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 상처 -- > * 153화 *
바츠는 그녀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생김새가 너무도 특별했던 까닭이었다. 그녀의 그 특별한 얼굴은 바츠의 눈길을 단 번에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더그의 시선마저도 빼앗아갔다. 그녀의 얼굴이 강가의 물결을 그대로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 절반이 마치 구겨진 종이처럼 주름으로 가득했다. 틀림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화마가 스쳐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표정은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고작 몇 마디 하는 동안에도 경련이라도 이는 것처럼 특정 부위가 꿈틀거렸다. 꼭 어딘가 부족한 헤러티커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가 느린 속도로 눈을 깜빡이며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제가 좀 예쁘죠? 알아요. 그러니 대답해줄래요? 당신이 일리트시의 집사가 맞나요?”
“아...그, 그래.”
바츠는 민망함에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자신의 무례했던 태도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방독면 덕분에 지금쯤이면 당황스러움으로 얼룩졌을, 모자라 보이는 표정은 감출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살며시 숙이며 피식 웃었다. 그녀에게서 장로 로리나와 흡사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녀가 이제 겨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과거가 새겨진 얼굴로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기품을 뿜어냈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이군요. 전진기지의 집사가 멀리까지 길을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그것도 전진기지의 영향력 밖에 놓인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서 말이죠.”
바츠는 감정을 추스르고는 마주보며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장로와 닮은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에게서 범접하기 어려울만한 기운이 보였다. 케니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여유로움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보여준 여유로움은 분명 긴장해야 할 정도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존중해줄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일종의 무력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비치는 기운은 무력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것이었다. 절로 그리고 마땅히 존중해줘야만 하는 것이었다.
바츠는 고개를 돌려 테이블 너머에 목이 잘린 케니스의 시신을 찾아보았다. 테이블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붉은 흔적을 남기고 너부러진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모습을 눈에 담아, 다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이 진짜 칼리굴라군.”
“맞아요, 내가 칼리굴라에요. 정확히는 내 남편이었죠. 사람들은 날 프레디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해요. 사람들의 꿈속에 나타나, 사람들의 꿈을 악몽으로 바꾸는 전설 속 괴물이라고 하더군요. 재밌죠? 그 괴물이 무서워하는 것이 불이래요.”
그녀가 전혀 불쾌한 기색이 없는 얼굴로 자신의 끔찍한 흉터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오히려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바츠는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의 남편은 어디에 있지?”
“죽었어요. 헌터에게요.”
바츠는 그녀가 얼굴에서 손을 내리는 모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켜보며, 카니지를 쥔 손을 꼭 말아 쥐었다.
“그 복수를 내게라도 할 셈인가?”
“복수요? 그럴 리가요. 그건 불가능해요. 우린 당신을 제압할 만한 힘이 없어요. 내 남편이 있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내 남편도 헌터였거든요. 헌터가 집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죠. 게다가 오늘 우린 이미 몇 년 동안 모아두었던 탄약을 상당히 소모했어요. 거의 바닥이 드러났을 정도죠. 당신을 제압하기에는 매우 부족해요...”
그녀가 말을 중간에 끊고는 근처에 있던 사내의 소총을 손가락으로 노크를 하듯 두드렸다. 그는 조준하고 있던 자세를 풀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츠는 그 모습을 보며 탄창이 비었거나, 고작 몇 발 남지 않았을 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녀가 또 한 번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서로가 좋았을 텐데...우리를 해치러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에요. 우린 당신이 조시안느를 인질로 잡은 줄 알았어요. 그녀라면 기수들에게 미리 신호를 줄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 일리트시의 집사니까요. 그녀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거든요. 덕분에 전쟁이라도 치른 기분이지만요. 전쟁이 뭔지 알아요?”
바츠는 그녀가 묻는 말에 되묻는 것으로 답했다.
“당신...아르크의 주민이었군. 그렇지?”
“꼭 대답이 필요한 가요?”
그녀가 새침하게 흘기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체계적으로 방비를 할 수 없지. 누가 봐도 여기는 수준 높은 요새야. 결코 야인들이 생각해낼 법한 짜임새가 아니지. 게다가 헌터를 남편으로 두고 그의 지원을 받았다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그가 왜 당신을 받아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가 당신을 무척이나 좋아한 모양이지?”
“글쎄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만약 그랬다면 그의 애정표현은 너무 거친 셈이네요.”
그녀가 또 한 번 자신의 흉터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가 그랬거든요. 강력한 무장을 해야 한다고요.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죠. 아르크와 아이기스 그 누구라도 말이에요. 항상 미친 사람처럼 들 뜬 그였는데,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을 했었죠.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칼맨들에게 무기와 탄약을 최대한 사들인 거예요. 우리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죠. 지금 보니 괜한 소리가 아니었네요.”
“아이들을 비싼 값에 판 돈으로 말이지?”
바츠는 그녀가 말을 마치며 능청스런 눈치를 주는 것을 빈정거림으로 맞받았다. 그러자 그녀가 서운한지 우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얼굴에는 미소가 그대로였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그저 삶의 방식일 뿐이니까요.”
“어차피 내가 알 바 아니지. 아르크와 전진기지에 번거롭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럼 우리를 가로 막은 이유나 들어볼까? 우리가 나눈 대화대로라면 서로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조시안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죠.”
“그녀가 무사하다는 소리로군.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녀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입을 다물며 침묵을 만들었다. 긴장감이 생길 만큼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뒤를 지켜서고 있던 사내들이 그런 그녀를 불안한 눈으로 훔쳐보는 바람에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이 꽤 복잡해 보였다. 그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전해줘요. 아무렇지 않다고 말이에요. 그저 행복했으면 한다고 말해줘요.”
“모순적인 부탁이군. 아이들을 사고팔면서 자신의 아이에게만큼은 다정하고 싶은 건가?”
바츠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는 그녀의 우아한 모습을 부정하고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녀가 가식으로 똘똘 뭉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도록 만들 수 있었다.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감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전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더욱 고상해보이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니까요. 상대에 따라서 바꿔 쓸 수 있는 수많은 가면을 쓰고 있죠.”
“구차한 변명이군.”
“변명이 아니에요. 우리는 평범하잖아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시시각각 가면을 바꿔 쓴다고요. 감정과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죠. 물론 당신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겠죠. 당신은 특별하니까요.”
바츠는 그녀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조롱으로 들리는 군.”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되겠지요.”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나.”
바츠는 그녀에게 이미 앞서 숨을 거둔 이들을 향해 슬쩍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겁을 먹기보다는 푸근한 미소로 대꾸했다. 무시하는 것처럼 가벼워 보이는 행동이었는데 이상하게 언짢지가 않았다.
“잘 알죠. 하지만 당신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아요.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이미 우리를 살해했겠죠. 정말 당신은 특별한 헌터에요. 집사라서 그런가요? 집사는 다 그런 건가요? 헌터였다면 총구를 겨눈 것만으로 이미 화를 냈을 거예요. 아니, 그 전에 이미 우리들 중 절반을 살해했겠죠. 그리고 나서야 물었을 거예요. 왜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느냐고 말이죠.”
바츠는 그녀의 대답을 듣자,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의 방향이 한계를 지나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애초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볼 일은 이미 끝났다. 그리고 이곳에 대한 자신의 관심은 한참 전에 사라졌다. 이곳에 계속 남아있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바츠는 그 사실을 그녀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쓸데없는 소리가 길어지는 군. 그러니까 우리는 갈 길을 가도 좋다는 건가?”
“네. 우린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서로에게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아주 좋은 상호 배려가 있죠.”
그녀의 대답을 신호로 그녀와 함께 온 사내들이 총구를 거두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몇 번이나 머뭇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았지만, 미소로 바라보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결국에는 모두 거두었다.
바츠는 그들 사이로 더그와 멘디를 데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복도에는 이들 외에도 2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으로 흉기로 쓸 만한 크고 작은 물건들을 들고 있었다. 안에서 그녀의 짧은 외침이 그들을 옆으로 비켜서게 만들었다. 바츠는 그들 앞을 지나서 중앙계단을 통해 건물을 빠져나왔다.
밖은 어느새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기껏해야 한 발치 앞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더불어 추위는 한층 깊어져 있었고, 눈은 여전히 굵직굵직하게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일리트시까지 돌아갈 수 없었다. 더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집사님,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러 가는 게 어떨까요? 이대로는 길을 잃고 말 겁니다.”
바츠는 그의 제안을 바로 수긍했다. 밤이 좀 더 깊어지면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려워보였다. 도시로 돌아가는 도중에 그렇게 된다면, 몸을 피해 쉴만한 곳도 찾지 못한, 끔찍한 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건 자신은 물론이고 더그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멘디가 견뎌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번화가로 가서 묵을 곳을 찾아보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바츠는 더그에게 번화가로 가자는 말로 응답했다. 그러자 그가 즐거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릴 것만 같을 정도로 신이 난 말투였다.
“술도 한잔 더 하고 싶네요.”
“그래요. 어차피 조시안느를 만나야 하기도 하니까, 그녀의 샬롱으로 가도록 하죠.”
더그가 순간적으로 환호성을 지를 뻔 했을 정도로 무척 기뻐했다. 그는 바츠의 눈치를 살피며, 가까스로 자신의 감정을 짓눌렀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가 민망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바츠는 그런 그를 못 본 척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가 그 뒤를 얼른 쫓으며 말했다. 방금 전과 완전히 다른 의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뭐가요?”
“조시안느가 그랬잖아요. 가족의 복수를 하겠다고. 지금의 칼리굴라는 그녀의 어머니죠. 그녀의 아버지는 헌터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가 원래의 칼리굴라라고 했죠. 대체 조시안느가 하고 싶었던 게 뭘까요? 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건가요? 아니면 어머니를? 대체 뭐죠? 누구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너무 복잡한데요...”
바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자신들을 안내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이유나 생각해 보았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칼리굴라의 빌딩을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뿐이었지만, 벽에 거대하게 그려졌던 하얀색 해골을 떠올리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 문장이 이제야 친숙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한 번 본 것이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곧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함께 날아온 차가운 바람이 느닷없이 옷깃을 파고 들어오며 음습한 기운을 전해주었다. 바츠가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얄궂은 바람이었다.
바츠는 걸음을 멈추며 더그와 멘디 역시 제자리에 서게 만들었다. 둘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주변에 집중했다. 그러자 주위에는 삽시간에 눈과 함께 침묵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크고 작은 소리들이 들려왔는데, 짙은 어둠을 헤매며 비명을 지르는 바람 소리와 지면으로 내려앉는 눈의 엉덩방아 소리 그리고 그 둘을 밀치는 발자국 소리 등이었다. 바츠는 그 중에서도 난폭한 발자국 소리에 주목했다. 실질적으로는 멘디가 춥다며 웅얼거리는 것보다도 작은 소리였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한 바츠에게는 비교적 또렷하게 들려왔다. 지금의 바츠에게는 옆에서 지켜보던 더그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도 들릴 정도였다.
“왜 그러십니까?”
더드가 어렵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이겨내며 물었다. 몹시 불안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영문을 모른 채 길게 하품을 늘어놓는 멘디와는 달랐다. 그녀는 그저 당장 졸린 것에만 신경을 쓸 뿐이었다. 빨리 가자며 투정이나 부렸다. 매우 피곤한 모양이었다. 바츠는 그런 그녀에게 미안했지만, 애써 무시하고는 진중한 목소리로 더그에게 물었다.
“더그, 지금 탄약이 얼마나 남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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