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79화 (79/268)

< --   7. 시험   -- >         * 79화 *

설명을 들은 바츠는 기가 찼다. 둘은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가족이 걱정되어서 따라 나온 것이었고, 남은 둘은 그들을 믿지 못해서 쫓아 나온 것이었다. 이들은 바츠를 보자마자, 하나 같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신이 없었다. 특히 카인의 엄마라는 스텔라와 이들을 믿지 못하고 쫓아 나온 헤이즈라는 사내가 그랬다. 스텔라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이를 제발 찾아달라며 바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빌었다. 동시에 자신의 아이를 믿지 못하고 모욕하는 헤이즈와 그레이를 벌해달라고 졸랐다. 그 소리를 들은 헤이즈가 스텔라를 향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카인이 과거에 했던 짓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며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와 함께 나온 그레이라는 사내는 그 모습을 신중하게 지켜보았다. 오히려 자신의 뜻과 주장이 일치하는 헤이즈보다도 아이를 찾아달라고 통곡하는 스텔라를 다독여주는데 더 바빴다. 헤이즈는 그 모습을 보고도 욕지거리를 했다. 유일하게 조용한 것은 레드의 형이라고 하는 바론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앞에서 난리법석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침묵을 지키다가, 바츠가 관심을 줬을 때 비로소 자신에 대해 소개를 한 후 반드시 함께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생이 무사한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동생을 불신하는 헤이즈와 그레이의 주장이 틀리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헤이즈는 그를 향해서도 역시나 욕지거리를 하고는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린놈이 건방지게! 뭐라고? 사과? 네 동생 놈이 지난번 했던 일을 벌써 잊었나보지? 그때 네 동생 놈은 사과를 했겠지? 내게 맞아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헤이즈가 양팔을 걷어 부치는 시늉을 하며 바론을 위협했다. 그가 특별히 골격이 크거나 덩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론을 힘으로 제압하기에는 충분해보였다. 바론은 셀레나보다도 작았다. 이제 갓 16살쯤 되어보였다. 바론도 자신이 힘으로 헤이즈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지, 굳이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헤이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를 향해 비아냥댔다.

“겁쟁이 자식! 넌 네 동생만도 못한 놈이야! 21살이나 쳐 먹은 사내자식이 꼬라지가 그게 뭐냐!”

보다 못한 그레이가 그를 말려 세우며 멀찍이 떼어놓지 않았다면, 그는 바론을 향해 더 심한 모욕도 할 것 같았다. 바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 그를 피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버리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스텔라는 바츠를 향해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뭉개진 발음으로 우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바츠는 정신이 혼미해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리 통이 따로 없었다. 네 사람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단순한 소동을 넘어서 난동에 가까웠다. 괜히 나선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들 지경이었다.

“집사님, 직접 가지 않으셔도 되요. 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 하지만 저희가 걱정돼서 그러시는 것이라면 제가 함께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집사님 혼자보다는 제가 있는 편이 저들을 감당하는데 좀 더 수월할 테니까요. 집사님만 괜찮다고 하시면요.”

셀레나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바츠는 혼자서 이들을 이끌고 그곳에 다녀오려고 했던 그녀가 존경스러워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대단해보였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고개를 내두르게 만드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녀에게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우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스텔라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에게 아들을 반드시 찾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물론 그녀의 아들이 무사할 것이라는 위로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아들을 찾은 것 마냥 바츠를 향해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 다음은 그레이에게 이끌려 저쪽으로 밀려나 있지만,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헤이즈에게 말했다.

“함께 가는 건 좋습니다. 대신 말썽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죠?”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폭하게 행동했지만, 바츠가 묻는 말에는 허리를 여러 차례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완전히 다름 사람 같았다. 그레이에게는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눈빛만 주고 고개를 돌렸다. 대신 바론에게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거라면 도시에 남으라고 단단히 일렀다. 그는 슬그머니 헤이즈의 눈치를 살피고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즈는 그런 바론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한 번 폭언을 자행했다. 바츠는 서둘러 그의 이름을 부르며 주의를 주었다. 그는 이번에도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헤이즈는 바츠를 향해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도, 자신을 슬쩍 훔쳐보는 바론에게는 냉정하게 굴었다. 몸이 굳은 것처럼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는 바론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바론은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꼭 마티프가 아이들을 혼내는 모습 같았다.

바츠는 그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보고 나서 셀레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바츠의 대답이 없더라도 이미 함께 갈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셀레나가 함께 가준다면 내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부탁드릴게요.”

“그럼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네요. 끔찍한 추위는 정말 싫거든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셀레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내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누군가를 꼭 집어 지칭하기보다는 허공에 대고 말하듯이 소리쳤다.

“자, 이제 갈 거예요! 그러니 다들 그만 떠들고 출발합시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다. 그녀가 어깨에 걸고 있던 자신의 소총을 제대로 짊어지기 위해 한 차례 만지작거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신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헤이즈마저도 그녀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물론 돌아오지 않은 카인과 레드를 언급하며, 쓸데없는 일을 하게 됐다며 불평을 터뜨리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스텔라가 그런 헤이즈를 향해 소리쳤다.

“내 아들을 욕하지 마! 당신보다는 착한 아이야!”

헤이즈가 콧방귀를 뀌며 그녀를 비웃었지만, 옆에 있던 그레이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향해 욕지거리까지는 하지 못하게 막았다. 헤이즈는 그런 그를 향해 오늘 따라 왜 이러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레이는 그의 어깨에 올린 손으로 그를 좌우로 흔들며, 그 불만까지도 억지로 무마시키려고 노력했다. 헤이즈가 헛웃음을 켜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츠는 카인과 레드에게는 물론이고 이들에게도 아무 일이 없길 바랐다. 지상을 걸으며 이렇게 소란스러웠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침묵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들은 겁이 없는 것인지 가는 내내 시끌벅적 떠들었다. 대부분 헤이즈가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혼자서 잔뜩 흥분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는 지금 상황이 못마땅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항상 격앙되어 있었다. 바츠는 그때마다 주변을 살피며 긴장의 끈을 더욱 바짝 조여야 했다. 나란히 걷던 셀레나가 웃는 목소리로 틈틈이 별 일 없을 거라며 위로를 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셀레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우쭐거렸다.

“집사님과 함께 하고 있어서 다들 용기가 생기나 봐요. 아무리 평소에 다니는 길이라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집사님이 같이 있잖아요. 노상강도쯤은 그들이 먼저 알아서 멀리 돌아갈 거예요. 게다가 그리 멀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바츠가 그들을 찾아 도착한 건 그로부터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제법 커다란 호수 바로 옆에 세워진 4층 건물이었다. 콘크리트로 지어져 있었는데, 중간 중간 안이 들여다보일 만큼 꽤나 부식이 진행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밖에서 모두 확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건물 일부가 호수 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것이 눈에 띄었는데,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건물은 언제라도 호수 쪽으로 기울며 물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인지 건물은 매우 음산했다. 주변에 피어오른 물안개까지 더해져 자칫 안에서 헤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셀레나가 자신 있게 말했던, 길을 잃을 리는 없을 거라던 장담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카인! 카인!”

스텔라가 참지 못하고 입구에서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옆을 돌아 호수 쪽으로 흘러나갔다. 그녀도 그것을 느꼈는지 나중에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옆에서 그레이가 어차피 안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거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헤이즈는 이곳에서도 불평을 늘어놓았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이야! 아줌마, 시끄러워! 그레이가 안에서 듣지 못 한다고 말하잖아! 들어가서 찾아보자고! 어차피 프레이를 잡는 곳은 정해져 있단 말이야!”

“당신이 뭘 알아! 내 아들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는데!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

스텔라가 헤이즈를 향해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붙들었다.

“이 아줌마가 미쳤나! 이번에도 안쪽 어디에서 잡은 프레이를 구워 먹고 있겠지! 아마 우리가 쫓아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저 계집애 같은 자식이 함께 먹고 있었겠지만 말이야!”

헤이즈가 그녀의 손길을 거칠게 떼어내고는 옆으로 밀쳐버리기까지 했다. 그녀는 옆으로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넘어지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 사이 헤이즈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뱉으며 혼자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레이가 황급히 달려와 바닥에 쓰러진 스텔라를 부축하며 말했다.

“스텔라, 봐요. 문이 닫혀 있잖아요. 그럼 카인이 아직 안에 있다는 뜻이에요. 평소에는 프레이가 숨어들도록 문을 전부 열어두지만, 사냥을 시작하면 밖으로 최대한 달아나지 못하도록 문을 닫으면서 안으로 들어가니까요. 그러니 진정하고 함께 가서 찾아봅시다.”

그가 헤이즈가 거칠게 열고 들어가는 반쯤 부서진 건물 입구의 문을 향해 가리켰다. 스텔라는 헤이즈의 과격한 손길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떨어져나가는 건물의 문짝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몸 일부를 그레이에게 의지한 것이 꽤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팔을 붙들고 있는 그레이에게 반쯤 몸을 기대고 있었다. 둘은 그렇게 헤이즈의 뒤를 쫓았다.

바츠는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려다가 지면과 호수의 경계부근에 돌로 만들어진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절반이 물에 잠겨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밖으로 드러난 부분에는 영어로 학교라고 선명하게 새겨져있었다.

“옛날에 고등학교라고 불리던 곳이었대요. 아르크만큼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고 해요. 그보다 많았을 거라는 사람도 있어요.”

셀레나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바츠는 그 간판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한 채,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셀레나가 그 바로 뒤를 따랐고 바론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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