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 상상력 -- > * 144화 *
건물 내부는 지저분하고도 심란했다. 단순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각종 고철이나 집기들이 폐기물로 변한 모습은 지상에서 매우 흔한 것이었다. 때때로 그것들은 통행을 막기 위해 방벽이 되어있기도 했고, 그저 그런 쓰레기 더미이기도 했다. 이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들어서자마자 양옆으로 일부 무너져 내린 천장의 잔해들이 보였다. 무릎 높이까지 수북이 쌓여있었다. 여기저기 잡다한 폐기물 더미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건물이 통째로 흔들렸던 것처럼 매우 난잡한 모습들이었다.
“너무 넓은 데요...”
더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샬롱을 떠나온 이후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입구 앞에서 진정시킬 때만 해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 따위의 제스처가 전부였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떨림이 남아있는 목소리였지만 약간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새 마음이 꽤 진정된 모양이었다. 추위를 직접적으로 피해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바츠는 그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어느 정도 수긍을 했다. 눈앞에 보이는 홀만 해도 아르크의 검술훈련장만큼 넓었고, 그 외에도 양쪽으로 난 좁은 복도들이 제법 깊어보였다. 게다가 밖에서 보았을 때, 적어도 20층 이상 높이의 건물이었으니 그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만 했다. 건물을 살피려면 날을 새는 것으로도 부족해 보였다.
“숙박시설이었대요. 사람들이 돈을 내면 방을 빌려주는 거죠. 당신들에게는 낯설겠죠? 나에게도 익숙한 곳은 아니에요. 여기에는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뿐만 아니라, 음식점은 물론이고 술집이며 잡다한 것들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던 곳이라고 하니까요. 호텔이라고 들어봤어요? 그게 바로 여기에요.”
조시안느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녀 역시 추위를 조금 떨쳐내자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바츠는 그녀 말대로 이곳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학교를 다닐 때 역사 시간에 과거 건축물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그때 몇 번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아르크에는 전혀 없는 구조였다. 특히나 돈을 주면 방을 빌릴 수 있다는 건, 참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아르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르크 주민들에게는 모두 자신이 거주할 수 있는 집이 주어진다. 보통은 전혀 부족함이 없는 크기의 공간들이다. 굳이 돈을 주면서까지 더 많은 주거장소를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문화였다. 그 문화를 당시에는 대실이라는 말로 불렀다고 배운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지상에 나오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 필요성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옛날 사람들은 여행을 위해 집에서 멀리까지 갔었다고 하니,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배웠다. 어찌 보면 참 영리한 방법이었다.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멀리는 키예프 시티까지 그리고 가깝게는 기지국까지 가는 동안 머물 공간이 필요했었다. 밤은 춥고 비라도 내리면 끔찍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약간의 돈을 지불하는 것만으로, 그 시련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안락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이용할 만한 충분한 값어치가 있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정말 좋은 문화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문화의 흔적이 이렇게 거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모두 스물 넷 층으로 되어있지만 5층까지밖에 못 올라가거든요. 그 이상은 전부 무너진 잔해들로 통로가 꽉 틀어 막혀 있죠.”
조시안느가 먼저 중앙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더그와 비교하면 한가롭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정말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나오는 자신감 같았다. 하지만 바츠 역시도 이곳의 엄청난 규모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난번 키예프 시티에서 보았던 건물에 비하면 크게 헤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이곳은 통로들이 상대적으로 매우 좁았고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기껏해야 2, 3미터밖에 되지 않는 콘크리트 천장과 적당한 간격으로 세워진 굵직한 기둥들이 폐쇄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로인해 생각했던 것보다는 좁게 느껴졌다. 키예프 시티에서 보았던 그 건물이 분명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크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허허벌판처럼 느껴졌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모두 그곳의 매우 높은 천장과 널찍하고 휑한 중앙 홀 때문이었다.
어쨌든 바츠는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따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착실하게 통로만 따라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넘치고 있는 조시안느가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그녀를 믿어볼만 한 것 같았다.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처음 겪는 더그와는 달랐다. 대신 내부 분위기 자체에 더 주목했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분위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자신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었다. 게다가 바로 전에는 나름대로의 소란도 있었고, 뒤늦게라도 경각시킬 수 있는 경보음도 있었다.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변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지 않은 상황이었다. 늘 그랬다. 자신을 발견하면 혼비백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매우 차분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작은 인기척들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현재 머물고 있는 층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아니었다. 전부 위층 어딘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멀리 정면으로 보이는 계단 앞의 바리케이드 앞도 텅 비어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여러 집기들과 잔해들로 허리높이의 담을 쌓아둔 것이었는데, 한 눈에도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1차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장소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비어두고 있었다. 조시안느가 자신감 있는 걸음으로 중앙을 향해 유유히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적어도 계단의 폭이 3미터 가까이 되는 것을 감안하며 꽤나 많은 손을 필요로 해서 쌓아올린 것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무용지물이었다. 사람의 자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바츠는 그녀의 뒤를 따라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시선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감각을 바짝 끌어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떠한 돌발 상황에도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더그가 그 뒤를 쫓았다. 뭔가 혼잣말로 계속 웅얼거리고 있었는데, 너무 작은 소리라서 잘 들리지는 않았다. 신경을 온통 주변으로 쓰고 있어서 더더욱 어려웠다. 아마도 다시 피어나는 긴장감에 자신도 모르게 군소리를 내뱉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를 따라오던 더그가 바츠의 어깨를 슬며시 두드려왔다. 뭔가 다급하게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바츠는 돌아서자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집사님,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바츠는 그의 손끝을 따라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곳에는 검은 얼룩이 있었는데, 그 얼룩들이 주위에 꽤나 많았다. 시선을 넓게 만들면 바닥 전체에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전부 사람의 발자국으로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것들이었다. 물기로 인해 먼지가 엉기며 생겨난 흔적들로, 얼핏 보아도 상당히 바쁘게 움직인 티가 역력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조시안느가 뒤늦게 둘을 발견하고는 돌아와서 물었다. 바츠는 그녀에게 더그와 똑같은 행동으로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신경을 곤두세워 주위에 집중했는데, 별안간 한쪽 구석에서 재채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계단 오른편으로 보이는 복도 쪽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더그와 조시안느 역시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둘의 고개가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바츠는 그런 둘에게 말했다.
“가까운 곳으로 몸을 숨겨요.”
둘은 이번에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동시에 바츠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윽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가까운 기둥과 잔해 더미 뒤로 몸을 날렸다. 바츠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서둘러 가까운 기둥 뒤로 몸을 완전히 밀착시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재채기가 들려온 복도 쪽은 물론이고, 왼쪽으로 난 복도와 정면 계단 위에서도 들려왔다. 적어도 10여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몰려와서는 입구 쪽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더그가 가진 크기의 소총부터 조시안느가 가진 권총까지 다양한 종류의 화기들이 불을 뿜었다. 넓은 홀 안이 삽시간에 화약 냄새로 가득 찼다. 하지만 바츠는 그 화약 냄새 따위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빗발치는 탄환들이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콘크리트 잔해들이 부서지며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튀겼고, 바닥과 천장에는 크고 작은 탄환의 흔적들이 급속도로 생겨나고 있었다. 차분히 눌러앉아있던 뿌연 먼지들은 신이 나서 날아오르고, 건물의 비명소리와 끊이지 않는 폭약소리가 귀가를 맴돌았다. 건물 전체가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고막뿐만 아니라 온 몸이 얼얼한 지경이었다.
그 사이 바츠는 기둥 뒤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더그와 한쪽 잔해 더미 뒤에서 움츠려 앉은 채, 눈을 감고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조시안느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살짝 돌려 얼굴 끝만 내밀어 앞쪽을 살폈는데, 처음에는 복도 왼쪽 그 다음에는 오른쪽, 마지막에는 정면 계단이었다. 정면 계단에는 대여섯 명이 있었다. 층계참에 두 명이 무릎 쏴 자세로 소총을 사용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바리케이드 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복도에는 세 명이 전부 복도 입구 코너를 이용해 몸을 숨기고 있었고, 왼쪽 복도에는 두 명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왼쪽 복도의 두 명은 한 사람이 소총을 가진데 반해 나머지 한 명은 작은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마저도 잘 작동이 되지 않는지, 몇 번이나 약실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더그!”
바츠는 잔뜩 긴장한 채 얼어붙은 더그를 불렀다. 그는 자신의 소총을 품에 안은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종 소음 때문에 바츠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듣지는 못했다. 서너 번 더 반복해서 불러지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바츠는 그런 그에게 손짓으로 자신이 왼쪽 통로를 제압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자신이 달려 나갈 때, 오른쪽 복도와 중앙 계단을 향해 차례로 엄호사격을 하며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위험한 일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대로 여기에 계속 머물다가는 더 많은 적들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하지만 더그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당혹스런 눈빛으로 바라만 볼 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공포심으로 온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그를 다독여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바츠는 굳이 그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저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을 추슬렀다. 그리고는 놈들 중 일부가 탄약이 떨어지거나 탄창을 교체하기 위해 잠시 기세가 꺾이는 틈을 기다렸다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걱정 말아요!”
바츠는 왼쪽 복도를 향해 뛰쳐나가며 뒤에서 들려오는 조시안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용케 자신이 더그에게로 보내던 수신호를 본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날아오던 폭약소리가 이번에는 전혀 다른 쪽에서도 날아들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걸 보면 그녀가 틀림없었다. 그녀가 중앙 계단 쪽을 향해 자신의 9mm권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놈들 근처에도 미치지 못해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형편없는 사격솜씨였지만 지레 겁을 먹도록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중앙 계단 쪽에 있던 놈들이 놀라서 몸을 숨기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뒤이어 그녀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도 들렸다. 바츠는 이제야 조금 마음을 놓으며 왼쪽 복도에 있던 놈들에게로 집중했다.
그들은 바츠가 달려오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이미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소총을 들고 있던 사내는 다 쓴 탄창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자꾸만 손이 미끄러지며 그 간단한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고, 뒤에서 내내 고장으로 애를 먹고 있던 권총을 든 여인은 앞에서 허둥대는 사내의 팔을 뒤쪽으로 잡아끌기 위해 노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 모두 두 눈이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바츠는 그 둘에게 조금의 인정도 베풀지 않았다. 자신이 바로 앞에 다가왔을 때 비로소 탄창을 빼낸 그는 달려들던 속도를 유지한 채 어깨부터 반대쪽 옆구리까지 단 번에 베어버렸고, 그런 그의 피가 가까운 벽으로 뿌려지는 것을 지켜본 후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놀라는 여인은 급격히 몸을 세우며 단숨에 검을 가슴 깊은 곳까지 꽂아 넣어버렸다. 둘이 제대로 된 저항을 하기도 전에 살해해 버린 것이었다. 그 사이 조시안느가 바로 옆으로 도착했고, 더그는 그제야 오른쪽 복도와 중앙 계단을 향해 단발로 몇 차례 사격을 가하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 역시 빼어난 사격솜씨를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그들이 또 한 번 놀라며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조시안느가 그런 그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바츠는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서둘러 둘을 복도 안쪽으로 이끌었다. 놈들이 다시 사격을 해오기 전에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얼마 달리지 않았을 때, 엘리베이터로 보이는 문 바로 옆에 두꺼운 금속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츠는 그것을 지나치고 더 안쪽을 향했는데, 조시안느가 황급히 걸음을 멈추며 불러 세웠다. 그녀가 말했다.
“이쪽으로 가면 계단을 통해서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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