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 신을 거부하는 자 -- > * 223화 *
바츠는 심장이 주저앉기라도 한 것처럼 아찔함을 느껴야만 했다. 고작 이름 하나를 들은 것뿐이었지만, 그 위화감은 느닷없이 얼음물을 끼얹은 것만큼 소름끼쳤다. 버니에투와의 애절한 두 눈과 목소리가 그런 바츠의 마음을 더욱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난 보았어. 그자가 헤러티커를 학살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그건 사람이 아니야. 내가 본 그 어떤 악몽보다도 끔찍했어. 그는 미쳤어! 그는 온몸이 예리한 칼날 같았다고! 네가 직접 보았어야만 해! 그는 마치 영혼도 자를 것 같았어!! 난 너희를 지키려고 한 거라고! 그냥 돌아가게 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말을 믿었다고! 그러면 다 좋아질 거라고 했어! 그런데 너무 늦었잖아! 그래서 그랬어! 그자에게 너희들의 영혼이 찢기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아델리나가 그자의 학살에 영혼마저 찢기며 허무 속에 던져지는 걸 원치 않아! 아델리나는 그 허무를 견디지 못할 거야! 그 속에서 영원히 눈물을 흘리겠지!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영원히 느끼며 슬퍼할 거라고! 그런 것보다는 이렇게 되는 것이 더 나아!”
버니에투와가 어느덧 격렬한 흥분에 사로잡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감정을 이기기 힘든지, 자신의 카니지는 바닥에 떨어뜨리고 바츠의 양 어깨를 붙드는 걸 선택했다. 그의 모습이 위로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꼭 그날의 버니에투와를 보는 듯 했다. 그때와 똑같았다. 미사 훈련소에서 그의 실수로 가이즈카가 큰 상처를 입었을 때였다. 그는 충격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에게는 입을 닫고, 방으로 숨어드는 경직된 방황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바츠는 물론이고, 아델리나 그리고 테라치까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가 도와달라고 침묵으로 소리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다들 고민도 않고 그를 찾아갔던 것이었다. 다만 지금의 버니에투와는 그때와 다르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섭게 소리치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때처럼 입을 닫고 어디론가 몸을 숨긴 채, 달아나지 않았다. 그가 계속해서 소리쳤다.
“그자가 너희를 모두 살해할 거야. 그자는 헤러티커를 혼자서 난도질 한 녀석이라고. 그는 괴물이야. 진짜 괴물은 헤러티커가 아니라 그자라고! 이 세상에 유일한 괴물은 그자야! 그자가 우리 모두를 살해하고 말 거라고! 너희가 고집을 부렸잖아! 왜 내 말을 듣지 않은 거야!”
“버니, 아니야! 그렇지 않아! 우린 그 누구도 죽지 않을 거야! 그런 일은 없어! 모두 잘 해낼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우린 가야 돼! 아델리나에게 가야 한다고!”
바츠는 그의 멱살을 남은 힘을 쥐어짜 마구 흔들었다. 그가 그때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길 바랐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애를 썼다.
“헌터들의 신은 놈들이 모시는 그가 아니야! 그는 희망을 거짓과 농락으로 잠식시키는 위선자 일뿐이라고! 헌터들의 신은 나야! 나와 같은 집사들이 너와 같은 헌터들의 진짜 신이라고!”
버니에투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쳤다. 눈물이 흘러내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눈길을 끈 것은 그의 팔이었다. 그는 바츠의 어깨를 붙들고 있던 양팔을 제대로 거두지 못한 채, 어깨를 붙들고 있던 그 형태 그대로, 부목이라도 댄 것처럼 빳빳하게 들고 있었다. 넋이 나가 감각을 전부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얼굴도 창백하게 굳어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바츠는 슬금슬금 도망치듯 물러나는 그에게 말했다.
“버니, 아직 늦지 않았어. 레이븐과 캣이 그랬어. 서두르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단 말이야.”
버니에투와가 걸음을 멈추고, 시선만 움직여 좌우를 살폈다.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른 그의 두 눈이 양 옆에 있던 레이븐과 캣을 차례로 다녀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톤파를 꺼내든 채, 긴장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회가 생기면 바츠를 위해서 싸워줄 기세였다. 버니에투와가 다시 바츠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이야? 정말 아델리나를 구할 수 있어?”
바츠는 그에게 대답대신 발 앞에 떨어진 그의 카니지를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카니지를 주워들고 걸음을 옮겼는데, 레이븐과 캣이 황급히 달려와 아까처럼 부축해주며 남쪽으로 안내했다. 버니에투와는 그 뒤를 조용히 쫓았다. 그가 머뭇거리며 불안정하게 느껴졌지만, 바츠는 더 이상 그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높다란 건물 숲을 헤치며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 길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아무리 서둘러도 늦었다는 조바심에 속이 다 울렁거렸다. 어둠으로 가득한 길이 미로처럼 느껴졌다. 꼭 똑같은 길을 반복해서 지나고 있다는 착각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착각으로 속이 완전히 불편하게 되었을 쯤, 레이븐이 입을 열었다. 다행히도 버니에투와는 그때까지 맨 뒤에서 착실하게 따라왔다. 말은 없었다.
“저기입니다.”
레이븐의 말끝에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검은 밤에 파묻혀 실루엣만 보였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첨탑과 그 끝에 매달린 붉게 빛나는 십자가가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하고 있었다. 바츠는 그 붉은 십자가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메스껍던 기분도 잊을 만큼 불안했다. 십자가가 마치 피에 젖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보이는 십자가는 그저 붉은 색 조명일 뿐이었다. 십자가의 테두리를 부각시켜 멀리까지 건물의 위치를 알리기 위한 수단 같았다. 하지만 레이븐과 캣에게 십자가의 쓰임을 들은 이상 결코 곱게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매달렸을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분노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안으로 들어서며 극에 달했다.
내부는 밖에서 본 건물의 크기만큼 매우 넓었다. 적어도 수백 명이 한 번에 모여들어도 넉넉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공간을 가로질러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는 정말 커다란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십자가였다. 한 눈에도 레이븐과 캣이 말한 십자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벌거벗은 한 여인이 매달려 있었다. 양팔은 좌우로 당겨져 손등에 말뚝이 박혀 있었고, 두 다리는 포개듯 가지런히 모아 역시나 마찬가지로 발등에 말뚝을 박아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따로 있었다. 프리샤의 죽음조차도 이토록 놀라게 만들지 못했다. 그것은 눈으로 보고도 차마 믿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백여 개의 촛불이 실내를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그 여인의 복부에 크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은 것 같은, 깊은 흉터가 만든 문신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츠는 그 문신을 일전에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작은 머리의 거처에 있던 그의 여자가 똑같은 문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정말 처참한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에까지 낙인을 찍는 횡포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지막 존경심마저도 박탈당하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길고 굵은 쇠몽둥이가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츠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여인이 아델리나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녀가 미동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지만, 그녀의 머리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냄새도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이 모두 거짓이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두 눈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바로 밑에 둥글게 촟불을 밝혀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여섯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밀레스와 그의 수하들이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알 수 없는 주문을 외고 있었다. 이네오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아무래도 당신은 아직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금방 다시 만나게 되다니 말입니다. 그분의 자애로움은 우리 모두를 매번 놀라게 만들죠.”
밀레스가 바츠와 일행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다른 엑소시스트들의 시선도 그 뒤를 따라 이쪽으로 옮겨졌다. 바츠는 레이븐과 캣을 옆으로 밀어내고 한발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네 놈들의 신에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하는 게 좋을 거야. 더 이상 이곳에서 그를 향한 기도는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역시 당신들의 그 오만함은 변함이 없군요. 이네오 추기경께서도 걱정하신 부분입니다. 당신들의 그 오만함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우린 그분의 품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절대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겁니다. 주님은 언제나 저희와 함께 하시죠. 믿음이 가득한 사람들과 말입니다.”
바츠는 그의 당당한 말투가 비아냥으로 느껴졌지만, 그보다도 십자가에 매달린 아델리나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오며 울컥 감정이 끌어 올랐다. 애써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지 않았다면 크게 소리치며 이성을 잃었을 것만 같았다.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로 차분하게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대꾸했다. 그의 살점을 씹는다는 생각으로 내뱉었다.
“여유로워 보여서 마음이 놓이는 군. 내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겠어. 억울하거나 외롭게 생각하지는 마. 만약 네 놈들의 그 잘난 신이 너희를 지켜주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자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말이야.”
“기대되는 군요. 고작 헌터 하나를 더 데려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밀레스가 자신의 톤파를 꺼내들며, 수하들과 함께 싸울 자세를 취했다. 바츠는 카니지를 뽑고, 그 모습을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 모두를 절망 속에 던져 넣겠다. 그곳은 축복으로 가득한 곳이지. 아무리 큰 상처라도 바로 낫게 되는 아주 행복한 곳이야. 그리고 그 행복을 완전히 느낄 수 있도록, 스치는 것만으로도 감격할 수 있는 민감한 곳이기도 해. 그런데 내가 왜 그곳을 절망이라고 부르는 지 알아? 내가 왜 너희를 그곳에 보내려는지 아냐고. 그곳에 땅은 발 디딜 곳 없이 칼날이 꽂혀 있고, 하늘에서는 살점을 태우는 짙은 용액이 비처럼 내리는 곳이거든. 너희는 그곳에서 네놈들의 신과 함께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잘리고 떨어져나가는 살점과 팔 다리가 금방 다시 자라나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고통에 몸부림치고, 눈을 뜨는 것도 그 고통 때문일 것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고통의 끝에는 오직 후회만 있을 것이고 말이야. 가서 후회해라. 가서 내게 도전한 그 어리석음을 사무치도록 후회해라.”
바츠는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흔들리는 수백 개의 촛불로 만들어진 그림자처럼, 춤을 추듯 빠른 속도로 뛰어들어 그들의 손목과 발목부터 잘라낼 작정이었다. 그들에게 느리지만 강력한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부질없는 망상에서 그쳐야만 했다. 바츠의 몸은 어기적거리며 기어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몸이 너무 많이 망가져 있었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바츠는 의도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자신의 몸에 야속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들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츠를 조롱하지 못하고 긴장하는데 더 바빴다.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바츠를 대신해서 깃털처럼 날아 그들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버니에투와였다. 그는 검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며 하늘을 날았다. 펄럭이는 망토가 성난 불길을 꼭 닮아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난동을 부렸다. 그들을 모조리 검게 태워버릴 작정 같았다.
그 사이 레이븐과 캣이 바츠에게 다가왔다. 바츠는 고작해야 서너 발자국을 나아갔을 뿐이었다. 그 둘은 그런 바츠에게 뒤로 물러나서 지켜보라며 종용했다. 진심으로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바츠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계속해서 놈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둘에게 아델리나를 내려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었다. 둘은 바츠의 확고한 목소리에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이내 바츠의 곁을 떠나 십자가를 향해 달려갔다. 바츠는 그 틈에 벌써 셋을 베고 남은 둘마저도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는 버니에투와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칼날에 가슴을 크게 베인 채 쓰러진 밀레스 옆에 섰다. 그가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운 채, 입으로 연거푸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신이시여, 저희를 지켜주소서.”
“그 신은 어디에 있지? 말해봐. 그 신은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바츠의 물음에 그가 가까스로 답했다. 고통을 숨기지 못하고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분은 항상 계획이 있으시지. 계획을 가지고 날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저기 어딘가에서 말이지.”
“헛소리 집어치워. 그딴 것은 없어. 혹시라도 있다면 그건 계획이 아닐 것이다. 그건 그저 희롱일 뿐이야, 이 미치광이야.”
바츠가 대답하며 카니지를 거꾸로 들어 올리자, 그가 시선을 높은 천장으로 옮기며 말했다.
“오, 신이시여(oh, my god)...”
“너무 놀랐다는 말인가? 아니면 날 부르는 말인가?”
그가 다시 바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도 그냥 미치광이 중 하나일 뿐이야.”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 오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발악이었다. 바츠는 그것이 이전에 일리트시 집사였던 칼이 떠나며 말했던 알량한 자존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방독면을 벗어 옆으로 던져놓고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알아. 우린 다 미쳤지.”
바츠는 자신의 카니지를 그의 가슴에 정확히 꽂아 넣었다. 그의 갈비뼈를 부수고, 깊숙이 관통하는 감각이 손을 통해 느껴졌다. 그가 몸을 한 차례 들썩이며, 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그가 죽음에 다가섰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바츠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부으며 카니지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카니지가 바닥에 닿았다는 느낌이 전해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아델리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그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흥분에 젖은 레이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있어요! 집사님, 살아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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