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 진정한 순례자 -- > * 168화 *
바츠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냥 흘려버리고 오로지 그 소리에만 집중했다. 머릿속에 이쪽을 주시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절로 그려지고 있었다. 손을 카니지 위로 올리기에 충분했다. 강일이 그 옆으로 불쑥 다가왔다. 그 거대한 덩치가 바로 옆에 서니, 새삼 우람하다는 생각으로 부담스러웠다. 키만 더 컸다면 버니에투와를 떠올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가 바츠를 슬쩍 곁눈질로 흘기더니, 어깨에 걸고 있던 소총으로 어둠 속을 향해 조준했다. 바츠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소음이 들려온 방향을 정확히 겨누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신중하게 빛나는 눈빛이 자신에게 맡기라고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조, 조심해요. 내 아이들일수도 있다고요.”
뒤에서 베넬리 부인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당부했다. 캄캄한 어둠이 가져다주는 기만이 우려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츠는 오히려 이쪽이 더 신경 쓰였다. 불빛으로 인해서 반대쪽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조심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위기에 직면한 것처럼 긴장해야만 했다. 그 순간, 강일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한 발 그리고 두 발, 세 발 연이어 단발로 사격을 가했다. 첫 발을 발사하고 나서 이어진 다음 사격에는 약간의 간격이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격 사이에 다른 간격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가 제법 숙련된 사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음먹은 곳으로 자신 있게 사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베넬리 부인은 그의 총성이 울릴 때마다 놀란 듯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사미르가 어깨에 팔을 둘러주지 않았다면, 견디지 못하고 자지러졌을 것만 같았다.
“어때? 뭔가 있어?”
사미르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하지만 강일은 대꾸 없이 어둠 속으로 퍼져나가는 총성을 따라서,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바츠는 여전히 긴장을 놓지 않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사방으로 메아리치는 총성 때문인지 가슴이 덩달아 심란했다. 항상 예사롭지 않을 때에나 생기는 바로 그 기분이었다.
“이놈이었어.”
강일이 어둠 속에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변함없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한쪽 팔을 높이 들어보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 지면과 비슷한 보호색으로 몸을 감추고 있는 큼지막한 프레이 한 마리가 들려있었다. 그에게 꼬리를 붙들렸는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베넬리 부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옆에서 그녀를 다독이는 사미르의 목소리도 있었다. 바츠와 아델리나가 여전히 어둠 속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것은 둘의 시선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강일뿐이었다. 그는 나름 흡족한 눈으로 돌아왔지만, 둘의 시선을 보고는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 같았다. 들고 있던 프레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는 눈을 부릅뜨며 황급히 몸을 다시 반대쪽을 향해 돌렸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었다. 겨우 돌아선 그의 정수리로는 이미 정체불명의 파공음이 어둠을 뚫고 날아들고 있었다. 사미르와 베넬리 부인이 정감 있는 목소리로 서로에게 하는 애정표현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섬뜩한 소리였다. 미처 총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강일은 뭔가 해보기도 전에 체념해야만 했다. 자신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강일은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지만, 가까이에 있던 바츠의 빠른 몸놀림은 그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머리 앞에 대신해서 팔을 들어올리며, 어둠을 찢고 날아드는 파공음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파공음은 강일의 팔뚝보다도 훨씬 두꺼운 팔이 휘두른 돌망치가 만들어낸 소리였다. 사람 몸통만한 돌을 엮어 만든 것이었는데, 상대가 흥분했는지 제대로 힘이 실리지는 않았다. 충분히 바츠의 팔을 부러뜨리고, 강일의 이마를 후려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가로막히고 말았다. 슈트의 방탄력도 꽤 도움이 되었다. 팔에 전해지는 충격을 전부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별다른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다.
베넬리 부인의 비명은 그 뒤에야 다시 터져 나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경악에 찬 외침이었다. 갑작스런 습격에 놀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곧장 휘둘러진 바츠의 주먹이, 어둠 속에서 팔만 내놓고 있던 상대의 턱을 강타하고, 계속된 바츠의 날렵한 발차기가 상대를 뒤로 완전히 나뒹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절망에 가까운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달려왔다.
“패토스!”
그 행동이 얼마나 빠른지 사미르가 미처 붙잡지 못할 만큼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바츠는 물론이고 강일마저도 그냥 지나치고는 뒤로 자빠진 그 실루엣을 향해 달려갔다. 바츠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가까운 일행이 아닌 습격해온 상대를 돌보는 모습을 이해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그 옆에 주저앉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패토스! 괜찮니? 내 아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엄마, 헤러티커가 프레이를 빼앗아 갔어! 엄마 주려고 한 건데 헤러티커가 가져갔어!”
가늘고 어눌한 목소리가 그녀의 물음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그런 그를 어둠속에서 한참을 달랬다. 어르고 또 어르며 눈물을 흘렸다. 지켜보는 바츠가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옆에 있던 아델리나도 황당한지 베넬리 부인의 옆모습과 바츠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강일도 마찬가지였다. 바츠와 아델리나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기가 찬지 넋이 나간 눈빛이었다. 탄식에 가까운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가 이성을 놓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바닥에 던져 놓았던 프레이를 잊지 않고 챙겨가는 그의 뒷모습이 씁쓸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사미르가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대신 위로해주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누구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쉽게 진정하기 어려웠다.
“아들, 방금 그거 헤러티커 아니야. 뚱보 난쟁이 기억해? 수다쟁이 사미르 친구 말이야. 그 사람이야.”
베넬리 부인이 가까스로 울음을 그치며 자신의 아이를 다독였다. 아직도 서러움이 남았는지, 울먹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그 둘에게 사과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 사이 사미르가 바츠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베넬리 부인의 장남입니다. 패토스죠. 우리는 키메라라고 부릅니다. 고대에 살았던 짐승의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꼭 괴물 같죠? 아마 제대로 보시면 더 놀라게 될 겁니다. 정말 거대하죠. 왜 그런지는 모릅니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죠. 그 때문인지 지능이 좀 떨어져요. 숫자도 제대로 못 셉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게 용할 정도죠. 그나마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지만요. 방금처럼 말이에요.”
바츠는 그에게 사람을 헷갈려도 어떻게 헤러티커와 혼동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려다가, 베넬리 부인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막 일어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닫았다. 그녀와 함께 어둠 밖으로 나오는 그의 모습은 정말 괴물이 따로 없었다. 사미르 말대로 키는 2미터를 훌쩍 뛰어넘었고, 덩치는 버니에투와보다도 컸다. 그렇다고 버니에투와나 강일처럼 다부진 몸인 것은 아니었다. 형편없는 비곗살로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몸에는 거품을 두른 것처럼 두툼한 지방이 자리하고 있었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는 축 늘어진 그의 살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젖가슴이 레나타의 세 배는 되어보였다. 다리에도 온통 살로 가득해 혼자 걷는 것이 불편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걷는 것처럼 어기적거렸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건 그의 흐리멍덩한 얼굴이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살집이 잔뜩 붙어있었는데, 양쪽 눈동자가 서로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 곳을 응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눈동자가 쉬지 않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그럼 방금 그거 헤터티커 아니야?”
“응, 아니야. 뚱보 난쟁이 강일씨야.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알겠지?”
베넬리 부인은 패토스를 귀한 보물을 옮기듯 매우 조심스런 손길로 집을 향해 데리고 갔다. 그녀의 눈에는 입술이 터진 자신의 아이만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죽음의 경계를 다녀온 강일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고작해야 자신의 아이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이른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바츠와 아델리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겁이 없는 것인지, 겁을 모르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헌터가 무엇인지 모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눈동자로 바츠와 아델리나를 한 차례 바라보기는 했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 둘이 옆을 지나 집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델리나가 다급한 손길로 바츠의 팔을 잡아당겼다.
“바츠!”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눈의 깜빡임이 없었다. 바츠는 그녀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제 집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베넬리 부인과 패토스가 있었다. 이미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패토스의 커다란 등이었다. 그의 등에는 혹처럼 살점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것이 혼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작은 팔도 나 있었다. 고개를 털어내고 다시 보았을 때에는 그것이 정말 작은 아이의 상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명은 물론이고 헛웃음조차도 나지 않았다.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작은 아이의 상체가 그의 등을 꿰뚫고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저 등에 붙은 괴물 때문에 키메라라고 불리는 거라고 합니다. 끔찍하죠? 닥치는 대로 씨를 받아서 저런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문이 있는데, 누가 압니까? 저런 기형아들은 지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더욱더 심하죠. 가면 갈수록 모든 것이 귀해지니까요. 뭐,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
사미르가 못마땅한지 얼굴을 구기며 혀를 찼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익숙한 상황인 것 같았다. 저쪽에 있던 강일 역시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불가에 모여앉아 있는 아이들은 관심조차 없었다. 바츠와 아델리나만이 둘에게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할 뿐이었다. 아르크에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수업시간에나 한 번쯤 들은 적 있는 돌연변이 혹은 기형아였다. 고정된 시선을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헤러티커와 견줘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징그럽고 소름끼치는 외형이었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욱 지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패토스가 가던 걸음을 세우고는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럽고 기분 나쁜 행동이었다. 그가 말했다.
“엄마, 좋은 냄새가 나. 좋은 냄새.”
“프레이 고기야. 너도 먹을래?”
“아니, 그거 말고. 그거보다 훨씬 좋은 냄새.”
그가 코를 킁킁거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흔들리는 고개처럼 제멋대로 움직이는 눈동자로 한쪽을 척하고 바라보았다. 정확히 어디를 향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쯤은 대충 알 수 있었다. 바츠는 슬그머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굳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아델리나가 있었다.
“나 저거 가질래. 저거 내꺼 할래.”
“아니야, 저거 패토스 거 아니야. 패토스가 가질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왜! 나 저거 가질래! 저거 가지고 싶어! 엄마가 저거 구해준다고 했잖아! 나 지금 저거 가질래!”
“그랬지, 엄마가 그랬지. 하지만 저건 아니야. 엄마가 다음에 진짜 좋은 냄새 나는 걸로 구해줄게.”
“싫어! 나 저거 가질래! 저거 줘! 엄마 냄새 이제 싫어!”
그가 유일하게 걸치고 있는 낡은 바지를 거의 찢어버리듯 벗어버렸다. 그러자 우뚝 솟아있는 그의 고집이 벌떡 고개를 치켜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생김새만큼이나 참혹한 고집이었다. 사람의 것이라고는 도무지 확신을 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제대로 된 구실이 가능한지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베넬리 부인이 황급히 그의 바지를 주워 올렸지만, 그의 고집은 꺾기 힘들었다. 그는 몸을 내두르며 억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 혼자 그의 몸부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워 보였다. 그에게 거의 휘둘리다시피 하며 가까스로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한쪽 팔에 매달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바츠는 시선을 옮기며 주위를 살폈다. 강일은 빅도그에 자신이 잡은 거대한 프레이를 실으며 생떼를 부리는 그를 무덤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 일이 아직도 마음에 남았는지, 조금 떨떠름한 시선이었다. 프레이를 굽고 있는 불 근처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개만 돌려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그의 모습이 그저 호기심거리인 듯 보였다. 사미르는 베넬리 부인을 대신해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왔다. 아델리나는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인 상태로 패토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추잡한 고집으로 인한 불쾌함보다도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묘했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매우 복잡했다. 바츠는 그런 그녀 앞으로 걸음을 옮겨 패토스와 그녀의 시선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혀가 잘리고 싶다면 계속해서 지껄여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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