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 시험 -- > * 82화 *
“집사님!”
셀레나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츠는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자세를 잡고 다음을 준비했다. 놈은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경악할 만큼 빠르거나 날카로운 움직임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느라, 사람의 몸통만한 팔로 윗부분을 지지한 채 몸을 구부린 후 통과하는 모습이 전혀 매끄럽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 금속 문짝들이 발목에 채이며 놈이 신체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도록 도왔다.
바츠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헤러티커가 안으로 몸을 다 구겨 넣기 전에,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심장을 노렸다. 손목에 뻐근한 기운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단단한 피부를 꿰뚫고 깊숙이 찔러 들어가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헤러티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바츠의 칼날을 남은 다른 팔을 휘둘러 간단하게 쳐냈다. 동시에 20cm에 달하는, 카니지에 뒤지지 않을 만큼 날카로운 손톱으로 바츠의 안면을 위협했다.
바츠는 상체를 뒤로 잡아당겨 가까스로 피해내고는 몸을 돌려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막 내딛는 놈의 다리를 사정없이 벴다. 생각보다 단단한 피부가 칼날을 튕겨냈지만, 그래도 충격이 있는지 살짝 균형을 잃고는 뒷걸음질을 치게 만들 수 있었다. 그 사이 뒤에서 셀레나의 지원 사격도 이어졌다. 그녀의 M16A4 소총이 연달아 5번 불을 뿜었다. 노크를 하듯이 짧지만 일정한 간격의 단발성 총성이었다. 바츠가 오른쪽으로 비켜서며 입구가 완전히 드러나자, 그녀가 그 기회를 노련하게 포착했다. 그녀의 총탄이 전부 헤러티커의 몸통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하지만 그 중 한 발은 놈이 뒷걸음질을 치는 바람에 옆을 스치고 지났고, 다른 두 발은 무심코 휘둘러지는 팔뚝에 가서 부딪혔는데, 마치 강철판에 사격을 한 것처럼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주변으로 튕겨져 나갔다. 결국 헤러티커에게 적중한 총알은 단 두 발뿐이었다. 각각 복부와 오른쪽 가슴에 명중했으나 그렇게 큰 충격은 주지 못한 듯 보였다. 복도로 다시 물러난 헤러티커가 총알에 입은 상처보다 자신의 걸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무릎의 충격을 더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바츠는 그 틈에 다시 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 헤러티커가 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방안에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놈이 중앙을 차지하고 손톱을 세운 양팔을 마구 휘둘러대면, 벽은 물론이고 바닥과 천장까지 놈의 손톱자국으로 가득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 광기어린 몸부림 끝에는 바츠를 비롯해서 방안에 모든 사람들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긴 흔적만 남겨질 뿐이었다.
바츠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어떻게 해서든 놈을 막아야만 했다. 놈을 절대 안으로 들여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버티고 서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이래서는 끝이 없었다. 오히려 지친다면 놈보다 자신이 더 먼저였다. 놈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장담도 할 수 없었다. 놈보다는 조금 나은 형편이지만 역시나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자신이 없었다. 고작 세 번 검을 휘둘렀지만 한 번은 너무도 간단히 무위로 돌아갔고, 다른 두 번은 보잘 것 없는 성과를 거뒀을 뿐이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놈의 무릎을 향해 휘두른 공격은 지난번 헤르만을 상대할 때와 비슷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프레이의 몸통에 칼을 박아 넣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고, 북쪽 기지국에서 아이기스를 상대로 검을 휘둘렀을 때와도 너무 달랐다. 차라리 헤르만을 상대할 때처럼 대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그 수가 전혀 없다고 판단이 된다면 기분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답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놈은 분명 정확한 일격이 가해졌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충격을 받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총탄마저도 거뜬히 견뎌냈다. 뭔가 벽을 마주보고 선 느낌이었다. 문제가 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다른 뾰족한 방법이 필요했다.
바츠가 생각이 많은 사이에 헤러티커가 신경 쓰이는 상처로부터 충격을 회복했는지 다시 한 번 접근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우직하게 몸을 구겨 넣지 않고 복도에 서서, 문을 가로 막고 선 바츠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마구 휘둘러댔다. 바츠가 몸을 피해 뒤로 달아나면 팔을 최대한 깊숙이 넣어서 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가 바츠가 입구에서 꽤 멀찍이 떨어지면 그제야 안으로 들어오려는 시도를 했다. 생각보다 영리했다.
바츠는 놈의 계획을 간파하고 문 앞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선 채,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팔을 대련을 할 때처럼 일일이 쳐냈다. 생각 같아서는 기회를 노리고 품안으로 뛰어들어 가슴팍에 칼날을 박아주고 싶었지만, 그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데다가 놈에게 제대로 된 상처를 낼 수는 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도 들기 시작해서 차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칼날과 수차례 맞부딪힌 헤러티커의 양 팔에는 눈에 띌 만한 상처는 보이지 않고, 자세히 눈을 씻고 찾아보아야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약간의 생채기만 남아났기 때문이었다. 놈의 피부는 상상 이상으로 단단한 것 같았다. 게다가 아까 무리가 간 탓인지 손목에 부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반응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놈은 그것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바츠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무슨 수를 찾아야만 했다. 힐끗 뒤를 돌아보자, 셀레나가 언제든지 사격을 할 수 있도록 입구를 조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스텔라를 품에 안고 있는 그레이가 보였고, 그 바로 옆으로 겁에 질려 다급한 몸짓의 헤이즈가 뒤쪽 창문을 확인해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유리도 없는 창문을 뛰어넘지 못하고 다시 몸을 돌려세우고 말았다.
“젠장! 물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바츠는 건물이 호수 쪽으로 기울어져 물에 잠겨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건물 뒤로 이어진 호수가 보기보다 훨씬 거대한 모양이었다. 생각이 복잡해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대로 버티고 섰다가 놈이 포기하고 돌아가길 기다리든지, 그 전에 자신이 쓰러지고 모두 놈의 먹이가 되어야 했다. 그게 싫다면 창밖으로 호수를 향해 뛰어들어야 했는데, 무엇하나 선택할 수 없었다. 놈이 포기하고 돌아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고, 놈의 먹이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살에 가까운 짓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물에 뛰어드는 건 헤러티커의 먹이가 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일이었다. 물속에 어떤 감염이 기다리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크루엘라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헤이즈가 고민도 없이 몸을 돌려세운 이유였다. 그는 오염된 물에 젖는 것보다, 비록 죽음이 예약되어 있지만 아직은 숨을 쉴 수 있는 이곳이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바츠는 초조했다. 검을 쥔 손도 슬슬 한계가 오고 있었다. 놈의 팔과 부딪칠 때마다 전과 다르게 충격을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지만,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셀레나가 놈을 향해 두 번의 사격을 더 가했다. 첫 발이 문 위쪽 벽에 그대로 꽂혔다. 놈의 머리를 노린 모양이었다. 바츠는 절로 탄식이 쏟아졌다. 조금만 밑을 조준했더라면 충분히 머리를 명중시킬 수 있었던 궤적이었다. 셀레나 역시 그것을 느낀 듯 했다. 그녀의 두 번째 총탄은 헤러티커의 이마로 정확히 날아갔다. 놈이 팔을 휘두르기 위해 어깨를 집어넣는 순간, 고개를 옆으로 빼내는 걸 놓치지 않았다. 문 위쪽 벽 바로 밑을 절묘하게 통과해서 완벽하게 명중했다. 바츠는 막 자신을 향해 날아온 놈의 손톱을 옆으로 쳐내며,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놈의 시선을 끄는 동안 셀레나로 하여금 치명상을 입힐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노련함이 너무 고마울 뿐이었다.
하지만 바츠는 검을 거두고, 웃는 얼굴로 돌아설 수 없었다. 막 옆으로 쳐낸 놈의 강건한 팔뚝이 전혀 변함없이 다시 또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바츠는 마음을 놓았던 탓에 미쳐 대비를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놈의 손톱을 피해 옆으로 몸을 날린 것이 고작이었다. 헤러티커의 손톱이 바츠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비켜지나갔다. 바츠는 가슴이 철렁하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집사님!”
셀레나가 바츠를 대신해서 놈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문을 향해 연속적으로 사격을 했다. 바츠는 그녀가 몇 발이나 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꽤나 많이 쏜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머릿속에는 당장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차올랐지만, 넋을 놓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바츠는 지체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헤르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생각을 드러내지 마라. 겁을 먹으면 그 감정이 온 몸으로 뿜어져 나온다.’
바츠는 다시 앞을 막아서며 자세를 취했다. 놈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럼 놈은 더욱 자신 있게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짐승들이 가진 특성이었다. 확신이 생기면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헤러티커는 조금 전 셀레나의 무차별적인 사격에 약간은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온 몸 여기저기에 못 보던 상처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이마에는 칼로 도려낸 것 같은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이쪽을 껄끄럽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츠만의 생각이었다. 셀레나의 총격을 받은 헤러티커는 충격으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치솟는 분노를 밖으로 끄집어내느라 잠시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놈의 붉은 눈이 더욱더 붉게 변해갔다. 더러운 이빨 사이로는 입안에 거품을 문 것 같은 끓는 소리가 낮은 울음소리로 새어나왔다.
바츠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자, 마치 놈의 등 뒤로 붉은색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붉은 기운이 채찍처럼 날아와 온 몸을 할퀴는 것 같았고, 정말로 온 몸이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지상의 밤이 가슴에 파고들었는지, 섬뜩한 기운에 소름이 돋았다. 날숨이 목구멍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목에 턱하고 걸렸다. 그리고 동시에, 악에 바친 바론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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