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 빛과 빚 -- > * 250화 *
“잠깐!”
바츠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는 것 말고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이미 매우 빠르게 멀어졌고, 순식간에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바츠의 목소리가 도달하는 것보다도 그들의 비명소리가 먼저였다. 폭발음을 동반한 작은 불꽃도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단순히 정면을 향한 총격이 아닌, 그들의 비명처럼 사방으로 분출되고 높은 허공을 향하기도 하는 훨씬 격렬한 반응이었다. 그가 그 사이를 검은 그림자가 되어 헤집고 있었다. 발포되는 총구의 불꽃에 이따금씩 비쳐지는 그의 모습이 악에 바친 프레이를 연상케 했다. 뾰족하고 커다란 앞니를 드러내고는 매섭게 달려드는 것처럼, 그의 카니지가 흉포하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바츠를 정말 당황시킨 것은 그 다음이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간 그를 신호로 다른 헌터들 역시 잇달아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바츠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했다. 가슴이 철렁하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을 향해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헌터들의 모습이 무모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정작 헌터들에게서는 아무런 거리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 위로 붉은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광기를 내뿜으며, 살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바츠는 이들의 붉은 색 광기를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지켜보며 자신과 함께 한, 네 사람이 지상에서 오랫동안 선택을 제한 받지 않은 헌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야만 했다. 헌터들의 구속은 오로지 스스로가 가진 판단력에 의한 것일 뿐,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지상에서는 그랬다.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를 부여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자유는 헌터들이 가진 강력한 무력에서 나오고 있었고, 그 무력은 혹시라도 헌터들이 다칠 것을 우려한 바츠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헌터들의 강인한 신체와 냉정한 단호함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냉혹했기 때문이었다.
헌터들은 십 수 명의 사람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난도질 해버렸다. 하나둘 꺼져가는 작은 불꽃들처럼 그들의 비명소리와 실루엣이 차츰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츠의 우려가 무의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헌터들이 그들을 절반쯤 쓰러뜨렸을 때, 울타리 밖에 남아있던 그들의 무리 일부가 눈앞에서 날뛰는 헌터들을 향해 또 다른 총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바츠가 우려하던 바로 그 일이었다.
무리는 부담과 여유를 나눠 효율적으로 탄력을 얻고, 강한 응집력을 만들어 잠재력을 극대화한다. 서로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무리가 가지고 있는 매우 탁월한 이점이었다. 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일부가 앞서 수색을 하면 뒤에 남은 일부가 경계를 하고 엄호를 한다. 위험 부담감을 줄이기 위한 손쉬운 방법 중 하나였고, 조금의 침착함만 있다면 누구나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즉, 헌터들의 지금에 선택은 압도적인 자신감이 아니라 지나친 경솔함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헌터들은 차분한 판단력보다는 냉철한 직관이 훨씬 강한 존재들이었다. 헌터들은 언제나 본능에 가깝게 행동했고,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지상을 누비며 얻은 습관 같은 것이었다. 물론 시작은 미사훈련소에서부터였다.
“피해!”
바츠는 어둠속에 대고 있는 힘껏 외쳤다. 헌터들이 지금이라도 다시 저들의 눈을 피해 몸을 감추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헌터가 가진 강점 중 제일은 막강한 무력이 아닌 일격필살을 가능케 하는 은밀함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슈트와 많은 콘솔 그리고 버릇처럼 새겨진 조심성까지 모든 것이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헌터는 결코 정면에 서서 싸우는 것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헤러티커 같은 일부 특수한 존재들에게나 통용되는 일이었지, 멀리서 날아드는 총탄을 상대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날아드는 총탄에 결코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 그건 그 누구에게도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위험에 둔감한 헤러티커나 가능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정하겠지만, 헌터들은 분명 사람이었고 사람은 날아드는 총탄 앞에서 무기력할 뿐이었다. 함께 온 헌터들은 밖에서 날아드는 여러 발의 총탄들이, 삽시간에 자신들을 덮치기 전에 그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아야만 했다. 날아든 총탄들은 앞선 자신들의 일행조차도 표적으로 삼았을 만큼 냉정했고, 헌터들은 그들의 결단에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그 결과가 최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헌터들이 재빠르게 몸을 빼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츠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그들의 시선이 전부 눈앞의 헌터들을 향해 있는 사이, 건물 옆에 바짝 붙어 입구 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다른 쪽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넘었고, 즉시 방향을 바꿔 입구를 향해 돌아나가, 그때까지도 안쪽을 바라보고 선 채 사격을 하고 있는 예닐곱의 실루엣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줄기차게 이어진 탄약의 폭발음에 귀가 멀었는지, 둘이나 목숨을 잃고 나서야 바츠의 존재를 눈치 챘다. 덕분에 바츠의 카니지는 뒤늦게 돌아보는 그들을 손쉽게 벨 수 있었다. 레나타와 다른 헌터들이 사격이 중단된 틈을 노리고 합류했을 때에는, 그들은 더 이상 희망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검은 얼룩을 바닥에 뿌리며 쓰러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검은 얼룩은 그들만 쏟아낸 것이 아니었다.
“시발...”
그였다. 입정이 사나웠던 헌터. 그는 방금 전 이뤄진 교전에서 뒤늦은 사격을 모면하지 못했다. 입구 안쪽 교전을 펼쳤던 자리에 그대로 등을 대고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구멍 난 슈트 사이로 크고 작은 얼룩들이 차오르고, 방독면 안쪽 렌즈을 검게 칠하는 연거푸 뿜어진 붉은 혈흔이 그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주위에 너부러진 다른 시신들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바츠는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곁을 지켰다. 레나타와 다른 두 헌터는 뒤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서서히 죽어갔고 별다른 유언은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내뱉은 말은 욕설이 전부였다. 바츠는 그런 그를 복잡한 심경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 착잡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잠시 몸을 감췄다가 다시 고개를 내민 마을의 수많은 여인들에게로 시선이 갔다. 저쪽에 쓰러진 촌장을 비롯한 수십 구의 시신들과 마을 가득하게 남은 텁텁한 화약 냄새 그리고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하는 시큰한 비린내 때문이었다. 마을이 한순간에 폐허가 되어있었다. 한바탕 벌어진 소란이 벌써 진정되었는데도, 여인들이 미동조차 없는 이유인 것 같았다. 여인들이 처절한 상실감에 멀리서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 모습에 무거운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조용히 다가온 레나타의 위로는 그 짐을 덜 수 있도록 해주었다.
“혹시 저 여자들을 걱정하는 거야? 저 여자들이라면 걱정하지 마. 알아서 잘 할 거야. 보라고. 저 늙은이의 시신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단순히 겁을 먹고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야. 아무런 기대감도 없었고 허탈감도 없다는 뜻이지. 엉망으로 변한 마을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마. 우린 그냥 짐을 챙겨 조용히 떠나기만 하면 돼. 여기에 잔뜩 있는 총기와 옷가지만 거둬도, 지나는 칼맨과 많은 것을 교환할 수 있어. 어쩌면 가끔 찾아온다는 아르크 군인들을 통해서 뭔가를 얻을 수도 있겠지.”
바츠는 레나타의 말을 듣고 나자 마을의 여인들이 전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여인들의 시야에는 애초부터 촌장의 모습은 없었던 것 같았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외부인을 향해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일 뿐으로 보였다. 조금 전 느껴졌던 상실감조차 무엇을 향한 것인지 불분명하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아무런 미련도 보이지 않는 여인들의 차가운 시선이 그것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헌터에 의해서 별도로 희생된 여인에 대한 안타까움마저도 무색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마치 입정이 사나웠던 헌터가 죽어가는 동안, 멀찌감치 떨어져 담담하게 기다리던 헌터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동정심을 거부하는 듯 했다. 지상의 냉혹함이 그녀들을 비정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답을 알 수는 없었지만, 레나타의 말대로 한시라도 빨리 떠나주는 것이 저들에게 도움인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바츠는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다. 믿음을 주었던 헌터가 주변에 너부러진 시신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하군. 놈들의 표식을 봐. 아이기스가 아니다. 못생긴 새 대신 다른 것이 그려져 있다.”
바츠는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기스가 아니라도 따로 고용된 떠돌이 용병들이거나 주변의 강도 등 다른 가능성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목소리는 결국 바츠도 함께 시신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음...내가 기억하기로 이건 아르크의 표식이다. R6 아르크의 표식.”
“아, 나도 기억해. 틀림없어. 나도 이곳에서 북쪽에 위치한 아르크에서 본 것 같아. 그곳 군인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표식이야.”
가까이에 있던 레나타가 옆에서 거들었다. 바츠는 그들의 시신에서 정말 녹색 새 대신, 살이 세 개인 포크를 닮은 막대에 가로로 검은 줄 하나가 그려진 표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핏 가운데 손가락 셋만 편 팔에 반대쪽 팔을 겹쳐 올려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정신이 멍할 정도로 혼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새로운 표식을 마주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확신에 찬 레나타와 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둘은 표식이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아르크의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츠는 그 자신감을 표식에 가로로 놓인, 그 검은 줄을 자세히 뜯어보며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있었다. 그 검은 줄이 검게 변한 카니지을 영락없이 닮아있었다. 그가 말했다.
“저 녀석에게 물어보면 분명해지겠군.”
그의 고개가 입구 근처를 향해 움직였다. 그곳에 아직 숨통이 붙어있는 한 사내가 얼굴이 물에 잠긴 것 같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츠는 사내를 향해 지체하지 않고 다가가 물었다.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을 만큼 조급함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어디서 왔지? 넌 누구야?”
사내는 왼쪽 옆구리에 많은 출혈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치명적인 상처는 아닌 듯 했다. 지혈만 잘 해낸다면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그 외에 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대답을 한 것도 아니었다. 안에서부터 토해지는 뜨거운 신음에 입술이 눌어붙은 것 같았다. 그가 몸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양팔을 이용해, 달아나기 위한 안간힘을 썼다. 힘없이 끌리는 하체와 촉촉하게 젖은 두 눈이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레나타는 바츠를 앞질러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가 팔을 바닥에 딛는 순간 카니지로 그의 손목을 내리쳤는데, 깨끗하게 잘려나간 그의 오른 손목에서 옆구리 상처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물병을 떨어뜨린 것처럼 검은 피가 지면을 흥건하게 적셨다. 더불어 끔찍한 비명소리가 토해지며, 그가 드디어 입을 열게 되었다. 온몸에 힘을 짜낸, 필사적인 외침이었다.
“칼루가! 칼루가에서 왔어! R6 아르크! R6의 서군 전진기지!”
“왜 우리를 공격한 거지? 우린 아르크의 헌터다. 설마 아르크의 군인이 우리를 못 알아본 것은 아닐 테지? 우리는 아이기스의 본거지를 급습하기 위해 가는 헌터들로 U13 소속이다. 말해 봐. 왜 우리를 습격했지? 우리의 정체를 알고도 공격을 한 것이잖아. 그렇지?”
바로 이어진 바츠의 차분한 목소리에 그가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며 잠시 입을 닫았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숨소리를 내는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츠는 그것을 긍정적인 대답으로서 받아드리고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왜 그런 거지? 솔직한 게 좋을 거야. 솔직하면 살아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솔직하지 않다면 남은 손도 잃고 결국에는 목숨도 잃게 되겠지.”
그가 눈물로 젖은 시선으로 몇 번이나 눈치를 보며 힘겹게 대답했다.
“지, 지시가 있었다. 우리는 그저 지시를 따랐던 것뿐이야. 너희들도 잘 알잖아.
”
“무슨 말이지? 무슨 지시?”
“U13 아르크 부사령관의 딸이 납치되었으니 되찾아오라는 지시. 우린 그저 이곳에서 그의 딸을 다시 데려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고.”
바츠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으며 말했다.
“자세히 말해봐.”
“몰라. 그냥 들은 것뿐이야. U13 아르크 부사령관이 자신의 딸을 통제 불가능 상태가 된 집사가 납치해갔다고 전언을 해왔대. 우린 그가 보낸 정보를 따라 너희들을 소탕하러 온 것뿐이야. 오래 전부터 그랬잖아. 미쳐 버린 집사를 소탕하는 건 쭉 있었던 일이라고. 간혹 집사들은 문제를 만들고는 하잖아. 너희들도 다 알잖아.”
“...재미있군...”
바츠는 언젠가 전진기지의 집사가 미쳐서 헌터들을 다치게 하고, 아르크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게 한 번이었는지 여러 번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이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예방하기 위해서 헌터와 집사의 훈련이 지금처럼 혹독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혼자서 생각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바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사내의 애절한 눈동자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순간적으로 그의 처분을 고민하게 만드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차가운 눈빛은 바츠가 더 이상 망설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바츠는 자신의 카니지를 크게 휘둘러, 간절한 표정이 담긴 사내의 머리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들었다. 머리를 잃은 그의 몸도 힘차게 털어낸 침상 위의 얇은 시트처럼 푹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헌터들을 향해 몸을 돌려 모두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다른 설명을 해야만 하는 건가?”
대답은 가장 믿음직한 헌터인 그가 대표로 했다.
“아니, 우리에게 그럴 필요 없다. 여기는 지상이고 그건 너의 선택일 뿐이니까. 우린 그저 너를 믿는다. 네가 우리를 믿고 있는 것처럼.”
바츠는 곧바로 마을을 떠났다. 여인들에게 사과는커녕 작별인사도 하지 않았다. 신세를 질 때마다 늘 충분히 해오던 보상도 없었다. 동쪽을 향해 내딛어지는 무거운 걸음만 있을 뿐이었다. 헌터들은 그 뒤를 말없이 쫓았다. 일부가 미련이 남은 듯, 마을 안쪽과 주변에 시신들을 둘러보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무서울 만큼 침착하게 입을 닫고는 걸음을 옮겼다. 전진기지를 떠난 이후 가장 조용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에도 시끌벅적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허전한 지상의 표면처럼 황량하게 느껴질 만큼의 침묵만 감돌았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무런 이정표도 없는 길이 바츠와 일행들을 끝없이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푸석한 땅을 눈앞에 두었을 때, 드디어 대화가 오갔다. 무려 밤을 여섯 번이나 보낸 뒤였다. 레나타였다. 그녀가 이제까지 중 가장 메마르고 건조한 흙 앞에서 입을 열었다. 가는 모래만 가득한 땅이었다. 그녀는 그 땅을 이렇게 말했다.
“사막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