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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감염-30화 (30/268)

< --   2. 각자의 길   -- >         * 30화 *

바츠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벌써부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내일 무서운 얼굴로 윽박지르는 마티프는 없고, 나름 다정하게 조언을 해줄 때보다도 더 상냥한 태도로 아무런 문제 삼지 않는 친절한 마티프만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그가 소리를 지른다하더라도, 어려움 없이 해야 할 말을 제대로 전달해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었다. 마티프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버니에투와를 보자마자 폐기물 처리장의 기계보다 훨씬 뜨거운 입김으로 호통을 쳤다.

“이 형편없는 녀석! 감히 멋대로 내 수업에 빠져?”

그가 처음부터 분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바츠와 테라치, 아델리나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제의 바람대로 상냥했다. 아니 상냥한 편이었다. 최소한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바츠는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학교로 갔다. 테라치는 물론이고 아델리나와 버니에투와가 함께였다. 바로 교실로 가지 않고 복도를 따라 구석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로 갔는데, 그는 의아한 얼굴을 했었다. 무뚝뚝했지만 미간에는 약간의 걱정도 묻어났다. 하지만 뒤이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버니에투와를 확인하고는 태도를 정반대로 바꿨다. 그의 분노가 굶주린 헤러티커처럼 날아왔다. 순간 달아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는 정말 화가나 있었다.

바츠는 고작 하루 전에 느꼈던 그 긍정적인 기분이 그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그는 크루엘라보다 더 잔인했고, 공격적이었다.

“기회를 주세요. 버니도 크게 놀랐었다고요.”

아델리나가 그의 책상 앞으로 나아가 말하자, 그가 자리에서 두 눈을 부릅뜬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댔는데, 둘 사이에 책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이마는 아델리나의 이마와 닿기 직전까지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와서 기회를 달라고? 작년이었다면 저 녀석은 이미 벌써 퇴학이었을 거다! 그리고 이런 너도 정학을 당했을 테지! 어디 뻔뻔하게 이곳에 온단 말이냐! 놀랐다고? 놀라? 그 괴물 같은 덩치로 잘도 놀랐겠군! 어디서 감히 나를 속이려 들어!”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버니에투와의 두 눈이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진 가이즈카를 바라볼 때처럼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바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호통은 언제 들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어제 그렇게 마음을 다 잡고도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을 울리기 시작하는 자신의 심장소리에, 뻣뻣한 자세로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델리나는 달랐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둘의 이마가 결국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녀가 마티프의 코를 물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뒤꿈치를 치켜들며 그에게 맞선 것이다.

“버니는 괴물이 아니에요!”

“지금 내게 대드는 것이냐?”

아델리나가 그를 향해 앙칼지게 소리치자, 마티프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더 침착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의 침착한 모습은 흥분으로 달아오른 모습보다 더욱 무서웠다. 얼굴에는 더 이상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고, 목소리는 침묵으로 인해 무거워진 공기처럼 바닥을 타고 뒷덜미를 움켜쥐는 것 같았다.

바츠는 그 모습에 마른 침을 삼키며 두 다리가 저리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지금이라도 달아난다면 무사할 것 같았지만, 벌써부터 기운이 없는 다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문 앞의 복도나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만에 하나 줄행랑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였다. 그렇게 되면 버니에투와는 결국 퇴학이나 마찬가지였다. 달아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앞서 어제도 느꼈던 것처럼, 토라진 아델리나의 감정과는 달랐다.

그런데 그때,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던 테라치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매우 의욕적이었다.

“마티프 선생님, 그건 사실이에요. 버니는 정말 놀랐었다고요. 놀라서 밥도 먹지 못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갔을 때는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죠. 죄책감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고요. 누구나 그렇잖아요. 청소를 하다가 아버지께서 아끼시던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죠. 코피카(копійка)라고 불리는 금속이었는데, 지상에 나가셨다가 가져오신 거였어요. 물론 아르크의 소지 허가는 받았어요. 오염물질은 없었죠. 어쨌든 전 책상에 있던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걸레질을 하는 바람에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엄지손톱 크기의 납작한 원형이었는데 어디론가 굴러가 버려서 찾지 못했죠.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어요.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었죠. 아버지께서 그것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사고가 난 것은 현실이었고 전 그 죄책감을 견뎌내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돌아오신 아버지가 별 거 아니라고 위로해주시기 전까지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버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위로가 필요했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니는 괴물이 아니라는 거죠.”

그는 마치 자신이 마티프라도 된 것처럼 막힘없이 능숙하게 말했다. 수업을 하는 동안 일방적으로 설명을 늘어놓는 그의 방식과 쏙 닮아있었다.

바츠는 그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가 위축되거나 지친 얼굴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이미 어른 같았다.

“맞아요! 버니는 괴물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일은 사고였다고요!”

아델리나가 테라치에게서 용기를 얻었는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기는 했지만, 결코 겁에 질려 긴장감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마티프에게 잘 전달했다.

마티프는 상체를 일으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에 당황한 기색은 전혀 없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그의 두 눈이 검은 얼굴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난데없이 바츠에게로 날아왔다. 꼭 너는 할 말이 없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바츠는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의 차례임을 인지했다.

“버니가 다시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버니에게는 선생님이 필요해요.”

바츠는 조금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러자 마티프가 크게 숨을 한 차례 들이켜고는 졸린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그렇게 잠든 사람처럼 한참동안 미동도 않다가, 헛기침을 통해 잠에서 깨어나며 입을 열었다.

“좋다. 특별히 기회를 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 전에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잘 듣거라. 더 이상 멋대로 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실습이 아니라 기본적인 수업시간에도 말이다. 주의를 주는 건 이제 없다는 말이야. 교칙을 어기고 행실이 바르지 않으면 정학은 물론이고 퇴학이 결정될 뿐이다. 이건 단순히 너희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야. 너희 중에는 헌터가 되어서 지상으로 가게 될 녀석도 있을 텐데, 그곳은 혼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아느냐? 거긴 법도 규칙도 없어. 아무것도 없단 말이다. 그런 곳에 지금 정신상태로 가게 되면 너희는 아르크에 대한 의무감은 물론이고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무기력함이나 회의감에 전염되고 만단 말이다. 그건 크루엘라만큼 무서운 것이다. 이곳에서 배우는 건 단순한 학습이 아니다. 너희가 그곳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견딜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인 것이야.”

바츠는 마티프의 당부가 기분을 조금 묘하게 만들었지만, 성공적인 결과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버니에투와는 오늘부터 다시 자신의 자리에서 그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델리나도 기뻐했다. 그녀는 헌터 놀이에서 승리한 것만큼이나 좋아했다. 뒷머리를 헝클고 달아나도 고개를 돌려 째려볼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테라치는 조금 달랐다. 버니에투와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고, 바츠와 아델리나에게도 잘했다고 칭찬의 목소리를 냈지만 얼굴이 썩 밝지는 않았다. 코피카를 오늘 잃어버린 사람처럼 조금 심각해보였다. 바츠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던 마티프의 당부로 인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았다. 그가 조금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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