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각자의 길 -- > * 28화 *
다음날 버니에투와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아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역시나 오지 않은 가이즈카에 대해서 지훈과 테라치가 잘 알고 있는 것과는 좀 달랐다. 다른 아이들도 그에 대한 사정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버니에투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크게 관심도 없어 보였고 오히려 바츠에게 물을 정도였다. 이전까지 가까이 어울렸던 것이 바츠와 테라치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서운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상처는 그렇게 심하지 않대. 다행히 프레이가 겁에 질린 상태라서 제대로 물지 못한 것 같다고 하더라. 하지만 얼굴에 난 상처는 흉터가 지고 말 거래. 못 생긴 얼굴이니까 상관은 없겠지.”
지훈은 가이즈카에 대해 흉을 보는 것처럼 말했지만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버니에투와에 대해 물었을 때 글쎄라는 말로 고개만 갸웃거릴 때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버니에투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건 테라치뿐이었다. 그는 바츠를 보자마자 버니에투와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어제 그와 헤어질 때까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잘했다고 다독여 주었다. 아델리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걱정해주어서 고마웠다는 말에 조금 의아해했을 뿐이다.
바츠는 버니에투와에 대해서 수업이 끝나고 마티프에게 물어야 했다. 버니에투와에 대해 그나마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 상당히 불쾌해 보였다. 아마도 아델리나의 말대로 그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버니에투와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기분은 언짢아 보였다. 오늘 수업 도중 몇 번이나 안전을 강조하고 실습 중 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가차 없이 처벌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던 것을 보면 틀림없었다.
“어차피 퇴학당할 녀석이다. 출석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편해지겠지.”
바츠는 그의 대답에 자신이 다 놀라야만 했다. 그라면 자신의 수업 시간에 졸았던 것만으로도 퇴학을 시킬 정도이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기 때문이다. 버니에투와를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의 집에는 자주 가봤기 때문에 찾아 가는 것쯤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테라치와 아델리나도 함께 가기로 했다. 하루 종일 그에 대한 걱정으로 신음하고 있던 바츠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모양인지, 바츠가 마티프를 뒤로 하고 가장 늦게 교실을 빠져나오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왔다.
바츠는 둘 모두에게 너무도 고마웠지만 어제 일을 떠올리고는, 아델리나에게 괜찮으니 테라치하고만 가겠다고 했다가 괜한 곤욕을 치렀다. 그녀가 그 자리에서 허공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짜증을 낸 것이다. 다행히도 학교에 아이들은 이미 대부분 돌아갔던 터라 이목이 집중되지는 않았지만, 아직 교실에 남아있던 마티프가 놀란 눈으로 달려 나왔었다. 아델리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전부 잊은 모양이었다.
“버니가 걱정돼서 찾아온 거지? 고맙구나.”
버니에투와의 집에 가자 평소에는 상업 지구로 허드렛일을 하러 가기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우고는 했던 그의 어머니가 맞아주었다. 이미 어제 사고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다. 가이즈카와 그의 부모를 직접 찾아가 사과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으로 부족한지 바츠 일행에게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전혀 상관없는 바츠 일행에게까지 죄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가이즈카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매우 컸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지나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사과부터 할 것처럼 보였다.
“어제부터 방에서 나오지를 않는 구나. 나하고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 해. 부탁할게.”
그녀는 버니에투와의 방을 두드려 바츠 일행이 온 것을 알리고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분명 가이즈카의 부모만큼이나 가슴이 아플 테지만 자신의 감정을 노련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바츠는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버니에투와의 방문을 열었다.
낡은 양철 문이 요란스럽게 바츠 일행의 입장을 알렸다. 군데군데 부식되고 녹이 슬어 버니에투와 정도의 체구가 발로 걷어차면 통째로 뜯겨져 나갈 것처럼 보였다.
“버니, 괜찮아?”
“그냥 날 내버려둬. 난 그냥 멍청이니까.”
버니에투와는 책상과 침대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양손으로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고, 그 앞에는 편지 한 통과 처음 보는 목걸이가 놓여있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는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근데 이건 뭐야?”
바츠는 그에게 달려가서 당장이라도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테라치의 제지로 그럴 수 없었다. 막 앞으로 나서려던 찰나 그가 손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먼저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니, 그 앞에 놓여 있던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목걸이는 은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과 약자(略字)가 새겨져 있었다.
“이리 내!”
버니에투와는 테라치의 손에서 그 목걸이를 거칠게 빼앗아갔다. 그리고는 발 앞에 있던 편지와 함께 자신의 품안에서 양팔로 감싸 안았다. 꼭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아보는 엄마들 같았다.
테라치는 그런 그를 보고는 바츠와 아델리나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 그만 돌아가자는 신호였다. 하지만 바츠는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태라면 버니에투와는 분명 내일도 결석을 할 테고, 그렇게 되면 퇴학은 불 보듯 빤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버니,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사고였다고! 네가 말했잖아,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네가 이러고 있으면, 그 말은 거짓이 되는 거 아니야?”
바츠는 그에게 외쳤다. 그가 들어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그가 힘을 낼 수 있도록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릎 사이에 편지와 목걸이 그리고 고개를 함께 파묻고는 미동도 없었다. 지켜보던 아델리나가 답답한 마음에 달려가 그의 팔을 잡아끌어도 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다.
“너 이제 보니 생각보다 형편없구나. 난 네가 덩치도 크고 이제는 아이들도 안 괴롭히고 해서 멋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네? 네가 바츠랑 테라치랑 어울리기 전에 우리 몇 번 함께 돌아간 적 있었지? 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해? 우리 열심히 해서 꼭 헌터 되기로 했잖아. 너 그때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내가 같이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헌터가 돼서 나 지켜줄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거 다 거짓말이야?”
아델리나의 말에 버니에투와가 처음으로 반응을 했다.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격한 반응은 아니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눈만 내놓고는, 몇 번이나 바츠와 테라치의 눈치를 살피며 아델리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바츠는 버니에투와의 이런 모습을 보자, 지난 번 훈련장에서 홀로 연습하고 있던 아델리나를 데리러 갔다가 그녀에게 골탕을 먹고 돌아왔던 그 날이 떠올랐다. 정확히 그저께 일이었다. 함께 있던 테라치와 버니에투와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버니에투와가 크게 놀란 눈으로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나중에야 함께 화를 내주었었다. 테라치는 평소에도 감정적으로 굴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됐었지만,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오히려 그녀를 옹호하던 그의 모습은 충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화를 내며 몰아붙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끝까지 그녀의 편을 들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면 빨리 일어나. 왜 이러고 있어? 가이즈카가 그랬어. 자기는 괜찮으니까 너한테 자책하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그렇지?”
버니에투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젓자, 아델리나가 한 발 물러나 있던 테라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테라치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해. 너 이러고 있는 모습 정말 바보 같아. 계속 보고 있다가는 나 너한테 실망할 것 같아.”
아델리나가 다시 고개를 돌려 버니에투와에게 정말로 차갑게 이야기했다. 항상 밝은 얼굴로 다니고 가끔 심한 짜증을 부리는 그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어지간한 남자아이들보다도 쾌활하고 목소리가 큰 것이 그녀였다.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어제 폐기물 처리장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바츠는 어제의 아델리나가 너무 예뻐 보였다면 오늘의 아델리나는 너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냉담한 모습이 그에게는 뼛속 깊숙이까지 시렸던 모양이었다. 버니에투와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다시 무릎 사이로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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