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 신을 거부하는 자 -- > * 226화 *
에르네스트가 아델리나를 안고 있는 캣을 향해 뛰어가려고 했다. 그는 그녀를 살해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츠가 다리를 붙드는 바람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바츠는 그에게 다시 정확하게 설명해야만 했다.
“그녀가 아니야! 저 놈이라고!”
바츠는 그때까지 패토스와 바닥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던 이네오를 향해 팔을 쭉 뻗었다. 그는 어느새 혼자서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패토스를 몇 번이나 쓰러뜨렸다. 패토스가 이제는 혼자서 바닥을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공격에 도무지 일어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가 주위를 맴돌며, 일어나려고 하는 패토스를 걷어차거나 톤파로 후려치며 방해했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패토스의 안면이 붉은 피로 흥건했다. 그가 패토스를 철저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짐승을 조련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 용할 정도였다. 패토스는 이를 물고 근성으로 다시 일어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고작해야 무릎을 세운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것도 두어 번 뿐이었다. 쓰러진 뒤 네 발로 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둘은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에르네스트는 그런 그들과 캣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바츠 역시도 혼란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캣을 옹호하는 바츠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바츠가 그의 어깨를 잡아채며 외치자,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저 붉은 옷을 입은 놈을 죽여 버려. 저 놈이 아델리나에게 잔인한 상처를 주었어!”
에르네스트는 이네오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패토스가 사망하기 전에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단단한 몸과 힘 그리고 손등에 밀려나온 칼날은 이네오를 곤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네오는 비록 잠시였지만 패토스와의 거친 몸싸움으로 조금 지쳐있었다. 에르네스트에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네오는 그런 에르네스트에게 분명 큰 부담감을 느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리고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 차이는 점점 더 확연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네오가 불리하거나 위태롭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패토스와 엉겨 붙었을 때처럼 처음만 조금 불안하게 느껴졌을 뿐, 그는 금방 다시 안정감을 찾아갔다. 오히려 에르네스트의 복부 오른쪽 미세 관절 몇 가닥을 부러뜨리고, 왼쪽 무릎에 충격을 주기까지 했다. 이네오는 정말 강했다. 그 모습이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에르네스트에게 그나 보통의 사람처럼 체력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결코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에 반해 에르네스트는 지치지만 않았을 뿐, 그에게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작은 상처나 충격을 전혀 가하지 못했다. 에르네스트의 공격은 대부분 허공을 갈랐고, 나머지는 그의 톤파에 의해 가로 막혔다. 꽤 곤란해 보였다.
바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계속 지켜보다가는 이네오가 지치기 전에, 에르네스트가 먼저 크게 당할 것 같았다. 그 전에 그를 도와야 했다. 그가 자신보다도 위태로워 보였다. 서둘러 저쪽에 떨어뜨린 카니지부터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 둘이 난동을 부리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것은 바츠보다도 캣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어느 틈에 달려와 이네오의 등에 매달리며 그의 목을 팔로 졸랐다. 이네오는 자신이 충분히 유리한 싸움이었지만, 에르네스트에게로 한껏 집중하고 있던 탓에 그녀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했다. 아마도 체력적인 문제 때문인 것 같았다.
에르네스트는 그 틈에 그의 복부를 발로 걷어찰 수 있었다. 그는 에르네스트의 커다란 발에 걷어 채이고는, 등에 매달린 캣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에르네스트가 그에게 처음으로 충격을 주는 순간이었다. 비명은 캣의 입에서만 나왔다. 그녀가 꽤나 놀란 것 같았다. 특별히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이네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를 재빨리 떨쳐내고는 신속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에르네스트처럼 강철 몸이라도 가진 것 같았다. 에르네스트의 금속 발에 채였다면, 보통 사람에게 걷어차인 것보다 훨씬 충격이 클 텐데도, 그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캣을 향해 톤파를 휘두르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건재해 보였다.
바츠는 그쪽을 향해 달리던 걸음을 세워야만 했다. 그가 경악스럽게 느껴진 탓에 자신도 모르게 머뭇거리고 말았다. 과연 그를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는 헤러티커보다도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가 다음 행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라면 벌써 캣의 얼굴을 발로 걷어차고, 에르네스트를 다시 위협하기 위해 달려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것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방독면 안의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진 것이 느껴졌다. 바츠는 물론이고 선뜻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에르네스트에게 매우 반가운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는 복부가 불편한지 허리를 반쯤 구부리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방금 전 에르네스트의 발길질에 의한 것이었다.
바츠는 다시 힘을 냈다. 지금이라면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에르네스트는 이미 그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예상대로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특별히 공격을 허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에르네스트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고 있었다. 다만 피해내는 동작이 현격히 줄어들었고, 무엇보다도 반격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는 오직 자신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었다. 바츠가 합류했을 때에는 더더욱 불안하게 변했다.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그가 끝까지 꿋꿋하게 버틴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도무지 공격을 허용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불편하게 허리를 구부리고 한 손은 복부를 부여잡고 있는, 위태로운 모습이었지만 거기까지였을 뿐이었다. 그 이상은 없었다.
바츠는 이런 그에게 도전하려고 했던 자신이 괜히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비록 몸이 온전하지 못했지만, 에르네스트와 함께 달려드는데도 별다른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둘은 헤러티커도 큰 어려움 없이 상대했었다. 아델리나가 거들기는 했지만, 꼭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고,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될 뿐이었다. 그런데 이네오는 그때에 비하면 거의 근접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에게 도전하려면 감히 라는 말을 써야만 할 것 같았다. 그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은커녕 자신조차 없었다. 그는 그만큼 강했다. 다행이라면 그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전부터 보여 온 체력적인 문제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바츠의 칼날이 그의 가슴팍을 스쳤고, 에르네스트의 칼날도 그의 팔에 생채기를 만들었다. 여전히 치명상까지는 꽤 멀어보였지만,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진전이었다. 머지않으면 그의 움직임을 멈춰 세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곧 이루어졌다. 어느 틈에 정신을 차리고 달려온 레이븐이 그의 허리를 붙들고 늘어지며 시작되었다.
그는 레이븐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톤파 끄트머리로 레이븐의 목덜미를 찍어 내리기만 해도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것조차 하지 못하고 발목이 묶일 만큼 지쳐있었다. 그 사이 에르네스트의 왼쪽 주먹이 그의 안면에 적중했다. 그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크게 몸을 휘청이며 위험을 마주했다. 하지만 어딘가로 몸을 빼내거나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다. 레이븐이 악착같이 붙들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바츠 역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톤파를 들고 있던 오른 손목을 깨끗이 잘라냈다. 그의 입에서 드디어 고통에 젖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깊은 쾌감을 절로 느끼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바츠는 아델리나와 기분 좋게 잠자리를 가지고 난 것과 같다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지금 막 그녀 안에 흥분을 토해낸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기뻤다. 잘린 손목으로 그가 붉은 피를 쏟아낼 때에는 짜릿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레이븐이 그를 놓아준 것도 그때였다.
레이븐은 그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싶은 듯 보였다. 그를 잡고 늘어지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게 되었는데, 그 자세 그대로 잘린 손목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헤매는 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바닥에 쓰러지며 울부짖기 시작했을 때, 방독면을 벗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그의 처참한 얼굴이 드러났다. 이네오에게 얻어맞으면 생긴 상처였다. 한쪽 뺨에 주먹보다 큰 혹이 생겨나 있었고, 입술도 크게 부어있었다. 코도 부러져 있었다. 그로인해 입 주변이 전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눈으로 볼 수 없을 텐데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지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에게 캣이 뛰어가 양팔로 머리를 통째로 감싸주고는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그 모습이 애잔하게 비쳐졌다.
바츠는 그 둘을 지나쳐 바닥에 드러누운 이네오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간간히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바츠는 이제 제법 접근한 동쪽의 빛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 그에게 물었다.
“네 가슴에 어둠이 구겨 넣어지면 어떻게 될까? 과연 네가 믿는 그가 너를 구해줄까? 어때? 그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것이.”
바츠는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주여, 당신에게로 갑니다. 궤휼자를 심판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를 용서하소서.”
바츠는 카니지를 내리쳐 그의 목을 벴다. 그 어떤 방해도 없었다. 그의 목은 다른 누군가를 벨 때처럼 쉽게 잘려나갔다. 그게 다였다. 그는 주변에 허무함을 남기고는 숨을 거뒀다. 그를 쓰러뜨렸을 때만 하더라도 기쁨으로 흥분했는데, 막상 그가 생기를 잃자 숙연함을 느껴야 했다. 기분이 묘했다. 온몸에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다시 느끼지 못했다면, 한참 동안 멍하니 그의 시신을 바라보아야만 했을 것 같았다. 그때 에르네스트의 조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토스의 분한 감정이 묻어나는 울음소리도 있었다.
“뭐하는 거야! 서두르라고!”
바츠는 그제야 아델리나를 떠올렸다. 그녀를 자꾸만 잊는 자신이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넌 뭐한 거야!”
에르네스트는 뒤늦게 달려온 바츠를 크게 나무랐다. 초점을 잃은 아델리나의 모습에 대단히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는 바츠마저도 때려눕힐 기세였다. 옆에서 패토스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자극해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바츠는 그가 아니었더라도 아델리나를 둘러업고 스톡홀름으로 향했을 테지만, 그의 등쌀이 더욱 서두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바츠를 다시 한 번 나무랐다. 꽤나 퉁명스런 말투였다.
“저리 비켜! 내가 안아들 거야! 넌 몸도 성치 않잖아!”
바츠는 당혹스러우면서도 민망했지만, 그의 행동과 목소리에 묻어나는 진심에 굳이 반발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은 물론이고 아델리나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그는 스톡홀름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녀를 헌신적으로 돌봤다. 그녀가 밤에 잠든 순간도 쉬지 않고 곁을 지켰다. 바츠가 자신도 모르게 잠들고는 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눈은 그녀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함께 가고 있는 레이븐과 캣조차도 놀랐을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그녀는 스톡홀름에 도착했을 때까지 무사할 수 있었다. 비록 밤마다 앓는 소리를 내며 불안하게 만들더니, 결국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는 했지만 숨이 멎지는 않았다. 바츠는 그런 그녀가 대견하면서도 너무 고마웠다. 물론 레이븐과 캣 그리고 에르네스트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하지만 바츠 역시도 쓰러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스톡홀름에 들어서는 순간 기억이 끊겼다. 다시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나 지난 뒤였다. 닥터의 치료를 받은 덕분이었다. 아델리나도 그의 치료를 받으며 꽤 호전되고 있었다. 다만 눈을 뜨지 못했을 뿐이었다. 바츠는 그녀가 걱정돼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닥터가 찾는다는 에르네스트의 전갈을 받고 그의 방으로 가야만 했다. 그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게르하르트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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