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81화 (81/268)

< --   7. 시험   -- >         * 81화 *

바츠는 서둘러 사람들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바로 옆 사무실로 보이는 공간이었다. 여섯 사람이 몸을 피하기에는 넉넉한 곳이었다.

사무실에는 가장 안쪽에 녹슨 철제 책상이 봉기라도 했는지 완전히 뒤집힌 채 오른쪽 벽에 달라붙어 있었고, 한창 때에는 벽을 따라 조신하게 서있었을, 녹이 슬지 않는 무른 금속 진열장과 이미 형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는 목재 책장이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바츠의 강압적인 손길이 자신들을 방으로 이끌자 대부분 우왕좌왕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모르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내내 퉁명스러웠던 헤이즈는 둘째 치고, 스텔라마저도 볼멘소리를 했다.

“집사님,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제 아들은요? 네?”

셀레나의 기민한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들을 방안으로 밀어 넣는 것은 큰 어려움이 되었을 뻔 했다. 그레이와 바론이 불평을 하지 않고 잠자코 따라준 것도 도움이 됐다.

바츠는 사람들을 방안으로 밀어 넣고, 가장 끝에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낡은 금속 미닫이문을 닫기 위해 노력했다. 레일에 갖가지 이물질과 녹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끝내 몸을 감출 수 있을 만큼 닫는 데까지 성공했다. 엄지손톱만한 공간만 남았을 뿐이었다. 바츠는 그 앞에 최대한 노출을 피하며 쪼그려 앉았다. 이대로 숨을 죽이고 있다면 놈이 그냥 지나쳐 제 갈 길을 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헤러티커는 소리에 민감했다.

“집사님, 말씀을 해주셔야죠.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겁니까?”

헤이즈가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로 물었다.

“이대로 잠깐이면 됩니다. 다들 안쪽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하세요.”

바츠는 헤이즈뿐만 아니라 모두를 향해 당부를 하듯 단단히 일렀다. 헤이즈가 이번에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구시렁댔지만 셀레나의 으름장을 늘어놓는 듯한 단호한 목소리가 그의 불만을 짓눌렀다.

“집사님이 시키는 대로 해요.”

셀레나가 사람들을 반대편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누가 들어도 엄살에 가까운 헤이즈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바츠는 그 소리에마저도 주의를 주고는 밖을 살피기 위해 눈만 빼꼼 내놓았다. 헤이즈의 바통을 이어받은 스텔라가 또 한 번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그레이가 그녀를 다독이며 진정시켰다. 바론은 조용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셀레나가 바츠의 등 뒤로 바짝 다가와 몸을 숨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바츠는 그녀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며 짧은 외마디 감탄사로 응대했다. 그리고는 이제는 계단을 따라 들려오는 기척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딘가 불편한지 느릿느릿 띄엄띄엄 들려오는 발소리였다. 가끔 바닥을 끄는 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거친 숨소리도 이따금씩 들렸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게 느껴졌지만 일정한 패턴을 가진 정확한 이족보행이었다.

바츠는 헤러티커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 특유의 썩은 내가 이제는 코앞에서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셀레나도 그 냄새를 맡았는지,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집사님, 우리 아들은 언제 찾으러 갈 수 있는 건가요?”

“스텔라, 집사님이 잠깐이면 된다고 했잖아요. 잠시만 기다려보자고요.”

“에이,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스텔라를 시작으로 그레이와 헤이즈가 한 마디씩 입을 열었다. 바츠는 고개를 황급히 돌려 그들을 검지로 가리켜 주의를 준 후, 다시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대며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못마땅한지 고개를 삐딱하게 움직이거나, 다분히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건들거리는 것으로 답했다. 마지못해 따라준다는 불만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바츠는 그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낄 수 있던 기척을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바츠는 당황스러웠다. 이미 다른 쪽으로 멀리 가버린 것인지 아니면 착각을 한 것인 헷갈릴 정도로 기척이 온데 간데 사라져버렸다. 지독한 냄새가 강하게 풍겨오는 것을 보면 틀림이 없었는데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 집사님?”

셀레나가 그런 바츠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바츠는 셀레나마저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는 것이 실망스러웠지만, 그녀마저도 뜻에서 멀어지면 곤란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숨죽여 말했다.

“잠깐이면 되요. 나를 믿어요.”

“집사님, 그게 아니라요...”

셀레나는 바츠처럼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지, 고개가 정면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턱을 들고 앞쪽 그리고 약간 위를 향해 비스듬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바츠는 그녀의 이런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밖을 훔쳐 본다기 보다는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됐다. 동시에 문밖 복도에 젖은 옷감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듯한, 질펀하고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문틈 사이를 내다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각종 먼지만 수북하던 복도에 낯선 물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익숙하지만, 직접 실물을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라 낯설다고 느껴지는 물체였다. 얼핏 사람의 발모양을 닮아있었으나 그보다는 훨씬 크고 골격이 눈에 띌 만큼 드러나 있었으며, 금속 빛이 도는 가죽에 그 끝에는 어른 엄지만큼 굵고 커다란 발톱이 달려있었다.

바츠의 머리 위로 너무 허기진 배속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와 시체 썩은 냄새와 유사한 악취가 커다란 바위처럼 쏟아져 내렸다. 바츠는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가까스로 그 충격을 이겨내며 들어 올리는 고개가 매우 힘겹게 느껴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셀레나의 시선이 향하고 있던 곳을 떠올리며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거기에는 잘려나갔는지 훤히 드러난 콧구멍을 반복적으로 킁킁대고, 추위에 떠는 것처럼 톱니 같은 이빨을 위아래로 부딪치며, 초점 없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고 있는 한 짐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츠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짐승은 자리에서 일어난 바츠도 턱을 들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셀레나의 손이 바츠의 한쪽 팔을 꾸욱 잡았다. 바츠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 떼어내며 속삭였다. 시선은 짐승에게서 떼지 않았다.

“사람들을 데리고 최대한 뒤로 물러나요.”

셀레나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헤러티커가 크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움직임을 붉은 눈으로 쫓았다. 바츠는 그 틈에 자신의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뒤늦게 그것을 감지한 짐승의 붉은 눈이 빠르게 돌아와 노려보았지만, 놀라기보다는 놈을 자극할 수 있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드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때늦은 스텔라의 비명소리가 방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건물은 물론이고 저 먼 곳에서도 들릴 만큼 모질고 날카로웠다. 헤이즈의 겁에 질린 욕설도 들려왔다. 그레이의 분명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목소리도 있었다. 바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소란은 헤러티커의 신경을 자극했다. 문 앞에 선 헤러티커의 입에서 스텔라의 비명소리를 집어삼킬 만큼 커다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셀레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들 뒤로 물러나요!”

바츠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등 뒤로 사람들이 황급히 몸을 피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각종 집기들에 몸을 부딪치는 소리와 바닥을 구르는 발소리, 그 발소리에 채인 물건들이 나뒹구는 소리가 한데 섞여 방안을 난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바츠는 그 혼란을 등에 업고 검을 뽑아들어, 문 앞에 선 헤러티커를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공간이 너무 협소했던 터라 칼끝이 한쪽 벽을 할퀴었지만, 문을 반으로 자르고 헤러티커의 피부에 닿는 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바츠의 칼날이 짐승의 흉부를 대각선 방향으로 아래서 위로 스치고 지나며 크게 원을 그렸다. 겨우 피부를 살짝 도려냈을 정도의 상처를 남겼지만, 헤러티커는 신체를 잃은 것 같은 분노에 찬 울음소리를 길게 내뱉었다. 비명소리가 아닌 고함소리였다. 바츠는 벽을 스칠 때 무리가 간 손목을 부여잡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칼날이 스친 벽면에 헤러티커의 가슴에 난 상처보다 훨씬 깊은 상처가 보였다. 바츠는 벽의 상처가 헤러티커의 가슴에 났어야 했다며 속으로 아쉬움을 삼켰다. 헤러티커도 그것을 느끼는지 또 한 번 길게 울부짖었다. 이번에는 정확히 바츠를 향한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둘 사이로 문이 부서져 내리며 까랑까랑한 소음을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소중한 관심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