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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감염-172화 (172/268)

< --   12. 진정한 순례자   -- >         * 172화 *

사실 그가 배가 고픈 것은 전혀 이상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분명 어제 저녁도 굶었고, 어쩌면 더 많이 굶주렸을 수도 있었다. 굶주림을 토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적어도 150kg은 훌쩍 넘는 거구였고, 굶주림은 모두에게 내려지는 삶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신호였다. 그에게는 그 신호가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좀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사소한 차이를 만나며 문제를 만든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미풍의 작은 식당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폭의 문과 벽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크기의 창문이 잔뜩 늘어서 있는 간이 건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랬을 것이라고 하는 게 옳았다. 지금은 황갈색으로 녹이 슨 채, 그 틀과 흔적만 남기고 휑하니 뚫려 있었다. 패토스의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통과하기에는 충분히 넓고도 커다란 것들이었다. 안쪽에 마련된 바를 바라보고 앉아있던 10여명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똑같은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어쩌면 애초에 태연하게 지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려 8명의 사람과 2대의 기계가 지나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그 중 세 사람은 특별해도 너무 특별했다. 저들 중 누군가가 한 번쯤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조용히 지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패토스의 목소리는 단지 그것을 더 확실하게 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서로 다른 놀라움을 표현하느라 분주해졌다.

“뭐야, 저 괴물은!”

“저거 헌터야? 헌터 맞지?”

“베넬리 부인의 그 괴물 같은데?”

“저 괴물이 왜 여길 온 거야?”

“아니, 그 더러운 여자는 저 끔찍한 괴물을 잘 데리고 있기로 한 것 아니었어?”

그들의 웅성거림에는 단 한마디도 호의적인 말이 없었다. 대부분 혐오스럽게 바라보며 질겁했을 뿐이었다. 가장 나은 반응이 놀람에서 그치는 것이었을 정도로 박대하는 분위기였다. 지체해서 좋을 것이 하나 없어 보였다. 강일도 그것을 느꼈는지, 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라도 관심을 가질 법 했지만 그의 시선은 정면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의 귀에는 사람들의 소란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빅도그와 함께 뒤를 따르던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다만 시끌벅적한 그들을 냉정하게 외면하지는 못하고, 아르크에서 레벨5로 견학을 간 아이들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의 다음 반응이 꽤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미르만은 그러지 못했다. 적어도 아이들과 비슷한 정도의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그였지만, 함께 걷던 패토스로 인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패토스의 외침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패토스! 멈춰!”

패토스가 식당을 향해 방향을 바꿨기 때문이었다. 그가 패토스를 얼른 따라가 바지춤을 잡아당겼지만, 그 거구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패토스는 그를 뿌리치고 식당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너무 놀라 미처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창으로 한쪽 어깨를 쑥 집어넣고는,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사내의 손에 들려있던 잘 익은 고깃덩이를 빼앗았다. 그 즉시 입안으로 밀어 넣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패토스는 침으로 턱을 흥건히 적셨을 만큼 행복한 얼굴로 음식을 먹어치웠다.

“이, 이! 괴물이!”

안쪽에 있던 사람들은 겁에 질린 탄성을 내지르며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로 비켜섰다. 야인들이 헌터를 보았을 때 으레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순간이 매우 짧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패토스를 피해 옆으로 비켜섰지만, 그가 다시 한 번 음식을 강탈하기 위해 팔을 집어넣을 때에는 이미 그 놀람이 분노로 변해있었다. 애초에 그를 피해 달아난 것은 공포심이라기보다는 혐오감이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자신의 음식을 빼앗긴 사내였다. 그는 패토스가 이번에는 바(bar)에까지 손을 뻗으며 접시에 놓인 남은 음식을 가져가려고 하자, 자신이 앉아있던 철제 의자를 패토스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패토스는 오로지 음식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팔꿈치 부위를 제대로 얻어맞고 말았다. 그의 고통스런 비명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패토스가 맞은 부위를 돌보기 위해 팔을 구부리는 사이,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향해 집기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음식용 나이프부터 포크와 접시는 물론이고 물 컵과 또 다른 의자까지 내던졌다. 그에게 폭언과 비난을 하는 것은 덤이었다. 그들은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해대며 그를 몰아붙였다.

“아프다! 아파!”

패토스는 그들이 던지는 갖가지 물건을 제자리에서 얻어맞으며 소리만 질러댔다. 서둘러 다시 도망쳐 오기만 해도 그들의 반발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을 텐데도 그 간단한 것을 하지 못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울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베넬리 부인만 반복해서 불러댔다. 사미르가 바라던 일이었다. 그는 패토스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어, 돌려보낼 셈이었다.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사미르의 얼굴에는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차올랐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격렬했는지, 부담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쉽사리 그를 데려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막상 여러 사람의 부정적인 반응을 마주하게 되자,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패토스에게 뿌리쳐진 그 자리에서 멀뚱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냉큼 데려와 그의 응석과 어리광을 자극해, 돌려보내려는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로서는 모른 척 그냥 제 갈 길을 가도 그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괜히 나섰다가는 패토스와 함께 봉변을 치를 수도 있었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그는 그것이 꽤나 고민스러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허공에 단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신경질적인 외침도 있었다.

“그만 둬!”

사람들의 반발심이 심술궂은 저항으로 변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패토스는 집기에 얻어맞은 생채기 같은 상처 이외에도, 그것으로 모자라 뒤이어 집어 던진 각종 음식물로 비참해져 있었다. 가뜩이나 추한 그의 용모가 날아든 여러 음식물로 처참해지고 있었다. 그의 울음소리가 그들이 더욱더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이미 조롱을 넘어 즐거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단발의 총성과 신경질적인 외침이 아니었더라면 아주 오랫동안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총성과 외침이 그를 구한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일부는 탐탁지 않은 기색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자신들의 유희를 방해한 것이 매우 못마땅한 듯 했다. 그들의 이목이 일제히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바츠에게 이제는 꽤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강일!”

사미르가 그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하늘로 향해 있는 강일의 총구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앞만 보고 가던 그가 돌아서 있었다. 사미르는 조금은 머뭇거리며 부자연스러워진 걸음으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

“뭐하는 짓이야!”

사미르가 강일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외쳤다. 그는 겁에 질려 있었다. 강일의 한쪽 어깨 옷깃을 움켜진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의 손이 강일의 옷깃을 쥐어짜듯 쥐고 있었다. 강일은 그런 그의 손길을 어깨를 힘차게 털어 떼어냈다. 그가 말했다.

“너야 말로 뭐하는 짓이야.”

강일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무게가 있었다. 이른 아침 호숫가에 피어나는 물안개 같았다. 진득하니 내려앉으며 가슴을 부풀어 오르도록 만들었다.

“지금 이 역겨운 짓을 바라만 보고 있을 참이냐?”

“이, 멍청아! 그게 아니잖아! 눈이 있으면 저쪽을 보라고! 저쪽은 적어도 10명이다, 10명! 그리고 저 앞에 있는 비클레타 안 보여? 작은 머리의 부하들이 있다는 소리라고!”

사미르는 강일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실린 것만큼 크게 울리지는 않았다. 차분한 강일의 목소리가 한쪽에 물러나 있는 바츠는 물론이고 식당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들리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는 기껏해야 강일만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더 힘이 실린 것일지도 몰랐다. 바츠와 아델리나가 헌터가 아니었더라면 듣기 힘들 만큼 작은 소리였다.

“베넬리 부인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강일의 차가운 시선이 사미르의 얼굴에 정면으로 꽂혔다. 식당 안의 사람들이 처음 패토스를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눈빛이었다. 사미리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그의 가슴을 힘껏 밀치며 대꾸했다.

“뭐가 미안한데? 저 괴물 새끼를 우리가 데리고 왔어? 제멋대로 따라온 거라고! 우리가 무사히 돌려보내주면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뭐? 미안하냐고? 네가 뭘 알아!”

강일은 자신을 밀치는 사미르의 손길에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사미르가 그를 밀어내기에는, 그가 너무 단단했다. 되레 자신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한 걸음 뒤로 밀려났을 뿐이었다.

“사미르, 약속을 했으면 지켜라. 그게 칼맨의 제1 원칙 아니냐? 칼맨은 누군가의 가랑이를 입으로 핥는 것이 아니라, 신뢰로 먹고 사는 거다. 칼맨의 맹세를 기억이나 하고 있냐?”

“닥쳐! 이 비렁뱅이 새끼야! 기껏 먹고 살게 해줬더니, 지금 누굴 가르치려는 거야! 너야 말로 벌써 잊었나 보지? 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이야!”

사미르가 자신의 소총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것도 모르고, 강일의 멱살을 붙들었다. 그는 자신보다 작은 강일을 번쩍 들어 올리고 싶은 마음으로 보였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 모욕감을 주려는 듯 했다. 하지만 강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미르의 팔 힘이 부족한 것인지, 강일이 너무 무거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사미르가 급속도록 흥분하기 시작한 것과 다르게 강일은 여전히 차분하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때 식당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그전부터 또 다른 문제로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이쪽을 향해서 목소리가 던져진 것은 처음이었다.

“어이, 뭐하는 거야? 재밌는 놈들이네. 불러놓고는 왜 너희들끼리 싸우는 거냐? 우릴 무시하는 거야 뭐야?”

패토스에게 고기를 빼앗겼던 사내였다. 그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티격태격하는 사미르와 강일을 향해 말했다. 그의 얼굴에 그려진 비열한 미소만 보아도, 그가 저 둘을 조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미르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몸을 다시 돌려세우더니, 그를 향해 허리를 구부려 굽실대며 외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제 친구가 실수로 오발을 한 겁니다. 이쪽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미르의 태도에 그의 표정이 또 한 번 굳어졌다. 조금 전 강일의 외침으로 굳어진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은 금세 다시 일그러지며 변했다. 불쾌함으로 인한 표현이 아니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만들어진 다른 모습의 조롱이었다. 그가 주변이 떠나가라고 웃기 시작했다. 너무도 유쾌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그 뿐만 아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역시 떠들썩하게 웃기 시작했다. 마치 사미르를 재롱을 부리는 아이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사미르는 그것조차도 느끼지 못하는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뒤통수나 긁적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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