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67화 (67/268)

< --   6. 접촉   -- >         * 67화 *

“정말 전진기지에 가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죠.”

일리트시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도심에는 이미 들어섰고, 지하에 있는 진짜 일리트시을 앞두고 있었다. 샤오밍이 아까부터 뭐가 그리 의심스러운지 같은 문제를 자꾸만 확인했다. 정확히는 어제 비박을 할 때 나눴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바츠가 언제든지 전진기지로 와서, 식사를 해도 좋다고 말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살짝 귀찮다고 느껴질 만큼 집요하게 굴었다. 바츠는 한참 전부터 이만하면 대답은 충분하다고 느꼈지만 그는 여전히 부족한 듯 했다. 틈만 나면 그 대답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도 바츠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가 도시에서 느끼는 부담감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인들은 도시에서 매끼, 아무리 적어도 하루 두 끼는 보장받고 있었다. 그 양이 충분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자라지도 않았다. 아르크에서 보호해주는 대가 중 하나로 주민들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하루 한 끼를 입에 대는 것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군인들의 식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이었다. 샤오밍은 그것이 매우 부담스럽다고 했다. 자신이 그들의 삶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당한 대가였기 때문에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가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시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바츠가 그에게 전진기지로 와서 같이 식사를 해도 좋다고 말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와 다른 군인들이 도시에서 제공해주는 음식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해도,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양은 그리 큰 차이가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전진기지에 있는 지하 창고에는 그들을 감당할 만한 여유가 있었고, 고작 몇 명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수급에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주민들에게 나눠줄 음식을 가져가는 것도 허락할게요.”

바츠는 그가 더 이상 같은 질문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쇄기를 박았다. 전진기지에 있는 음식물을 전부 가져간다 하더라도 주민들을 돕는 것이라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로인해 자신이 굶주리게 되더라도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샤오밍이 정말로 그런 짓을 할리는 없었다. 옆에 있던 세르히와 미할리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미 음식을 받아든 것처럼 즐거워했다. 특히 세르히가 기뻐했다. 그는 이제 매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너스레까지 떨었다. 바츠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덩달아 신이 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지하 창고의 음식을 전부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샤오밍은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여태까지 가장 즐거워했으면서 지금만큼은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심지어 매우 진지한 태도였다. 딱 잘라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거절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 거절은 거절이라기보다 거부에 가까웠다. 그는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물론이고 저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으니까요. 저렇게 말입니다. 도움은 항상 고마운 것이지만 그게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샤오밍이 반대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붉은색 들통을 들고 있는 한 여인과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아이가 어딘가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여인은 한쪽 다리를 절만큼 몸이 불편해보였지만, 딱히 불만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걸음을 내딛는 것 같았다.

바츠는 군인도 동행하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는 주민을 보자, 사고라도 날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 지상은 건장한 남자들도 방심할 수 없을 만큼 냉정한 곳이었다. 그런데 고작 가녀린 여자 둘이서, 그것도 한명은 몸이 불편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겨우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방독면만 덜렁 쓰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샤오밍이 바츠의 낌새를 눈치 챘는지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오물을 올림푸스에 버리고 오는 모양입니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있거든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전부터 해오던 일이죠. 그리 멀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올림푸스요?”

“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군 개간지(開墾地)를 부르는 말입니다. 일리트시에 있는 재배지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수확을 할 수 있는 곳이죠. 아주 오래 전에 완벽한 남녀들만 모여 살던 곳을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군요. 굶주림도 없고, 미움도 없고, 다툼도 없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인데, 유토피아나 파라다이스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뭐, 그런 걸 겁니다. 알게 뭡니까. 그런 곳이 진짜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요. 어딘가에 있다면 다들 그리로 가려고 하지, 아르크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냥 그런 곳이 있었으면 하는 거겠죠. 자신들이 마실 것도 없으면서 한 모금 덜 마셔가며 물까지 주는 걸 보면 아주 마음이 짠합니다. 한 번 가보시겠습니까? 나름 볼만 합니다.”

바츠는 일반학교에 다닐 때 좀 더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조금 후회가 됐다. 정말 그런 곳이 존재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주민들에게 지금처럼 맹목적인 희망이 아니라, 반드시 그곳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잘난 스티그마타처럼 말이다. 의욕이 전혀 남지 않은 그들의 시선을 보고 있자면 너무 안쓰러웠다. 그들은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곳이 완전한 허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장난이 부풀려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주민들의 마지막 남은 의지를 꺾지 않고 위로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알고 있다는 것이 가지는 힘이었다. 바츠는 그 시간을 그냥 흘려버린 것이 아쉬웠다. 동시에 그 올림푸스라고 불리는 재배지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지난번 시장이 재배는 하지만 수확은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그곳이 틀림없었다. 직접 그곳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주민들이 그토록 애지중지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붉은색 들통을 들고 돌아오던 여인과 아이를 지나쳐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갔다. 세르히와 미할리오는 도시로 먼저 돌아가도록 하고 샤오밍만 함께 했다.

샤오밍은 바츠를 Y자로 엇갈린 길에서, 오른쪽으로 좀 더 내려간 곳으로 안내했다. 그의 말대로 올림푸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일리트시에서부터 고작해야 5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곳과 저기 그리고 저곳까지 총 세 동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신기하게도 이 건물들만 멀쩡합니다. 주위 건물들과는 다르게 외관상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엔지니어들 말로는 주민들이 계속해서 유지보수를 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대단하죠?”

그들이 올림푸스라고 부르는 곳은 일리트시처럼 천장이 높고 바닥이 넓은 건물들이었다. 모두 세 곳이었는데, 샤오밍이 말 한대로 주변 건물들이 골조만 남긴 채 완전히 폐허가 된 것과는 다르게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당장 거주를 하더라도 불편함이 전혀 없을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상대적으로 양호한 정도가 아니라, 새것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견고했다. 무엇보다도 건물에 창문이 없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쪽으로 가시죠.”

샤오밍이 그중 가장 가까운 건물 다가갔다. 그곳에는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을 만큼 커다란 철제 미닫이문이 있었다. 아르크 레벨1의 주거 지역처럼 온통 녹이 슬어 갈색 빛을 띄고 있는 낡은 문이었다. 샤오밍은 그 문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온 몸으로 열어젖혔다. 그러자 녹이 슬어 꼼짝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문이, 케일리의 새끼손가락이 목덜미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소름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메아리칠 만큼 요란한 소음이었다.

바츠는 그를 따라 들어가며 제일 먼저 엄청난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지독한 냄새였다. 틀림없이 분뇨가 부패하며 만들어낸 냄새였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내부가 썩은 내로 진동을 했다. 창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닌 듯 했다. 벽 군데군데에 격자나무로 틀어 막힌 창문의 흔적들이 보였다. 대신 천장 일부가 유리로 되어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역시도 창문의 역할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단단히 고정된 것으로 보였다. 그 옆에 다수의 조명도 있었다.

“보세요. 안에 들었죠? 상태를 보니 만족스러울 만큼 자랄 것 같지는 않네요.”

샤오밍이 가까운 두둑 위에 올라서더니, 발끝으로 흙을 파헤쳐 그 안에 심어있던 씨감자를 보여주었다. 그리 크지 않았지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기 위해 조금씩 자라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바츠는 그보다도 바닥에 두툼하게 쌓여있는 흙에 더 관심이 갔다. 어디서 가져다 옮겨놓았는지 몰라도 바닥에는 충분한 양의 흙이 가득 깔려 있었다.

“어차피 대부분 수확은 하지 않으니 아쉬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확히는 수확을 한 후에 전부 버려지는 것이지만요. 막상 수확을 해도 선뜩 용기를 내서 먹는 사람이 없거든요. 크루엘라가 무섭다는 건 어린 꼬마들도 아는 사실이죠.”

그가 파헤친 흙을 다시 발끝을 사용해 돌려놓았다. 바츠는 두둑에서 내려서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도 자라긴 자라는 모양이군요. 물은 둘 째 치고 빛도 부족할 텐데, 솜씨들이 좋군요.”

샤오밍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닙니다. 주민들 중에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대충 땅을 일구고 심을 줄이나 알죠. 흉내 내기만 할 줄 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이야 대충 뿌려주면 되는 것이고, 빛이야 약간이지만 천장 유리를 통해서 외부에서 들어오고, 조명까지 비추고 있지 않습니까. 그냥 손 놓고 기도나 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죠. 간절한 마음에 감동받아서 감자들이 싹을 틔우는 걸지도 모르고요.”

“그럼 이번에는 수확해서 먹을 예정인가요?”

샤오밍이 조금 띠꺼운 말투로 대답했다.

“방금 뭘 들은 겁니까? 크루엘라 때문에 먹지는 않고 있다고 했잖아요. 저기 보세요. 이미 몇 차례나 소각했었습니다. 언제 또 창궐할지 모르는 일이죠. 지레 겁을 먹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 근래에는 정상적으로 수확을 하고도 모두 태웠습니다. 그럴 거면 왜 그렇게 이곳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샤오밍은 그들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듯 했지만, 바츠는 그와 달랐다. 그가 턱으로 눈치를 준 반대쪽 벽면에 시커먼 그을음을 보자, 주민들이 왜 이곳에 정성을 기울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주민들에게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작물을 재배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가장 가까운 유토피아였고, 파라다이스다. 뿌리가 자라고 싹이 나는 것은 일종에 창조였다. 그들의 의지로 해내는 창조. 주민들은 이곳에서 감자를 재배하며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대리만족이었다. 초라한 몸뚱이만 가지고 있는 자신 스스로에게 특별하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대리만족.

“그나저나 주민들이 엉뚱한 곳에 멋대로 자재를 가져다 쓰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르크에서 알게 될까봐 겁이 납니다. 그냥 지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건 상호 협약에 없는 것이니까요. 아르크는 일리트시를 보호하고 일리트시는 그 대가로 아르크에 협조한다. 그것이 둘의 관계를 유지시키고 있죠. 그런데 주민들이 계속 이렇게 소중한 자재들을 낭비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한다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묵인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아르크에서도 알게 되겠죠. 그렇다고 주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르크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리트시로의 보급을 대폭 축소했거든요. 지원받던 음식이나 기타 생필품이 줄어들었단 말입니다. 아르크에서 그런 결정을 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아까웠던 걸까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굶주리지는 않았는데...”

바츠는 샤오밍의 말을 듣고 있자 조금씩 침울해졌지만 마땅한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민들의 딱한 사정은 들으면 들을수록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내부에 가득 찬 심각한 악취 때문에 더욱 괴로웠다. 그래서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저 조명들의 전력은 어디서 오는 거죠? 일리트시에 사용할 전력도 부족할 텐데요?”

“조명이요? 아! 일리트시에서 사용하는 전력은 내부에 작은 발전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발전소가 있지만 보통은 그것만으로 해결하죠. 이곳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진원이 달라요. 아마 여기에까지 전기를 보내려면 지금보다 훨씬 큰 발전기가 있어야 할 겁니다. 아니면 북쪽 발전소를 가동시켜야겠죠. 꽤 오래된 발전소라고 하던데...”

“다르다니요?”

“글쎄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천장이 전부 유리지 않습니까? 엔지니어들 말로는 저 유리에 뭔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저 유리가 햇빛을 흡수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안에 투명한 패널이 있고, 전선이 지붕을 관통해서 조명과 연결된 것이죠. 그런데 어차피 추측이라서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아르크에서는 이곳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고, 일리트시에는 저걸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밤에 가끔 와서 보면, 지금보다 훨씬 조명이 어둡거나 완전히 꺼진 걸 볼 수 있는데, 그런 걸 보면 엔지니어들의 말이 꼭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말 유리가 빛을 흡수해서 전기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곧 어두워지겠군요. 이제 그만 가는 게 좋겠습니다.”

샤오밍이 갑자기 돌아가기 위해 서둘렀다. 바츠는 천장의 유리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이 아직 남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다.

밖은 정말 그의 말대로 밤이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급격히 쌀쌀해진 기온이 느껴졌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해졌다. 방금 전 호기심은 순식간에 추위에 휩쓸려 가버렸다. 기지국을 다녀오며 겪은 두 번의 밤이 너무 끔찍했던 탓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전진기지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뜻은 이룰 수 없었다. 밖에는 전혀 예기치 못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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