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61화 (61/268)

< --   5. 전진기지   -- >         * 61화 *

“여기서 부터가 일리트시 시(市)입니다.”

시장이 다시 입을 연 것은 그가 앞선 걸음을 멈추면서였다. 그가 선 곳부터 바닥이 조금 달랐다.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이 자주 오간 탓인지 다른 곳에 비해서 좀 더 정리가 된 것처럼 보였다. 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길을 사이에 두고 크고 작은 집들이 마주본 채 죽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멀쩡한 것이 없었다. 어느 것은 완전히 무너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쓰레기더미가 되어있었고, 몇몇은 지난번 멀리서 보았던 것처럼 뼈대만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가끔 쓸 만한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았다.

“저기, 저거 보이십니까? 저게 자동차라는 것입니다. 비클레타의 원형이라고 하더군요. 저 둥그스름한 것들 말입니다. 웃기죠? 사실 상상이 안 됩니다. 저것을 타고 돌아다녔다니. 지금은 아예 쓸 수 없다고 하더군요. 부품들을 전부 빼내서 비클레타에 쓰였다고 하니까요. 뭐, 일부는 강도들이 가져가거나 떠돌이들이 가져갔을지도 모르죠.”

바츠는 길 가장자리나 집과 집 사이에 둥근 물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들만큼 낡아서 그 형체만 겨우 보존하고 있었는데, 완전한 원형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는 사각에 가까웠고, 끄트머리가 곡선으로 마감되어있어서 둥그스름하게 보였다. 슬쩍 둘러보니 안쪽에 사람이 앉을 수 있을만한 공간도 보였다. 크게 낯설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꽤 신기했다. 비클레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고, 조종수가 따로 없더라도 작동을 했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안에 타면 안전띠라는 것을 착용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탄력이 있는 줄 같은 것으로, 탑승자의 몸을 좌석에 고정함으로써 사고가 났을 시 탑승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다. 아주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를 구속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그 사이 시장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직선으로 난 길을 따라 Y자로 엇갈린 길까지였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양쪽 모두 이전과는 다르게 건물이 눈에 띌 정도로 증가했는데, 왼쪽은 시계(視界)가 완전히 틀어 막힐 정도로 촘촘했다. 괜히 숨이 막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중간 중간 작은 샛길도 보였다. 깨끗한 유리에 흘러내린 물방울의 흔적처럼 여기저기로 뻗혀있었다. 건물들은 그 길을 따라서도 줄을 잇고 있었다. 바람이 지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가득했다. 시장은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물 앞에 걸음을 세웠다. 앞서 보았던 건물 서너 개를 나란히 붙여놓은 것만큼 거대한 건물이었다. 시장이 그 건물 앞에서 손을 뒤집어, 건물을 들어 올리려는 것 같은 행동을 취했다.

“다 왔습니다. 여기입니다.”

시장의 손에 올려 진 건물은 가정집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공간이었다. 반 이상 소실된 지붕 사이로 굉장히 높은 천장이 보였고, 무너진 벽 사이로는 집기 대신 기존의 자재로 보이는 건축 폐기물만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농산물을 보관하던 창고였다고 합니다. 우습죠? 보관을 할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이 넘쳤다니 말이에요. 거짓말 같지는 않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창고를 가득 채우려면 그 양이 어마어마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전 믿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들었거든요. 과거에는 마실 물이 넘쳐나고 매일 한 번씩 목욕을 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두 번도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죠. 또, 음식은 너무 많아, 먹고 나서 소화를 돕기 위한 별도의 약을 먹기까지 했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마저도 다 먹지 못해 남겨진 음식물은 하수구에 넘쳐났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주장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거예요. 그것도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죽은 사람에게 말이에요. 노인들의 옛날이야기 같은 거죠. 웃긴 건 그 노인들도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을 거라는 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게 벌써 200년도 훨씬 넘었으니까요. 그때를 살던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어요. 그들이 누리던 혜택과 함께 전부 사라졌죠. 어쩌면 그랬던 시절이 없었을 지도 모르죠.”

시장은 문이 아닌 무너진 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며 길게 말을 늘어놓았다. 이 말들을 하기위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였다.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것을 전부 토해내고 있었다. 이전에 이어진 오랜 침묵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바츠는 그 뒤를 따르며 잠자코 듣기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을 하면 화를 내죠. 대부분 말이 많다고 짜증을 부리지만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이 통째로 흔들리는 걸, 참을 수 없는 것이겠죠. 일종에 희망 같은 것일 테니 말이죠. 전에 가능했다면 언젠가 우리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런 거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서 아르크의 ‘스티그마타’를 애타게 기다리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미 우리 앞에 다른 사람들이 그 선택을 받았으니까요. 말하고 나니 웃기군요. 결국 저도 그것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이런 소리나 하고 있으니 말이죠. 인간은 다 그런 것 같아요. 항상 모순되게 행동하죠. 이기적인 겁니다.”

시장이 한쪽 벽으로 가서 금속으로 된 작은 문을 열었다. 분전반으로 보이는 패널이었는데, 그 안에는 두 개의 레버와 대여섯 개의 스위치가 나란히 있었다. 시장은 그 중에서 오른쪽 맨 위에 있는 레버를 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바닥이 덜덜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어깨를 부딪친 것처럼 온 몸이 흔들릴 정도로 진동이 끊이지 않았다. 곧이어 얇은 나무판자를 마구 두드리는 소리도 이어졌다. 건물 중앙 바닥이 반으로 천천히 갈라지며 만든 소란이었다.

“이쪽입니다.”

시장은 그 사이로 드러난 계단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앞장 선 것은 이번에도 시장이었다. 그는 바츠가 발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자신의 아이와 함께 밑으로 움직였다. 허옇게 일어난 약간의 먼지가 그 둘을 집어삼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태연하게 지나치는 그들의 움직임에 금세 허공으로 밀려났다.

바츠는 그 뒤를 쫓았다. 불빛이 없어 계단의 중간까지 밖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앞서 걷는 시장이 계단은 충분히 튼튼하고 간격도 일정하다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내려갈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긴장감을 풀어주기도 했지만 위치를 알려오며 안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끝에 다다르자 오히려 시야가 더 밝아지기까지 했다. 바로 몇 걸음 앞에 있는 샤워장에서 빠져나오는 불빛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었고, 고작해야 옆 사람의 실루엣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둡죠? 우리는 항상 전력이 부족합니다. 아르크는 넘쳐난다죠? 샤워장을 통과하면 그래도 좀 나을 겁니다.”

일리트시의 샤워장은 전진기지와 닮아있었다. 샤워기가 좌우에 달려있었고 붉은 색 버튼을 눌러야만 소독약이 쏟아졌다. 눈에 띄는 것은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붉은색 고무 들통과 반대쪽에는 문이 있지만 들어오는 쪽의 문은 없다는 것이었다. 경첩이 있었던 흔적으로 보아 원래는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지만 부품을 구하지 못해, 더 이상 수리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너무 협소해 겨우 두 사람이 들어가기에도 복잡할 정도의 공간에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 안에서 질식할 일은 없었다. 붉은색 고무 들통의 용도는 샤워장을 빠져나갈 때까지도 알 수 없었다.

“일리트시 시(市)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샤워장을 지나자 좁고 어두운 터널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천장은 팔을 위로 뻗으면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한 높이였고, 폭은 양팔을 좌우로 벌리기에 조금 모자란 정도였다. 오래된 동굴과 닮아있었지만 천장과 양쪽 벽면이 매끄럽게 손질이 된 걸 보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통로였다. 주민들은 그 통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중앙에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들 꾸부정하게 몸을 움츠린 채 좌우 벽에 바짝 붙어있었다. 여전히 어스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나아진 조명이 그들의 손이나 발을 밟는 일이 없도록 도왔다. 시장은 그 앞에서 처음 만난 것처럼 바츠를 맞이했다.

바츠는 그런 시장을 따라 중앙을 걸었다. 방독면을 벗을 때 역한 냄새로 순간 흠칫했지만 그 감정을 밖으로 내보이지는 않았다. 걸음을 옮길수록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졸린 것처럼 대부분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츠가 앞을 지날 때에는 어디서 힘이 솟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게다가 일부는 무릎을 일으켜 손을 뻗기도 했다. 나무막대처럼 마른 손이 전부 더러웠다.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손톱은 새카맸다. 무슨 병이라도 있는지 팔을 펴는 것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얼핏 보면 겁을 먹어 몸이 굳은 사람처럼 보였다.

“많이 먹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대부분 영양이 부족하죠. 저처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죠. 물 한 모금이라도 누가 마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지 다들 아니까요. 우린 항상 아이들을 우선시 합니다. 나머지는 그 다음이죠.”

시장은 앞서 걸으면서도 사람들이 바츠를 향해 내미는 손을 일일이 제지했다. 매정하게 뿌리치기보다는 그들의 손을 대신 잡아주며 손등을 두드려주었다.

바츠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들의 모습이 역겹거나 못마땅해서가 아니었다. 짙은 근심이 양쪽 관자놀이를 심하게 짓눌렀다. 그들은 언제라도 쓰러질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깨는 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축 쳐졌고, 두 눈에서는 아무런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캄캄한 어둠을 끌어안고 있었다. 황량한 지상처럼 그들 역시 피폐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일부는 눈에 띌 만큼 건강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애절한 눈도 아니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눈이었다. 바츠는 그들을 단 번에 알아보았다. 적갈색 가죽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허리에는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벨트를 차고 있었다. 그들이 몸을 살짝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금속음이 들렸다.

그들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건강하다 못해 우람해 보였다. 바츠는 그들을 발견할 때마다 고개를 살짝 구부려 인사를 해주었다.

“아르크에서 온 엔지니어들이라면 익숙하시겠군요.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들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엔지니어들이 머물 공간은 따로 없습니다. 이곳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은 식수원이 있는 방과 작물을 재배하는 방 그리고 군인들이 머무는 방과 제가 쓰는 방뿐입니다. 모두 저 안쪽 끄트머리에 있죠. 용변은 샤워장에 있는 붉은색 고무로 만들어진 들통에 봅니다. 매일 한 번씩 밖으로 내보내죠.”

“작물을 재배한다고요?”

바츠는 뜻밖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네. 약간의 감자를 재배하는데 60명이 넘는 인원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그마저도 제대로 성장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곳이기도 하죠. 그만큼 중요하고요. 우린 전력을 공급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발전기가 있긴 한데 지금처럼 겨우 앞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복도에 불을 켜고, 재배실과 식수원에 공급하면 남는 게 없죠. 식수원으로 흘러든 물은 계속 저어주지 않으면 썩어버리니까요. 사람도 너무 많고 공간도 넓어요. 그렇다고 이들을 밖에서 살게 할 수도 없죠. 밖은 정말 최악이니까요.”

바츠는 이곳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기대로 차 있었다. 이미 확정된 결과에 욕심이 보태진 기대가 아니라 막연한 바람으로 인한 기대였다. 바츠는 그로인한 실망감이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무려 두 차례나 경험했다. 그때마다 정면으로 부정되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돌아와 달라고 간절하게 바라기만 했다. 그런 기대가 품고 있는 상실감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이들에게는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여력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에 누군가가 밖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건 어떻겠냐고 의견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남쪽에 정말 땅을 경작하기도 했죠.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하루 한 끼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규모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걸 그렇게 많이 먹지 않습니다. 거의 먹지 않죠. 아시다시피 크루엘라의 감염은 굉장히 무서우니까요. 밖에서 재배된 작물을 먹고 정말 크루엘라에 감염된 사람이 있었어요. 그것 말고도 감기나 여타 다른 병에도 감염되었었죠. 아, 감기가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우린 그때마다 밭을 전부 태워버렸습니다. 몇 번이고 말이죠. 그리고 감염자들은 대부분 추방당했어요. 일부는 군인들에게 살해당했죠. 그래서 더 먹지 않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재배는 하고 있습니다. 굶어죽는 것보다 병에 걸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크루엘라의 감염은 오히려 식물이 더 빨리 반응합니다. 감염 즉시 잎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죠. 하루면 전부 죽어버립니다. 우린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늘 신중해야 하고요. 아르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갑자기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고열로 죽기도 하죠.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죽는 경우 보셨습니까?”

바츠는 그가 잠꼬대를 하는 것 같았다. 뭔가 계속해서 웅얼거리기는 하는데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앞서 가는 그가 정면을 바라보고 말하고 있기 때문인지, 양옆에서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손을 뻗어대는 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린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제대로 알아들은 말이라고는 크루엘라라는 단어 하나뿐이었다.

“이미 다들 아파 보이는 데요?”

“보기에는 그래도 건강한 겁니다. 정말 아픈 사람들은 이곳에 머물 수 없으니까요.”

그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쫓아오던 바츠를 바라보았다. 바츠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사람들이 외롭게 죽어가도록 만드는 것을 너무 쉽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오해입니다. 이곳에서의 전염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단 말입니다. 여긴 좁고 폐쇄적입니다. 크루엘라 앞에서는 어디든지 마찬가지겠지만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작은 감염도 상당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노력하는 겁니다. 시장을 뽑고, 나이 많은 노인 분들의 고견을 듣죠. 그들의 경험은 아주 유용합니다. 전진기지에 약이 있지 않습니까? 가끔 그것을 타러가기도 합니다. 우린 그렇게 매정하지 않아요. 될 수 있다면 모두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 하죠. 모두가요.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병든 자를 환영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아르크에서도 질병에 걸린 전력이 있는 사람은 환영하지 않습니다. 이주에서 제외 대상이죠.”

그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바츠는 그의 태도가 실컷 변명을 늘어놓고 달아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 아르크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는 말입니까?”

“그럼 이곳에서 바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이들은 마음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는 것에 감사하죠. 하루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면 행복을 느끼고요. 그 한 끼마저도 보잘 것 없는데 말이죠. 아르크는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나머지는 그 후에 일이죠. 우린 이곳에서 매년 아르크에서 추방되는 사람들을 지켜봅니다. 그들은 이곳에조차 머물지 못해요. 낙원에서 실패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소리를 늘어놓으니까요. 이곳에서 아르크에 대한 비난은 금기입니다.”

바츠는 갑자기 통로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천장이 어깨를 짓누르고, 벽은 가슴을 조여 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양옆에 늘어선 힘없는 주민들의 시선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그들 앞에서는 이렇게 건강하게 걷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장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바츠가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이곳에 대한 설명을 계속해서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바츠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가 지훈만큼 말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바츠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통로를 따라 한참 걷고 난 다음이었다. 어떻게 걸어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온 몸은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시장의 어깨너머로 막다른 벽이 보이지 않았다면, 현기증으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통로의 끝으로 보였다. 하지만 좀 더 가까워지자 좌우로 계속해서 이어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T자 모양이었다. 상관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주민들의 시선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런데 갈림길에 거의 도달했을 때, 한 노파가 바츠의 망토 끝자락을 잡아채며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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