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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감염-217화 (217/268)

< --   13. 신을 거부하는 자   -- >         * 217화 *

밀레스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톤파를 꺼내 들고는, 이곳까지 안내해준 사내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쳤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뒤통수를 얻어맞았고 통나무처럼 경직되더니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균형을 잡거나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심지어 본능적인 움직임조차도 없었다. 그저 짐짝처럼 바닥에 내팽개쳐지며 얼굴로 쓰러졌을 뿐이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으로 보이는 치아가 주위로 튕겨나가고, 그의 얼굴이 닿은 바닥에는 붉은 혈흔이 질은 염료를 손으로 퍼 올려 집어던진 것처럼 칠해졌다. 사람들의 숨넘어가는 듯한 외마디 비명이 그 처참함을 대변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잔학한 행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바츠에게 아이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겁에 질린 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톤파를 마음껏 휘두르기 시작했는데, 방금 전 사내를 쓰러뜨릴 때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약간 흥에 젖은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의 톤파가 바람처럼 휘둘러지며 그들을 공격했다. 주된 목표는 그들 중 총기를 가진 세 사람이었다. 그는 그들이 총구를 들어올리기도 전에 톤파를 빙글빙글 유연하게 돌려가며 총구를 좌우로 쳐내고는 그들의 안면을 연이어 강타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총기가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되는 것을 놀라기도 전에 얼굴을 부여잡고 주저앉는 일이었다. 얼굴을 감싸진 그들의 손바닥 밖으로 검붉은 피가 넘치며 새어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앓는 소리를 내게 되었을 뿐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불행한 것은 그들 중 한 명은 밀레스를 겨눌 수 있는 시간은 물론이고 그를 향해 총알을 발사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지만, 안타깝게도 실탄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빈총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이유로 밀레스에게 가장 심한 처우를 당해야만 했다. 톤파로 그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 밀레스가 그의 안면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톤파를 휘둘렀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윤곽을 잃어버리며 주저앉았고, 그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머지는 그의 수하들에 몫이었다.

바츠는 그 사이 구석에서 여자아이를 품에 안고 벌벌 떨고 있는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카니지는 뽑아들지 않은 보통 때와 같은 걸음이었다. 사내는 밀레스의 무자비함과 뒤이어 남은 일행들을 향해 달려들어, 폭행과 구타를 가하는 그의 수하들을 지켜보며 두려움에 잠식되고 있었다. 불안으로 가득한 그의 시선이 그쪽에 고정된 채 헤어나질 못했다. 바츠가 제법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야 비로소 뒤늦게 발견하며 정신을 차렸다. 품안에 있던 아이의 몸부림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당황하는 듯 했으나, 이내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밀레스와 그의 수하들로 난동이 벌어지고 있는 곳과 바츠의 이동 경로 사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틈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반대쪽 끄트머리에 있는 또 다른 문을 향한 도주였다. 그 문을 통해 멀리 달아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그저 저항을 시도해보았다는 것에서 그쳤다. 바츠가 자신의 앞을 지나는 그의 목덜미를 낚아채, 다리를 걸어 바닥으로 넘어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차례 허공에 붕 떴다가 겁에 질린 외침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찌나 세게 떨어졌던지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는 착각이 들만큼 큰 소리가 났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문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충격으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면서, 바닥을 기어가며 멈추지 않았다. 중간에 바츠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이 눈물만 흘리지 않고 있을 뿐, 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아이의 목에 두른 자신의 팔을 더욱 바짝 조이며 소리쳤다.

“오지 마, 이 괴물아!”

바츠는 그가 악에 바친 목소리로 외치는 고함에는 아랑곳 않고, 그의 팔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의 얼굴만 살폈다. 아이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 못지않게 주름진 얼굴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처음 둘의 모습이 나름 다정하게 보였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다른 모습이었다.

바츠는 그제야 카니지를 뽑아들 수 있었다. 밀레스는 물론이고 필리아의 주장이 너무도 억지스러워,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던 까닭에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잠시나마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카니지가 뽑혀 나오며 토해내는 금속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의 목을 향해 칼끝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카니지는 그의 품안에 있던 아이의 이마를 스치며 정확히 그의 목을 꿰뚫었고, 그는 목의 상처와 입으로 차오르는 혈액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상의와 바닥이 순식간에 붉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놀란 아이는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고, 바츠는 그 아이가 사내의 피로 얼룩지기 전에, 빼앗듯이 낚아채왔다. 그는 서서히 죽어가는 와중에도 아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멀어지는 아이를 향해 뻗어지는 그의 손끝이, 마지막까지도 단념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았다. 바츠는 그 모습에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왼쪽 쇄골에 보이는 녹색 케찰 문신이 눈에 들어오며,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해볼 마음이 사라졌다. 그저 그는 밀레스의 예상대로 아이기스였고, 아이를 데리고 달아나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밀레스의 억지스러운 추측마저도,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필리아의 주장은 편집증으로 인한 착각인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아이를 필리아에게로 돌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사내가 달아나려던 반대쪽 문이 벌컥 열리며 대여섯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이제 거의 숨이 붙어있지 않는, 안에 있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몸도 더 단단해보였고, 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남다른 위압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이 얼음처럼 굳어진 채, 안에서 일어난 일을 돌아보는 사이에 알 수 있었다.

바츠는 그들이 만들어낸 조용한 긴장감 속에서, 그들이 입고 있는 가죽 옷 여기저기에 새겨진 붉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붉은색 케찰이었다.

“헌터와 엑소시스트다!”

그들 중 가장 앞에선 사람의 외침이 집안에 또 한 번의 난동을 불러일으켰다. 바츠가 그들의 정체를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외침을 신호로 밀레스와 그의 수하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들은 그에 대응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크고 작은 칼과 이기 류의 무기들을 꺼내들며 맞서 싸웠다. 이전과 다르게 한쪽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지 않아, 훨씬 격렬한 다툼이었다. 그들은 수적 우위를 내세워 밀레스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웠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밀레스 쪽이 더 불리하게 될 것만 같을 정도였다. 바츠는 그때까지 서럽게 울고 있던 아이를 필리아에게로 건네고는, 서둘러 밀레스에게로 합류했다. 그리고 뒤이어 아델리나까지 가담하게 되자, 그들의 수적 우위는 금방 무용지물이 되었다. 전세가 단 번에 변해버린 것이다. 사람 수에 비해 협소한 공간이 어려움으로 작용했지만, 그들을 들어온 문으로 다시 내보내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바츠와 아델리나의 칼날에 세 명을 동시에 잃고 났을 때,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밀레스는 그들을 끝까지 심판해야 한다면 수하들과 함께 밖으로 튀어나갔고, 바츠는 아델리나에게 이곳에 남아서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뒤를 쫓았다. 필리아와 아이에게 생길지 모르는, 혹시 모를 불의를 우려한 탓이었다. 하지만 바츠의 그 판단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을 낳았다.

밀레스와 함께 달아나는 칼리에들을 따라잡았을 쯤 이었다. 놈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수가 적어도 10여명이 넘는 수였다. 게다가 전부 붉은 케찰이 그려진 칼리에들이었고, 그들은 상황 파악을 빠르게 끝내고는 두 눈에 불꽃을 튀겼다. 분노에 찬 놈들이 순식간에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었다. 달아나던 놈들마저도 분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씩씩대며 돌아섰을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했다.

바츠는 웜업 콘솔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그들은 비록 무기가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해치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은 날카로운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악에 바쳐 달려드는 그들의 기세가 매우 부담스러웠다. 전에 한 번 키예프 시티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던 상황과는 너무도 달랐다. 순간적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피어났을 정도였다. 삽시간에 주위를 둘러싸고 덤벼드는 그들의 모습은 살의에 사로잡힌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아델리나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바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보다도 훨씬 신경 쓰이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목이 졸리고 가슴이 짓밟히는 듯한 강한 위압감이었다. 바츠는 물론이고 밀레스와 칼리에들마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답답함에 숨이 막힐 정도로 매우 무거운 기운이었다. 한바탕 복잡하게 몰아치던 소란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정지해 버렸다.

바츠는 그 틈에 서둘러 아르크 눈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변 어디에도 헌터의 코드는 없었다. 그들이 아르크 눈을 가동하고 있지 않으면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기운이 접근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서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밀레스와 칼리에들의 시선까지도 단 번에 잡아끌 만큼 엄청난 위엄이 풍겨나오는 모습이었다. 밀레스가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네오 각하!”

2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데 얽힌 흥분을 단숨에 가라앉힌 원흉이었다. 그들은 한 사내를 필두로 그를 위시한 4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는데, 모두를 진정시킨 위압감은 가장 앞에 선, 사내 혼자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밀레스의 수하와 같은 복장을 한 4명을 이끌고, 이쪽으로 점점 더 다가왔다. 밀레스와 형태는 같지만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광로 속에서 이글거리는 뜨거운 불길처럼 느껴졌다. 그가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서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목자는 길 잃은 양을 찾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며 함께 길을 헤매죠. 그들도 모두 주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난 그들을 발견하면 너무 기뻐 주님께 눈물로서 고할 겁니다. 길 잃은 양들을 드디어 찾았다고 말이죠. 자, 주님에게로 돌아올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마에 십자가가 그려진 방독면을 통해 빠져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숨결 같았다. 사람의 심장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들 정도로 쥐어짜며 위축되게 만들었다. 바츠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전에 오데사 시티에서 만났던 스타드가 절로 떠올랐다. 그때 그가 보여주었던 압박감에 결코 뒤지지 않는 위협이었다. 하지만 칼리에들은 그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 위협에 미쳐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둘 짜낸 기합소리를 내지르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츠와 밀레스 등 네 사람을 궁지에 몬 것처럼 똑같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바츠는 눈을 감고도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결코 그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예상은 곧 눈앞에서 증명되었다. 그는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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