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235화 (235/268)

< --   14. 이별   -- >         * 235화 *

그의 시선이 다시 바츠에게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동안 마음을 다 잡은 눈이었다. 눈빛에 고집이 느껴졌다. 하지만 금방 간곡함이 묻어나도록 변하더니, 마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내가 한심하게 보이나? 자네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

“왜지? 내가 당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그가 희소(嬉笑)를 터뜨리더니, 고개를 젓고 나서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네. 나를 그들을 바라볼 때와 같은 눈으로 보지 말게. 자네와 내가 선 자리가 다르기 때문일 뿐이니까 말이네. 그래서 우린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지. 빛의 위치에 따라서 그림자의 길이와 크기 그리고 진함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네. 우린 완벽해야만 했네.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지. 고작 1, 2백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단 말이네. 최소한 수백 세대를 통해 얻어내야만 하는 일이었지. 그녀가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이네. 이건 진화란 말이네. 그래, 진화! 지금 우리의 의도는 그보다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지. 이제 반 백 년이면 충분할 것이네. 난 그런 그녀에게 안도감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네.”

바츠는 냉담하게 대꾸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군. 당신이 말한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처음부터 기체화를 뜻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지고 있거든. 지금의 당신과 아까 그와 같은 완전한 기체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기체화에 거부감 없이 적응할 수 있는 몸을 말하는 것일 테고 말이야. 무엇이 되었든 방금 전 그의 말대로 또 다른 크루엘라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 이미 크루엘라라는 악몽을 만들어 내놓고,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야. 어쩌면 그보다도 더 최악일지도 모르지.”

“크루엘라와는 다르네. 비록 외부 개입이 있는 것은 같지만, 크루엘라가 고무 둘을 접착제로 붙인 것이라면, 브루드 메어를 통한 탄생은 고무 둘이 오랜 세월을 통해 눌어붙게 된 것이지.”

바츠는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참아내며 냉정하게 말했다.

“대체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모르겠군. 고무가 뭐? 브루드 메어만으로 제한한다면 그런 변명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이 기체화로 시선을 돌린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아르크로 숨어 들어간 그때의 그 사람들과 결국 똑같다고 느껴진다고. 뭐가 다른 거지? 그들이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사람들을 버린 것과 제한적이지만 당신들의 간섭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의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거야. 결국 누군가를 강제로 희생시켜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잖아? 설마 그 아이들이 원했다거나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관대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정말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잖아?”

바츠의 시선이 차갑게 번뜩이자, 그가 힘겹게 말했다. 억지스런 응석을 부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우린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종착지라고 생각했네. 인간의 수명이 그 끝을 모를 만큼 늘어나는 것이지. 음식이나 물도 필요가 없네. 노화라는 말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 이미 수백 년 전 사람들은 노화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웠네. 단지 신체가 가지는 한계가 있었을 뿐이지. 그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란 말이네! 브루드 메어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이 기체를 가지게 된다면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네. 상상만으로도 멋지지 않나? 더 이상 육체를 통한 고통이 사라지게 된단 말이네!”

“잘못된 것 같군. 당신은 당신이 가진 신념을 납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변해버렸는지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한다고. 믿음을 주기 위해서 뭐든지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거기에 거짓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는 몰랐군. 그리고 우리라는 말은 그만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그건 모두 당신 혼자 생각인 것이잖아.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지. 안 그런가? 조금 전 내가 본 그의 모습이 착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혹시 마음이 변한 그녀를 당신이 살해한 것은 아닌가?”

바츠의 물음에 그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으로 지켜보았다. 당황스러워 말을 잃었다기보다는 뜻밖의 길을 발견한 사람처럼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가 말했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하던 말을 똑같이 하는 군...그녀는 자연적인 현상에 더 이상의 개입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네. 크루엘라를 예로 들면서 말이네.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자네처럼 변명으로 치부했지. 하지만 그건 아니네. 사람들은 당장 현실에 흘러가는 데만도 바쁘네. 미래는 알아야 하고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먼저 경험해야만 하네. 그렇게 예측을 하게 되는 것이지. 불의에 대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란 말이네. 비극이 필연이기 때문이지. 난 그것을 대신해 오고 있었던 것이네. 누군가가 음식을 만드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경비를 서는 것이네. 각자가 자신이 바라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다른 것은 또 다른 누군가가 대신하며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네. 사람의 시선은 한 곳 밖에 바라볼 수 없으니까 말이네. 내가 그녀를 살해했느냐고? 난 존은 물론이고 신시아 그녀를 대단히 존경했네. 그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자신이 있지.”

“그런데 어째서 방금 그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지? 그녀가 죽은 것은 그리 오래 된 것 같지 않은데, 그가 아직까지 슬퍼하는 것과 다르게 당신에게서는 약간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말로 날 이해시키려고 하지 마. 그게 얼마나 억지스러운지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니까. 사람은 누군가가 죽으면 슬퍼한다고. 그리고 그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 시간은 길어지지. 당신 말대로라면 당신과 그녀의 거리는 꽤나 멀었던 같아.”

바츠는 말끝에 닥터 그가 가끔씩 과거에 대한 후회와 죄스런 감정을 잊고는 하는 것처럼 이라는 말은 생략했다. 그는 과거에 대해 꽤 무감각해 보였다. 그는 오직 기대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그가 꿈을 꾸며 한다는 후회가 그날의 재앙에 대한 자책이 아니라, 완벽하지 못했던 자신의 기술에 대한 아쉬움인 것 같았다. 바츠는 그가 대답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녀에 대해서나 말해봐. 대체 그 신시아라는 여자는 누구지? 그녀가 이곳에서 꽤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나 보지? 그녀가 변한 이유가 뭐야? 왜 조급함을 느끼기 시작한 거지? 당신들에게 시간은 충분했잖아. 당신의 설명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그가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가 가라앉히며 눈을 감고는 잠시 잠든 사람처럼 굴더니, 이내 하늘에 구름이 걷히는 것처럼 눈을 떴다.

“당시 기체는 모두 셋이었네. 모두 완성이 된 상태였지. 정확히는 완성시켰다고 해야 하는 게 옳겠군. 한창 개발 중이었던 시기였는데, 그 혼란들 덕분에 잊혀 진 것들이었지. 모두 그녀의 기술이었네. 그녀는 거의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었네. 수십 년 동안 노력했지만 존조차도 겨우 흉내나 낼 정도지. 그나마 가장 근접한 것이 게르하르트네. 그는 그녀가 인정했을 만큼 그쪽으로 재능이 있었네. 그녀가 죽지만 않았다면 모두 전수받을 수 있었을 테지. 난 그런 그녀를 존경했네. 그리고 그녀와 존은 나를 존중했지. 실의에 빠진 내가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해주었네. 내게 기체를 선물한 것이네. 그때의 악몽과 평생 함께 하며 속죄하라고 했네. 그것은 기회였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네. 꼭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네. 그건 너무 모진 처우 아닌가? 하지만 불현 듯 머릿속을 스치더군. 내가 시작한 일, 그 끝도 내가 지어야 한다고 말이네. 난 그들의 말처럼 내가 한 일이라고 받아드린 것이네. 그래서 둘의 제안도 받아들였지. 둘은 아마도 내게 실험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네. 그들도 당시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네. 위험한 실험이었네. 사람의 뇌 즉, 기억만 기계로 옮겨 넣는 기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신경은 매우 민감하네. 약간의 거부 반응으로도 파괴되기 싶네. 과연 인위적인 전기 신호와 낯선 금속들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 물론 그 둘의 계산은 정확했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지. 그리고 존 역시 마찬가지고 말이네. 그녀가 지쳐서 포기하지만 않았다면 그녀도 함께였겠지. 그녀는 존과 함께 나를 기체화 한 후, 존 역시 시술해주었네. 그리고 존은 그녀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 그녀를 기체화 했지. 우리 셋은 그렇게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었네. 그녀는 상당히 강한 운이 작용했다고 했네. 그때의 기술력은 적응력에 대한 확신은 없었으니까 말이네. 그래도 그때의 기술력이 훨씬 발전된 상태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네. 지금은 고작 신체 일부를 교환 대체 하는 수준이지. 위안이라면 그 적응력에 대한 정보를 갖췄다는 것이네. 하지만 그 기술력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지. 혼란은 문명뿐만 아니라, 인류의 수많은 유산도 앗아갔네. 헌터들이 지상을 누비는 이유 중 하나 아닌가?”

“그녀가 지쳤다는 건 무슨 의미지? 그녀가 너무 오래 살았다는 뜻인가?”

바츠는 오래 전 일리트시의 집사 칼이 스스로를 지쳤다라고 표현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분명 그때 그가 전진기지를 떠나려다가 걸음을 급히 세우고는, 아르크 눈을 건네주며 말했었다. 자신을 슬프게 만든, 모든 것이 늙어버려 기능을 상실했다는 말을 반박하기 위함이었다. 바츠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도 모르게 낡고 깨진 왼쪽 손목의 아르크 눈을 어루만졌다. 항상 위태롭게 빛을 내지만 단 한 번도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닥터가 대답했다. 바츠의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아니었다.

“난 아직도 그녀가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네. 그녀는 강한 여자였네. 그런데 그런 일을 스스로에게 할 줄은 몰랐네. 존은 그런 그녀가 옳은 길을 보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했네. 하지만 난 그게 억지라는 걸 아네. 내 계획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지. 그 둘은 나를 불신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네. 대체 그 옳은 길이라는 게 무엇인가? 자네는 그것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겠는가?”

바츠도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군. 그녀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그녀는 브루드 메어도 그렇게 탐탁지 않게 생각했네. 생명의 탄생에 외부적으로 인위적인 힘이 가해진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표현했지. 모순적이지? 어쨌든 그런데도 브루드 메어를 수용 해주었던 것은 당시 나를 이해해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네. 내 계획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네. 유일한 방법이었지. 유전학적인 진화. 문제는 그 기다림에 대해 지친 그녀가 엉뚱한 망상에 빠진 것이네. 정확히는 그녀와 존이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하나 둘 기체화시키기 시작했을 때였네. 거부한 아이는 딱 한명이었을 정도로 반응도 좋았네. 나머지는 다 받아드렸지.”

“당신의 강력한 제안 때문이었겠지. 당신이 성장한 아이들을 기체화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을 거야.”

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네...”

“그녀가 당신에 대한 믿음을 잃은 계기인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 그 망상과 연관이 있는 것이지?”

“나에 대한 후회에 젖어가고 있었지...”

그의 시선이 유리에 맺힌 물방울처럼 고개와 함께 밑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바츠는 그의 정수리에 대고 물었다.

“그녀가 당신을 더 이상 돕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녀가 기체를 만드는 일을 그만 두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느냐고 묻는 거야.”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려, 바츠를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양 어깨를 붙들고 흔들며 강요할 것처럼 점차 격앙되는 목소리였다.

“나를 보게. 난 기체네. 존과 신시아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관절에 간단한 문제가 생겨도 해결 할 수 없단 말이네. 기체는 내가 바라보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지. 난 그들의 노예나 다름없었단 말이네! 그들은 기체라는 족쇄를 내게 채운 것이었네! 그래놓고는 더 이상 기체화는 우리의 목적이 아닐 거라며 회의적인 말을 했지!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곳에서 브루드 메어를 통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정한 것이 아닌가! 그뿐인가? 그건 내게 하는 경고였네! 나를 겁주려고 했던 것이란 말이네! 그녀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지! 크루엘라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 나에 대한 신뢰를 잃었단 말이네! 하지만 나는 확신하네! 이건 진화네! 수 백 세대를 지나야 완성되는 위대한 진화! 브루드 메어는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단 말이네! 그녀가 이 위대한 업적을 망치게 둘 수 없었네!”

“내가 당신에게 어리석다고 한 이유야. 정말 어리석군. 그래서 그녀를 살해했나? 차라리 그녀의 기술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그랬어? 그랬다면 이 정도로 불편하게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바츠는 답답함을 겨우 씹어 넘기고는 그를 향해 질책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가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을 드리우며 읊조렸다.

“그녀의 기술...몹시...너무도 갖고 싶었네. 아무리 시도해도 자연적인 상태를 유지한 채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고작해야 브루드 메어가 전부였지. 그마저도 수백 년이 아닌 수천, 수만 년 동안 많은 세대를 거쳐야만 할 정도로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 당장 눈앞에 결과가 놓일 문제가 아니었네. 게르하르트에게 그녀의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그 이유네. 하지만 그건 진화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지. 그날 이후로 지상에 교육은 그 명맥이 사라졌지 않나? 게르하르트가 대견한 이유이네. 그녀의 인내심은 그 시간들을 버틸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았네...”

“당신...알고 있었군. 그와 그녀가 언젠가는 당신을 의심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렇지? 자신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계획이었군. 그런데도 내게는 계속해서 자신 있는 것처럼 말해왔군.”

닥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먹구름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만 비를 뿌리며 처량한 눈을 했을 뿐이었다. 바츠는 그사이 불확실성이 주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미사훈련소의 교육을 잊은 헌터 셋이 헤러티커를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았다. 동시에 등을 보이고 달아난다면 최소한 둘 이상이 사망하겠지만, 함께 맞선다면 놈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모두가 달아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셋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쉽게 놈에게 달려들지는 못할 것이다. 가장 먼저 달려드는 사람이 놈에게 제일 빠르게 살해당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둘이 이어서 함께 달려들지 않는다면 죽은 목숨인 것이 확실했다. 바츠는 새삼 다시 한 번 미사훈련소와 나르의 방이 얼마나 현명한지를 느꼈다.

“그런데 왜? 왜 멈추지 않은 거지? 당신도 알고 있는 것이었잖아. 늦게라도 멈추면 되는 거잖아? 그녀의 말대로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는 것이었잖아. 스톡홀름에 기체를 가진 사람의 수가 모두 몇 이지? 백 명? 이백 명? 그 사람들 때문이었나? 그들이 당신을 원망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난 그 기술과 우리의 노력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네. 적어도 아르크로 달아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네. 내게 그들과 같다고 말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네. 난 그들과 다르네. 무엇보다도 그들처럼 무책임하지는 않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의 두 눈이 실제 안구였다면 번뜩였을 것만 같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붉은 빛 때문에 더욱 그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바츠는 변명까지도 그들과 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가 말한 대로 빛이 비추는 방향만 다를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노력이라는 사명은 이전에 언급된 그 노예들처럼 이미 잊은 것 같았다. 그 노예들처럼 그저 지금 당장 눈앞에 흐름을 쫓는데 급급할 뿐이었다. 바츠는 물었다.

“그래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가? 그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제 내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이제 내 차례야. 당신의 턴이 너무 길군. 말해봐. 그래서 대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말이야. 지금까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가 뭐지? 설마 아까 말한 공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 고작 그것인가? 그것 때문에 우릴 이렇게 곤경에 빠뜨렸나? 그게 전부라면 정말 실망스러울 것 같군. 당신을 원망해야 할지도 몰라.”

그가 웃었다. 피할 수도 있었던 비에 흠뻑 젖은 웃음이었다. 그 민망함에 대해 해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다른 사람이 대신했다. 에르네스트였다. 그가 헐레벌떡 달려와 소리쳤다.

“그녀가! 그녀가 깨어났어요!”

============================ 작품 후기 ============================

늦었네요...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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