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 진정한 순례자 -- > * 188화 *
그들은 잘 무장된 사람들이었다. 몇몇은 실탄이 들어있을 것으로 보이는 소총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은 나름 정교하게 날을 세운 무기들을 하나씩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식당을 가로질러 오는 그들의 모습은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바츠와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도 볼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바츠를 길거리에서처럼 가볍게 한 번 눈으로 다녀가는 것이 고작이었었다. 그마저도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시야에 들어온 물체에 대한 반사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큼은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끝까지 그 뒤를 쫓으며 조용히 지켜보았다. 일부는 조심스럽게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밝은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부정적인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남쪽에서 온 헌터시죠?”
그들 중 앞장서서 다가온 사내가 물었다. 그는 바츠를 맞은편에서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걸어오며 만들어낸 긴장감이 무색할 정도였다. 정중한 행동이었다. 남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중심으로 테이블 주위를 둥글게 둘러싸는 모습은 사뭇 위협적으로 느껴졌으나, 덩달아 고개를 일제히 숙이는 모습은 같았다. 식당 분위기 때문인지 다들 방정한 태도였다. 하지만 강일은 쉽게 긴장감을 풀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바로 옆과 뒤에 선 그들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그에 반해 사미르는 거들먹거리던 모습을 어느새 전부 감추고는, 벌써부터 주위를 에워싼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데 바빴다. 패토스가 여전히 남은 고기나 덜어먹으며 무관심한 것을 바라보면 절로 헛웃음이 나는 모습이었다. 전혀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패토스가 오히려 더 믿음이 갈 정도였다. 아델리나 역시 그들에게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앉은 자리를 그들이 거의 반쯤이나 둘러쌌는데도, 한 차례 눈길을 준 것 외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제 좀 얼굴이 펴진 바츠를 환하게 반기며, 남은 고기 일부를 대신 앞으로 덜어놔 주는 것에만 관심을 쏟았다. 바츠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며 사내를 살폈다.
그는 적어도 마흔 살 가까이 된 중년의 사내였다. 황갈색의 머리칼은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검은 눈은 강일만큼 진중함이 느껴졌다. 선뜻 신뢰가 가는 외모였다. 야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차림새가 너무도 단정했다. 하지만 그의 뒤틀린 코는 그가 야인임이 분명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중간 부위가 반쯤 주저앉은 채, 마치 곱슬처럼 휘어져 있었는데, 오래 전에 부러진 상처를 제때 처치하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로 보였다. 코로 숨 쉬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작은 머리의 사냥터를 무사히 지나오신 헌터 분들이 맞으시죠?”
그는 자신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않자,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으면서도 침착한 묘한 목소리였다. 강일과 사미르의 시선이 그의 목소리를 따라 바츠와 아델리나가 나란히 붙어 앉은 쪽으로 옮겨졌다. 둘은 생김새가 전혀 다른 것만큼, 서로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츠는 대답 대신 그를 외면하고는, 아델리나가 자신의 접시에 발라준 고기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정신을 환기시켜줄 만큼 구수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아델리나가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며 행복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저쪽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의 곁에 있던 다른 한 사내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것이었다.
“붉은 얼굴, 저자들 정말 헌터 맞아? 방금 봤어? 웃고 있잖아. 저렇게 평범하게 웃는 헌터가 어디에 있어...”
그는 나름 신경 쓴다고 한 것 같았지만, 바츠는 물론이고 테이블 모두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미르와 강일의 시선이 빠르게 그쪽으로 향했다. 아델리나는 짧게 삐죽거리며 그를 한 번 노려보았고, 패토스는 변함이 없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 챈 사내가 잔뜩 긴장한 듯 눈치를 살폈지만, 붉은 얼굴이라고 불린 사내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금방 자신감을 되찾았다. 강일이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당신이 붉은 얼굴입니까?"
“사람들이 절 그렇게 부르고는 하더군요.”
그가 강일을 기분 좋은 얼굴로 내려다보고는 다시 바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고개를 연속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앞 머리카락이 날리자 오른손으로 그것들을 여유 있게 정리했다. 크게 헝클어지거나 불편을 주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그는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츠는 그의 행동이 계산된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을 쓸어낸 그의 오른 손등에 특별한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불꽃 모양이었다. 붉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양은 그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른쪽 가슴에, 다른 한 사람은 눈 밑에, 또 다른 한 사람은 얼굴을 반쯤 가린 하얀 헝겊 위에 새겨놓고 있었다.
“저와 대화하는 것이 싫으신 겁니까?”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물어왔다. 서운한 기색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애써 그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려 넣었지만, 오히려 더 부각되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교활함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순박한 미소였다. 바츠는 그제야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시선은 여전히 앞에 놓인 고기와 아델리나의 얼굴만 오갔다.
“나를 찾아오는 경우는 두 분류지. 하나는 나를 자극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내게 부탁을 하기 위함이지. 둘 다 지루한 일이지만, 당신은 부탁을 하고 싶은 것 같군. 아직까지는 말이야.”
그가 미소를 두 배로 더 크게 그리며 대답했다.
“역시 헌터입니다. 그 통찰력 언제 봐도 존경스럽군요.”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바츠가 그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한 번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많은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다.
“지상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몸만 숨긴다면 누구든지 훔쳐 볼 수 있죠. 그리고 우린 도시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위험으로부터 무감각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까지 무감각해질 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가 위험이라는 소리로 들리는 군.”
“정확히는 위험과 함께 했었던 것이죠. 미풍의 칼날. 그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니까요.”
“그자는 이 근방의 골칫거리 아니었나? 내 기억으로는 그들을 혼내준 것 같은데, 음흉하게 숨어있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지? 제대로 보았다면 밀접한 관계라고 말할 수 없을 텐데?”
바츠가 떨떠름하게 말을 건네자,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근처에서 헤러티커 둘이 싸운다면 지나는 프레이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 겁니다. 어느 쪽이 살아남든 프레이는 여전히 헤러티커의 먹잇감인 것이 변하지는 않으니까요.”
바츠는 그의 변명에도 여전히 심기가 불편했지만, 애써 참아내며 물었다.
“좋아. 쓸데없는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하지. 벌써 지루해지는 군. 나를 찾은 이유가 뭐지?”
“그자를 혼내주신 건 맞지만, 놈들을 완전히 제거한 것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군요. 아직 녀석들이 건재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설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죠.”
바츠는 그에게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내게 그자가 다시는 설치지 못하도록 완전히 제거해 달라는 말인가?”
“맞습니다. 정확히는 남은 녀석들을 저와 함께 가서 몰아내자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가 전보다 한결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의 뜻이 제대로 받아드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쁜 것 같았다. 하지만 바츠는 그의 기분을 단 번에 꺾어버렸다. 다시 시선을 접시로 옮기고는 남은 고기도 입안으로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글쎄, 별로 내키지 않는군. 며칠 전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은 의미가 없어졌거든.”
아델리나가 그런 바츠에게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리며 더 먹을 것이냐고 의사를 물어왔다. 바츠는 절로 그려지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붉은 얼굴이 굳어진 얼굴로, 보다 더 진지한 분위기로 말했다.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는지, 두 눈에는 혼란스러움이 비쳐졌다.
“놀랍군요. 헌터가 자신들을 위협한 자들을 그냥 내버려두겠다고 말하다니...녀석들은 이 지역의 무법자들입니다. 헌터들은 그런 자들을 싫어하잖습니까? 듣자하니 근래에 헌터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더군요. 작년에는 U13 아르크에서 키예프 시티를 기습했다죠? 비록 외곽을 급습한 것이었지만 4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몰살 시켰죠. 아르크가 미친 겁니까? 사람들의 이목에 민감한 것이 아르크 아니었습니까. 그런 짓은 아이기스 같은 녀석들이 환호할 일이죠. 그 불만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전혀 동의하지 못하는 겁니까? 그냥 모른 척 지나기에는 아르크도 부담스러울 텐데요?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바츠는 그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르크의 입장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싫어하는 건 무례한 자들이지. 경고하는 거야. 내게 말할 때, 다시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이쪽이지 그쪽이 아니니까. 처음 태도를 계속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군. 서로 존중하자는 말이야.”
바츠가 시선을 번뜩이자 그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어깨를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몸의 반응을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지 몹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노련하게 마음을 추스르고는 금세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음...역시 그런 겁니까? 지난번에 왔다간 헌터와 크게 다르지 않군요. 거절이신 겁니까? 제가 이렇게 해도 소용없을까요?”
그가 말을 마치고 턱을 위로 까닥이자, 그것을 신호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수하들이 사미르와 강일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고, 그 밑에 앉아있던 노예들에게는 손도끼와 투박해 보이는 칼을 목덜미에 가져다댔다. 항상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던 강일조차도 손쓸 수 없을 만큼 기습적이었다. 강일은 대화가 길게 이어지자 약간 긴장을 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눈치를 채고는 얼른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반응은 한 발 늦은 뒤였다. 집어 올리려던 소총을 다시 얌전하게 다리 위에 내려놓아야만 했다. 그런 그의 표정에 분한 듯 씁쓸함이 스쳤다. 사미르가 경직된 채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바츠와 아델리나 그리고 그 옆에서 지금까지도 먹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던 패토스에게는 어떤 위협도 없었다. 바츠는 사미르와 강일을 한 번씩 살핀 뒤 대답했다.
“나와 상관없는 자들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우린 그저 우연히 가는 방향이 일치했던 것뿐이야.”
사미르가 놀란 눈으로 빠르게 바츠를 돌아보았다. 당혹스런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강일은 그 와중에도 다시 총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총구로 겨눈 사내를 노려보며 차분하게 기다렸다. 붉은 얼굴이 말했다. 진심이 담겼는지 굉장히 무거운 목소리였다.
“후회 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바츠는 훨씬 어두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불쾌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바닥에 내던져진 촛불의 불꽃처럼 희번덕거리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하고 가랑이로 밀려드는 싸늘한 기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데에도, 물러나지 않고 지그시 바라보며 맞섰다. 그러자 아델리나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바츠가 분명 무례한 건 싫다고 한 것 같은데, 벌써 잊은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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