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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감염-71화 (71/268)

< --   7. 시험   -- >         * 71화 *

“어디로 가는 걸까요?”

샤오밍이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헤르만에게서 아이를 돌려받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그를 쫓기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 그때부터 조금씩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두 번째 밤을 지새우고 나서부터였다.

바츠는 샤오밍과 단 둘이서 헤르만을 쫓아 동쪽으로 이틀을 이동했다. 그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거의 쉬지도 않고 움직여야 했다. 그의 이동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그는 잠도 거의 자지 않는 것 같았다. 그와의 거리가 반나절을 사이에 두고 계속 이어졌다. 샤오밍이 의욕을 잃기 시작한 이유였다. 한밤중에도 추위를 거스르며 걸었는데 도무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가 지칠 만도 했다. 지상의 밤은 언제나 최악이었다. 그런데 그 최악의 밤이 벌써 세 번째를 앞두고 있었다. 그가 불평을 하지 않은 건, 오로지 그가 가진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그가 투정을 부리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가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대신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는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는 각오를 해야만 했다. 바츠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바츠가 해야 할 주된 일은 헌터를 돌보는 것이었고, 그들이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바츠에 입장에서는 그냥 돌아가야 하는 것이 더 맞는 일이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외의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샤오밍에게도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주민들을 헤러티커나 반군 그리고 노상강도 같은 검은 무력으로부터 최소한의 방어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도시를 버리고 달아나더라도 군인들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민들은 재수가 없는 일일 뿐이고, 아르크에서는 불쾌하고 불편한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헌터가 아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고 보통 사람처럼 움직인다. 평소에는 그렇게 매정하게 굴던 샤오밍이 죄책감으로 괴로워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웃기도 하고, 화도 내고, 즐거워하기도 하면서 감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가족을 자주 떠올린다.

어쨌든 바츠와 샤오밍은 헤르만을 쫓는 이틀 동안 제대로 된 휴식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나마 패치형 식량을 넉넉하게 가져온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의 추적이 언제 끝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둘에게는 이렇게까지 도시를 멀리 벗어난 적이 없었다. 어젯밤을 기준으로 그 한계가 깨졌다. 그것이 샤오밍을 더욱 힘들게 하는 모양이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낯선 환경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다.

바츠 역시 샤오밍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헤르만이 끌고 간 아이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다. 그 아이가 보내는 시간은 바츠나 샤오밍의 시간보다 더 끔찍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쉽게 걸음을 돌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대체 헌터들은 떠나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샤오밍이 고개를 돌려 바츠를 바라보며 물었다. 바츠는 맵을 들여다보느라 바쁜 나머지 그에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르크의 눈을 통한 맵은 놀랍게도 기존의 범위에 국한되지 않고 자꾸만 변해갔다. 항상 아르크의 눈을 중심에 두고 이동방향으로 함께 움직였다. 덕분에 헤르만을 추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를 맥없이 놓치고 마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바츠가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거나 반대쪽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바츠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바츠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츠도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샤오밍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크게 다른 수준이 아니었다. 아델리나와 버니에투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함께 왔던 테라치마저도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행방도 모르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저 미사에서 배운 대로 어딘가에서 아르크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바츠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은 정말 아무런 제약 없는 위대한 자유를 가진 것 같았다. 그들의 행적에 대해 절로 호기심이 생겼다. 정말 미사에서 배운 대로 그 역할만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세상을 떠도는 또 다른 검은 영혼들인지 몹시 궁금했다. 최소한 헤르만을 보았을 때에는 그들이 지상의 폭력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아르크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자신들이 가진 무력을 마음껏 쓰고 있었다. 그래도 용인이 되는 것 같았다. 마티프가 미사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위대한 자유는 희생에 대한 대가이다.’

바츠는 그들 중에 이 말을 기억하고 있는 자가 몇이나 될지 궁금했다. 아델리나는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테라치는? 그리고 버니에투와는? 바츠는 자꾸만 헤르만이 떠올라 그들이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바츠가 한창 생각에 잠겼을 때, 샤오밍이 바츠의 어깨를 잡아채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심지어 어느 틈에 자세를 낮추고 앉아서는 바츠를 밑으로 끌어내렸다.

“집사님! 집사님! 대체 몇 번을 불러야 하는 겁니까!”

바츠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까딱여 앞쪽을 향해 눈치를 주었다. 바츠는 그가 눈치를 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작은 불빛이 보였다. 어딘가에 반사된 빛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불빛이었다.

“놈이 드디어 멈춘 것 같습니다.”

바츠는 서둘러 아르크 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헤르만의 코드가 정말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가 멈춘 것이 틀림없었다. 바츠는 지면에 최대한 바짝 누웠다. 그러자 샤오밍이 자신의 스코프를 통해 앞을 살폈다. 그 사이 지상의 밤은 주의를 순식간에 검게 만들었다.

“놈이 만든 모닥불 같습니다. 그런데 놈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도 보이지 않아요. 모닥불 위에 고기가 구워지고 있네요. 프레이 같습니다. 옆에 한 마리가 더 보입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아이와 함께 어디에 간 걸까요?”

샤오밍이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바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바츠는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기 위해서라면 그가 굳이 모닥불에서 멀어질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곳에 혼자였고, 그를 방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은 오직 짙은 어둠뿐이었고, 온 몸이 으스스할 정도의 추위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가 모닥불 근처를 떠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아르크의 눈에는 그가 분명 그 근처에 있다고 표시되고 있었다.

바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바츠의 바지를 잡아끌기라도 할 것처럼 다급했다. 바츠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가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도록 하죠.”

“또 그대로 가려는 겁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들키기라도 한다면 쫓아왔다는 걸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럼 상황이 나빠질지 모릅니다. 그도 바보는 아니지 않습니까?”

바츠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놈은 이미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겁니다.”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불안해하면서도 믿으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바츠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츠에게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정면으로 다가가서 아이를 달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만에 하나 그가 공격적으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다음 문제였다.

바츠는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다가갔다. 서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신중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은 훨씬 빠르게 내딛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밤이 가져온 냉랭한 기온 때문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차갑게 불어 닥치는 바람이 마구 떠미는 기분이었다.

모닥불 주변에는 정말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 역시 없었다. 샤오밍의 말대로 프레이의 사체 하나가 바로 옆에 놓여있었고, 모닥불 위에도 프레이로 보이는 고기가 불에 익혀지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불에 익혀지고 있는 고기가 프레이 치고는 조금 크다는 사실이었다. 바츠가 지금까지 본 프레이 중에서 가장 컸다.

바츠는 모닥불에 바짝 다가섰다. 강한 추위에 얼어붙기 시작하는 몸을 잠시라도 녹여볼 셈이었다. 그러자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답답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자꾸 날 쫓는 거지?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집사?”

바츠는 조급해하지 않고 최대한 냉정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뒤에는 짙은 어둠뿐이었고, 그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모닥불 의해 드러날 실루엣조차 감추고 있었다. 바츠는 잔뜩 긴장한 채로 허공에 대고 말했다.

“그래,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

그의 목소리는 주변 어둠을 맴돌며 들려왔다.

“재미있군. 집사가 내게 말을 걸다니.”

“이제부터 도시로 돌아오게 되면 더 이상 주민들에게 봉사를 기대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왜? 내가 왜 그래야만 하지?”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

바츠는 보이지 않는 그와의 대화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애써 참아내며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그러자 그가 반대쪽에서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츠는 긴장하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세웠다.

“그럼 내 욕구는 어디에 풀어야 하지? 프레이로 푸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그가 바츠의 발아래 놓인 프레이를 향해 눈치를 주었다. 바츠는 죽은 프레이의 항문에서 허연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보는 순간 구역질이 일어났지만 가까스로 참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지. 주민들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군.”

“그래서 알아서 하고 있지 않나? 다만 그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다시 한 번 바츠의 발아래 놓인 프레이를 향해 눈치를 주었다.

“말이 길어지는 군. 당신과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대화를 하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야. 당신의 처지 따위는 관심이 없어. 당신에게 부탁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일리트시는 내 도시다. 난 당신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거라고.”

“어이, 이러지 말라고. 정말 서운하게 말을 하는 군. 네 본분을 잊은 것 아니야? 그리고 그건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이라고. 다들 그러고 있을 거야.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런데 왜 그걸 갑자기 바꾸려고 하는 거지?”

그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난 오래전부터 있던 집사가 아니니까.”

바츠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더니, 날카롭게 말을 내뱉었다. 전과 전혀 다름없는 말투와 억양이었지만 목소리에는 냉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정말 짜증나는군.”

바츠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지만, 애써 태연하게 굴려고 노력했다.

“내가 할 말은 다했어. 마지막으로 당신이 일리트시에서 데려간 아이를 돌려받고 싶군. 아이는 어디에 있지?”

“무슨 아이?”

그가 전혀 모르는 것처럼 시치미를 땠다.

“당신이 일리트시에서 데려온 아이 말이야. 말레나를 살해하고 그녀의 딸을 데리고 갔잖아. 그 아이 말이야.”

“아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 아이는 갑자기 사라졌다고.”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의 횡설수설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그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을 너무도 편안하게 하고 있었다.

“온 김에 고기나 먹고 가라고. 제법 맛있을 거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고기가 아주 연할 거야.”

그는 바츠에게서 완전히 시선을 거두고는 모닥불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모닥불 위에 고기를 거침없이 잡아 뜯었다.

바츠는 그런 그의 모습에 너무도 황당했다. 그와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는 바츠를 완전히 외면한 채, 방독면을 벗고 손에 들린 고기를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바츠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를 만큼 머릿속은 복잡했고, 심장은 마구 뛰기 시작했으며 손발은 저절로 부들부들 떨렸다. 모닥불 위에 올려 진 고기가 다른 프레이에 비해서 덩치가 더 큰 이유를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바츠는 그를 향해 말했다.

“이런 미친 자식!”

============================ 작품 후기 ============================

놀라지 마세요. 소설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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