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229화 (229/268)

< --   14. 이별   -- >         * 229화 *

“H5N1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네. 그토록 적응력이 뛰어난 녀석은 처음 보았네. 그전까지 우린 녀석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우리의 자만이었네. 우리가 녀석을 H1N1을 이용해서 변화시키고 난 후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지.”

2016년 6월. 닥터는 새로운 괴질에 대해 예측하고, 대비를 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인위적으로 모의 병원균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백신과 치료제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건 단순한 연구가 아니었다. 점차 늘어나는 인간의 수명을 보다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자, 인류를 계속해서 보전하기 위한 발악이었다. 닥터는 그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악몽이라고도 표현했다. 자신들이 탄생시킨 악몽. 모두가 함께 꾸게 된 끔찍한 재앙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재앙의 이름은 크루엘라였다. 바츠는 물었다.

“난 지금 크루엘라에 대해서 듣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맞네. 정확히 알아듣고 있군.”

“그러니까 크루엘라는 남극의 얼음 밑에 잠들어 있던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것을 당신들이 만들어내며 생겨났다는 건가?”

닥터가 자부심과 함께 후회가 뒤섞인 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의 두 눈은 죄책감에 젖어 있었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있었다.

“그러네. 우린 H5N1을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변종으로 만들어냈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크루엘라네. 우릴 미쳤다고 생각할 테지만, 이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네. 인간의 삶이 지속될수록 그리고 환경이 변화할수록 괴질은 수없이 많은 다양성을 가지고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었기 때문이네. 바이러스도 세상과 함께 진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리고 그 중에는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게 될 만한 것들도 반드시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지. 우린 그것들이 실체로 나타나기 전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기 위한 실험과 연구를 해야만 했네. 가상의 적을 만들어 미리 싸워 보는 것이지.”

“좋아, 마음대로 하라고. 변명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궁금하군. 그것들이 세상에 퍼뜨려진 이유 말이야.”

닥터는 시선을 방안에 있는 그녀에게로 옮기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씁쓸하게 입맛을 다신 뒤에 대답했다.

“세상은 나 혼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내가 있던 세상 말고, 반대편에서는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네.”

2017년 당시 국가들은 급속도로 거대해지는 기업의 성장으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국가가 기업을 통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히려 기업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커져갔고, 국가는 주도권을 기업에게 빼앗길 것 같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래서 단순한 국가 차원이 아닌 노골적인 압박과 규제를 통해 기업을 통치하기 위한 시도를 했고, 그것은 거의 탄압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배려를 희생으로서 강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물었다.

“자네 국가가 뭔지 아나?”

바츠는 아르크에서 잠깐 배우기도 했고, 지상으로 나와서도 언제 한 번 들어본 것 같았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종, 신념, 가치관 등에 따라서 공감대가 형성된 무리들이 만들어낸 모임이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네. 인간은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지니까 말이네. 물론 그만큼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네.”

“지금과 같군.”

바츠의 빈정거림에 그가 한차례 실소를 터뜨리고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때 국가 안에 속한 기업이라는 이름은 국가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네. 그들은 국가가 공감대를 통해 모여든 국민이라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일선에서 활약하도록 만든 사람들이었지. 아르크의 헌터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하겠나? 자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꽤나 복잡한 문제라네. 자네에게 소유에 대한 정의부터 재화와 가치에 대한 설명을 전부 해야만 하지.”

그는 자신의 말을 바츠가 혹시라도 곡해하게 될까봐 매우 걱정스러워 했다. 목소리가 침울하게 느껴질 만큼 신중했다. 하지만 바츠는 그 뒤로 이어진 그의 설명을 인내심을 가지고 들었고, 그의 우려대로 조금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아르크와 아르크에서 배급표를 통한 거래를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보다 더 복잡하고 거대하게 얽혀있을 뿐이었다. 미사에서 배웠던 역사가 나름 도움이 되었다. 그가 설명할 때마다 어렴풋하게, 비슷하거나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좀 더 신경 써서 공부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스쳤다. 그가 다시 본래의 이야기를 이어간 것은, 바츠가 당시 사회상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나서였다.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기업은 국가의 강력한 제재에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네. 그들은 이미 국가의 유지를 위해 상당부분 희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네.”

다논이라는 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다논의 회장은 국가가 본질을 잃고 소수의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변질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국가는 국민이라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였지만, 그 방패는 작고 얇아졌고 일부를 위한 바람막이가 되어갔다. 그것은 최초의 국가가 세워진 이례, 가장 타락한 것이었다. 다논의 회장은 그 타락을 특별한 자극으로 인한 변화만이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가들을 반대로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필요로 했네.”

“설마 그게 바로 당신이 만든 그 병원균이었나? 크루엘라말이야.”

닥터가 슬픈 눈으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바로 물이었네.”

바츠는 전혀 예상 밖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의아했으나 그를 믿고 기다렸다. 그러자 그가 따로 묻기 전에 이야기했다.

“2020년 9월이었네. 당시 세계적인 기업인 애플이 민간 경호에 중무장한 용병을 쓰기 시작했네. 위험 지역에서의 테러로부터 직원들과 사익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이었네. 그때에도 지금과 같은 야인이나 노상강도(highwayman)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네. 그리고 그때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지.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질서를 무너뜨리네. 물론 그 이유는 지금처럼 확실했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함이었네.”

국가들은 애플의 저의를 알고 있었지만 반대할만한 핑계가 없었다. 그저 유감을 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이 가진 자본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 계기를 통해 애플과 같은 기업들이 하나 둘 자체적인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이라는 기업이 있었다.

“국가는 그들이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 초석을 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네. 그리고 그들의 뜻대로 되면 국가 전체가 유지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지. 어쩌면 기존의 경제체제가 전부 뒤바뀔 수도 있을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었을 것이네. 국가로서는 그들의 계획을 막아야만 했지.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네. 하지만 덕분에 다논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네.”

국가들이 각 기업들의 일탈에 신경 쓰는 사이, 다논은 생수 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전 세계 생수 회사들을 인수 합병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독점해나갔다. 한 산업에 대한 독점은 자칫 무분별한 횡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양되고 금기시 되는 일로서, 그 낌새만 보여도 모두가 나서서 강력한 규제와 탄압으로 미연에 방지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때의 국가들은 그러지 못했다. 거대 기업들의 일탈이 가시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신경 쓰느라 여력이 없었다.

2022년 기업 구글의 무인 드론 산업이 유통업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막대한 부를 창출했고, 그 기반으로 구글은 애플이나 삼성과 같은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민간 경호에 엄청난 예산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들이 UN이라는 단체를 통해 우려를 표하고 경고를 하게 만드는 계기였다. 하지만 2024년 결국 구글은 애플과 함께 공동 정부 수립을 진행하게 되었고, 미국이라는 국가 내에 캘리포니아 주의 지지를 받으며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주민 투표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당시 정치 체제였던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당위성을 증명했다.

“공식적인 것은 2027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네. 캘리포니아 주의 방위군이 애플을 지지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네. 당시 애플이 고용한 사설 군대는 대우가 매우 좋았고, 그들에게도 같은 대우를 약속했던 것이네. 애플이 하나의 또 다른 국가로서 모든 걸 갖추는 순간이었지. 미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네. 여전히 그들보다 수십 배 강력한 자본과 무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전쟁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네. 그랬다가는 나라 전체가 흔들렸을 것이네. 그리고 미국이 혼란에 빠지면 전 세계는 말할 것도 없었지. 애플과 구글은 당시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했고, 미국이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지. 즉, 미국은 세계의 다이너마이트였고, 애플과 구글은 그런 미국의 심지였네. 그리고 그렇게 긴박하게 일이 벌어지는 동안, 세계 여러 나라가 높아진 해수면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네. 빠른 산업화로 인한 세계 기후의 변화 때문이었지. 세계 주요 도시들이 관공서나 중요 시설들을 내륙으로 이전 시켰고, 몇몇 대도시는 수중 도시로 변화를 꾀하기도 했네.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차치하도록 하지.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이듬해부터니 말이네.”

바츠는 그의 이야기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답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크루엘라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현재 아르크와 부사령관은 물론이고 레벨6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괜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냥 그 의문에 대한 답만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는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 전부를 이야기할 것처럼 보였다. 바츠는 그를 믿고 다시 한 번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2028년, 물로 인한 갈등이 전면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네.”

중동지역에 대규모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곳은 오래 전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활발하게 이어져온 분쟁지대였다. 그리고 그곳에 위치했던 국가 시리아와 또 다른 국가 이라크가 인근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문제로 터키라는 국가를 압박하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두 강의 수원지를 가지고 있던 터키가 강 유역 개발에 착수할수록, 하류에 위치한 두 국가가 물 부족에 시달렸던 것이다. 특히 댐 문제로 골이 깊었다. 그로인해 볼멘소리가 갈등으로 심화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불만은 다른 때와 전혀 달랐다. 터키는 그 심각성을 누구보다도 더 정확히 느꼈고, 서둘러 주변 다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공조해 요단강을 볼모로 시리아와 이라크를 압박했다. 그러자 인접했던 다른 국가 러시아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터키를 압박하며 시리아와 이라크에 힘을 실어주었고, 당시 패권국이던 미국은 오랜 숙적이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 독립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던 탓에 그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은 고조되어가기만 했다. 당시 언론은 그때를 ‘3차 세계대전의 전조’라고 표현했다. 서로 다른 집단 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촌극이었다.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았네. 언제든 그리고 어떤 문제든 항상 그랬지. 하지만 인간은 결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네. 이유는 간단하네. 욕심 때문이네.”

2029년 터키는 오히려 더 많은 댐의 건설을 발표했다. 시리아와 이라크가 결국 선전포고를 하게 만드는 도발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요르단을 통해 시리아에 개전할 것이라며 논란을 만들었다. 언론의 우려대로 전쟁이 빠른 속도로 확전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때까지도 관망하며 지켜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어떤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독립한 캘리포니아 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해야 옳았다. 애플과 구글 공동 정부로서는 좋은 기회였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참전을 선언하며 국가로서 첫 해외 파견을 실현하고 말았다. 분쟁 지역의 치안 안정을 꾀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국가의 주체성 강화가 주목적인 파병이었다. 미국으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더 이상 그들을 구속할 수 있을 만한 구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계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끝까지 군대를 분쟁지역으로 파병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자국 내 다른 기업들이 애플과 구글처럼 독립을 선언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 그런 미국을 전쟁이라는 참사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규탄하기는 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했다. 우려와 다르게 그 긴장감이 금방 사그라졌기 때문이었다.

“재미있게도 갈등을 불식시킬 수 있는 해결책이 나왔던 것이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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