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 진정한 순례자 -- > * 169화 *
바츠는 밀려드는 거북함과 언짢음을 여과 없이 목소리에 담아냈다.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몹쓸 몸뚱이와 주둥이로 계속해서 아델리나를 모욕한다면 혀가 아니라 머리라도 자를 생각이었다. 뒤에서 아델리나가 슬그머니 손을 잡아오지 않았더라면 이미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손길이 왈칵 끓어오른 충동을 지그시 눌러주고 있었다.
“엄마, 저거 뭐야. 저거 무서워! 저거 뭐야!”
그가 갑자기 우는 소리를 내며 베넬리 부인에게 안겼다. 아니, 몸통으로 박치기를 하듯 허리를 반쯤 구부리고는 어깨로 그녀를 밀어붙였다. 그녀는 그런 그를 가까스로 한쪽 어깨와 머리만 품에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엄마가 뭐라고 했어? 엄마가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한 게 뭐야?”
“헤러티커, 헤러티커! 헤러티커는 무섭다! 헤러티커를 보면 쉿! 해야 한다!”
“그리고 또! 또 엄마가 뭐라고 했어?”
“헌터! 헌터! 헌터는 정말 무섭다! 헌터를 보면 달아나야 한다! 눈도 마주치지 말고 달아나야 한다!”
“그렇지! 옳지! 우리 아들 똑똑하네. 저 사람들이 바로 헌터야. 알겠지? 지금 본 걸 잘 기억해. 방금 아프고 따끔했지? 저 사람들은 괴물이야. 눈으로 살점을 베고, 입으로 심장을 찌르는 그런 괴물들이야.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 돼. 알겠지?”
베넬리 부인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헌터, 무섭다! 패토스는 헌터 무섭다! 그런데 저거 가지고 싶다! 저거 가지고 싶다!”
“안 돼! 더 이상 고집 피우면 엄마는 패토스 미워할 거야. 엄마가 ‘간지럼 놀이’ 안 해주는 게 좋아?”
“싫다! 그것도 싫다! 저거 안 주는 것도 싫다!”
“자, 그만하고 들어가. 오늘은 먹을 거 못 구해왔으니 조용히 자는 거야. 오늘은 아무것도 없어. 엄마한테 혼나는 거야.”
베넬리 부인의 과단성 짙은 목소리에 패토스가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허공에 대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그의 울음소리가 어둠을 타고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과 다르게 더 이상 쩔쩔매지 않았다. 검지를 편 손으로 그의 가슴을 가리키고는, 바로 이어서 손목만 움직여 집 안쪽을 향해 다시 한 번 가리켰다. 그 손짓이 간결하고도 힘이 있었다. 패토스는 서럽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서운함이 묻어나는 걸음으로 뒤뚱거리며 안쪽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옆에서 사미르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혀를 차며 혼잣말을 했다.
“저 놈의 고집은 어떻게 할 수가 없네. 오늘도 편히 잠들기는 글렀네.”
바츠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편안한 잠자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철없게 이런 곳에서 안락한 담요나 침대를 바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의미는 그들이 프레이 고기를 먹고 나서 잘 준비를 할 때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잠들기 전 베넬리 부인이 사미르에게 찾아와, 오늘은 밖에서 자라고 넌지시 한마디 건넨 말을 들을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는 크게 안타까워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미련이 남은 눈길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강일이 여전히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강철 통 옆에, 몸을 뉘는 아이들을 챙기는 행동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강일은 이곳에 온 뒤로 단 한 번도 베넬리 부인에게 관심을 준 적이 없었다. 그는 내내 시큰둥했으며 가끔 신경을 쓴다면, 그건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몸을 완전히 구부리고 차가운 바닥에 눕는 아이들에게 프레이의 가죽을 서너 장씩 던져주었을 뿐이었다. 조금은 신경질적 태도가 성가신 것들이라며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태연하게 그것들을 서로 나눠가지며 몸에 둘렀다.
“애들은 거죽이 얇아서 얼어 죽기 딱 좋습니다.”
강일이 아이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한 마디 했다. 시선은 강철 통에 난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불꽃을 향하고 있었지만, 바츠가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그가 건넨 말 중 제대로 된 첫 마디였다. 그리고 그건 마치 변명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다들 최대한 붙어서 자야 하는 겁니다.”
사미르도 근처에 자리를 잡으며 가까이에 있던 한 아이를 품안으로 안았다. 그에게 안긴 아이는 편히 눕지 못하고, 그의 품에 안겨야 했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할 텐데도 군소리 하나 없었다. 이미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그에게 완전히 몸을 맡겼다.
바츠 역시 아델리나와 함께 강일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강철 통을 사이에 두고 사미르의 얼굴이 반쯤 보였다. 그는 품에 안은 아이를 이곳저곳 더듬고 있었다. 몸에 두른 프레이 가죽 사이를 비집고 파고드는 손이 매우 능숙했다. 놀라운 것은 그 손길을 받아드리는 아이 역시도 자연스러웠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미동조차하지 않았다. 그 사이 아델리나가 바츠의 한쪽 어깨에 부둥키듯 기대왔다. 바츠는 그녀의 어깨에 양팔을 감으며 그녀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혹시...연인...입니까?”
반대쪽에서 아이의 몸을 더듬는데 집중하던 사미르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불꽃 때문인지 그의 눈동자가 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던 강일 역시도 슬그머니 눈동자만 이쪽으로 옮기며 대답을 기다리는 것을 보니, 그 역시 제법 궁금한 모양이었다. 바츠는 아델리나를 더욱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헛소리들은 넣어두는 게 좋겠군.”
강일이 미련 없이 시선을 거두고는 눈을 감았다.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것 같았다. 쉽게 관심을 돌리지 못하는 사미르와는 달랐다. 그는 아이의 품안 깊숙한 곳으로 손을 쑥 집어넣으며 바츠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갸름한 얼굴이 영악스럽게 느껴졌다.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동자가 상당히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스톡홀름 시티는 왜 가는 겁니까? 헌터가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습니까? 그곳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뭐, 반발하며 내쫓는 정도는 아니지만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죠.”
“불필요한 질문이 많아지는 군.”
“그냥 궁금한 겁니다. 헌터들에 대해서 다들 궁금해 하죠. 소문으로만 듣는 것이 대부분이니까요. 헌터들은 말수가 매우 적잖습니까. 꼭 껍데기가 돌아다니는 것 같죠.”
바츠는 사미르의 호기심보다는 옆에서 새근새근 숨을 내뱉기 시작하는 아델리나의 숨결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그새 잠이 들었는지, 조용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주위를 빼곡히 둘러싼 짙은 어둠과 매우 잘 어울렸다. 강철 통 안의 불꽃소리가 지상에 유일한 기척이었다. 침묵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들었다. 사미르가 입을 다물자 그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바츠는 그 침묵을 아델리나의 숨결로 견뎌내며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당신은 왜 그렇게 돌아다니지? 저 여자가 좋아서 돌아다니는 것은 아닐 것 아니야.”
“네? 베넬리 부인이요?”
그가 잠깐 놀라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기가 찬지, 침묵을 어둠속으로 내쫓았을 만큼 큰 소리였다. 잠든 모두를 깨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노련하게 웃음을 참아내며, 그런 불상사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혼자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한참동안 몸부림쳤을 뿐이었다. 그가 다시 아이를 더듬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혹시 알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느낀 건 하나입니다.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안전하다는 거죠. 최소한 그들에게 자비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요. 그게 불합리하게 작용을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의 얼굴이 이제는 잠든 것으로 보이는 강일을 한차례 다녀왔다.
“최소한 저에게는 돌도끼를 휘두르지는 않지 않습니까? 억울하겠죠. 매번 같이 오는데 저런 대접이라면 난처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가 없으면 이 주변에서 길을 잃었을 때 다시 찾기 힘드니까요. 어쩌면 패토스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르죠. 베넬리 부인은 제게 있어서 그 많은 안전장치 중 하나인 겁니다. 그녀를 즐겁게 해주는 건, 그에 대한 대가이고요.”
그가 아이를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하늘을 잠시 지켜보더니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진한 피로가 묻어나는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었다. 그가 고개를 고정한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왜 돌아다니느냐고요? 제게도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려면 돈이 필요하죠.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돈 벌이입니다. 정확하게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벌이죠. 위험한 만큼 얻는 게 많습니다. 그렇게 얻은 걸 가족들에게 내놓을 때의 성취감을 아십니까?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쾌락입니다. 오르가즘도 그보다는 못할 겁니다. 전 말입니다...그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베넬리 부인이 아니라 그의 아들도 즐겁게 해줄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지만 말이죠.”
그가 고개를 돌려놓으며 바츠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불길에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꼭 손등 위에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 같았다. 강철 통의 열기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애써 미소 짓는 그의 눈동자가 스스로 촉촉하게 변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안간힘을 썼다. 그가 물었다.
“그런데...정말 스톡홀름 시티에 가려는 이유에 대해서 진짜 말 안 해줄 겁니까?”
“...당신이랑 같은 이유야.”
바츠는 그에게 던지듯 한마디 내뱉으며 고개를 돌려 아델리나를 바라보았다. 팔을 부둥켜안은 그녀가 자리가 불편한지 머리를 움직이며 살며시 비비댔다. 바츠는 그런 그녀를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자신의 무릎 위에 눕혔고, 그녀는 잠꼬대 같은 얇은 신음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사미르는 아무런 말없이 바츠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묘한 시선이었다. 바츠가 자리에 누운 아델리나에게 자신의 망토를 둘러주는 모습을 손짓 하나까지 유심하게 살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잠자리를 봐주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낯선 모양이었다. 그가 물었다.
“당신도 우리랑 같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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