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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감염-208화 (208/268)

< --   13. 신을 거부하는 자   -- >         * 208화 *

“제발 살려주세요!”

그녀는 허겁지겁 달려와 에르네스트에게로 안겼다. 그의 허리를 부둥켜안는 그녀의 양팔에 간절함이 느껴졌다. 어깨에 난 상처도 잊고 그를 끌어안았다. 에르네스트는 살짝 당황했는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를 떼어내기 위해 서두를 뿐이었다. 그녀를 쫓아 나온 것으로 보이는 헤러티커가 막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헤러티커가 가까워질수록 에르네스트의 허리에 두른 팔을 더욱더 세게 조였다. 그는 충분히 힘으로 그녀를 떨칠 수 있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미 부상을 입은 그녀가 자신으로 인해서 또 한 번 다칠까 염려스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헤러티커가 도착하기 전에 그녀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 혼자서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그녀가 뒤에 있던 바츠와 아델리나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옆으로 튕겨나가듯 바닥에 주저앉았기 때문이었다. 헤러티커가 에르네스트의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바츠는 서둘러 카니지를 뽑아들었고, 아델리나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놈이 달려들게 될 예상 경로를 중심으로, 각각 좌우로 흩어지며 놈의 공격에 대비했다. 놈이 에르네스트를 해치우고 난 다음을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의 오른쪽 기계 팔을 가로로 들어 올려 놈의 이빨을 정면으로 막아냈다. 헤러티커의 치악력을 팔로 그대로 받아낸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돌진해온 놈이 밀어붙이는 힘마저도 제자리에서 견뎌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헤러티커와 힘으로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는 그 사이에 놈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옆구리와 복부를 마구 할퀴는 것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고 있었다. 그저 소름끼치는 금속음과 함께 그가 입고 있는 옷만 너절하게 찢길 뿐이었다.

“이 여자를 부탁해요!”

에르네스트가 자신의 바로 옆에 주저앉아있는 여자를 향해 눈치를 주었다. 그녀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완전히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힌 두 눈이 차라리 본래 향하려고 했던 건너편 건물로 달아나는 것이 더 낫다는 후회를 하고 있었다. 바츠는 그런 그녀의 어깨 쪽 옷깃을 거칠게 잡아채 뒤로 끌어 당겼다. 그녀는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험하게 끌려오며 비명을 질렀다. 헤러티커에게 쫓길 때와 똑같은 비명이었다. 그녀는 양팔과 다리를 마구 내저으며 달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츠는 그런 그녀를 에르네스트로부터 적당히 멀어졌을 때, 던지듯 내려놓아야 했다. 그녀의 몸부림으로 괜히 힘을 더 써야했기 때문에 살짝 짜증이 일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못마땅한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바츠는 그녀에게서 바로 눈을 떼고 에르네스트를 지켜봐야 했다. 그가 막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놈이 자신의 기계 팔을 물고는 계속해서 밀어붙이며 양 손톱으로 몸을 난도질 하는 사이, 왼쪽 손으로 놈의 목을 붙들었다. 놈의 목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였는데, 놈이 물고 있는 기계 팔의 손등에서 카니지만큼 날이 제대로 선 칼날이 밀려나오는 것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놈의 목을 잡고는 자신의 기계 팔을 바깥쪽을 향해 있는 힘껏 잡아당긴 것이었다. 놈은 자신의 끔찍한 울음소리를 비명으로 내뱉어야만 했다. 그의 기계 팔이 자신의 입을 절반쯤 찢으며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손등의 칼날이 그 피해를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왼쪽 볼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졌을 정도였다. 동시에 단단한 금속과 마찰로 이빨도 상당수가 그대로 부러졌다. 놈의 고통에 일그러진 울음소리가 주변에 널리 울려 퍼졌다. 하지만 붉은 두 눈만큼은 더욱더 진하게 빛났다. 밀려드는 통증 속에서도 그를 향한 증오가 빠르게 피어나고 있었다. 놈의 양팔이 다시 한 번 마구 내둘러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몸통뿐만 아니라 그의 머리까지 노린 움직임이었다.

“제길!”

그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세웠다. 어깨를 끌어올려 머리를 숙이고 기계 팔로 뒤통수를 감싸고 왼쪽 팔은 가슴에 품었다. 손등의 칼날은 어느 틈에 다시 안쪽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헤러티커의 광기어린 손톱들이 머리를 감싼 그의 기계 팔과 등을 사정없이 할퀴기 시작했다. 그의 옷은 갈갈이 찢겨 더 이상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서늘한 금속 마찰음은 또 다시 이어졌다. 그의 등에서 불꽃이 튀길 만큼 맹렬한 공격이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리지 못하고 그대로 달아나듯 내달려야 했다. 잠시라도 놈과 거리를 벌려서 몸을 돌려 세울 기회를 만들기 위한 의도로 보였다. 하지만 놈은 그를 바짝 쫓으며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놈은 그가 자신에게 고통을 준 것도 화가 나지만, 아무리 손톱을 휘둘러도 쓰러지지 않는 모습에 괘씸함을 느끼고 더 분노하는 듯 보였다. 달아나는 그를 끝까지 쫓으며 괴롭혔다. 만약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벌써 그의 상의처럼 찢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몰래 접근한 아델리나가 높이 뛰어올라 놈의 등을 힘차게 벴다. 기껏해야 실선에 가까운 작은 상처를 만들었을 뿐이었지만, 놈이 움찔하며 제자리에 서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그 사이 그는 몸을 서둘러 돌리며 다시 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 놈의 붉은 시선이 아델리나에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검을 세우며 놈을 지켜보았다. 방독면 렌즈 밖으로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가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새삼 그녀가 헌터라는 사실을 느끼게 했을 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놈이 온몸으로 덮치듯 달려드는 것을 유연하게 옆으로 피해내며 복부를 벴을 만큼 날렵한 몸놀림으로 나타났다. 전에도 한 번 본적이 있었던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정말 민첩했다. 이어지는 놈의 손톱 공격도 모두 피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가끔 부담스러우면 검으로 막아내며 적당한 여유를 만들고는 했다. 그녀 혼자서도 놈을 상대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츠는 그녀를 그렇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는 충분히 강했지만 놈은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둘의 힘에 차이는 너무 컸다. 아델리나는 결코 놈의 무력을 극복할 수 없었다. 민첩한 몸놀림 덕분에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조금씩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놈 역시 날렵한 움직임이라면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콘솔을 사용하면 더 나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조금 전 높이 뛰어올랐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미 콘솔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츠는 놈이 아델리나에게 괴성을 지르며 손톱을 휘두르는 사이, 자신도 웜업 콘솔을 활성화시키고는 빠르게 뒤로 접근했다. 그리고는 놈의 왼쪽 허벅지를 향해 있는 힘껏 카니지를 휘둘렀다. 그대로 허벅지에 박혀버렸을 만큼 강한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그대로 다리를 절단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놈의 단단한 피부를 뚫고 강인한 뼈를 부러뜨리기에는 아직은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다시 카니지를 뽑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놈이 크게 분개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놈은 갑작스런 큰 상처에 놀랐는지, 아델리나를 쫓다말고 바츠를 빠르게 돌아보며 울부짖었다. 튀어나올 듯이 부릅뜬 붉은 눈에 고통과 억울함이 동시에 묻어나고 있었다. 한쪽 얼굴이 망가졌을 만큼 찢긴 입의 상처와 살점이 크게 벌어진 허벅지의 상처를 동시에 견뎌내기에는 놈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잔뜩 흥분해서는 몸을 날려 덤벼들었다. 오히려 바츠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놈의 동작이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민첩하지 못한 몸놀림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불편해진 다리 때문에 신속함마저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바츠의 눈에는 놈의 움직임이 몇 번이나 머뭇거리며 주저하다가, 마지못해 충동적으로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간단히 피해낼 수 있었다. 곧장 방향을 바꿔 세차게 휘두르는 양손도 마찬가지였다. 놈의 손톱은 여전히 인체를 너무도 간단하게 훼손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위협적이었지만, 통증으로 절룩이기 시작하는 다리 때문에 그 위력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바츠는 뒷걸음질 치며 어렵지 않게 놈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다만 더 이상 놈을 향해 제대로 된 공격을 시도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놈은 아직까지도 방심할 수 없을 만큼 위험했다. 혹시라도 실수를 하면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바츠에게는 아델리나는 물론이고 에르네스트도 있었다. 둘은 놈이 엉거주춤하는 움직임으로도 바츠를 압박하는 사이, 또 다시 뒤에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둘이 함께였다.

아델리나가 이번에도 높이 솟구치며, 카니지로 놈의 뒷덜미를 후려쳤다. 칼날로 벤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도끼질을 하듯 내려쳤다. 목의 척추가 칼날을 튕겨냈지만, 놈의 점성이 짙은 누런 피가 그 뒤를 따라 걸쭉하게 흘러 나왔다. 놈이 바츠를 쫓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젖히며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그의 울음소리가 이제야 비로소 분노보다는 고통에 더 젖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델리나가 상처를 내고 지나가자, 곧이어 에르네스트가 놈의 옆구리를 향해 자신의 오른쪽 주먹을 힘차게 내질렀다. 고개를 젖히며 울부짖던 놈이 이제는 허리까지 강제로 쭉 펴며 충격에 반응했다. 분명 에르네스트의 강력한 힘에 크게 놀랐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보다는 그의 주먹이 놈의 옆구리에 닿는 순간 손등에서 다시 튀어나온 칼날이 그대로 깊숙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그는 놈이 밀려드는 통증에 몸부림치는 동안, 그 자리에 함께 서서는 같은 동작을 연속해서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그의 주먹이 놈의 옆구리에서 멀어지고 칼날이 한 번씩 뽑혀 나올 때마다, 놈의 상처는 점점 더 크게 벌어졌고 그 틈으로 쏟아지는 누런 액체의 양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의 공격은 놈의 뼈를 부러뜨리고 내장을 손상시키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놈이 할 수 있는 것은 가까스로 몸을 돌리며 그에게로 손을 내둘러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위기를 느끼고 필사적으로 휘두른 것이라 그 세기와 속도는 어느 때보다도 남달랐지만, 허공을 가르는 무의미한 몸짓이기도 했다. 그는 충분히 놈의 손짓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미끄러지듯 몸을 빼내며 놈이 허공에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굴욕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놈은 그 굴욕에 창피해할 겨를이 없었다. 어느 틈에 달려든 아델리나가 이전에 바츠가 만든 허벅지의 상처를 향해 또 한 번 검을 휘둘러 기어이 놈의 다리를 부러뜨렸고, 놈이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진 사이 바츠가 달려들어, 마지막으로 저항하기 위해 누운 채로 무턱대고 휘둘러대는 놈의 팔을 향해 검을 휘둘러 놈의 손톱을 그대로 부러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바츠는 놈의 손톱과 카니지가 부딪힐 때 철근에 휘두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손목이 욱신거릴 만큼 단단했다. 하지만 동시에 밀려드는 진한 쾌감은 그 아찔한 기분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매우 기분 좋았다.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분에 찬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놈의 얼굴을, 에르네스트가 온몸에 체중을 실은 자신의 오른쪽 주먹으로 내리쳤을 때에는 통쾌하기까지 했다. 바츠는 완전히 얼굴이 함몰되며 머리가 으깨진 놈의 모습을 보며, 크게 숨을 내쉬며 거칠어진 호흡을 안심하고 고를 수 있었다. 에르네스트가 그런 바츠를 방긋 웃는 얼굴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바츠는 그의 환한 얼굴을 보고 반갑게 대답해주려고 했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알 수 없는 자존심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그려지던 미소를 확 걷어버리고 말했다.

“착각하지 마. 헤러티커를 상대하는 것이 익숙했던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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