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햇빛 한 바구니, 고양이 두 스푼-3화 (3/91)

-3-

…이 펜던트가 그들을 찾도록 해줄 거예요.

이 세계에 있을 수도, 저 세계에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펜던트가 이끌어줄 것이라는 거예요.

공사를 하던 업체가 망해서인지 꽤 오래 전에 공사를 중단한 채로 남아있는 커다란 건물 앞에서

우준은 소녀의 말을 떠올렸다.

반쯤 만들어진 건물 중간중간 보이는 철골은 해질 녘의 노을 때문에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건물 사이로 스치는 바람이 쓸쓸한 울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우준은 따뜻해진 펜던트를 내려다봤다.

목에 걸린 펜던트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다.

펜던트는 이 음침한 건물에 우준이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들의 운명을 바꿔주고 싶어요.

소녀는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는 그것이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제 그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소녀는 분명 그들의 운명에 대해 슬퍼하고 있었다.

소녀의 목소리가 우준의 심장에 닿았기 때문일까.

우준은 소녀의 깊은 슬픔과 걱정을 동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펜던트를 통해 거울 속의 세상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각자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했죠.

그들은 갈망하던 존재를 원했고, 그 존재로부터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어요.

사랑, 명예, 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과 같은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어요.

소녀의 말을 떠올리며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기들이 얻게 될 순간적인 기쁨과 행복으로 인해,

자기의 자손들이 대대로 받게 될 불행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말이에요.

을씨년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준은 잠시 멈춰 서서 건물 안을 한 번 쭉 둘러봤다.

엘리베이터도 있는 것이 꽤 구색을 갖춘 건물이었지만

아마도 저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계단도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위태로워 보여서 잘못했다가는 추락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1층에 찾는 사람이 없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위로 올라가긴 올라가야 할 텐데…

…많은 사람들이 펜던트를 발견했고, 난 그들에게 늘 같은 것을 부탁했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욕망만을 채울 뿐, 다른 사람의 행복을 찾는데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처음에 저주를 받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지만,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수가 늘어났죠.

그래서 이제 그 수가 7명에 다다랐어요.

그냥 계단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비상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을 불행에서 건져주세요.

소녀는 간절히 말했었다.

…그들은 일생의 전부를 외로움 속에서 살고, 17살이 되면 죽어요.

거울의 상이 나타나서 그들의 영혼을 데리고 가죠. 영혼을 원하는 존재에게로…

그러면 그들의 영혼은 그곳에서 오래도록 고통을 당하는 거예요.

난 더 이상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불안하긴 했지만,

도와야 하는 사람들은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살아왔다.

조금 무섭다고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다.

그들을 구하고 싶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뚜렷한 열망조차 없이 살아왔다.

능력 좋은 부모님을 통해서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었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우준 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 끝을 알 수 없고,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 들어갔던 사람들 중의 대다수가 적응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17년을 외로움과 고통 속에 살면서 살아온 이들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일.

그것은 아주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우준은 두 말 할 것 없이 소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내가 할게. 내가 할 수 있어.

확신에 찬 우준의 약속에 소녀의 눈이 커졌다.

아마도 우준이 이토록 쉽게 허락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일은 위험하니까…

하지만 우준은 약속했고,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집을 나왔다.

여행을 다녀오겠노라는 쪽지를 남겨둔 채.

저주받은 이들을 향한 안타까움은 어느새 책임감으로 변했다.

'반드시 그들이 행복해질 때까지 도와주고 말겠어.

그게 지금 내 목표가 되었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계단이 불안정하게 삐그덕 울어댔다.

균형을 잡고 계단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올라가던 우준은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몸을 바짝 세웠다.

"으아아아아!"

공포에 질린 소년의 비명은 어느 순간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으아아아…아… 흐윽… 흑…"

가슴이 쓰린 흐느낌 소리에 우준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얼마나 무서워야 저런 울음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

우준은 걸음을 재촉했다.

밖은 어두워진 후였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은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 정도로 캄캄했다.

우준은 발로 조심스럽게 바닥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갔다.

"오, 오지 마!"

소년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오지…마… 제발… 이제 그만… 제발…"

"난 강우준이다."

"……!"

"난 강우준이야. 넌?"

잠시 뜸을 들인 소년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넌… 살아있는 인간이야?"

우준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하며 대답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러는 넌? 너도 살아있냐?"

"나도… 아직까지는…"

소년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래서… 네 이름은?"

"난… 가인. 차가인…"

"차가인이라…"

'이걸로 소년 한 명 확보인가?'

우준은 생각하며 한 걸음 앞으로 갔다.

가인이 부스럭거리며 몸을 숨기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에도 익숙해져서 희미하게나마 주위의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가인은 아무 것도 없는 2층 건물의 구석에 비닐 봉지를 꼭 쥐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비닐봉지가 널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아?"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가인은 어두운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며칠 째 아무도 오지 않는 폐건물에 찾아온 우준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묘하게도 우준이 가까이 오는 순간, 가인을 괴롭혀대던 죽은 자의 망령들이 사라졌다.

머리가 깨져 뇌수가 흘러나오거나 눈이 빠졌거나 목이 비틀린 귀신들을 보는 것은

아무리 자주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일이었다.

"난 일단 널 찾았어."

하지만 묘하게도 우준의 목소리는 사람을 안정시켜주었다.

귀신들이 완전히 물러갔을 리는 없다.

아마도 주위를 맴돌며 우준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준의 존재가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인은 크게 안심이 되었다.

"가자. 도와줄게. 나와 함께 가면 넌 행복해질 거야."

우준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우준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고, 우준이 앞으로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우준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지만 가인은 비닐봉지를 버리고 일어났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낮고 단호한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는 듯 했다.

그 목소리에 담긴 확신은 누구라도 따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믿음직스러웠다.

그래서 가인은 우준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네 명의 소년이 서로를 마주봤다.

네 소년의 눈동자에는 강한 결의와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있었다.

"우린 언제 거울 속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거야?"

강전이 물었다.

파직-

전기가 튀는 소리와 함께 소년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있던 형광등이 빛을 일었다.

"아, 미안. 내가 좀 흥분했네."

강전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비인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한테 미안할 건 없지. 이 커피숍 형광등인데, 뭐."

비인은 다른 소년들과 같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동자는 또래답지 않은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삶과 죽음을 모두 알아버린 것 같은 눈빛을 가진 비인은

잠이 들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곤 했다.

비인 스스로도 영혼을 빼낼 수는 있지만 그건 그다지 즐기는 일이 아니었다.

잠이 들었을 때 빠져나온 영혼이 자기 멋대로 시공간을 초월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비인에게는 충분한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펜던트가 반응을 보이지 않아."

우준이 펜던트를 베이지색 대리석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단단한 탁자에 부딪힌 펜던트가 '탁'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은 강전이 다니고 있던 고등학교의 전경.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전부 귀가를 한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학교의 불은 전부 꺼져 있어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운동장의 끝에 서 있는 학교 건물은 낮의 발랄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학교에 관련된 공포 영화나 소설이 많아서인지,

밤의 학교는 척 보기에도 무섭기 그지없었다.

"왜 자꾸 우리 학교가 보이는 거지? 이미 우리 학교에서는 날 찾아낸 거 아니었어?"

강전이 교복 상의에 묻은 보풀을 떼어내며 물었다.

"그런데…"

가인이 고개를 앞으로 숙여서 펜던트를 들여다봤다.

오랫동안 폐건물에 숨어 있느라 더러워진 옷 대신에

자기보다 덩치가 좋은 우리의 옷을 빌려 입은 가인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티셔츠의 어깨를 추켜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펜던트로 보이는 학교 건물의 창문에 이상한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펜던트로 보이는 학교 자체가 워낙 작은 데다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준이 말했다.

"네 눈에 보이는 게 있으면 말해 줘."

"그러니까… 여기 말이야."

가인이 검지로 거울의 한 구석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뭔가가 있어. 보이지 않아?"

"아! 그러고 보니…"

강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격이 급한 강전이 벌떡 일어나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얼른 가보자. 이게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어서! 여기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을 틈이 없어."

가인이 뭔가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강전이 말을 끊으며 그들을 재촉했다.

가인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강전의 기세에 눌려서 말하지 못했다.

'그림자가 두 개란 말이야!'

이미 커피숍 문을 열고 나서는 강전을 따르며 속으로만 외칠 뿐이었다.

나머지 세 소년이 밖으로 나왔을 때,

성격이 급한 강전은 이미 택시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히는 데다가 택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번번이 그냥 보내기 일쑤였다.

"아, 젠장. 되게 안 잡히네! 오토바이나 하나 사고 싶다."

강전이 초조해하게 외치며 거의 차도로 몸을 내밀고 택시를 잡는 동안,

우준이 가인의 팔을 살짝 잡았다.

불만스레 강전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던 가인은 화들짝 놀라 우준을 돌아봤다.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깊은 눈동자가 가인을 향하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이상하게도 우준이 쳐다보면 속에 담고 있는 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우준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분명히 펜던트 안에 있던 그림자… 두 개였어."

"……"

우준이 미간을 좁히며 다시 펜던트를 열었다.

우준의 눈에는 그림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귀신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비인이 펜던트를 흘끗 보며 말했다.

"내 눈에도 보이는 거 보면 말이야. 우준이 네가 잘 못 찾고 있는 것 같아.

여기를 자세히 봐봐."

비인이 손가락으로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우준이 그곳을 자세히 보려고 하는데 강전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야! 택시 잡았어! 빨리 타!"

우준은 그림자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펜던트를 닫으며 생각했다.

'이 애가 네 번째 희생자라면… 무사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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