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 빛과 빚 -- > * 248화 *
그날 밤이었다. 바츠는 노인에게서 뜻하지 않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가 거처를 안내해주자마자, 환영파티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가운데 위치한 건물 중앙 홀에서 이루어졌다. 잘 숙성된 고기와 선도가 남은 과일 그리고 마실 수 있는 물까지 성대한 파티였다. 비록 바츠를 비롯해서 헌터들은 대부분 손을 대지 않았지만, 지상에서는 쉽게 구경할 수 있는 음식들이 아니었다. 제대로 조리만 되었다면 아르크의 음식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일전에 민스크에서 맛보았던 음식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노인은 그런 음식들을 10명이 넘는 여인들로 하여금 분에 넘칠 만큼 내오도록 만들었다. 한 사람당 적어도 서너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그는 이미 무섭게 번뜩였던 눈초리가 무색할 만큼 호의적인 태도로 돌변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들에게 바츠와 헌터들을 옆에서 거들도록 지시했는데, 아르크 레벨6에서 보았던, 스스로 일리트시의 집사였던 칼의 딸이라고 밝힌 제이스를 연상케 하는 일이었다.
그녀들은 음식을 덜어주거나 어질러진 것을 치우는, 그런 잡일들을 가까이에서 해주며 식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제이스와 다른 것이라면 웃어주는 일까지 더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시시때때로 시선을 교환하며 방긋 웃어주고는 했다. 오데사 시티의 조시안느나 그곳의 접대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치 붉은 향기를 바람에 날리는 것만 같았다. 바츠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앉은 자리가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차츰 무색하게 변해갔다. 나중에는 그 용이함에 편리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노인의 대접을 견딜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리를 계속해서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은 헌터들이 중간에 노인이 꺼내놓은 액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크에는 아마 없는 물건일 겁니다. 지상에서만 맛볼 수 있죠. 그래서 가끔 아르크 군인들이 지시를 받고 다녀가기도 합니다. 신선한 고기와 야채들을 건네주면서 말이죠. 가끔은 무기도 줍니다.”
노인은 그것을 자신만만하게 내놓았다. 성인 팔뚝 길이의 유리병에 담겨 있었는데, 양이 많지는 않았다. 절반 쯤 채워져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는 그 액체를 작은 컵에 따라 한잔씩 건네주었다.
“특별히 여러분들을 위해 내놓는 것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돕자는 의미지요.”
바츠는 그가 컵에 액체를 따르기도 전에, 그 액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맑고 투명해서 흡사 매우 깨끗한 물을 닮아있었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술이었다. 그것도 아주 농도가 짙은 술. 아르크에 술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토록 농도가 독한 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인은 그 술을 자랑하듯 따라주었고, 옆에서 거들던 여인들은 그 잔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날랐다. 그리고 헌터들은 그 술만큼은 외면하지 못했다. 방독면은 이미 벗어버린 채, 노인이 술을 건네는 족족 거부하지 않고 전부 들이켰다. 노인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몇몇 여인들과 함께 자신도 나눠 마셨다. 그리고는 그 여인들에게 흥을 돋우도록 지시했는데, 취기에 흠뻑 젖은 그녀들의 행동은 헌터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들이 가운데로 나와, 내내 보여주던 상냥한 미소를 더욱더 짙게 물들이고는 농염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온 몸을 느릿하게 배배 꼬는, 요염한 춤이었다. 헌터들의 욕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입정이 거친 헌터와 말을 더듬는 헌터 이렇게 둘이었다. 둘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과 어울려 한껏 여흥을 즐겼다. 나머지가 노인이 준 술마저도 거들떠보지 않고, 끝까지 차분함을 유지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둘은 분위기에 완전히 심취해 보였다. 여러 명의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둘의 얼굴이, 굳은 듯 웃고 있는 묘한 표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특히나 춤을 가장한 아슬아슬한 접촉을 만족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파티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좋아, 시발!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고!”
노인의 환대가 끝난 것은 지상에 완전한 어둠이 내리고 나서였다. 파티를 제대로 즐긴 두 헌터는 노인의 흔쾌한 허락으로 넷이나 되는 여인과 함께 먼저 자리를 떠났다. 바츠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자신의 시선만으로도 불쾌해했던 그가 이토록 쉽게 여인들을 내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헌터들이 여인들을 데리고 각자의 방으로 가도 좋다고 말한 것이 노인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그가 먼저 제안했고, 헌터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입정이 사나운 헌터가 지금까지 중 가장 밝은 얼굴을 보이기까지 했다. 바츠는 그 모습을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러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노인이 웃는 얼굴로 작은 목소리를 넌지시 건넸다.
“호의는 항상 선물을 가져오고는 하죠.”
바츠는 그의 속삭임보다는 말을 마치며 보인 눈웃음에 더욱 관심이 갔다. 그가 보인 눈웃음이 눈가에 주름 때문인지 매우 비열하게 비쳐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궁지에 몰린 사람이 애써 발뺌하는 모습 같아, 순수한 의도로 보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하룻밤 비용이 애니밀 몇 개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코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사내라고는 고작해야 나이든 촌장이 전부였고, 나머지는 겁이 많은 여인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곳에서 헌터들에게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 오히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헌터들로 인해, 저들이 다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그래서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가 보여준 음흉한 눈웃음을 바로 지워버렸다. 레나타를 포함해서 여전히 평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헌터가 둘이나 함께 있는데, 괜한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다만 선뜻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바츠는 몸을 뉘기 위해서 바로 자신의 자리로 갔다. 노인이 내준 방은 모두가 머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깨끗했고 안락했다. 비록 푹신한 침대와 충분한 양의 담요가 있지는 않았지만, 지붕과 벽은 균열 없이 단단했고 벽난로도 넉넉하게 들어간 장작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밤새 추위로 괴롭지는 않을 것 같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조금 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제외하면 매우 훌륭한 잠자리였다. 하지만 바츠는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방이 낯설기 때문인지 왠지 기분이 심란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낯설음에 경계심이 생긴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지상에서 낯설음이란 익숙함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아직 방으로 돌아오지 않은 헌터 둘에 대한 걱정인 것 같았다. 그 둘이 문제를 일으킬까 우려스러웠다. 어쩌면 알코올 냄새에 저도 모르게 취한 것일 수도 있었다. 레나타를 보고 심장이 두근거린 것을 보면 틀림없었다.
“왜?”
바츠가 자리에 눕지 못하고 바로 일어나자, 저쪽에서 벽난로를 들여다보고 있던 레나타가 물었다.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걸고 돌아보았는데, 불꽃이 만들어낸 검은 그림자를 반쯤 걸치고 있는 모습이 꽤나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녀의 커다란 굴곡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바츠는 고개를 터는 것으로, 정신을 차리고 대답을 하는 걸 동시에 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어디 간 거지?”
바츠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반대로 돌려, 군데군데 담요만 놓인 빈자리 세 군데를 바라보았다. 바츠는 그 중 한자리를 채우고 있어야 하는 헌터에 대해서 물었던 것이었다. 레나타 자리는 아니었다. 그녀의 자리는 다른 쪽 구석이었다. 그녀가 용케 알아듣고 대답했다.
“아, 문 앞에서 다시 저쪽으로 돌아가던데?”
바츠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어디 가느냐고 묻는 말에는 바람을 쐰다는 말로 대답을 다하고 밖으로 나갔다. 울렁거리는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싶었다. 조용한 복도를 따라, 왔던 방향 반대로 걸었고 그 끝에서 계단을 이용해 꼭대기로 이동했다. 저 뒤 먼 곳에서 복도를 타고 몇몇 여인들의 웅얼거리는 작은 목소리가 부산한 발자국소리와 함께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분주하게 들려왔다. 그들의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진짜 파티가 그녀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그녀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발길을 돌리지는 않았다. 건물 옥상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는 것으로 애써 외면했다.
밖은 매우 캄캄했다. 지상의 그저 그런 밤이었다. 칼날 같은 바람과 사지를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 그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몰려들어 작은 마을을 헤집고 있었다. 환영파티가 이루어진 왼편 건물 꼭대기의 둥근 불빛과 그 건물 입구로 빠져나오는 흐릿한 전등 빛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바츠는 그 빛을 피해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마을 안마당과 울타리 인근이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울타리 밖은 제대로 비쳐지지 않았고, 짙은 그림자로 얼룩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앞이 낭떠러지라고 해도 쉽게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훨씬 넘어선 공간은 어떨까? 바츠는 그 모습을 아찔하게 느끼며 얼른 시선을 거뒀다. 그러자 뒤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정감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는 거야?”
바츠는 돌아서자, 생글거리는 얼굴로 다가오는 레나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바람에 날리는 자신의 머리칼을 우아한 손길로 매만지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바람이 강해 몇 번을 시도해도 쉽게 가다듬을 수 없었다. 바츠 앞에 섰을 때에는 결국 한손으로 머리칼 일부를 움켜쥐어야만 했다. 그녀가 재차 물었다.
“응? 뭘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어? 말하기 싫어?”
“...사람이 왜 죽나 생각하고 있었어.”
“무슨 말이야? 사람이 왜 죽다니?”
바츠의 담담한 대꾸에 그녀가 불어 닥치는 바람에 내둘리는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한차례씩 번갈아 갸우뚱거렸다. 바츠는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꽉 막힌 것 같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경우 말이야.”
“자살을 말하는 거야?”
“응, 자살.”
그녀가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와 짧게 콧바람을 내뿜었다. 그리고는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던 자신의 손을 풀어 바츠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는데, 여전히 얼굴에 머무는 미소가 저쪽 건물에서부터 날아든 불꽃에 반사되어 반짝였고, 그 빛을 품은 두 눈은 유리창에 문질러진 소량의 이슬처럼 물기로 촉촉했다. 더불어 다시 자유를 찾은 그녀의 머리칼이 휘몰아치는 바람을 허공에 그려내는 모습은 마치 검은 어둠을 마구 할퀴어 쫓아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말했다.
“본 적이 없겠구나. 하긴 나도 눈으로 본 건 딱 한 번뿐이니까. 하지만 알잖아. 미사 훈련소에서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자살을 하는지. 아마 사람들은 모를 걸? 가족들에게는 사고사일 뿐이니까. 사람들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죽어도 결국 배가 고프고 졸리고 하는 그런 존재잖아. 안 그래? 전부인 듯 굴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닌 그런 것 말이야.”
바츠는 레나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너...레나타 맞아?”
바츠의 물음에 그녀가 자지러지듯 웃으며 손을 거뒀다.
“왜? 뭐가? 이상해?”
“내가 아는 레나타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네가 알던 나는 어땠는데? 섹스에 미쳐서 환장한 년인 줄 알았어? 사람은 누구나 생각을 해. 바보 같은 사람이라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다들 각자의 생각을 하지. 그걸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에게나 보이지 않겠지. 그런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원하는 결론을 내려놓고 판단하고는 하잖아.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착각이고 오해일 뿐이지.”
그녀가 겨우 웃음을 그치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강한 힘이 실린 말투였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에 놀란 바츠가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바츠는 그녀의 얼굴에서 서운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눈에서 흘러나와 광대를 타고 입 꼬리를 맴돈 뒤 빠르게 사라졌다. 바츠는 그런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처음으로 살인을 한 게 언제야? 카니지를 든 너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첫 번째 사람을 기억해? 내려다보는 너를 향해 살려달라고 애걸하던 그 사람을 기억하느냐고. 그게 대체 언제인지 알 수 있겠어?”
“글쎄...기억나지 않아. 죽음은 허탈함을 남겨주니까. 그 허탈함은 항상 망각으로 변하고는 하지. 가끔 문신처럼 새겨지기도 하지만 그 문신마저도 그 위에 계속해서 덧칠해지기 때문에 결국은 가장 먼저 새긴 문신은 볼 수 없게 되어버려. 그 흔적만 겨우 찾을 수 있지. 그런데 그게 삶이잖아? 삶은 다시 되돌릴 수 없어.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거지. 결정을 물릴 수 없으니까 말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몇 명이나 네게 살려달라고 빌었지? 그 사람들을 기억해?”
바츠는 레나타의 질문에 허리춤에 대충 고정해둔 자신의 카니지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 윤곽을 알아보기 힘들만큼 검붉은 칼날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카니지는 멘디에게로 주었다. 지금 허리춤에 있는 흔적은 프리샤가 새겨둔 기억이었다. 바츠는 마지막으로 카니지를 휘두른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을 느꼈다. 자신을 향해 눈물로 호소하던 얼굴이 어땠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작고 겁에 질린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스톡홀름에 있는 아델리나였다. 그녀의 마지막 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무사히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밀려들었다. 상처는 많이 회복되었는지, 굶고 있지는 않는지 온갖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녀가 예전에 물었던 말이 떠올랐다.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델리나는 분명 그때 애틋한 목소리로 물었었다.
“왜 대답이 없어? 내 말 듣고 있어?”
레나타가 오랫동안 바츠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애가 타는지 애원하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바츠는 레나타의 물음에 대한 대답대신, 머릿속에 떠오른 아델리나의 말을 무의식적으로 곱씹어 보았다.
“...스톡홀름 시티에서 살면 행복할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왜? 내가 그렇게 해줄까?”
레나타가 바짝 밀착해 오며 물었다. 올려다보는 그녀의 시선에 묘한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바츠는 그제야 레나타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보다도 가슴에 부드러운 감촉을 기분 좋게 느꼈다. 실소를 감추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자 그녀도 웃었다. 활짝 웃으며 달아나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바츠의 가슴에 파묻히듯 얼굴을 가져다댔는데, 이마로 밀어내듯 가볍게 콩콩 두드리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민망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녀가 애써 분위기를 떨쳐내기 위해 애를 썼다. 바츠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양팔로 안아주었다.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 매우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녀가 뿌리치듯 바츠의 품을 빠져나오더니, 급격히 굳어진 얼굴로 시선을 저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뭔가...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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