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68화 (68/268)

< --   6. 접촉   -- >         * 68화 *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는 낡고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였다. 얼마나 오래된 옷인지 치마 끝자락이 이빨에 물어뜯긴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발목이 한 번씩 드러났다. 손목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가느다란 발목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싸늘한 날씨 때문인지 굉장히 음산하게 보였다. 길 건너 맞은편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갑자기 달려들기라도 할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그녀의 머리카락도 한몫 거들었다. 그녀는 마치 유령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그런 위협적인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한 손에는 붉은색 들통을 들고 있었고, 남은 다른 한 손에는 조그만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그녀의 딸로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에도 벅찼다.

바츠는 이들이 조금 전 일리트시 근처에서 스쳐지나왔던 그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옷차림부터 손에 들고 있는 붉은색 들통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뒤를 쫓아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바츠의 물음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멀뚱히 그대로 서서 바라만 보았다. 정말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뭐야! 할 말이라도 있어?”

뒤늦게 바츠 옆으로 다가온 샤오밍이 그녀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녀의 의사를 묻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말투에는 그런 의도가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저...집사님이시죠?”

그녀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너무 작은 목소리여서 잘 들리지는 않았다. 들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바츠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다가왔다.

“다음에는 우리를 들여보내주세요. 집사님이 결정하시는 것 맞죠? 네? 다음에는 우리를 들여보내주세요.”

그녀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다.

“저리 꺼져!”

샤오밍이 바츠와 그녀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는 그녀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총구를 사용해 그녀의 한쪽 어깨를 뒤로 밀쳤다. 하지만 그녀는 어깨에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가왔다. 샤오밍의 화를 돋우는 짓이었다. 그는 이제 말투만 신경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 짜증이 행동에도 묻어나기 시작했다.

“저리 꺼지라는 말 안 들려!”

샤오밍은 자신의 총구가 검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의 어깨를 찔러댔다. 그의 손에 정말 검이 들려있었더라면 그녀의 어깨를 꿰뚫고도 남았을 만큼 힘이 실려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반복적으로 찔러댔다. 하지만 그녀는 제일 처음 어깨를 찔렸을 때에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멈칫했을 뿐, 다시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이런 제길!”

그녀의 모습에 샤오밍이 단단히 화가 났다. 자신의 총을 머리 위로 치켜 올리더니, 거꾸로 내리치려는 시도를 했다. 그녀의 아이가 우는 목소리로 그의 허벅지에 달라붙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정말 몹쓸 짓을 당했을 지도 모를 만큼 위태로웠다. 물론 그 전에 바츠가 그를 제지했겠지만 그녀의 행동이 무모한 짓임은 틀림이 없었다.

샤오밍은 아이에게마저도 냉정하게 굴었다. 자신의 다리에 달라붙은 아이를 다리를 흔들어 먼지를 털어내듯이 떨어뜨려 놨다. 아이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졌다. 그녀가 놀란 나머지 황급히 아이를 일으켰지만, 아이의 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이는 얼마나 서러운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 내 울었다.

“뭐든지 할게요! 제 아이만이라도 들여보내주세요! 제발요!”

그녀는 아이가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하자, 아이를 달래다 말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바츠를 향해 애원하듯 말했다. 그녀는 우연히 빵조각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샤오밍이 그녀의 어깨를 개머리판으로 밀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상체를 휘청거리면서도 자리를 고수하며 끝끝내 버텨냈다. 옆에서 울고 있던 아이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가 얻어맞은 어깨를 온몸으로 감쌌다. 하지만 샤오밍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하는 것인지, 아이에게 하는 것인지 그 대상은 모호했지만, 갖은 욕설을 내뱉으며 누군가를 모욕했다. 그냥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빌어먹을! 헛소리 하지 말고 도시로 돌아가!”

“제발 부탁드립니다! 뭘 원하시나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아! 이거! 이걸 드릴까요?”

샤오밍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그녀의 애걸하는 목소리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한 데 뒤엉키며 주위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바츠는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요구에 화답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한마디로 잘라 거부하기도 힘들었다. 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처지가 어떤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그녀가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리고는 몸을 젖히고는 자신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무엇인가를 꺼내기 위해 한참동안 애를 썼다. 바츠는 물론이고 샤오밍도 그녀의 모습에 순간 긴장했다. 정확히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음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다. 하지만 둘이 긴장한 것만큼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치마 속을 빠져나온 그녀의 손에는 검고 누런 먼지 얼룩으로 가득한 하얀 천 조각 하나가 들려있었을 뿐이었다. 바츠는 그것이 그녀의 속옷이라는 걸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자, 어서요. 받으세요.”

그녀는 자신의 속옷을 바츠를 향해 내밀었다. 바츠는 그녀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지 못해 매우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배급표나 탄약 같은 물건을 내놓았다면 좀 더 쉬웠을 것이다. 최소한 그것들은 어딘가에 긴히 쓸 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속옷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녀의 속옷이 필요한 곳은 그녀의 치마속이 유일한 곳이었다.

“이런 젠장! 그 더러운 물건 당장 치우지 못해!”

옆에서 지켜보던 샤오밍이 그녀의 손을 있는 힘껏 걷어 차버렸다. 그녀의 손목은 샤오밍의 발길질에 거의 꺾이다시피 했고, 손에 들고 있던 그녀의 속옷은 허공에서 한 차례 크게 펄럭이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차인 손목을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안으며 고통스러워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금세 다시 힘을 내서 바츠에게 더욱 바짝 다가오려고 노력했다. 몸을 앞으로 엎어 바닥을 기듯 다가왔다.

“왜요? 마음에 안 드나요? 다른 거? 다른 걸 드릴까요?”

바츠는 그녀가 바닥을 기어오는 동안, 그녀의 무릎이 성치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지면은 온통 날카로운 돌멩이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전보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며 애원했다. 바츠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녀의 아이는 그런 그녀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경기를 일으키기라도 할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울음소리 역시 그대로였다.

“버리지 마세요! 저희를 제발 버리지 마세요! 지금 당장 드릴게요!”

바닥을 기어오던 그녀가 물러나는 바츠를 발견하더니,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 한 번 엉덩이를 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금 전과 같은 자세였다. 다른 것이라면 그녀의 무릎이었다. 바닥에 앉으며 치마가 말려 올라간 덕분에 그녀의 무릎이 밖으로 드러났다. 양쪽 모두 붉은 피로 흥건했다. 거칠고 험한 지면을 견뎌내기에는 그녀의 무릎은 너무도 나약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무릎과 무릎 사이가 굉장히 넓게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주저앉아 무릎을 세운 채로 자신의 다리를 최대한 양옆으로 벌렸다.

바츠는 훤히 드러난 그녀의 종아리와 허벅지에 절로 시선이 갔다. 씻지 못해 검은 얼룩들로 상당히 지저분했지만, 물로 씻기만 한다면 매끈한 피부를 자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 역시 그것을 알고 있는지, 말려 올라간 자신의 치마를 자신 있게 허리 쪽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약간의 시간만 더 있다면 그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샤오밍은 그녀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에게 매달려 있는 아이를 피해, 그녀의 가슴팍을 정확히 발로 걷어찼다.

“더럽고 냄새나는 몸뚱이를 어디에 들이밀어!”

샤오밍의 발길질에 가슴을 얻어맞은 그녀는 옆으로 쓰러지며 고통에 신음소리를 냈다. 얼마나 괴로운지 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샤오밍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금씩 밀려들던 짜증을 전부 해소하려는 듯, 그녀에게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그녀를 밟아 죽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바츠는 그가 정말로 그녀를 해치기 전에 그를 제지했다. 그의 행동은 도가 지나치고 있었다.

“말리지 마세요! 이런 것들은 단단히 혼을 내줘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공평하게 굴지 않고 항상 편법을 노리죠! 그게 얼마나 더러운 짓인지 압니까? 이런 것들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거라고요! 정해진 규칙이 있으면 그를 따르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보거나 억울한 사람이 생기죠!”

바츠는 그가 이토록 흥분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벌써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굴었다.

“진정하세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나도, 집사님도 사람입니다! 모든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고요! 그걸 느꼈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겁니다!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바츠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황당한 상황에 넋을 놓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바츠가 그녀의 속살을 바라보던 눈빛만 감지한 것 같았다. 물론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르크는 물론이고 도시에도 정해진 규칙이 있었다. 그것은 법이었고, 약속이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똑같이 지키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바츠는 뒤늦게 밀려든 생각이지만, 정말 자신이 혼자였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지 장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에게 진한 동정심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바츠는 그를 잡아챈 손으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지금은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많은 말은 오히려 신뢰를 무너뜨리고는 한다. 그래서 바츠는 말을 아꼈다. 대신 그와 그녀를 뒤로하고 먼저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그녀가 뒤통수에 대고 필사적으로 바츠를 부르짖었지만 바츠는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로 들려오는 그녀의 애타는 목소리와 그녀 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애처로웠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게 된다면 미안한 마음에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떠나면 나중에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감정을 다르게 표현했다. 샤오밍이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건넬 때였다.

“집사님은 이제 갔어. 그러니 그 더러운 몸뚱아리를 당장 일으켜!”

바츠는 몸을 빠르게 돌려세운 후,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샤오밍씨! 당신 말이 옳아요. 하지만 옳은 것이 항상 바른 건 아닙니다! 그녀를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세요. 그녀도 엄연히 일리트시의 주민이니까요. 내 도시의 주민이죠. 무슨 말인지 압니까? 내 주민이라는 말입니다, 내 사람이라고요. 당신처럼 요.”

샤오밍은 바츠를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헤러티커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라도 했는지 그대로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대답한 것은 그로부터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였다. 그 침묵 속에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없었다.

“...네. 그 말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