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 신을 거부하는 자 -- > * 212화 *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아델리나는 돌아오자마자 상쾌하게 소리쳤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였다. 방금까지 바츠와 에르네스트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기분이 꽤 나아진 것 같았다. 바츠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큰 병을 얻은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패토스도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아델리나에게 부리나케 다가가 어리광을 부렸다. 바츠가 나무라듯 말했던 것이 앙금으로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서러움을 그녀 옆에 바짝 붙어, 칭얼거리는 것으로 풀어냈다. 슬쩍 몸통으로 밀치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런 패토스를 눈 꼬리에 웃음이 묻어나는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마와 어깨를 어르듯 쓰다듬어주었는데,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가 흥에 겨워 좋아했을 만큼 다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달랐다. 그의 표정은 진중한 대화가 오간 다음이었기 때문인지, 잔뜩 굳어져 있었다. 마치 그녀가 다시 건강해진 모습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보일 정도였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옆에서 듣는 사람도 불쾌할 만큼 불만 섞인 목소리였다.
“너 설마...지금 그, 그걸 보러 갔다 온 거야?”
에르네스트의 물음은 모두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패토스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바츠와 아델리나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어리둥절해야 했다. 그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뒤늦게 아델리나가 쑥스럽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런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민망한지 시선이 몇 번이나 바츠를 오갔다.
“아, 응...왜?”
“으, 역겨워. 정말 끔찍하군.”
에르네스트 입에서 잔인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델리나의 눈이 뺨을 맞은 것처럼 번쩍 뜨였을 만큼 악랄했다. 그녀의 눈빛이 매우 빠른 속도로 당혹스러움을 넘어 언짢게 변해갔다.
“뭐?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 냄새나는 걸...더러워...”
에르네스트가 아델리나를 경멸스런 표정으로 흘기며, 자신의 못마땅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는 정말 그녀가 싫은 모양이었다. 아델리나가 참지 못하고 크게 분노하며 소리쳤다.
“이게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어이가 없네! 더럽고 역겨운 건 너희들이야! 네 꼴을 보라고! 대체 너 같은 놈들은 뭘 먹고 살지? 기름 냄새로 구역질나는 음식을 먹나? 어제부터 진짜 짜증나!”
“그러게 애초에 짐승처럼 꾸역꾸역 먹지 않았으면 되는 일 아니야? 허겁지겁 먹는 꼴하고는...어제 네 모습이 어땠는지 알아? 사육장 안의 개 같았다고. 난 어제 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오늘 이렇게 더러운 꼴을 보이고 말 것이라는 걸 이미 예측하고 있었지. 사육장 안의 개들이 꼭 그러거든. 정신없이 먹어놓고 곧바로 모두 쏟아내지. 더럽고 추잡하게 말이야. 하여튼 필멸자들이란...”
“뭐? 내가 언제 그랬어? 네가 봤어?”
“네가 배설하는 모습 따위는 안 봐도 뻔해. 그 개들과 영락없이 닮아있겠지. 물론 보고 싶지도 않고 말이야.”
“이 미친 자식!”
아델리나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카니지를 뽑아들었다. 그녀의 서슬 퍼런 칼날이 주변에 노니는 매서운 바람처럼 휘몰아치듯 튀어나왔다. 그때까지도 옆에서 어리광을 부리던 패토스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벌써 에르네스트를 향해 칼날을 수십 번도 더 휘둘렀을 것만 같았다. 패토스가 분위기를 모르고 계속해서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이라도 그런 패토스를 옆으로 밀어내고 그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정말 재수 없어! 대체 나한테 뭐가 불만이야! 어제 밤부터 일부로 나한테 그러는 거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내가 뭘 어쨌는데!”
“아델리나, 그만해. 이리 와.”
바츠는 거의 이성을 잃었을 만큼 흥분한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끌었다. 그녀가 진짜로 그에게 덤벼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러자 그녀가 잠시 바츠를 돌아보고는 다시 에르네스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너도 저 미친놈이 하는 소리를 들었잖아! 정말 짜증난다고! 저 자식이 다시는 헛소리하지 못하도록 턱을 잘라버릴 거야! 그럼 그때서 자신이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고 후회하겠지!”
그녀의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옆에 있던 패토스가 덩달아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유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지만, 아델리나를 도와서 에르네스트를 향해 그 특유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얼핏 헤러티커의 울음소리와도 닮은 외침이었다.
바츠는 그 사이 아델리나를 다시 한 번 세게 잡아당겼다. 평소라면 그녀가 아무렇지 않았을 만큼 단순한 행동이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몹시 흥분한대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어서 균형을 잃고는 넘어지듯 끌려왔다. 바츠는 그런 그녀가 놀라서 크게 반발하기 전에 얼른 양팔로 품에 안았다.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몇 차례 몸부림치기는 했지만,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계속해서 이름을 불러주며 진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차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품안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그에 대한 욕을 하며 어깨를 들썩이고는 있었지만, 이전처럼 격앙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츠는 그마저도 모두 잊을 수 있도록, 그녀를 한 번 더 꼭 안아주었다. 그녀가 품안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너무 싫어...”
바츠는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며, 이제는 그녀 대신 에르네스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패토스에게도 진정하라는 눈치를 줬다. 정확히는 지시에 가까웠다. 그를 향해 가벼운 손짓과 함께 불만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우둔한 그가 용케 알아듣고는, 이내 입맛을 다시며 하던 행동을 멈췄다. 마치 잠결로 길을 헤맨 사람처럼 자신이 왜 지금까지 소리를 질렀는지 모르는 듯 보였다. 멍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했다. 지켜보던 에르네스트가 황당해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을 만큼 어이없는 모습이었다. 바츠는 에르네스트에게로 말했다.
“내가 말했지? 또 다시 이러면 그냥 지나갈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하지. 네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게 될지는 상관하지 않겠어. 아델리나를 괴롭히지 마.”
에르네스트는 대답대신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바츠의 엄포를 듣지 못한 것처럼 굴고 싶은 모양이었다. 먼저 걸음을 옮기며 무시해버렸다. 바츠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내두르고는 아델리나의 상태를 살폈다. 양손으로 그녀의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고는, 활짝 미소를 지어주며 그녀의 이마를 자신의 이마로 가벼운 꿀밤을 놓듯 가져다댔다. 그녀는 뚱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바츠의 미소가 느껴지는지 금방 바보처럼 눈웃음을 지었다. 바츠는 그런 그녀를 다시 한 번 끌어안고는 걸음을 옮겼다. 손을 꼭 잡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에르네스트의 핀잔어린 시비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아델리나를 박해했다. 가끔 코를 훌쩍이는 것부터 하품하는 사소한 것들까지 가지고도 그녀를 괴롭혔다. 심지어 목소리도 문제 삼았다. 그의 눈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거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며칠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와 꽤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하는 이상 꽤나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그런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가 머물던 스톡홀름 시티에는 그처럼 기체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이토록 혐오스럽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패토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패토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제자리에 앉아 용변을 보는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오히려 믿기 힘들만큼 차분한 모습으로 덤덤히 기다려주었을 정도였다. 유독 아델리나에게만 인색하게 구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거처를 미처 찾지 못해, 노상에서 밤을 지새우고 났을 때였다. 아델리나가 아침에 간단한 용변을 보러 다녀오자, 어김없이 그녀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를 건넸다.
“제길, 아침부터...이런 우중충한 하늘 아래에서 잘도 돌아다니는 군.”
아델리나는 그의 핀잔을 못 들은 척 무시해버리고는 바츠 옆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그의 빈정거림이 제법 익숙해진 까닭이었다. 그러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는 진저리치듯 말했다.
“네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을 해. 정말 더러워.”
아델리나는 그가 몸짓까지 더하며 조롱하자, 이번에는 견디지 못했다. 그를 무섭게 쏘아보며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바츠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의 멱살을 이미 잡았을 것 같았다. 그녀가 하소연하듯 말했다.
“저 자식이 나보고 계속 더럽다고 하잖아! 바츠, 너도 그래? 너도 내가 더러워?”
“무슨 소리야.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아니지? 너는 아니잖아, 그렇지?”
“당연하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
에르네스트가 바츠와 아델리나를 지켜보다가 헛웃음을 켜며 말했다.
“그렇겠지. 어차피 두 놈 다 똑같은 놈들인데. 그 지저분한 몸뚱이를 가진 녀석들이 어련하겠어?”
“닥쳐! 넌 대체 뭐가 잘났는데? 너는 뭐 특별한 줄 알아?”
아델리나가 돌아보며 소리치자, 그가 우쭐거리며 대답했다.
“너희들처럼 역겨운 걸 배출하지는 않아. 세상을 오염시키는 군. 크루엘라에게 미안해하라고. 녀석들이 해야 할 일을 너희가 빼는 것이니까. 아, 헌터들은 원래 남의 것을 뺏는 것을 좋아하지? 태어난 걸 미안해해야겠군.”
“너도 전에는 우리와 똑같았다고 했잖아! 넌 뭐 갑자기 만들어진 줄 알아? 널 낳은 부모도 우리랑 같아!”
“우리 브루드 메어를 모욕하지 마라. 너희들과 다른 분이니까. 너희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에르네스트가 갑자기 빈정거리던 태도를 단 번에 지우고는, 매우 진중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자못 무섭게 보일 정도로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델리나는 그의 태도가 느닷없이 변하자 잠시 당황한 듯 굳어졌다가, 이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뭐? 누구? 너 부모님이 있는 것 아니야?”
“우리에게 부모는 오직 한 분이야. 그분은 네가 아는 사람들과 다르니까 함부로 지껄이지 마. 네 입에 올려지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
에르네스트의 진지한 대답에 아델리나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도발적인 말투였다.
“흥? 그런다고 뭐 달라질 것 같아? 그 사람도 누구든지 결국 너를 낳았다면 우리처럼 먹었어야 할 걸? 네가 그렇게 싫어하던 끔찍한 모습으로 말이야.”
에르네스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아델리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가 이토록 분노한 얼굴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델리나에 대한 증오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둘의 관계가 완전히 반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델리나는 그의 언짢은 기색이 짙어질수록 더욱더 신이 나서 그를 조롱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사람처럼 매우 기뻐 보였다. 바츠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불안함을 느꼈지만, 다행히도 둘 사이에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델리나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던 것처럼, 그 역시도 그녀에게로 달려들지 않았다. 차갑게 몸을 돌려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는 빠르다고 느껴질 만큼 발걸음을 서둘러 재촉했다. 바츠는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았지만, 아델리나가 통쾌해하는 눈빛으로 돌아보는 모습을 보자 오히려 웃음이 났다. 에르네스트에게는 미안했지만 괜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에게 따로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그로인해 그와의 관계가 형식적인 말들만 오가던 처음보다도, 훨씬 어색하게 변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아델리나와 함께 희희덕거리며 그의 뒤를 쫓았을 뿐이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멀리 한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저기다. 저기가 바로 브르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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