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 상상력 -- > * 147화 *
그녀는 복도를 따라 쭉 달렸다. 자신만만했던 대로 거침없는 발걸음이었다. 바츠는 그런 그녀에게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얼굴을 정면에 고정하고 달리는 모습이 그런대로 믿음을 전해주었다. 더그와 함께 나란히 그녀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코너를 한차례 돌았고, 전 층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구조의 복도로 접어들었다. 양쪽으로 방이 늘어선 그런 복도였다. 지금까지 봐온 곳들 중에서 가장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각기 다른 표시들이 개성을 뽐내고 있었고, 그 앞에는 크고 작은 물건들이 사람들의 흔적임을 말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여전히 지저분했지만 나름대로 정돈이 되어있는 느낌을 준다고 해야 했다. 놈들의 생활공간으로 보였다. 중간쯤 지날 때에 막 잠에서 깬 듯한 꼬마 아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문을 열고나오며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뒤에서 한 여인이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문을 닫아버렸지만,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조시안느는 이 복도마저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끝에서 코너를 돌았고, 바로 이어지는 커다란 공간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섰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전에 보았던,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의 텅 비어있던 그 거대한 공간과 유사한 곳이었다. 바깥쪽 벽면 전체가 모두 유리로 되어있었다. 곳곳에 균열과 일부 깨진 곳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시안느는 그 안으로 달려 들어가며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봐요! 여기라고요!”
바츠는 그녀를 따라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입구 위쪽에 지금은 크게 훼손되어 절반 밖에 남아있지 않은 명패를 볼 수 있었다. 표면이 반들반들한 석재였는데, 그곳에 라운지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조시안느의 샬롱과 꽤 닮은 곳이었다. 한쪽에는 샬롱에서 보았던 바보다 더 길고 넓은 카운터가 자리하고 있었고, 많은 수의 테이블과 의자들도 늘어놔 있었다. 샬롱을 규모면으로 월등히 앞질렀다. 한 번에 적어도 100여명은 너끈히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이 본래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저기 남아있는 철제 구조물들이 그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분위기와 구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아주 오래 전 실내 장식을 목적으로 쓰였던 흔적들로 보였다.
“여기만 지나서 가면 바로 있다고요!”
그녀가 달리던 걸음을 유지한 채 또 한 번 소리쳤다. 이번에는 자신만만해진 얼굴로 돌아보기까지 했다. 바츠는 그녀가 돌아보는 모습을 보고는 덩달아 고개를 뒤로 돌렸다. 더그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미 이곳까지 달려오는 동안 몇 번이나 반복했던 행동이었다. 그는 여전히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오고 있었다. 계단에서 그가 굴렀던 사실이 내심 마음에 걸렸는데, 뛰는데 큰 지장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이 그 뿐만은 아니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지나온 복도에, 한 발 늦게 모습을 드러내던 놈들에게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놈들은 추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라운지로 들어서며 돌아보는 바츠의 시선에 열심히 쫓아오는 더그의 어깨너머로, 그들이 막 코너를 돌아 복도로 꺾어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빠른 이동으로 인해서 뜸해졌던 총성마저도 들려왔다. 그들 중 누군가가 막 복도를 돌아나가는 더그의 뒷모습에 사격을 한 것 같았다. 전혀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긴장감을 더해주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바츠는 그 사실을 통해 라운지를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에, 놈들의 시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방금 지나온 복도에 비해서, 반대쪽에 보이는 출구는 상대적으로 너무 멀었다. 절반 정도 지날 쯤에는 놈들이 퍼붓는 총알을 무더기로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멈춰!”
바츠는 앞서 가던 조시안느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가까운 철제 구조물 뒤로 몸을 숨겼다. 근처의 테이블들을 발로 차 넘어뜨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더그가 그런 바츠의 옆으로 착 달라붙어왔다. 조시안느는 급히 멈춰서며 균형을 잠시 잃었다가, 단 번에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약삭빠르게 바로 옆 바를 이용해 몸을 숨겼다. 그러자 머지않아 놈들이 라운지 안으로 들이닥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약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갔다면 예상했던 대로 놈들에게 뒷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할 뻔했다. 그런데 그건 그들 역시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들도 그 사실을 예상했는지 더 이상 쫓아 들어오지 않고, 입구 앞에 멈춰 서 질서 없는 대형을 갖추더니,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나름대로 신속하게 자리를 잡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리 이야기가 오갔던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시끄러운 총성은 라운지를 삽시간에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테이블들은 맥을 못 추리고 박살이 나버리기 시작했고, 기다란 카운터는 총탄을 튕겨내며 번쩍번쩍 불꽃을 튀겼다. 각종 철제 구조물들 역시 반짝이는 눈물을 뿌리며 고통스러워했고,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던 집기들이 깨지고 튕겨나가길 반복했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바깥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놈들의 총격이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터지듯 부서져 내리는 유리창이었다. 놈들의 험상궂은 욕지거리는 덤이었다.
“다른 놈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야! 당장 이리로 오라고 해! 프레디에게도 알리고!”
한참을 총격을 가하던 그들이 잠시 뜸해졌을 때였다. 탄창을 교환하는 소리와 더불어 한 사내의 외침이 들렸다. 흥분으로 인해서 격앙된 목소리가 매우 다급했다. 그런 그의 외침이 서너 사람을 어디론가 멀리 보내버렸다. 몇몇 발자국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이 바츠는 바로 옆에서 긴장한 눈빛으로 숨을 죽이고 있는 더그와 저쪽에서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한 얼굴로 넋을 놓고 있는 조시안느를 확인했다. 둘 다 이번에도 역시 총격으로 인한 상처는 없는 것 같았다. 동시에 이대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든 저들을 완벽하게 따돌리든지 아니면 저들을 제압해내야만 했다. 칼리굴라를 마주한다고 하더라도 놈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곳에서도 충돌은 일어날 일이었다. 애초에 충돌을 완전히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바츠는 생각을 바꾸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굳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판단이 빠르게 섰다. 우선 무심한 듯 생각을 비우고 있는 조시안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철제 구조물을 툭툭 두드렸다. 눈치가 빠른 그녀가 금방 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바츠는 그런 그녀와 더그에게 또 한 번 엄호사격을 부탁했다. 더그에게는 따로 두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놈들이 탄창 교환을 이제 막 끝마치기 직전에, 은폐 콘솔을 활성화시키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바깥쪽 유리 벽면에 바짝 붙어서 이동했다. 그 사이 더그와 조시안느가 용감하게 놈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놈들은 갑작스런 저항에 혼비백산하며 주변으로 몸을 숨기기 급급했다. 일부는 자신의 총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조시안느! 미친 거야?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헌터를 이곳으로 끌어드리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우릴 전부 죽일 셈이야? 필요한 게 있다면 칼리굴라한테 말로 하라고!”
조금 전 목소리를 높였던 사내가 조시안느를 향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흥분했기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당혹스러움과 더불어 황당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핏 억울함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를 향한 조시안느의 대답은 상대적으로 매우 간단했다.
“닥쳐!”
바츠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벽을 따라 쭉 이동한 후, 더그와 조시안느의 위협사격이 끝나는 틈에 맞춰 입구에 도착했다. 깨진 유리들로 기척을 거의 숨기지 못했는데도, 놈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두 사람의 사격과 더불어 조시안느와 그의 간단한 말다툼 덕분이었다.
바츠는 입구 주변에 흩어져 포진한 놈들을 차례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망토 안에 숨겨간 검이 칼날만 뱉어내며 주위를 난도질했다. 마치 칼날이 허공을 찢고 나와 춤을 추는 듯 했다. 칼날이 다시 모습을 감추면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붉은 혈흔만 남겨질 뿐이었다.
“뭐야!”
그들은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졌다. 갑자기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일행들을 보며 겁에 질려야 했고, 그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그들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이상 현상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헌터다! 헌터야!”
그들이 그 이유를 찾은 건 이미 일행들 중 절반 가까이를 잃고 난 뒤였다. 시선이 모아지자 결국 그 이유를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칼날이 솟구치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고, 주인 없이 소리만 내는 발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냉정한 판단으로 인한 저항이 아니라, 본능적인 감각에 의존한 탈주에 불과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를 이탈해서 입구를 통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달아나다가 제 풀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서 넘어지거나, 서로 먼저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 상대를 마구 밀어대기까지 했다. 그 중에는 애초에 자리에서조차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도 있었다.
바츠는 그런 그들을 애써 쫓지 않았다. 그들이 허둥대며 달아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았다. 그들을 더욱 몰아부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들은 이미 전의를 잃고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쫓아 끝까지 살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건 그저 학살에 지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들이 떠난 자리에 서서 활성화된 콘솔들을 모두 해제하는 데에나 관심을 두었다. 그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지나 가장 가까운 코너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아르크의 눈이 단음의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배터리가 거의 소모된 것이었다. 전진기지에서부터 웜업 콘솔을 켜고 온데다 이곳에서 은폐 콘솔까지 복합적으로 사용하다보니 전력 소모가 굉장히 컸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예전처럼 전원이 꺼지지는 않았지만, 화면이 종종 깜빡이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다 된 건가요?”
조시안느가 천천히 바츠에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시선은 바츠의 얼굴이 아닌 경고음을 내는 아르크의 눈에 항해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이었다. 더그는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왔다.
“어떻게 할까요? 가던 길을 마저 갈까요, 아니면 다시 되돌아가서 중앙계단을 이용할까요? 어차피 녀석들이 달아났으니 위층으로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바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바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특별히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묻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별로 신경 쓸 것 같지 않았다. 바츠는 대답했다.
“가던 길로 가지. 놈들은 달아난 거지,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게다가 놈들 이외에도 더 있는 것 같더군.”
그녀는 바츠의 대답에 순순히 따랐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침착해진 걸음으로 비상 통로로 바츠와 더그를 안내했다. 바츠는 비상 통로 앞에서 이번에도 역시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말하며 그녀를 추월했다. 덩달아 더그도 그녀를 앞질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바츠의 말을 들은 그녀가 문 옆으로 비켜나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녀는 가장 뒤에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층계참을 지나 이제 5층으로 이어진 출구가 시야에 들어올 때였다. 바츠는 다음 계단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뭔가 불길한 기운이 이전에 마주했던 덫과 흡사했지만 조금 달랐다.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철렁하고 크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마치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 것 같았다. 바츠는 이 느낌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몸과 입은 그런 바츠를 대신해서 저절로 반응했다.
“뒤로 물러나요!”
바츠는 몸을 빠르게 돌려세우며 소리치고는, 바로 뒤에 붙어있던 더그의 가슴을 그대로 걷어차 버렸다. 더그는 느닷없이 자신을 걷어차는 바츠의 발길질을 그대로 가슴에 얻어맞았다. 그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터라,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계단을 오르던 그의 무게 중심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그는 뒤로 굴러 떨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뒤에 있던 조시안느 역시 덩달아 함께 굴러야만 했다. 느닷없이 굴러오는 더그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홀로 계단 중간쯤에 남겨진 바츠는 둘이 계단을 구르며 만든 충격 때문인지, 갑자기 마구 흔들리는 계단의 진동을 느끼고는 함께 밑으로 쑥 추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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