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 신을 거부하는 자 -- > * 210화 *
그날 밤, 바츠는 다들 잠든 틈을 타 밖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가슴이 답답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환타와 그 가족들은 위층에서 잠이 들었고, 아델리나와 패토스는 그들이 내준 여러 장의 담요와 함께 1층 구석 벽난로 앞에서 잠이 들었다. 비록 천장이 절반쯤 벗겨져 있고 벽도 군데군데 무너져 내려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심지어 벽난로의 열기는 아델리나마저도 편히 잠에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에르네스트만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밤이 깊어지고 바닷바람이 이곳까지 불어 닥치는 요란한 고요 속에서, 무겁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델리나와 다툰 것 때문인지,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둘은 꽤 오랫동안 다퉜다. 에르네스트는 고집을 부리듯 불만을 쏟아냈고, 아델리나는 억울함으로 대응했다. 나중에는 싸우게 된 이유를 잊고 감정싸움으로 변했다. 바츠가 지켜보다 못해 둘에게 그만두라는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모른다. 에르네스트는 굉장히 못마땅한 것 같았고, 아델리나는 분할 뿐이었다. 서로 간의 대화가 많아졌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바츠는 그로인해서 만들어진 어색함에 진이 빠졌다.
밖은 추웠다. 시리고 날카로운 바람을 막아줄 그 어떤 것도 없었고, 검은 어둠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손가락질로 조롱하고 있었다. 바츠는 주변에 새카맣게 내려앉은 수많은 어둠들이 자신을 비웃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모습을 감추고는, 몰래 훔쳐보며 수군거리는 있는 것이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믿기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바츠는 입구를 떠나지 않고 그 앞에 서서는, 고개만 돌려 닫힌 문을 돌아보았다. 일부 경첩이 못 쓰게 변한 낡은 문이 위태롭다기보다는 여유가 있는 모습으로 비딱하니 서 있었다. 바츠는 고개를 살짝 움직여 비스듬하게 선 문을 바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문이 균형을 잃고 한쪽이 주저앉은 것인지, 자신이 기울어져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위에 가득 채워진 어둠이 그것을 더욱더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괜히 속이 메스꺼우며 어지러웠다. 안에는 아델리나가 잠들어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아이기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자고 있었고, 조금 모자란 듯한 돌연변이 패토스도 근처에 있었다. 사람인지 기계인지 그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에르네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생각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 머물고 있었다. 때로 눈치를 보고 다투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크게 다칠 정도의 위험한 분란은 없었다. 그저 밤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처럼 함께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집안에서 모두가 숨을 쉬고 있었다.
바츠는 몸을 바로하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어 계단을 내려갔다. 목재로 만들어진 계단 위에, 수북이 쌓인 모래 알갱이들이 밟혔지만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은 그들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고통을 알면 안 되는 것처럼 방해를 하는 것 같았다. 바츠는 그대로 계단에 걸터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새인가 익숙해져가는 캄캄한 밤이 혼자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저 먼 하늘까지도 모두 잠식한 어둠 속에서 작고 밝은 빛들이 수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아르크 플랫폼 대기실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크고 작은 시선들 같았다.
“별...”
바츠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검은 모래사장 위에 햇살에 반짝이는 작은 알갱이들을 빼곡히 흩뿌려놓은 것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는 저 먼 곳 어딘 가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한줄기 위로였다. 누가 보내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꽉 막힌 듯 답답한 가슴을 관통하며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밤하늘에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쪽에는 그보다 훨씬 더 밝고 선명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전부 합쳐도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거대한 감동이었다. 바츠는 그것 역시도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달...”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랍고 신비로웠다. 비록 지금은 잘린 반원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언젠가 반드시 큼지막한 원형을 갖추게 될 것이다. 바츠는 완전한 모습이 아닌데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답답하던 마음도 그제야 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바츠를 향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바닥에 깔리는 물안개처럼 잔잔하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그 전에 낡은 문이 나름대로 조용히 움직이는 소리가 먼저였다.
“처음 보는 모양이지?”
바츠는 돌아보지 않고도 그가 에르네스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묵직한 걸음으로 다가와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의 어깨가 유난히 크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아름답지?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너무 아름다워서 완전히 빠져들고는 해. 손에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마구 생겨난다고.”
에르네스트가 자신의 오른팔을 허공으로 뻗어 몇 번이나 손을 오물거렸다. 별들을 정말로 손에 넣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손에 잡히는 별빛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는 앞으로도 그 시도를 계속할 것처럼 보였지만, 영원히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며 팔을 내리며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있었다.
“별들은 늘 밤하늘의 품 안에 있어. 그래서 이곳에 내려오지 않는 걸 거야. 그곳에도 자신을 보듬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야. 만약 저 밤하늘을 전부 걷어내면 내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
바츠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든 것으로도 모자라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하늘의 별이 그토록 가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가 바츠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지, 계속해서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아무리 처음 보는 것이라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아. 아름다움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마음을 흔드는 것이니까. 사람들은 각자 마음이라는 게 있잖아. 닥터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항상 이런 말을 하고는 했어.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아름다운 것 같다’고 말이야. 그래서 별도 저렇게 아름다운 걸까? 정말 짜증나는 일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츠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원망이 묻어났다.
“왜 온 거지? 스톡홀름 시티에 온 이유가 뭐야? 헌터들이 가끔씩 찾아오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거든. 닥터가 이토록 신경 쓰는 건 처음 봐. 넌 모르겠지? 닥터의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어. 누군가에게 뭔가를 부탁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마치 기다리고 있던 사람 같았다고. 왜 일까? 대체 그가 네게 이런 부탁을 한 이유가 뭘까? 대체 네가 무엇이기에?”
“글쎄, 그를 찾아오는 건 다들 과거를 듣기 위해서라고 하던데?”
“과거? 맞아. 하지만 너에게처럼 뭔가를 요구한 적은 없다고.”
“내가 우스워 보였는지도 모르지. 지상에 사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그러거든. 상대가 우스우면 불필요한 요구를 하고는 하지. 그리고 그것을 거래라고 말해. 일종에 자신의 편의를 위한 기만이지.”
“그래? 닥터가 널 골려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다는 거야?”
바츠는 고개를 정면으로 옮기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답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그는 오래 살았다고 하잖아. 시간이 지루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내가 자신의 기만에 따를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지 않을까? 얼마나 우스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을 하게 만들고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말이야. 그리고는 나중에 선심을 쓰듯 당연한 것을 나눠주는 거지.”
바츠는 막상 이렇게 대답을 하고나자 왠지 기분이 나빴다. 정말 그에게 놀림감이 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에르네스트의 말대로라면 이미 원하는 대답을 듣고 전진기지로 돌아가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진기지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야할지 모를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괜히 억울했다. 에르네스트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자 그 불쾌함이 더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조금 지난 뒤였다. 그는 바츠의 대답을 듣고는, 이번에는 반대로 바츠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런데...저 헌터는 너와 무슨 관계지? 안에서 전혀 헌터 같지 않게 잠을 자고 있는 녀석 말이야.”
바츠는 그의 물음에 분한 마음을 단 번에 잊었다. 내심 궁금하던 것이었는데,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서 반가웠다. 그에게로 고개를 돌려 마주보며 대답했다.
“내가 먼저 묻고 싶군. 아델리나에게 왜 그런 거지? 왜 아델리나에게 화를 낸 거야?”
“저 하늘의 별과 같은 거야. 꼴 보기 싫은 것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나?”
“아델리나가 싫다는 거야? 왜? 아델리나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지?”
바츠는 그의 무성의한 대답에 발끈할 뻔 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물었다. 그녀가 그냥 싫다는 말이 닥터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기분 나빴다. 하지만 그는 마주보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굳게 닫았을 뿐이었다. 바츠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대답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이건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또 다시 아델리나에게 그런다면 그때는 이번처럼 무사히 지나지 못할 거야. 아델리나는 그냥 헌터가 아니야. 내게 남은 마지막 별빛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그럴 것 같았어. 기억하도록 하지.”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굉장히 진한 아쉬움에 짓눌린 것처럼 느껴졌다. 약간의 서운함도 있었다. 하지만 바츠는 그가 서운해 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기도 전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긴장해야 했다. 저쪽에서 작은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휘몰아치는 칼바람 속에 교묘히 기척을 감춘 위협이었다. 틀림없이 어제 저녁 지나온 집터의 입구 쪽이었다. 바츠는 그 위협에 절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만들 만큼의 섬뜩함이 묻어있는 것을 느꼈다.
“왜 그래?”
에르네스트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아하게 물었다.
“뭔가 있다.”
바츠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흘러가는 그 기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너무도 시리고 강한 바람이 추적을 자꾸만 방해하는 탓에, 처음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을 만큼 진했던 느낌이 삽시간에 흐릿해지고 있었다. 에르네스트가 그 사이 계단을 내려가, 바츠가 바라보고 선 쪽을 들여다보기 위해 몇 발자국 앞으로 더 나아갔다. 갑작스런 바츠의 행동에 그도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걸음걸이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음...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확실한 거야?”
“내 감각은 아직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그래? 지금은 어때? 지금도 느껴져?”
“아니, 지금은 느껴지지 않아. 완전히 사라졌어.”
바츠는 찝찝한 기분을 감출 길이 없었다. 결국 그 흔적을 놓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매우 불안했다. 그러자 에르네스트가 시큰둥하게 돌아서며 말했다.
“알겠다. 그럼 프레이였나 보군. 이곳에 프레이가 자주 보인다고 환타가 그랬잖아. 아마도 저쪽에 버려진 헤러티커 사체를 뜯어먹기 위해 왔다가 우리 기척을 느끼고 도망간 걸 거야. 조용히 기다리면 금방 다시 돌아올 걸? 그럼 그때 다시 느낄 수 있을 거야.”
바츠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지만, 그가 자리로 돌아와 앉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의 말대로 숨을 죽이고 기다려보았다. 그 정체를 확실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그 섬뜩함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프레이였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일이었다. 그가 비록 다시 돌아올 거라고 말했지만, 정말 프레이라면 오히려 금방 돌아오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다. 바츠와 에르네스트가 자리를 완전히 떠나고 나서야 돌아올 것이다. 바츠는 지난번 베넬리 부인의 집에서 겪었던 기억이 떠올라 쉽게 의심을 거두지 못했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는데 무리해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에르네스트와 함께 자리를 털고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자 아델리나가 부스스한 얼굴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막 잠에서 깬,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뭔가 있지 않았어? 기분 나쁜 것 말이야.”
“프레이였던 것 같아. 에르네스트와 지켜봤는데, 아무도 없었어.”
“그래?”
아델리나가 눈을 비비고는 바츠를 향해 손짓했다. 바츠는 그녀의 손짓에 이끌려 그녀 옆에 앉았다. 그러자 그녀가 자신이 덥고 있던 담요를 함께 두르고는,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바츠는 그런 그녀가 품안에서 편히 몸을 뉘어, 다시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체온으로 바츠가 밖에서 묻혀온 냉기를 쫓아내며 다시 잠들었다. 에르네스트는 그 모습을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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