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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감염-35화 (35/268)

< --   3. 만남   -- >         * 35화 *

아르크의 엘리베이터는 각 층으로 갈 수 있는 통로 바로 옆에 있다. 미사훈련소는 가장 구석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조금 거리가 있었다. 우선 각종 훈련장이 위치해 있는 3-2 구역을 지나 일반학교로 가는 통로를 따라가야 한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훈련장을 가로질러야 하는 것은 필수다. 그리고 일반학교가 위치한 3-1 구역에 진입하기 직전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아야 하는데, 문제는 가로지르게 되는 훈련장이었다.

3-1 구역에는 일반학교와 더불어 기술학교 그리고 군인이 되기 전 가게 되는 군인학교가 있다. 그리고 군인학교의 학생들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훈련장을 이용할 수 있는데, 대부분이 20살 넘은 어른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로인해 훈련장에는 그 수가 많지 않더라도 그들이 항시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사격장에는 그들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데 오늘도 다르지 않다. 남녀 3명이 탄창이 없는 5.56mm 소총을 견착한 상태로 타깃을 향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실 사격 시 반동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훈련의 일환이었다.

그들의 눈에 띈다고 사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츠 일행이 누구인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기껏해야 옷에 새겨진 페인팅으로 레벨1 아이들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에 훈련장을, 그것도 사격장을 가로지르는 레벨1 아이들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점심시간에 사격장을 가로지를 만큼 다급한 일로 레벨1 아이들이 어디론가 향하는 경우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 아이들끼리 말이다.

바츠는 자신의 발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는 그들의 시선이 왠지 신경 쓰였다. 그들이 경비대에 신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불안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빠, 빨리 해봐!”

아델리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츠를 재촉했다. 하지만 숨을 몰아쉬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바츠는 물론이고 모두가 헐떡거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테라치만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 너는 왜 온 거야?”

지훈이 그 와중에도 못마땅한 눈으로 가장 뒤에 있던 가이즈카를 바라봤다. 가이즈카는 콧방귀를 뀌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바츠는 그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서두르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엘리베이터는 형형색색의 윤기가 흐르는 금속 문에 의해 가로 막혀 있었다. 그 오른편으로 녹색 작은 화면이 있었데, 그곳에서 조작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바츠는 고민 없이 마티프의 PMP가 채워진 왼쪽 손목을 화면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경쾌한 단음의 알림음이 울리더니, 이내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는 바람소리가 들여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그 소리를 통해 엘리베이터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자!”

바람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눈앞에 보이던 금속 문이 오래돼 녹슨 양철문의 녹 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오는 것처럼, 위에서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바닥까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라진 차례대로 다시 찾아 가져다놓는다면, 퍼즐처럼 조각 맞추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레벨5로 이동하도록 조작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테라치가 자신과 가까이에 있던 계기판의 버튼 중, 레벨5가 표시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천천히 사라졌던 금속 문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짠!’하고 단번에 생겨났다. 뭔가 빠르게 지나는 것처럼 바람소리가 일긴 했지만, 워낙 순식간이라 눈으로 쫓는 것이 불가능했다. 바닥에서부터 다시 생겨났을 거라고 추측만 가능할 뿐이었다.

바츠는 그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탄성이 나왔다. 물론 다른 아이들의 입에서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테라치만 여전히 침착했다.

“손 번쩍 들어!”

바츠는 엘리베이터가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 정말로 사령관을 직접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마구 설렜다.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로 고민하는데 온 정신이 팔렸을 정도다. 하지만 바츠의 그 행복한 바람은 거기까지였다. 바츠는 엘리베이터를 내려서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바로 지금 눈앞에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군인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츠가 레벨5에 발을 들여놓기 전, 그러니까 엘리베이터가 레벨5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는 동시에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조금의 자비도 없이 총구를 겨누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을 먹고 경직된 바츠의 일행을 그 자리에서 전부 체포해 경비대로 끌고 왔다. 모두가 ‘그’ 때문이었다.

‘그’는 사격장에서 스쳐 지났던 ‘그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들은 예상대로 바츠 일행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단지 처음 보는 상황에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어리석게도 엘리베이터가 도중에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테라치의 조작으로 레벨5로 직행하던 엘리베이터는 레벨4에서 한 번 멈췄다. 그리고 한 사내가 올라탔는데, 그는 양쪽 팔뚝에 13개씩 파란색 줄이 나있는 하얀색 방호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 눈에도 연구원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처음 바츠 일행을 보았을 때는 조금 의아해했으나, 바츠가 손목에 두르고 있던 PMP를 발견하고는 의심을 거두는 듯 했다. 레벨4에 사는 아이들은 심심치 않게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츠 일행이 입고 있던 옷 위에 새겨진 페인팅 역시 놓치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바츠 일행이 안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빠져나가더니,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비상벨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은 바츠 일행이 내리기도 전에 빠르게 다시 닫혔고, 그대로 안에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어떤 버튼을 눌러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밖이 소란스러워졌고, 문이 다시 열렸을 때는 총구를 바츠 일행을 향해 겨누고 있는 군인 셋을 볼 수 있었다.

“똑바로 손들지 못해!”

바츠는 꿇어앉은 무릎이 아파왔지만 귀에 붙이고 번쩍 들고 있는 양팔은 더욱더 아팠다. 그나마 같이 온 친구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나란히 벽에 등을 대고 꿇어앉아,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위안이 될 뿐이었다. 혼자였다면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맞은편에 삐딱하게 앉아있는 군인이 조금만 팔을 내려도 계속해서 불호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군인들이 저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벌을 서고 있는 바츠 일행을 감시했다. 가끔 코를 파기도 하고, 그 손으로 이를 쑤시기도 하면서 딴 짓을 했지만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바츠는 옆에서 신음소리를 내는 지훈을 어깨로 살짝 밀쳤다. 그가 괜한 소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곳에 올 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소리를 해가지고...”

“뭐라고? 여기 오자고 한 건 너였어!”

지훈이 바츠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크게 반발했다. 지켜보고 있던 군인이 소리를 질러 진정시키지 않았더라면, 바츠에게 박치기라도 할 것처럼 격렬했다. 바츠는 군인의 눈치를 살피며 지훈을 향해 꿍얼거렸다.

“그래 나였지. 하지만 동의를 한 건 너희들이었잖아. 가장 먼저 테라치가 동의했고...”

“그만해. 어차피 우린 이렇게 되었을 거야. 생각해 보라고. 우리가 레벨5에서 사령관을 만났다하더라도 제 시간에 교실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아마 사령관이 어디에 있는지, 찾다가 수배되고 말았을 걸?”

테라치는 이런 상황에서도 굉장히 냉정했다. 마치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정면을 바라본 채로 미동도 없이 입만 움직였다.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마티프가 왔을 때까지도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놈들!”

마티프는 경비대에 오자마자 나란히 벌을 서고 있는 바츠 일행에게 차례로 꿀밤을 먹였다. 그리고는 군인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군인들은 나름대로 정중했던 마티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조금 퉁명스러운 반응으로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아마도 몸에 밴 마티프의 당당한 기색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사과를 먼저 원했던 것 같았다.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한 줄 아느냐? 특히 너희 넷! 내가 분명히 말했지. 말썽피우지 말라고.”

마티프는 그들이 눈을 흘기며 나가자, 그들의 뒷덜미를 낚아채 한바탕 호통을 칠 것처럼 한쪽 입술을 씰룩거렸다. 마티프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는 용케 자신을 진정시키며 불필요한 분란을 피했다. 대신 그 스트레스까지 모두 바츠 일행에게로 쏟아냈다. 그의 목소리가 폐기물 처리장의 크랭크처럼 그르릉거렸다.

바츠는 지훈이 했던 말을 그대로 그에게 늘어놓았다. 그러면 왠지 이해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그의 손아귀에 턱을 내주는 것이었다. 그가 유일한 손으로 바츠의 턱을 낚아채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대며 소리쳤다.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디에 있느냐! 겨우 그런 이유로 왔단 말이야? 너희들이 한 짓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고나 있어? 네 놈들이 어른이었다면 체포로만 끝나지 않았을 거다! 넌 대체 왜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거냐! 대체 왜 그런 거야!”

물론 지훈에게도 똑같이 굴었다. 하지만 지훈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말을 듣고는 두 발짝 물러나며 입을 닫았다.

“...놀림 받는 게 싫어요. 정말 지긋지긋해. 이걸 떼어버리고 싶다고요. 왜 우리는 놀림거리가 되어야 하는 거죠?”

지훈이 번쩍 들고 있던 손을 멋대로 내리더니, 자신의 왼쪽 어깨에 선명하게 새겨진 레벨1을 나타내는 페인팅을 손으로 마구 잡아 뜯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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