자신도 뭔가를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슬픈 얼굴에는 이내 눈물이 그렁거렸다. 마치 바츠의 반복되는 목소리에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급격하게 차올랐다.
바츠는 자신의 볼을 감싸 쥐고 있던 그녀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참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졸린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리는 것만큼 매우 힘든 일이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건 본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물은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볼록한 광대를 타고 턱까지 단 번에 흘러내리는 눈물이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붉게 보였다.
순간 바츠는 터질 듯이 뛰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잊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그녀의 얼굴만 보였다. 온 몸이 떨리는 걸 보면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발목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손은 마구 저렸다.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연속된 모습에 여전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뜨거운 열기가 비쳐지는 그녀의 두 눈에 반짝이는 눈물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델리나!”
바츠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폐기물 처리 기계를 따라 저 밑으로 몸을 던지는 것 마냥 그녀를 향해 온 몸으로 달려들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의 몸이 밑으로 던져진 것처럼 허공에 붕 뜬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조금씩 진정될 무렵에야 품 안에서 칼날 같은 열기를 내뿜는 기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눈을 다시 뜨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눈을 뜨게 되면 심장이 그대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없었다. 여기서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머리를 살며시 움직여 보았다.
차가운 물기가 있는 보드라운 그녀의 한쪽 볼이 왼쪽 뺨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녀의 거친 손바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매끄러웠다. 눈을 감고 있어서인지 작은 솜털까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의 허락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뿌리쳐진 양 팔을 살며시 바츠의 허리에 감을 뿐이었다.
바츠는 그런 아델리나를 있는 힘껏 다시 끌어안았다. 지난번 벨리타가 자신을 위로할 때보다 몇 배는 더 세게 안았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완력차이는 전혀 없다. 단지 그녀가 비명을 지를 만큼 누군가가 꼭 안아주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아델리나는 정말 고통스러웠던 것일까? 바츠의 귓가에 기계의 소음을 뚫고 들어올 만큼 뚜렷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그건 기계가 그녀의 슬픔을 대부분 앗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울음소리는 처리장 바깥까지 퍼져나갔을 것이다.
바츠는 아델리나의 울음소리가 머질 때까지 한참동안 그대로 있어야만 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엄마는 별다른 기술이 없어. 상업 지구에 영업이 끝나기 직전 찾아가 청소를 하시거나 레벨4에 가서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실 뿐이지. 그들 말이야, 부자들. 물론 그런다고 배급표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엄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만 하시지. 아빠에게 사고라도 생기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엄마는 그 일들을 해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 내가 뭔가 하지 못한다면 우린 언젠가 이롤로 꼴이 되고 말거야.”
아델리나의 울음이 그쳤다. 그녀는 수줍은 얼굴로 바츠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때도 미소는 그대로였다.
아델리나가 지금처럼 평소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그 다음이었다.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번쩍 들고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기계를 바라보고 벽에 기대서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까지도 눈물의 얼굴이 남아 있다. 나름 열심히 닦아낸다고 했지만 그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부어오른 눈가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많이 진정되었는지 목소리에 울먹임은 전혀 없었다. 바츠의 시선을 느끼고는 민망해 하며 다시 얼룩을 지우려는 여유도 보였다. 애써 당당하게 굴고 있었지만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바츠는 아델리나를 위해 최대한 태연하려고 애를 썼다. 자신 역시 스스로의 행동에 부끄러웠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한 번쯤 참아볼 만했다. 그녀가 평소에 떼를 써 곤란하게 했던 것을 견뎌내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었다.
“난 포기할 수 없어. 절대 포기하지 않아.”
아델리나는 마치 자신에게만 처한 상황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바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레벨1 거주자라면 누구나 상황은 거의 비슷했다. 부모가 다 엔지니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집과 배급표의 차이는 기껏해야 30%더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어린 자녀를 둔 집이라면 불가능했다. 또, 그렇지 않은 집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아이만 아르크에 남겨두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었다. 그렇다고 자녀가 모두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배급표를 얻어서 생계를 잇는 건 둘째 문제였다. 아르크에서는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아르크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주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쳐서 능률이 떨어지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효율을 보이면 가차 없이 추방을 통보받았다. 그들에게 레벨1 거주자들은 일종에 투자였다. 아주 오래 전 기업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때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런데 엄마는 그걸 잘 모르나봐. 매일 같이 싫은 소리를 해. 내게 욕도 한다고.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거지?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 누가 낳으라고 했나? 자기가 낳은 거잖아? 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난 엄마를 위해서 헌터가 되려고 하는 거라고! 아빠와 엄마가 좀 더 편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던 거란 말이야!”
아델리나가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기계와 바츠의 얼굴과 바닥을 오가던 시선을 저 먼 곳으로 옮기며, 혼잣말에 분통을 터뜨리며 내뱉었다. 기계가 내뿜는 수증기만큼 뜨거운 분노가 느껴졌다.
“난 반드시 헌터가 될 거야. 아르크를 지키고 어쩌고저쩌고하는 그딴 말들은 모르겠어. 가족? 몰라. 내가 헌터가 되어서 엄마나 아빠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냥 기쁜 척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는 뭐가 되었든지 상관없어. 난 이 아르크를 떠나고 싶어. 바깥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어쩌면 내가 없는 것이 가족을 지키는 일일지도 몰라. 엄마는 날 정말 싫어해. 내가 아빠를 뺏었다고 생각하나 봐. 나 때문에 아빠가 밖에서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바츠는 작은 두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악무는 아델리나의 옆모습을 그냥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그녀가 되어보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들어주고 있는 것으로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마치 자신처럼 말이다.
바츠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아까의 사고에 대한 죄책감을 잊었다. 여전히 조금 꺼림칙하게 가슴 한 쪽에 남아있기는 했지만, 기분을 침울하게 만들 정도로 괴롭히지는 않았다. 아델리나도 자신처럼 기분이 좀 나아졌으면 했다.
“이런 내가 헌터로서 자격이 있을까? 헌터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잖아. 절대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면 안 되잖아.”
아델리나가 고개를 돌려 바츠를 바라보았다.
바츠는 자신을 향해 묻는 그녀에게 어깨를 토닥여 줘야 하는지 아니면 방금처럼 그냥 꼭 안아줘야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인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물음에 어떤 대답이 가장 좋은 것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답을 찾을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또, 또! 또, 슬퍼지는 구나? 걱정하지 마. 난 이제 괜찮으니까. 너도 괜찮은 거지? 이제 다 잊은 거지? 아까 일은 잊고, 내일 버니가 학교에 오면 위로하려고 애쓰지 마. 그게 오히려 더 힘들 게 할 수도 있어. 그건 싫지? 그러면 내 말대로 해. 가끔은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좋아. 조금 전에 네가 나를 껴안은 것처럼.”
바츠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가에는 아니라는 말이 나오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입술과 혀는 굳어버렸는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됐어! 말 하지 않아도 다 알아. 벨리타에게는 비밀로 할게.”
아델리나는 바츠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이고는 몸을 재빨리 돌려 먼저 자리를 떠났다.
바츠는 그녀가 그렇게 빠른 걸음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가 부리나케 달려갔다면 그때는 마음이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그녀가 이곳을 조용히 먼저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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