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얀 감염-243화 (243/268)

< --   15. 빛과 빚   -- >         * 243화 *

“네?”

그녀가 감탄사에 가까운 물음을 던졌다. 엉뚱함에 놀란 듯 보였다. 하지만 바츠는 따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힘이 실린 시선으로 지그시 바라본 뒤에, 먼저 자리를 옮겼을 뿐이었다. 대신 속으로 밀려드는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는 정면으로 싸워야만 했다. 허락 없이 멋대로 한 결정이, 불필요한 참견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불안감을 두른 책임감이 마구 샘솟고 있었다. 게다가 집요하게 굴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몸이 구겨진다고 느껴질 만큼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궁금할 텐데도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의아한 눈빛을 한차례 보낸 것이 전부였다. 바츠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녀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바츠는 그런 그녀를 일리트시로 안내했다. 지상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수십 명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들은 기회만 얻는다면, 언제든지 아르크의 거주자가 될 수 있었다. 바츠는 그들 중 한 사람을 카르멘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아르크에서 달아난 것이 그 사람을 위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도시로 들어가는 것은 혼자였다. 바츠는 그녀를 입구에서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그녀에게 도시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모른다. 왠지 모를 거부감이 꺼려지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안으로 향하는 걸음이 매우 빨랐다. 혹시라도 그녀가 인내심을 잃고, 뒤늦게 따라들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아르크를 충동적으로 뛰쳐나온 그녀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바츠가 지정해준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다.

도시는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변함없이 궁휼하게 느껴질 만큼 초라했다. 부실한 샤워장은 도저히 실효성을 찾기 힘들만큼 더러웠고, 악취는 전보다 심해져 있었다. 구석에 놓인 붉은색 고무 들통에, 반쯤 채워진 배설물이 원인 같았다. 그렇다고 그 들통을 비워낸다고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도시 안도 끔찍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독면을 벗자마자 붉은 들통의 오물이 떠올랐을 만큼 역한 냄새였다. 이미 수차례 경험을 했는데도, 코끝이 절로 찡그려졌다. 오히려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도 반응이 더 민감하다고 느껴졌다. 카르멘이 함께 왔다면, 그녀는 구석 한쪽에 구토를 했을지도 몰랐다. 도시의 주민들은 그런 공간에 빼곡히 줄지어 앉아있었다. 역시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집사님!”

바츠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시장이었다. 그는 어느새 도시로 돌아와 좁은 통로를 따라 걸으며, 좌우로 늘어선 주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오늘 먹을 끼니로 보였다. 그 양은 어른 주먹보다 조금 더 작은 감자 한 알과 한줌의 물이 전부였다. 이들이 살아있는 시체처럼 보이는 이유였다. 허기를 달래기도 힘든 양이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그래도 모두에게 똑같은 양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올림푸스에서 재배된 감자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시장이 지난 번 지시를 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아르크에 다녀오셨다면서요?”

그 뒤로 샤오밍도 보였다. 그가 시장의 어깨너머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마도 시장이 그에게 근래 일들을 귀띔한 모양이었다. 꽤나 불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바츠에게는 그를 위로할 시간이 없었다. 그쯤 되자 무기력한 모습으로 앉아있던 주민들이, 하나둘 바츠를 발견하며 부산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간절함이 담긴 앓는 소리와 부정확한 발음으로 도시가 떠들썩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제게 아르크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스티그마타는 제게로!”

정말 순식간이었다. 사람들이 바츠가 선 입구 앞쪽을 향해, 성난 눈보라처럼 밀려들었다. 샤오밍이 짜증스럽게 목소리를 높여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샤오밍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포박하는 것처럼 그를 고립시켜버리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히려 들고 있던 감자 몇 알을 바닥으로 떨어뜨렸을 정도로, 겁에 질린 채 안절부절 하는 것이 전부였다. 때마침 안쪽에서 달려 나온 더그가 합세하지 않았더라면, 영영 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가 안쪽에서부터 사람들을 헤치며 다가오자, 샤오밍이 힘을 얻었는지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을 에워싼 몇몇을 향해 폭력을 가한 것이었다. 그의 잔인한 폭력이 사람들을 천천히 진정시켰다. 무섭게 소리치는 사람이 둘로 늘어난 것도 설득력을 더했다. 사람들은 샤오밍과 더그의 으름장에 달아나는 늙은 프레이처럼 자신의 자리로 힘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일부가 끝까지 바츠를 향해 슬픈 눈으로 애원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바츠는 그들의 시선을 덤덤한 마음으로 받아드렸을 뿐이었다. 정작 바츠가 관심을 둔 것은 조금 전 시장이 떨어뜨린 감자들이었다. 그들이 전부 자리로 돌아가고 나자, 그 감자들이 바닥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츠는 시장이 그 감자들을 살뜰하게 줍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 샤오밍을 불렀다. 그는 어깨가 들썩일 만큼 크게 흥분해 있었다.

“샤오밍씨, 멘디 좀 불러줄래요?”

그는 바츠가 부르자, 고개를 황급히 돌리며 크게 놀랐다. 씩씩대며 성난 가슴을 단 번에 삼켜버렸을 정도였다. 이어지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꿈을 꾸는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기대와 너무 달라 혼란스런 얼굴이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과격한 행동에 대한 꾸지람을 예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바츠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멘디를 불러달라고 다시 한 번 요구한 것이 전부였다. 그는 그제야 바츠의 요구를 행동으로 옮겼다.

“거짓말쟁이.”

멘디가 바츠를 보자마자 내뱉은 첫마디였다. 그녀가 불만이 대단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샤오밍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오며 샤오밍의 거친 손길을 몇 번이나 신경질적으로 뿌리쳤지만, 그에게는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바츠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바로 앞에 서서, 치켜뜨고 올려다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말버릇이 그게 뭐야!”

멘디가 뜨거운 콧김을 내뿜듯 말하자, 뒤에 섰던 샤오밍이 그녀의 뒤통수를 가볍게 툭 밀치며 나무랐다. 바츠는 그런 샤오밍을 간단한 손짓으로 제지하고 대답했다.

“그랬지.”

“그런데 왜 계속해서 빼앗아 가는 거야?  내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잖아. 준비가 되면 막지 않는다고 했잖아. 언제든 떠나도 좋다고 했잖아.”

“그것도 그랬지.”

“그런데 왜?”

바츠는 한쪽 무릎을 구부려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뒤에 대답했다.

“그 약속을 지키러 온 거야. 너무 늦었다면 미안하다.”

“정말이야? 정말 날 서울로 보내주는 거야?” 멘디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하듯 외쳤다. 하지만 바츠는 그녀의 기대를 가볍게 저버렸다.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녀의 눈에 원망이 차오르고 미간에는 갈라진 지면처럼 주름이 생겼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둘 다 감쪽 같이 사라졌다.

“서울로 보내줄 수는 없지만, 네가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해줄 거야. 네가 준비가 되어있다면 말이지.”

“난 준비가 되어 있어!”

바츠는 또 한 번 자신 있게 소리치는 그녀를 보며 미소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가자. 네가 바라는 대로 해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으로.”

멘디는 주저 없이 바츠의 손을 잡았다. 입으로 문 것처럼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샤오밍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를 뿐이었다. 시장은 아직까지도 바닥에 떨어진 감자를 줍느라 정신이 없었고, 더그는 어느새 반대쪽 끝 쪽에 가있었다. 누구도 샤오밍을 도울 수 없었다. 심지어 주민들도 평소처럼 침묵에 잠식된 채 자신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일부가 처음부터 귀를 기울이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특별한 동요나 만류는 없었다. 바츠는 그저 샤오밍에게만 괜찮다는 손짓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멘디를 도시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던 카르멘을 멘디에게 소개해주었다.

“이 분이 너를 데리고 가줄 분이야.”

“내가...내가 강해져서...강해져서 그 옆에 설 수 있게 해줄 거라는 말이지?”

멘디가 카르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그보다도 더 훌륭한 일을 할 수도 있지.”

“그보다 더 나은 일은 없어. 그거면 충분해.”

카르멘을 바라보는 멘디의 시선이 두려움이 묻어나는 기대로 반짝였다. 반대로 멘디를 내려다보는 카르멘의 시선은 침착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시선을 바츠에게로 옮기며 물었다.

“왜 이 아이를...”

“당신에게 위로가 되어줄 겁니다.”

바츠는 그때까지도 꼭 붙잡고 있던 멘디의 손을 그녀에게로 건넸다. 속이 울렁거리며 알 수 없는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뜻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손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매우 혼란스런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따로 뭔가를 더 캐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멘디가 바츠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 자신의 손을 힘껏 붙들어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멘디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거침이 없었다. 마치 그녀가 아무런 의심도, 아무런 융통성도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저 자신이 정한 곳을 향해 거리낌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바츠는 카르멘에게 말했다.

“자유도시 카르카손은 서쪽으로 가야 해요. 서쪽으로 아주 오래 가야 할 겁니다. 나도 가본 적이 없어요. 남쪽은 오래된 도시와 바다뿐이죠. 아르크 뒤쪽 옛 도시를 관통해서 가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곳은 버려져서 아무도 살지 않거든요. 지상에서 가장 강한 건 눈에 띄지 않는 겁니다. 상대는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상대를 볼 수 있을 때. 그때가 내가 가장 강할 때입니다.”

카르멘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멘디와 함께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츠는 그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느새 그친 봄비의 흔적들이 둘의 뒷모습을 어둡게 수놓았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비명처럼 자지러지고 있었고, 둘이 내딛는 지면의 지글거리는 소리는 그 비명을 뚫고 악을 쓰며 애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불안감이, 가슴을 터뜨릴 것처럼 채워지고 있었다. 바츠는 황급히 그들을 불러 세워야만 했다. 그리고 둘이 의아한 눈으로 돌아보는 사이, 그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고작 5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부풀었던 가슴 때문인지 호흡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애써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리고는 허리춤의 검을 통째로 끌러 멘디에게로 건넸다.

“이거, 이거 가져가도록 해.”

“...왜...이걸...”

멘디가 조심스럽게 남은 손을 내밀었다. 손안에 움켜쥐기는 했지만, 힘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카르멘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바츠를 바라보았다. 바츠는 그녀의 시선은 모른 채 무시하고, 멘디만 바라보며 대답했다.

“복수할 거라고 했잖아. 그것도 약속에 포함되는 거잖아.”

“나...검을 쓸지 몰라. 배운 적 없다고.”

바츠는 걱정스런 눈으로 검을 바라보는 멘디의 머리에 반대쪽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샤오밍씨가 그랬어. 혼자서 열심히 연습했다고 하던데? 걱정하지 마. 그걸로 충분하니까. 어렵지 않게 알게 될 거야. 네가 보기에 더 무서운 쪽으로 휘두르면 되니까. 그리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이것만 명심하면 돼. ‘생각을 줄이고 냉정해져라. 그리고 그냥 내 몸에 맡겨라. 내 몸은 전부 기억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멘디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바츠는 천천히 손을 땠고, 그녀는 그보다도 신중하게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자신에게로 온 검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바츠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헌터들은 다 미쳤다더니 사실이야?”

바츠는 멘디의 질문에 망설여졌지만, 대답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그런 것 같아. 우린 다 미쳤어. 우린 대단히 끔찍한 병에 중독되어 있거든.”

“옮는 거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게 할 정도로 무서운 거야?”

“응. 정말 끔찍한 거야. 영원히 주위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지. 죽음 앞에서만 얌전해질 뿐이야.”

멘디가 겁에 질린 눈으로 물었다.

“그게 뭔데?”

“하얀 감염.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염되고 말지. 아직까지 치료제도 없어. 새하얘서 수천, 수만 가지로 마구 변하거든. 만들 수가 없었던 거야. 우린 그것에 감염되어있고 중독되어있어.”

“그래서...그래서 다들 무뚝뚝한 거야? 헌터들은 항상 차갑잖아.”

“몰라. 하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다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아.”

“하얀 감염은 멋대로 변하니까?”

“응. 넌 절대로 감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나를 사랑해서? 그래서 나와 약속을 지키는 거야? 내가 이곳에서 감염될까봐?"

바츠는 멘디의 물음에 잠시 입을 닫고, 길게 숨을 내쉰 뒤에 대답했다.

“아니, 네가 불쌍해서. 너무 불쌍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하지 못할 만큼 불쌍해서 그래.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거야.”

바츠의 대답에 이번에는 멘디가 입을 닫았다. 입술을 우물거리는 걸 보면, 당장 더욱더 따져 묻고 싶은 심정으로 절박해보였지만, 놀라울 만큼의 자제력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대신 그러지 못하는 분한 마음을 붉어지는 눈시울로 표현했다. 바츠는 멘디가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지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가라. 가서 아주 강해져서 돌아와. 그리고 그때 네 손으로 직접 복수해. 그때쯤이면 나는 그 하얀 감염이 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야.”

둘은 그렇게 떠났다. 멘디가 몇 번이나 돌아보았지만, 카르멘을 따라 옮기는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바츠는 그들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는데도 한참을 남아있었다. 하늘이 다시 안개처럼 흩날리는 비를 뿌릴 때 비로소 몸을 움직였다. 어스름한 회색빛 풍광 때문인지, 불어 닥치는 거센 바람이 그대로 가슴을 관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무겁고 매우 허전했다. 전진기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털어낼 수 있었다. 전진기지에는 장로가 셀레나와 함께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허전하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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