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 지상으로 -- > * 51화 *
집사가 되기 위한 과정은 집을 떠나는 것부터 시작이 되었다.
바츠는 케일리의 배웅을 받으며 미사훈련소로 향했다. 테라치도 함께였다. 셋은 나란히 걷는 동안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자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처럼 입술이 눌러 붙었기 때문이었다. 미사훈련소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걷기만 했다.
“건강해야 돼...조심하고...”
미사훈련소 입구에 도착하자, 케일리가 오늘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눈물로 잠긴 목소리였다. 함께 온 것은 셋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둘 뿐이었다.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을 두고 안쪽으로 들어선 바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보이지 않는 경계가 그녀의 발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높은 벽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곳에만 있는 벽은 아니다. 아르크 곳곳에 셀 수 없을 만큼 존재한다. 가끔은 빅애스보다 더 단단하기도 하고, 마티프보다 더 무섭기도 하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모두 같은 대답만 듣게 될 것이다.
바츠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 안쓰러웠다. 오랫동안 다물고 있던 입술처럼 찰싹 달라붙은 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과 다르게 안쪽으로 차츰 옮겨지는 걸음이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떼어놓지 않았더라면 내일까지 계속 머물러 있고 싶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잘 할 거야. 너와 케일리 모두.”
바츠는 케일리와 방금 전에 힘든 이별을 경험하고 또 한 번의 이별을 마주해야 했다. 그녀를 등지고 얼마 걷지 않았을 때였다. 교실이 늘어선 복도를 앞두고, 이번에는 테라치와 작별해야 했다.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케일리와 너무 대조적이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영원한 이별을 앞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딱딱했다. 마지못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분명 말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그대로 부드럽고 친절했지만, 그의 태도가 무관심한 사람처럼 성의 없는 기운을 비쳤다. 그에게 있어 이별은 그저 헤어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테라치, 테라치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는 거야? 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야?”
그는 바츠의 질문에 때마침 머리 위를 지나는 빌리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넌 저게 고장이 나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고도 울 수 있겠어?”
바츠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빌리캄이 고장이 나는 것과 자신과의 이별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빌리캄이 고장이 나면 다시 고쳐지는 것처럼, 자신과의 이별도 결국 만남으로 다시 고쳐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바츠는 그를 끌어안았다. 작년만 하더라도 그보다 한 뼘이 작았었는데, 이제는 그의 볼에 자신의 볼을 가져다댈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아델리나와 벨리타 정도는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이제야 그녀들을 떠올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미처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는 섭섭함도 있었다. 버니에투와도 떠올랐다. 무려 1년이나 떨어져 있어야 할 텐데 이렇게 그냥 가야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가 아델리나와 벨리타에게 대신 인사를 전해줄게. 버니에게도 말이야.”
테라치가 바츠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냈다. 바츠는 그를 다시 한 번 안았다. 괜히 코끝이 가려웠지만 애써 담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처럼 태연하게 굴고 싶었다. 테라치가 눈치 채고 장난스런 표정으로 비웃었지만 상관없다. 그도 분명 슬퍼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발꿈치만 바라보고 따라 오거라.”
바츠는 테라치와 헤어진 뒤, 마티프를 만났다. 그는 별다른 언급 없이 자신을 따라오라고만 말했다. 그리고는 가뜩이나 심란한 바츠에게 위로나 격려대신 굳은 얼굴로 주의를 주었다.
“그곳에서 네 시선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는 불청객이라는 말이다.”
마티프가 바츠를 데려간 곳은 연구시설이 있는 5-1구역이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플랫폼 입구에 설치된 것과 같은 샤워장을 무려 세 번이나 지나쳐야 했다. 심지어 그것을 다 통과하고도 붉은 통로를 한 번 더 지나며 알 수 없는 검사를 받아야 했다. 프레이를 상대로 실습을 하기 위해 왔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입구와 출구에 소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이 여럿 있을 정도로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
그들은 바츠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자신들의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쭉 지켜봤다. 바츠가 마티프와 함께 코너를 돌아 제법 거리가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그들끼리 말을 주고받으며 수근 거렸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수근 거리는 도중에도 한 번씩 기분 나쁜 시선으로 힐끔거리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바츠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마티프에게 괜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는 무서운 목소리로 또 한 번 주의를 주었다.
연구시설에 들어서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유리벽들이었다. 내부는 단단한 금속 벽의 역할을 유리벽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하얀색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각자의 연구실에서, 각종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실험관을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도 있었고, 현미경에서 얼굴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시험관에 담긴 액체에 반복적으로 주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지? 네 시선은 내 발꿈치에 있어야 할 텐데?”
바츠는 다시 반복되는 마티프의 불호령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절로 가슴이 졸여졌다. 그의 따끔한 말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지적을 받고나니 불현듯 밀려드는 주변에 대한 경이감이 마음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반대로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가 이토록 조심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을 찾기에는 마티프의 걸음이 너무 빨랐다.
“여기다.”
바츠가 도착한 곳은 5-1구역에서도 가장 외곽에 위치한 곳이었다. 유리벽으로 이루어진 연구시설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그곳을 지나 다시 한 번 붉은 통로를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매끈한 금속 벽이 계속 이어졌다. 아르크의 다른 통로들과 똑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굳게 닫힌 해치(Hatch)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빅애스를 축소해놓은 것처럼 생김새가 비슷했지만 묘한 차이가 있었다. 빅애스가 거대한 금속덩어리에 사람의 관절을 닮은 여러 개의 금속 관절이 연결되어 있다면, 눈앞의 해치는 같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지만 사람의 눈처럼 위에서 아래로 개폐되는 문이었다.
“이곳이 네가 머물 곳이다.”
마티프가 왼쪽 계기판 화면에 자신의 PMP를 가져다댔다. 그러자 금속 문이 침을 뱉을 때 나는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열렸다.
바츠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른 명은 거뜬히 누울 수 있었고 천장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방이었다. 또한 바닥과 벽은 물론이고 천장까지 온통 하얀색이었는데, 한쪽 구석에 간이침대가 있는 것이 전부였다. 작은 테이블이나 의자조차 없었다. 반대쪽 끄트머리에 좁은 화장실이 없었다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맞는지 의심이 될 만큼 썰렁하고 황량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레벨1 거주지 중 그 어느 곳보다도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곳곳을 뒤덮고 있던 붉은 녹도 없었고, 폐기물 처리장의 역한 냄새도 없었다. 모든 것이 새것처럼 광택이 보일 정도로 깔끔했다.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요?”
바츠는 방을 쭉 둘러보고는 마티프에게 물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침대에 누워 자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은 곳에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몸을 돌려 세우는 순간 문이 닫히며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닫힌 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방안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은 덜컥 겁이 날 정도로 불안했다. 마티프는 함께 들어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
바츠는 침착하기 위해 노력하며 문으로 바짝 다가섰다. 바깥에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삭막한 방안에서나 맴돌았다.
“그곳은 네가 1년 동안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훈련을 받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지.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마티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방안에 울려 퍼졌다. 정확히 어디에서부터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워낙 공명현상이 심해 사방에서 날아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구석구석을 아무리 살펴도 특별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온통 새하얄 뿐이었다.
바츠는 허공에 대고 외쳤다.
“제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죠? 여긴 아무것도 없다고요!”
“바로 그거다. 음식은 매일 2회 부족하지 않게 공급될 것이다. 넌 그 음식을 먹으며 연명하기만 하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마티프의 대답은 즉각적이었고, 신속하면서도 명료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그 이상은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이후의 외침에는 메아리만 있었다. 다시 문에 다가서서 귀를 가져다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밖은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외부로부터의 소리가 완전 차단된 곳인 듯 했다. 지금쯤은 마티프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았다. 버림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 이것도 집사가 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지 않았더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문을 걷어차야 했을지도 모른다.
바츠는 다시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방안은 혼자서 배운 검술의 모든 동작을 마음껏 해봐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하지만 이토록 넓은 공간인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갑갑했다. 코와 입이 틀어 막힌 것 같아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다. 심장도 미친 듯이 뛰었다. 가슴을 부여잡아야 할 정도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온 몸을 짓눌렀다.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알 수 없는 건 정말 큰 문제였다. 누군가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고, 함께 해줄 사람도 없었다. 완전히 혼자가 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되도록 침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얌전한 사람도 신경질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인데, 자칫 잘못하면 이성을 잃게 만들 수도 있었다.
“제길!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바츠는 오늘도 이불을 걷어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라는 말이 적합한지 의심이 될 정도다. 이곳에 온 뒤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낮과 밤의 개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안은 항상 새하얗게 비추고 있는 밝은 조명으로 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 조명이 조절되며 낮과 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던 바깥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곳에서는 그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애써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었다. 겨우 잠이 들어도 잠시 잠들었다가 깼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피로감이 그대로였다. 오히려 피로가 늘어갔다. 나중에는 잠이 들었던 것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를 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쉽게 잠에 드는 건 점점 더 힘들어졌다. 2, 3일을 뒤척이다가 쓰러지듯 잠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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