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187화 (187/268)

< --   12. 진정한 순례자   -- >         * 187화 *

“여기입니다.”

사미르와 강일이 안내한 곳은 도심에 위치한 8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증가했지만, 그 주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고작 20여 미터 앞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끔씩 방향을 바꿔야 할 정도였다. 전에 오데사 시티에서 조시안느의 샬롱을 나왔을 때, 4, 50여명이 모여 있던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곳은 주위에 머무는 사람들만 해도 100여명은 훌쩍 넘어보였다. 오가는 사람들까지 모두 합치면 적어도 300여명은 될 것 같았다. 그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소음처럼,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바츠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가슴이 흥분되는 것을 느껴졌다. 뭔가 후련하고 상쾌한 기분이 약간의 설렘을 만들었다. 부쩍 기온이 낮아진 날씨나 밤을 앞둔 차가운 바람과는 상관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생기가 마음을 술렁이게 하고 있었다. 왠지 기분이 좋은 느낌이었다. 항상 따라다니는 긴장감이나 공포심을 이곳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주민들에게서는 보통의 생활을 하고 있는 아르크 주민들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조금 복잡하죠? 아마 주민 수는 키예프 시티보다도 이곳이 더 많을 겁니다. 거긴 부유한 만큼 세력들이 많거든요. 거기다 아르크의 전진기지하고도 그리 멀지 않아서 자리싸움이 치열하죠. 전진기지로 이주할 기회도 많고, 그만큼 아르크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엄밀히 말하면 아르크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더 안전한 건 오히려 이곳일지도 모릅니다. 여긴 적어도 자리싸움으로 흙탕물이 튀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심도 더 좋죠. 키예프 시티는 외곽에 강도들이 많아서 다들 너무 쌀쌀맞습니다. 접대부들마저도 콧대가 높은 지경이죠. 그런데도 거기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것 자체로 자부심이 생기는 모양이에요. 꼭 아르크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굴죠. 정작 아르크에는 가보지도 못했으면서 말입니다. 실속 없는 자존심입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습니다. 대부분 친절하죠.”

사미르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밝은 얼굴의 사람들을 보자, 그 역시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흥을 이기지 못하고 시키지도 않은 도시에 대한 설명을 제멋대로 늘어놓기까지 했다. 오른쪽 건물 3층에 조각난 손이 운영하는 전파사는 다양한 부품들이 있고, 바로 옆 건물 1층에 춤추는 손가락의 미용실은 세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 그 맞은편 6층짜리 건물에 뺑코의 잡화점에는 질 좋은 옷가지가 수십 종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에는 최고의 것들만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이곳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도시에 대해서 엄청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바츠의 관심은 그의 설명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바츠는 그가 실컷 떠드는 동안, 옆을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더 열을 올렸다. 그들의 밝은 표정도 인상적이었지만, 자신을 비롯해서 일행들에게 특별한 눈길을 주지 않는 모습이 너무도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각자 갈 길을 재촉하는 데에만 바빴다. 오히려 자신이 그런 그들을 돌아보아야만 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러자 저쪽에서 그 시선을 눈치 챈 강일이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표정을 전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이곳 주민들은 정말 개방적인 것 같았다. 하루 머물고 가기로 한 결정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있을 식사가 기대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생각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사미르와 강일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후회를 넘어 원망을 느껴야 할 정도로 기분이 언짢아진 까닭이었다. 건물이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퀴퀴해진 공기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전부다 지독한 분뇨 냄새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곳만 그런 겁니다.”

사미르가 서둘러 한마디 했다. 그가 붙잡지 않았더라면 밖으로 뛰쳐나갔을지도 모를 만큼 끔찍한 냄새였다. 차라리 아르크의 폐기물 처리장이 더 낫다는 생각이 스쳤을 정도로 공기가 매우 탁했다. 모두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 무리지어 있는 수십 마리의 가축들이 원인이었다. 레벨5에 견학을 가서 볼 수 있었던 몇몇 짐승들이 이곳에서 사람들에 의해 키워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짐승들이 각자의 울음소리를 내며 심각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개와 닭부터 돼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서넛이나 됐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개였다. 다들 꼬질꼬질하게 야윈 모습으로 서른 마리 넘게 키워지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시고, 이쪽으로 가시죠.”

사미르가 바츠를 안쪽 계단을 향해 잡아끌었다. 직접 손을 대지는 못하고, 앞에서 허공을 파헤치듯 양손을 허우적거렸다. 그가 굉장히 조급해하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도 느껴졌다. 바츠가 걸음을 멈추고, 동물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그에게는 무섭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불쾌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바닥은 더러웠고, 냄새는 지독해서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바츠가 걸음을 멈췄던 이유는 짐승들이 사육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눈을 떼기 어려웠던 것뿐이었다. 비록 그 상태가 청결하지도 않고 그리 양호하지도 않았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지상에 프레이를 제외하고 다른 짐승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바츠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어떻습니까? 한결 낫죠?”

사미르를 따라 계단을 오르자, 층계참 전체가 소독액이 쏟아지는 샤워장처럼 작은 부스로 꾸며져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소독액이 쏟아지는 샤워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아니었고, 내부에 전기가 흐르는 소리를 내며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부스를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나오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눈앞이 아찔하던 냄새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전부 사라졌다고 해도 될 만큼, 그 농도가 현저히 감소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미르가 방독면을 벗으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이곳이 바로 민스크 시티의 가장 훌륭한 식당인 ‘베라’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다시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안쪽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 매우 당당했다. 표정 역시도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그럴만한 것이 방금까지 불편하게 만들던 냄새는 이미 사라진데다가, 앞에 펼쳐진 깔끔한 식당의 모습은 도저히 이곳이 지상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너무도 멋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바로 아래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가지런히 정렬된 20개가 넘는 테이블과 내부를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수백 개의 양초 그리고 적당히 놓여있는 크고 작은 장식들까지 모든 것이 고급스럽게 보였다. 심지어 바닥에는 프레이의 모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카펫까지 깔려 있었다. 조시안느의 샬롱에서 보았던 VIP들만 자리할 수 있다던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이곳이 레벨4라면 그곳은 레벨1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이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는 싸구려 웃음을 흘리며 천박하게 속살을 드러낸 접대부들이 있었고, VIP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일 뿐 더럽고 추한 외모는 차이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사람들은 여느 야인들처럼 단출한 차림새였지만, 정갈한 모습과 차분한 분위기로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곳처럼 왁자지껄 떠들거나 게걸스러운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다. 마치 아르크에서 살다 나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만 같았다. 20여개가 넘는 테이블이 그런 사람들로 빈틈이 거의 없었다.

“전부 네 분이십니까?”

바츠가 안을 구경하느라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을 때, 저쪽에서 한 여인이 다가와 물었다. 그녀는 얼굴에 활짝 미소를 걸고는 헌터 슈트처럼 몸에 딱 들어맞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셀레나처럼 머리카락을 전부 모아 동그랗게 말아 올려두어서 그런지 민망하지 않고 오히려 세련돼 보였다. 아마도 그녀의 웃는 얼굴과 잘록한 허리 때문인 것 같았다. 사미르가 그런 그녀에게 평소보다 훨씬 당당한 태도로 대답했다. 거만해보이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모두 다섯이야. 돼지고기를 먹을 거니까, 좋은 자리로 안내해 봐.”

“아, 그러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때마침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사미르의 거드럭거리는 태도에도 그녀의 미소는 전보다 훨씬 더 진해졌다. 목소리는 흥분한 사람처럼 밝아졌고, 앞서 걷는 걸음은 허공을 밟고 올라설 것처럼 매우 가벼워 보였다. 마치 환호성을 지르기 직전의 사람처럼 보였다. 사미르가 그 뒤를 바로 따랐다. 그는 그녀를 바짝 쫓으며, 그녀가 입고 있는 옷과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손 그리고 눈과 피부를 차례로 칭찬했다. 그녀가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끊임없이 치근덕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사미르가 찝쩍거리는 것을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시종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가끔씩 입을 가리는 행동이나 자신의 어깨 뒤로 얼굴을 감추려는 행동을 하며 사미르의 애를 태웠다. 심지어 아델리나와 함께 가장 뒤에서 따라오던 패토스가 고기를 달라며 큰 소리로 외치는 것까지도 웃는 얼굴로 타일렀을 만큼 친절했다.

바츠는 그녀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귀찮을 법도 할 텐데, 조금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 대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를 대신해서 패토스를 마저 나무라던 아델리나가 갑자기 등 뒤로 바짝 달라붙으며 묻는 말을 듣고는 생각을 조금 바꿔야 했다.

“바츠, 그런데 왜 우리가 다섯 명이야? 우리 모두 일곱 명 아니야?”

대답은 막 방독면을 벗던 강일이 대신했다.

“노예는 함께 세지 않습니다.”

바츠는 강일의 딱딱한 대답을 듣고 나자, 그의 바로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여자 아이 둘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함께 있어서 둘이 노예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강일의 심통 맞으면서도 상냥한 태도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며칠을 함께 하는 동안 이름조차 듣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뒤이은 아델리나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품위 있어 보이던 식당이 달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 저 여자는 패토스도 노예로 본 거야?”

바츠는 아델리나의 물음에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먼저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은 하나같이 테이블 바로 옆 바닥에 최소 한 명에서 최대 세 명까지 크고 작은 아이들을 앉혀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리에 멍하니 앉아서, 주인이 식사를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그 고상한 식사 말이다. 강일이 말했다.

“이곳은 돈이면 다 되는 곳입니다. 아주 오래 전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다르지 않죠.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츠는 물론이고 아델리나도 그가 되묻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대답을 듣기 위해 물었던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조용히 걸음만 옮길 뿐이었다.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그것이 또 엄연한 사실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비단 이곳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다녀본 지상은 전부 그래왔고,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르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강일의 말대로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규칙이었고, 그 규칙을 따른 것뿐이었다.

“한 마리를 전부 통으로 구워서 가져오라고. 그 위에 버터를 바르면 좋겠군. 버터가 있나?”

안내된 자리에 앉자 사미르가 턱을 거의 직각으로 들고는, 바로 옆에 선 그녀에게 불량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이번에도 역시 쌩긋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돼지도 있고, 버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아시죠?”

“내게 돈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나 자유도시 카르카손에 거점을 둔 칼맨이야. 건물 앞에 세워진 빅도그가 내 것이라고.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게다가 여기 헌터 두 분도 계신 거 안 보여? 잔말 말고 주문한 그대로 가져오고, 빈 접시나 두어 개 더 내오도록 해. 노예들도 맛은 봐야 하니까.”

그녀는 사미르의 대답을 듣고는 표정이 확 변했다. 아니,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얼굴 가득 함박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변한 것 같았다. 그녀는 사미르와 어울리는 동안 살짝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주문을 받고 멀어지기 직전에는 그의 어깨를 슬그머니 만지며 먼지를 털어주기까지 했다. 저쪽으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두 배는 빨라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사미르와 강일 옆에 그러니까 정확히는 그 옆 바닥에 자연스럽게 앉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방독면을 조심스럽게 벗어두고는 그 옆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바츠는 지금의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여태까지 배운 모든 것이 전부 사라진 기분이었다. 노예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말이었다. 단지 그 단어가 이제야 무슨 말인지 실감이 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의미를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던 자신이 놀라웠다. 함께 한, 두 여자아이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저 노예였던 것뿐이었다. 그 때문인지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아델리나가 걱정스러워 하는 덕분에 방독면을 벗기는 했지만, 그건 오늘따라 숨을 쉬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음식에는 여전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강일의 심각하게 변한 눈빛과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그저 의아해하는 사미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허겁지겁 음식을 덜어먹는 패토스와 가끔 사미르가 흘려주는 음식을 테이블 아래서 받아먹는 노예들이 눈에 밟힐 뿐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어색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나저나...지난밤 그 자식...역시 미치광이였죠?”

그 정적이 깨진 것은 식사가 반쯤 끝났을 때였다. 사미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바츠는 반대쪽에서 강일이 그에게 눈치를 주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애써 모른 척 계속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사미르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말했다.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바로 기뻐할 수 있는 건지...거기다 나중에 우리한테 소리쳤던 것 기억하십니까? 무슨 소리인지는 몰라도 정말 소름끼치는 말이었잖습니까.”

“우리를 전부 싱숭생숭하게 만들었었지.”

강일이 바츠의 얼굴을 살피며 그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사미르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살해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어? 수십 명씩 살해하는 사람을 어떻게 정상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느냐고...! 아, 두 분께 한 소리는 아닙니다...”

“됐어. 신경 쓰지 마.”

바츠는 입을 열어 그에게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제야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방금 전 그가 말한 정상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강하게 스친 덕분이었다. 애니밀을 부착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허기가 절로 느껴졌다. 하지만 바츠는 끝내 고기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막 입구로 들어오는 여럿의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입구에서 자리를 안내해 주었던 여인과 짧게 몇 마디 주고받고는 이쪽을 향해 정확히 시선을 고정했다. 바츠는 그들이 점점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우린 목적지가 서로 다르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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