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 상상력 -- > * 138화 *
바츠는 태연하게 묻는 그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맨 처음부터 이미 잔뜩 불안해하고 있었다. 건물 내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이제 와서 이들이 그 불안을 표현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미안하군. 안타깝게도 난 혼자다.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지.”
“그럼 집사 혼자 군인 하나를 데리고 왔다? 벌벌 떨고 있는 군인을? 이거야 말로 더 놀라운 일이군.”
바츠의 말이 정말 뜻밖인지 그의 얼굴에 호기심이 차올랐다. 주변을 돌아보며 일행들의 반응을 살펴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일행들은 그가 쭉 둘러보기 전까지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그의 시선이 지나가자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을 뿐이었다. 그 사이 그가 점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다는 것이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한 차례 자세를 고쳐 앉기까지 했다. 매우 거만한 태도였다.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눈치만 살피던, 그를 담당한 것으로 보이는 접대부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여유도 보여주었다. 바츠는 그의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상당히 거슬렸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잘못된 것이라도 있나?”
“아니, 내가 알기로 집사는 헌터에 미치지 못한다고 들어서 말이지.”
그가 너스레를 떨 듯 말을 툭 내뱉으며 대꾸하고는, 고개만 돌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입술 한쪽이 찢긴 사내를 향해 슬쩍 눈치를 주었다. 그는 그때까지도 자신의 접대부 가슴에 얼굴을 쳐 박은 채 그대로 경직되어 있었다. 접대부의 가슴과 복부는 물론이고 허벅지에까지 그의 침으로 흥건했다. 하지만 그가 눈치를 보내오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고개를 좌우로 털어냈다. 그의 눈치를 바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를 향해 의아한 표정으로 눈썹을 들썩였다. 자신에게 보내온 신호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가 턱을 살짝 까딱여 다시 한 번 신호를 주자, 갑자기 용기를 얻으며 비아냥거렸다.
“집사들은 헌터들의 성욕도 해소해준다던데, 여자는 그렇다 치고 남자들 것은 어떻게 해소해 주나? 뒤를 주나 위를 주나?”
아마도 그가 망설인 이유는 콧등에 흉터가 있는 사내의 말보다는 바츠가 집사라는 사실이 더욱 신경 쓰였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바츠가 혼자 왔다는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콧등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자꾸만 떠밀자, 그를 믿고 오기를 부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게 만들 만큼 치졸한 표정으로 도발을 해왔다. 덕분에 바츠는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둘을 시작으로 그의 일행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일부는 어느 틈에 테이블에 양손을 대고 일어난 사내를 뒤에서 안으며, 방금 전 그의 말을 재현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그 웃음은 장내 전체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시끌벅적함이 남겨두고 떠난 침묵이 웃음소리로 인해 전부 내쫓겨버렸다. 더그만이 유일하게 웃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충분한 실탄을 가지고도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들이 두려운 것인지, 헌터가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바츠는 그를 내버려두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대꾸했다.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는군. 그건 나중에 네가 헌터가 되어서 확인하도록 하라고. 내가 묻고 싶은 말에 대한 대답은 그게 아니니까.”
“뒤를 많이 주면 변이 질질 흐른다던데, 어디서 똥냄새가 나나 했더니 이제야 알 것 같군!”
바츠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의 도발을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완전히 마음이 놓이는지, 질 낮은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무릎 위에 앉힌 접대부 때문에 몸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엉덩이만 살짝 들어서 살랑거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은 장내를 또 한 번 웃음바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더 이상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즐거움이 묻어나는 음흉한 얼굴로 자신의 접대부에 가슴을 입으로 마음껏 탐닉할 뿐이었다. 중간에 바츠의 눈치를 살피기는 했지만, 전과는 전혀 달랐다. 두려움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자신의 가슴을 그에게 내준 접대부만 죽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불안한 미소를 입에 걸고는, 바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두려움에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콧등에 흉터가 난 사내가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았다. 그 역시도 두려움을 잊은 지 오래였다. 이제는 바츠보다도 자신의 접대부에 더욱 관심을 쏟았다. 바츠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방독면을 벗어서 벨트에 걸고, 한손으로 테이블을 지탱하며 상체를 그들 쪽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뭐야, 애잖아.”
다들 목소리에 놀라움이 묻어났다. 주변은 물론이고 2층에서도 들려왔다. 일부는 바츠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을 정도였다. 그리고 눈앞에 앉아있는 사내들의 여유는 그 놀라움만큼 더욱더 커졌다. 바츠는 그들에게 느릿한 목소리로 힘을 줘서 말했다. 정확히는 접대부의 가슴을 입으로 빠느라 정신없는, 한쪽 입술이 찢긴 사내였다.
“내가 장담하지. 네 놈의 그 더러운 이가 또 한 번 내 눈에 띄면, 그때는 그 젖꼭지를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야.”
“젖꼭지를 꼭 이로만 깨무는 줄 아나? 하긴 아직 어린놈이 뭘 알겠어! 내가 대신 가르쳐 주고 싶군!”
그의 도발은 멈추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며 호응을 유도하기까지 했다. 호응은 그의 계획대로 충분하게 돌아왔다. 웃음소리가 다시 터져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몇몇은 그를 향해 입술을 뻐끔거리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역시도 그런 그들을 향해 입술을 뻐끔거리는 것으로 응답했다. 바츠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그가 처음처럼 긴장하지는 않더라도, 진지한 모습을 찾는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지상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말을 멍청하게 하는군. 왜 다들 그렇게 빈정거리는 걸 좋아하지? 그것만 아니라면 더 오래살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방금 들었어? 멍청하게란다! 내가 빈정거리고 있단다!”
그는 바츠가 준 마지막 기회를 잠깐의 고민도 없이 그냥 날려 버렸다. 애초에 그것이 기회인지도 모르는 듯 보였다. 그는 처음부터 눈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웃는데 바빠서, 조금 전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전혀 몰랐다. 바츠는 자신을 비웃으며 더러운 이를 환하게 드러내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보자, 이 이상의 기다림은 헛수고라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건네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발마저도 꺼내들었다. 자신의 도발에 스스로 취해서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어디서 이런 샌님이 굴러와 가지고는 야부리를 터실까? 이 병신 같은 새끼가!”
바츠는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카니지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카니지를 쥔 팔을 뒤로 잡아당겼다가 있는 힘껏 앞으로 쭉 뻗었다. 칼날은 내내 도발을 이어가던 사내를 향해 정확히 나아갔고, 그는 바츠의 칼날을 더러운 입으로 받아냈다. 무려 두 번, 최대 세 번의 동작이 이어진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는 날아오는 칼날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저 겁을 상실한 자신의 입이 칼날을 마중하는 것을 지켜만 보아야 했다. 어쩌면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바츠의 움직임은 그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접대부는 물론이고, 이쪽을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쫓아오지 못했을 만큼 빨랐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가장 먼저 인지한 것은 그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접대부였다. 순식간에 밀려든 고요 속에서 그녀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츠가 검을 거두는 동시에 쏟아져 내리는 붉은 피는 물론이고, 부러진 이와 잘린 혀까지 그녀의 무릎 위로 전부 토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거의 날다시피 그의 무릎에서 빠져나와, 바로 옆 가장 가까운 벽을 등으로 기어 올라가려는 것처럼 마구 부대꼈다. 자칫했다가는 벽을 뚫고 그대로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 사이 바츠의 칼날을 입으로 받은 사내는 상체를 휘청이고는, 앞에 놓인 테이블 위로 얼굴부터 머리를 떨어뜨렸다. 테이블은 그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금세 붉게 물들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운 것도 그때였다. 이미 지칠 때로 지친 그의 접대부가 비명을 더 이상 지르지 못하는 사이, 사방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남자들이 기겁하며 숨을 넘기는 소리도 들렸다. 바츠는 내부를 수놓은 갖가지 비명소리를 즐기며 테이블 위에 엎어진 그에게 말했다.
“헌터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배운 적 없나? 이상하게도 나를 두려워하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겠더군. 그 이유가 혹시 뭔지 아나? 꼭 나중에서야 두려워하더란 말이야.”
“다, 당신에게서는 피비린내가 나지 않아요. 헌터들은 멀리서부터 썩은 내를 진동하며 오죠. 씻지 않은 구린내와는 전혀 다른 냄샙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그 특유의 살의가 없어요. 우린 바보가 아닙니다. 다들 잔뼈가 굵었죠. 당신이 다른 헌터들과 다르지 않았다면 이런 무례는 없었을 겁니다.”
대답은 콧등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대신했다. 그는 표정은 물론이고 목소리에도 다시금 두려움과 긴장감을 되찾아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랬군. 그러니까 내가 우스웠다는 소리잖아?”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모자라서 착각한 겁니다! 우린 다들 머저리들이거든요!”
그가 바츠의 말에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가슴을 주무르던 접대부는 옆으로 밀쳐버렸고, 양손을 공손하게 자신의 가슴으로 앞으로 모아, 자신의 진심을 주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바츠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집사가 헌터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나 역시 궁금한 말이군. 난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라서 말이야.”
“자, 잘못 기억하시는 겁니다! 감히 어떻게 검은 슈트를 입은 분들께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오, 오해입니다! 오해!”
“그런가? 그럼 우리 다시 한 번 하도록 하지. 집중하라고. 그리고 서로 존중했으면 좋겠군.”
바츠가 주변을 모두 타이르듯 어르는 말투로 말하자, 콧등에 흉터가 있는 사내를 비롯해서 일행 전부가 숨을 죽이고 바츠의 입술로 시선을 고정했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들은 보여주는 태도와 다르게, 그 와중에도 눈동자를 굴리며 서로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잔뜩 겁을 집어먹었으면서도 여전히 뭔가를 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름 들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었지만, 바츠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바츠는 그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눈치를 주고받고 모습에, 괘심함보다는 한심함을 느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키예프 시티에서 보았던 야인들처럼 항상 자신보다 작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혀왔기 때문이 틀림없었다. 바츠는 그것을 애써 모른 척하며 콧등에 흉터가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이제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같군. 다들 착하군. 자, 그럼 이제 대답해봐. 칼리굴라에 대해서 잘 안다지? 이번에 10살 쯤 되는 여자아이를 본 적이 있나?”
“네...우린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죠...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네가 여기서 뒈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그가 바츠를 향해 외침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 모를 작은 총을 꺼내 바츠의 얼굴에 겨눴다. 전에 키예프 시티에서 보았던 칼리에가 지니고 있던 총과 매우 흡사한 생김새였다. 회전식 약실을 가지고 있었고, 공이가 뒤쪽으로 돌출 되어있었다. 다만 그때에 비해서 총신이 조금 더 길뿐이었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공이를 젖힌 후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히는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도 당길 수가 없었다. 총을 든 그의 손은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전에, 테이블 위로 총과 함께 추락했기 때문이었다. 바츠의 칼끝이 그가 팔꿈치 밑으로 자신의 팔을 잃게 된 것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바츠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가 통증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오른편으로 앉아있던 두 사내의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후려치듯 검을 휘둘러 차례로 두 동강을 내버렸고, 그 사이 버려진 쇠를 별러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뭉툭한 칼과 얇고 가느다란 검은색 사슬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반대편 두 사내 역시 몸을 돌려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그의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눈앞에서 4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동안, 그는 자신의 잘려나간 상처를 부여잡으며 뒤로 주저앉는 일만 할 수 있었다. 얼마나 경황이 없었는지 의자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을 정도였다.
바츠는 그런 그를 내버려두고, 몸을 완전히 돌려세웠다. 그러자 이제 막 상황을 파악하고 정신을 차리는 더그가 보였고, 크게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10여명의 사내들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손에 제대로 쥐지도 못하고, 당황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더그는 그들 중 누구 하나를 제대로 겨누지 못하고, 혼자서 바쁘게 타겟을 계속해서 바꿨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난잡하고 어지럽게 변했는데, 사람들은 도리어 얌전해졌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한쪽 팔을 잃은 그의 신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바츠는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 하얀색 해골 표시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오늘 여기서 모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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