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 전주곡 -- > * 106화 *
그들의 시선이 바츠의 손에 들린 카니지를 향했다. 검에는 방금 전 사내의 혈액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바츠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검에 묻어있는 그 흔적을 한 차례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옮기고 말했다.
“내게 원하는 게 있나?”
바츠의 물음에 다들 침묵했다. 시선을 다시 끌어올려 바츠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바츠는 그들의 시선에서 복잡한 심경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의문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에 대한 불안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비록 고개는 앞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지만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좌우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앞을 당차게 막아선 행동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아래턱부터 앞섶에까지 진한 혈흔을 묻히고 있는 깡마른 사내와 갈색 곱슬머리에 이중 턱을 가진 여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 둘은 각각 무리 안과 뒤에 숨어서 바츠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츠는 캣을 좁은 방으로 다시 들여보내기 위해, 그녀를 슬며시 뒤로 밀어냈다. 그녀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 역시 따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바츠는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낸 후, 몸을 앞으로 돌려 그들에게 말했다.
“많이 굶주린 모양이군.”
바츠는 그들을 다시 돌아보자, 그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공포심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불안정한 눈빛 뒤에는 삶을 지속하기 위한 처절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을 보잘것없는 몸을, 억지로 이끌고 있을 만큼 굶주림에 지쳐있었다. 하지만 바츠는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두려움을 무릅쓰는 무모함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일 뿐이었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은 고작해야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전부였다. 이중 턱을 가진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헌터를 만나 본 적이 없는, 진짜 두려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저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해 본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헌터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소문만 들어봤을 것이다. 그들의 실수였다. 그들은 전혀 현명하지 못했다.
그 여인이 눈을 부릅뜨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외마디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앞을 가로막고 선 이들이, 그 괴성을 신호로 바츠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그들의 얼굴에는 땀 대신 겁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곧 흉기로 변모할 손에 들고 있는 각각의 무기에서 애절함이 느껴졌다. 바츠가 고분고분 쓰러져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바츠는 그들의 애절한 마음을 들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바츠는 그들의 신이 아니었다. 그들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면 어디든 베어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눈앞에서 펼쳐졌다. 바츠의 카니지가 그들을 차례로 베기 시작했다. 팔, 다리, 옆구리 등 모든 부위로 주저하지 않고 뻗어졌다. 그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비명과 울음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처음부터 그들이 바츠를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보통 사람을 헤치기에는 충분했지만 바츠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고, 신체조건 역시도 이미 크게 뒤져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비극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바츠가 스쳐 지나면, 무리에서 이탈해서 자신의 고통을 다양한 방법으로 삭혀야 하는 것뿐이었다. 찢긴 옆구리를 붙들고 소리 내어 울거나, 자신의 잘린 신체 부위를 들고는 바츠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또, 몇몇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고통을 질식시키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했고, 쇼크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즉사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간에 마주친, 입을 붉게 물들인 깡마른 사내만이 그런 노력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단 번에 목을 잃었다.
방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바닥은 유혈이 낭자했고, 주인 모를 신체 일부가 나뒹굴었다. 여기저기서 듣기 싫게 꽥꽥대는 소리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무리 가장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중 턱을 가진 여인만이 예외였다. 그녀만이 눈앞에 펼쳐진 비극 밖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그 비극의 끝자락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멀쩡하게 남아있는 사람이 그녀뿐 만으로 변해버렸다.
바츠는 가까운 곳에 떨어져 있는 주인 모를 팔에, 칼날을 뒤덮은 혈액을 깨끗이 닦아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로 다가가가 바로 앞에 마주보고 섰다. 그녀가 너무 놀라 감각을 잃어버렸는지, 손에 들고 있던 쇠 지렛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자신이 쇠 지렛대를 떨어뜨린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촉촉이 젖어가는 흔들리는 눈으로 바츠를 바라보기만 했다. 잡아먹을 듯이 부릅떴던 눈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바츠는 그녀가 아닌 자신의 슈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검은 슈트가 피칠갑으로 인해서 오늘따라 검붉게 보였다.
“살려주세요.”
그녀가 그런 바츠에게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세발자국만 떨어져 있어도 들리지 않았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바츠는 그 작은 목소리에서 애처로움을 느꼈다. 바츠는 물었다.
“내가 왜 그래야만 하지?”
“우리도! 우리도 사람입니다! 우리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에요!”
그녀가 비극 속에서 축복을 발견한 것처럼, 필사적으로 외쳤다. 필요하다면 무릎을 꿇어앉아, 바짓가랑이라도 붙들 것처럼 보였다.
“나와 같다고?”
“네! 그럼요! 물론입니다! 우린 다 같아요!”
그녀가 바츠의 슈트를 붙잡고 늘어지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놀라더니 황급히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들어 올린 손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들고 있다가, 한쪽 손을 바츠 뒤쪽을 향해 쭉 뻗으며 말했다.
“저기! 저기 저 여자도 결국 같아요! 그렇잖아요? 그렇죠? 우린 똑같이 생겼잖아요! 저도! 저도 방독면을 쓰면 영락없이 똑같다고요!”
바츠는 그녀의 손끝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다리지 못하고 어느새 밖으로 나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캣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쥔 채, 조심스럽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중간 중간 주위를 살피며, 바닥에 뿌려진 역겨운 흔적들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가끔은 발뒤꿈치를 들기도 했고, 앙증맞게 폴짝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바츠의 눈치를 살폈다.
바츠는 다시 시선을 옮겨 이중 턱을 가진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얼굴로 바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 봐요. 당신을 따라가고 싶어요.”
그녀가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안쪽으로 바짝 끌어 모았다. 그녀의 어정쩡하던 양손이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는 수줍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애써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눈물로 얼룩진 탐욕스런 얼굴은 그 바람을 조금도 그려내지 못했다. 오직 부풀며 터질 것 같이 변하는 자신의 농익은 가슴에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만 그려졌다. 바츠는 그녀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느꼈지만, 정작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녀의 알몸이 아니었다. 헤러티커를 피해 달아난 와중에도, 뒤에 숨어서 캣을 겁탈하고 있던, 그 거대한 사내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바츠는 이미 숨진 그였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 한 무리를 전부 몰살시킬 수 있을지 모르는 괴물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성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눈앞에서 자신의 가슴을 자랑하듯 내세우는 그녀에게서도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녀의 수줍은 미소가 간사하고 요사스럽게 보였다.
바츠는 그 사이 바로 옆으로 다가온 캣과 함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중 턱을 가진 그녀는 그냥 외면했다. 그러자 등 뒤로 그녀의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바츠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세우며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난 너와 다르다.”
바츠의 돌아서는 몸은 검을 들고 있던 팔을 손쉽게 휘두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돌아서는 몸을 따라, 손에 들고 있던 카니지가 그대로 크게 휘둘러졌다. 그녀의 목은 깨끗이 잘려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녀의 몸뚱이는 비극의 언저리에서 비극의 안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바츠는 그 모습을 지켜보자, 긴장감이 풀어졌는지 몸이 밑으로 쭉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옆에 있던 캣이 용케 눈치 채고, 자신의 한쪽 어깨를 바츠의 겨드랑이 사이로 집어넣지 않았더라면 현기증을 느낄 뻔 했다. 하지만 바츠는 애써 내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그녀를 차갑게 떼어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호의가 왠지 불쾌하게 다가온 까닭이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밖으로 옮기는 걸음에 평소보다 좀 더 힘을 줘 걸을 뿐이었다. 얼른 전진기지로 돌아가, 씻고 자리에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바츠의 간절한 바람은 고작 두 발자국을 내딛는 것으로 산산 조각나 버렸다. 밖에는 계단은 물론이고 양쪽으로 쭉 이어진 난간에 40명 가까운 야인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더러운 몰골과 하찮은 무기를 손에 들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일부는 옷도 제대로 없어서 헐벗은 상태였다. 처음 계단을 오를 때 3층에서 눈이 마주쳤던 그 여자도 보였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전혀 물러설 기색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목격하고도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탐욕이 두려움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들이 바츠를 살해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엄청났다. 당장에 굶주림은 물론이고, 바츠의 소지품들을 내다판다면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운 좋게 풍족한 칼맨을 만난다면 한동안 굶주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다음 강도짓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는 제대로 된 무기도 얻을 수 있었다. 이들에게 바츠는 엄청난 모험이자, 대단한 행운인 셈이었다. 많은 수가 한 데 모여 있는 것이 이들의 탐욕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역시 헌터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바츠는 눈앞에 몰려든 이들보다는, 갑자기 이마 한쪽에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생겨나는 것이 더욱더 신경 쓰였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에나 느껴지는 그런 통증이었다. 바츠는 자신이 이들에게서 위협을 느꼈다고 생각이 드니 괜히 우스웠다. 아마도 지친 몸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감기 기운이 감각 일부를 고장 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씁쓸한 웃음을 삼키던 바츠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싼 이들 너머로, 저 멀리 1층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바츠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의 감각이 아직은 멀쩡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의 붉은 눈은 바츠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기에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는 바로 사람을 꼭 닮은 괴물, 헤러티커였기 때문이었다. 놈이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포만감을 느끼기에는 아직 부족한 눈치였다.
바츠는 카니지를 거꾸로 쥐고는 캣을 망토 안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서둘러야겠어. 너무 지체한 것 같군.”
바츠는 캣을 그대로 한쪽 팔로 들어 올리고는 주위를 에워싼 야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갑작스런 상황에 일제히 움찔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뜻밖의 상황에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다들 우왕좌왕하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바츠는 그들이 가로막고 있는 그 어떤 곳으로도 향하지 않았다. 바츠가 원하는 곳은 올라온 계단 옆에 있는 투명한 관,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바츠는 그곳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는 그 안으로 몸을 집어던졌다. 안이 텅 빈 투명 관이 바츠와 캣을 밑으로 빠르게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이대로 지면에 닿는다면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낙하속도를 줄여야할 필요가 있었다. 바츠는 거꾸로 진 검을 관을 향해 꽂았다. 유리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관이 유리처럼 단 번에 깨지지 않고, 쩍쩍 갈라진 뒤에 하나 둘 무너져 내렸다. 유리와 닮아있었지만, 유리와는 조금 다른 재질이었다. 좀 더 탄력이 있었다. 부서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했다. 덕분에 추락하는 몸의 가속을 줄이기 위한 마찰력은 좀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홀을 가로질러 계단을 신속하게 오르기 시작한 놈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로부터 아주 잠시 후, 지면까지 2m 가량을 남겨두고는 지면에 닿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바닥 위로 거칠게 부딪혔다. 지금까지 통과해서 내려온 투명한 관과 똑같은 재질로 보이는 바닥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단단하고 질겼다. 낙하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 위로 주저앉듯 쓰러지는 바츠의 무게를 그대로 견뎌냈다. 심하게 움푹 파이기는 했지만, 더 이상의 추락은 없었다. 동시에 캣의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뼈가 부러진 것처럼 끔찍한 고통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직접적으로 바닥에 닿지 않고, 바츠에 의지한 후에 떨어진 탓에 특별히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그저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바츠는 얼른 몸을 일으켜, 그런 그녀를 망토로 자신과 함께 한 번에 감싸며 그녀 위로 몸을 포갰다. 그러자 머지않아 그 위로 투명 관의 잔해들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바츠는 등 뒤로 쏟아지는 잔해를 느끼며, 투명 관이 유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바츠의 등 뒤로 쏟아져 내리는 것은 투명 관의 잔해뿐만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비명도 함께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절망에 젖은 울음소리였다.
캣이 그때까지도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며 바츠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이중 턱을 가진 여인과 다르게 매우 맑았다. 그녀가 말했다.
“괜찮으세요? 몸이 굉장히 뜨거우세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바츠는 차갑게 대꾸하고는 그 상태로 뒤를 향해 발길질을 해서 끄트머리에 남은 투명 관을 완전히 부쉈다. 그리고는 그녀를 밑으로 내려주고, 그녀와 함께 홀을 나란히 걸었다. 위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그때까지도 계속되었다. 건물 안에는 그들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그들이 울부짖는 목소리와 함께 가득 메아리쳤다. 천장에서부터 뿌려지는 빗물과 함께 여기저기로 뿌려졌다. 하지만 내부에 뿌려지는 것은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붉은 빗물. 바츠의 검은 슈트를 검붉게 만들었던 그 붉은 빗물도 함께 뿌려지고 있었다. 가끔은 주인을 잃고 달아난 물건들이 주인을 대신해서 도망쳐 오기도 했다. 바츠는 그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이는 캣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콧김을 잘라서 내뱉으며 웃고 말았다. 캣은 그런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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