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 신을 거부하는 자 -- > * 224화 *
바츠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십자가 밑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캣과 함께, 바닥에 눕힌 아델리나 곁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츠는 카니지를 밀레스의 가슴에 그대로 꽂아두고는 그쪽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다. 고작해야 5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이곳으로 오기 위해 지났던 그 검은 미로 같은 길처럼 매우 복잡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보세요! 숨을 쉬고 있다고요!”
캣이 그녀의 들썩이는 작은 가슴과 미세하게 부풀었다 꺼지길 반복하는 배를 가리켰다. 바츠는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믿기지 않을 만큼 고마웠다. 한시름 긴장을 놓을 수 있을 만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냥 감사한 것만은 아니었다. 복부에 새겨진 진한 문신과 비록 지금은 뽑혀나가고 보이지 않지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를 모욕하던 쇠몽둥이가 꽂혀있던 다리 사이로 끊임없이 하혈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가슴을 꿰뚫고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바츠는 그녀의 머리맡에 쓰러지듯 무릎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었다. 놈들에게 봉변을 당한 흔적이 그녀의 몸 곳곳을 수놓고 있었다. 눈두덩은 눈알이 빠져나올 것처럼 퍼렇게 튀어나왔고, 한쪽 광대는 부러졌는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있었다. 몸통도 마찬가지였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가슴 부위가 크게 부어있었고, 복부에도 심각한 타박상이 즐비했다. 팔과 다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멀쩡한 구석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관절과 치아가 무사해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처참했다.
바츠는 그런 그녀의 얼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살얼음 같은 그녀의 얼굴이 깨지기라도 할까봐, 몇 번이나 주저하며 고민한 끝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 손이 마구 떨린다는 것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두려웠다. 하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그녀의 미세한 체온은, 그 두려움을 단숨에 강렬한 환희로 바꿔주었다.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되자, 그 감동을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었다. 비록 촛불이 가득하지만 아직 어둠이 한가득 남아있는 실내로, 태양이 고개를 내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너무도 고마웠다.
“아델리나...”
그 사이 남은 엑소시스트들을 모두 쓰러뜨린 버니에투와가 바츠의 뒤로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가 가쁜 숨 때문에 매우 떨리며 불안했다. 바츠는 그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버니에투와 탓이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흥분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어두운 바닥을 더듬어, 주먹보다 큰 돌을 집어 들고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느닷없이 바츠가 돌을 휘두르며 위협하자, 놀란 눈으로 뒷걸음질 치며 피하는데 급급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으로만 그 이유를 물을 뿐이었다. 하지만 바츠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돌에 그가 얼굴을 얻어맞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한참을 피하다가 힘이 빠졌는지 주춤하더니, 결국 왼쪽 뺨을 얻어맞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는 완전히 균형을 잃고 넘어졌는데도, 자신의 카니지만큼은 꼭 쥐고 있었다. 아직 밀레스 정도의 엑소시스트는 한 명 정도 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바츠가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타는 것은 막아내지 못했다. 바츠는 그의 가슴으로 올라타며, 그의 얼굴을 향해 손에 쥔 돌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몇 번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많은 횟수였다. 나중에는 그의 방독면이 거의 다 찢겨서, 붉은 피를 뒤집어쓴 그의 얼굴이 밖으로 노출되었을 정도였다. 바츠는 그의 얼굴이 아델리나처럼 변했을 때에야 비로소 행동을 멈췄다. 어느덧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약속이...약속이...트, 틀리잖아...”
바츠는 그의 목소리에 다시 또 그의 얼굴을 향해 돌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양손으로 붙들고 마구 내리찍었다. 그의 콧등이 완전히 사라지고, 양쪽 광대가 주저앉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그의 인중과 입술이 움푹 들어앉고, 여기저기 살점도 떨어져 나갔다. 바츠는 그가 카니지를 쥐지 않은 손을 가져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야 손을 멈췄다. 그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그가 뭉개진 발음으로 힘겹게 말했다.
“...겨, 결국 넌...넌 이번에도...이번에도 내 것을...빼앗아 가는 구나...”
그의 손이 그의 목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는 그렇게 숨을 거뒀다. 다시 보면 바츠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츠는 그를 깔고 앉은 그대로 한참을 앉아있어야만 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부서진 그의 끔직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거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이곳으로 오던 길에 느꼈던 불편한 속이, 이제야 그 결과를 내놓으려고 하고 있었다. 불현 듯 헛구역질이 밀려들었다. 옆으로 내려와 바닥을 양손으로 딛고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돌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쪽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긴박함이 느껴졌다.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놀란 눈을 한 레이븐과 캣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아델리나가 소리를 질러대며 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누운 채로,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던 레이븐과 캣을 향해 손과 발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바츠는 그곳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놔! 놓으라고! 저리가!”
바츠는 아델리나 옆에 주저앉으며 레이븐과 캣에게 뒤로 물러나라는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레이븐과 캣이 빠르게 저쪽으로 물러났는데도, 계속해서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아델리나! 나야! 나라고! 나를 봐!”
아델리나는 바츠가 몇 번이나 함께 소리치며 주의를 끌었을 때에야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넋을 놓고 바츠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왈칵 눈물을 쏟으며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서럽게 소리 내 울기 시작했는데, 바츠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가시처럼 느껴졌다. 수천 개의 가시가 가슴을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보다도 슬픈 것은 그로부터 잠시 후에 일어났다. 그녀의 울음이 겨우 잦아드는가 싶더니, 그녀가 또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바츠를 옆으로 마구 밀어냈을 정도였다.
바츠는 처음에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 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진정할 수 있도록 더욱 세게 안으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저항이 워낙 완강해 결국 놓아주자, 그제야 그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의 배에 새겨진 잔인한 낙인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창녀(whore).’
바츠는 서둘러 자신의 망토를 풀어,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녀가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지금 눈앞에 모든 것은 그저 지나는 악몽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바츠가 그 상처를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거칠게 반발하며 자꾸만 눈으로 확인하려고 시도했다. 바츠의 뺨을 후려치면서까지 망토를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아델리나! 나를 봐! 나를 보라고!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델리나는 매우 오랫동안 몸부림쳤다. 그 끝이 없을 거라고 느껴질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녀의 반항은 그녀가 기력을 잃고 완전히 지쳤을 때 겨우 멈췄다. 바츠의 위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바츠를 이곳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멍한 눈으로 초점을 잃은 채 축 늘어졌다. 마치 영혼을 잃어버리고는 공허 속에 빠져든 사람 같았다. 바츠는 그런 그녀를 양팔로 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미안해..내가 너무 늦었지? 정말 미안해...”
바츠는 그녀에게 위로를 건넬 때마다 눈시울이 점점 더 뜨거워졌지만, 주위의 어둠으로 닦아내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는 여관에서 챙겨온 그녀의 옷을 대신해서 입혀주었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힘이 없었다. 아마도 정상적이지 않은 신체를 격렬하게 움직인 바람에 더욱더 그런 것 같았다. 그녀는 꼭 불에 타고 남은 재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의 출혈을 임시적으로나마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출혈 자체는 심각해보이지 않았다. 대신 관통된 발등과 훼손된 중요 부위가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당장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했다. 물론 그 전에 그녀가 살아있어야만 했다.
바츠는 고민하지 않았다. 레이븐과 캣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등에 업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곳에 더 머물다가 이네오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건 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스톡홀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녀가 버텨주기만을 바라야만 했다. 닥터가 요구했던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됐다. 아니, 어쩌면 그 일은 이미 물거품이 된지 오래일 지도 모른다. 눈앞이 아찔할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밀려드는 막막함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번에는 목구멍까지도 함께 따끔거렸다. 그 막막함에 벌써부터 서럽고 두려웠다. 하지만 억울함을 토로할 시간은 없었다. 도시 북쪽 외곽에 다다랐을 때였다. 동쪽에서부터 날이 밝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틀림없었다. 저 먼 곳에서부터 조금씩 환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기운을 등에 업은 검붉은 실루엣이 눈앞에 나타났다. 뒤로 두 개의 작은 어둠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가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정말 흥미롭군요. 우리들 사이에서도 변절자가 생기다니 놀랍습니다. 이게 바로 집사의 힘입니까? 무섭군요. 그 이단이 가진 힘이란 것 말입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경계하라 이르신 이유가 있군요. 사람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신념을 바꾸게 만드는 힘. 주님을 의심하게 만드는 그 힘! 그 힘 정말 탐이 날만큼 무섭군요.”
바츠는 그의 방독면으로 흘러나오는 음성을 통해, 그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붉은 복장과 방독면 그리고 그 방독면 이마에 그려진 십자가. 이런 차림새는 오직 그뿐이었다. 바츠는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보았다.
“이네오...”
그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허전할 만큼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동쪽에서부터 달려오는 회색빛 여명이,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버려진 어둠을 가슴에 쑤셔 박는 것 같았다. 밤이 사라지는 이유가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사람들의 마음에 식어버린 어둠을 새겨 넣으며 모두 증발시켜버리는 것이다. 그 어둠을 모두 치워내고 나야만 낮이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낮이 찾아와 있는 동안, 어둠을 삼킨 사람들은 하나둘 죽게 되고, 그들이 전부 죽고 나면 어둠은 다시 슬그머니 빠져나와 밤을 만든다.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살아남는 사람은 그 어둠을 삼키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다. 지상에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그 어둠을 삼키지 않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몫까지 건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그가 죽어가는 동안, 빛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고작 회색의 하늘에 우울함을 머금은 빛이라도 상관없었다. 그 빛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여기에 그 이단자를 업고 계시다는 것은 성당에 피를 뿌리셨다는 의미겠군요. 주님이 내리신 자비를 이렇게 되돌려 주시다니, 이것 참 불쾌하군요. 그것 아십니까? 모든 편의는 누군가의 희생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츠는 레이븐과 캣에게로 아델리나를 조심스럽게 건넨 뒤에, 카니지를 뽑아들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군. 우리가 딱 질색하는 거야.”
이네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애를 쓰는지, 큭큭거리기 시작했다. 어깨까지 들썩였을 만큼 꽤나 즐거워보였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그가 천천히 밝아오는 하늘처럼 느리게 자신의 톤파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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