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햇빛 한 바구니, 고양이 두 스푼-6화 (6/91)

-6-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우준은 피하지 않았다.

우준이 피하면 각호는 뒤에 있는 일행에게 눈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반드시 행복하게 해주고 말겠다고 결심을 하고 데리고 왔다.

자신을 믿고 위험한 곳으로 따라온 그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커다란 호랑이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잡고 있는 몽둥이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아까 다친 팔이 욱신거렸지만 책임감은 고통조차 잊게 해주었다.

달려드는 각호의 머리를 있는 힘을 다해 후려쳤다.

상당한 힘이었기에 거대한 각호도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

각호는 바로 자세를 잡고 우준을 노려봤다.

자그마한 존재에게 얻어맞았다는 것에 큰 분노를 느낀 각호의 눈이

좀 전과는 달리 형형이 빛났다.

시퍼런 불길이 이는 각호와 똑바로 눈을 마주친 우준은

어떻게 해야 각호를 이길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준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각호는 섣불리 덤비지 않고 틈을 보고 있었다.

"우준이만 싸우게 할 수는 없어."

채민이 말했다.

"응.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할 텐데…"

강전이 초조하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나뭇가지 말고는 무기로 삼을만한 것이 없었다.

"네 전기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비인이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난 지금 굉장히 흥분 상태라서…"

강전의 몸에서는 아까부터 강한 전기가 파직파직 일어나고 있었다.

그 순간, 각호의 눈이 채민에게 꽂혔다.

각호는 상대하기 어려운 우준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를 찾는 듯 했다.

채민의 힘이 약하다고 판단한 각호는 재빨리 채민을 향해 달려들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채민은 속수무책으로 덤벼드는 거대한 짐승을 쳐다봤다.

그 때, 우준이 그 앞으로 몸을 날렸다.

미처 방어를 할 틈도 없이 끼어 들었기 때문에

각호의 날카로운 발톱은 그대로 우준의 어깨에 꽂혔고,

우준은 각호의 허리를 꽉 붙든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퍼석-

눅눅한 낙엽이 덮인 땅에 우준이 부딪히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려왔다.

각호의 긴 발톱이 파고든 우준의 어깨에서 피가 콸콸 넘쳐나고 있었다.

"에잇! 빌어먹을!"

강전이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각호에게 달려들려는데,

우준이 날카롭게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마!"

"야, 이 자식아! 가까이 안 가게 생겼어? 너 죽게 됐다구!"

강전이 히스테리컬하게 소리쳤다.

"우, 우준아…"

채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우준을 부르며 다가가려 했지만

비인이 채민의 팔을 잡았다.

"네가 가면 더 위험해져. 가만히 있어."

"하지만…"

"모르겠어? 지금 우준이는 저 괴물이 우리를 덮치지 못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잡고 있다구. 팔도 성치 않으면서 말이야."

"으으…"

채민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로 인해 상대가 다치게 되는 것은 채민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자신이 다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털이 두꺼워. 게다가 바짝 말라있어서 전기가 통하지 않을 거야."

"그럼 어쩌란 말이야!"

"크르르릉!"

우준에게 잡힌 각호가 분노에 찬 소리를 냈다.

각호는 우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었지만

우준의 팔은 각호의 허리를 단단히 잡고 놔주지 않았다.

우준은 자신이 각호를 잡고 있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를 많이 흘린 데다가 아까 다치기까지 해서 급속도로 힘이 빠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비야. 넌 이런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할까?'

우준은 자신의 소꿉친구인 비를 떠올렸다.

모든 일에 당당하고, 그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뚫고 나가는 비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지 떠올렸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냐?"

강전이 절규하듯 물었다.

우준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자식아! 지금 웃을 때가 아니야! 너 진짜 죽게 생겼다구!"

"전기… 그리고 물… 그리고 매개체…"

각호가 다시 한 번 몸을 틀었다.

각호의 날카롭고 굵은 털이 우준의 팔에 사정없이 상처를 냈다.

어깨뿐만 아니라 팔에서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몸을 틀면 난 각호를 놓치게 될 거야.

저 애들을 다치게 할 순 없어.'

생각하는 우준의 눈에 옆에 떨어진 나뭇가지가 보였다.

방금 전에 우준이 떨어뜨린 거였다.

그 때는 몰랐는데, 나뭇가지의 끝은 날카로웠다.

'이거다!'

우준이 강전을 올려다봤다.

"방법을 찾았어."

우준이 무릎을 들어 각호의 배 쪽을 더듬었다.

다행히 배 쪽은 등이나 옆구리보다는 덜 단단한 편이었다.

배를 덮고 있는 흰색 털 역시 등을 덮고 있는 황갈색 털보다 부드러워 보였다.

"뭔데? 응? 뭔데?"

강전은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각호를 잡고 있는 우준이 안타까워서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든 우준을 도와주고 싶었다.

"난 이제 이 손을 놓고… 이 나뭇가지를 각호의 배에 찔러넣을 거야."

"들어갈 것 같아?"

"배 쪽은 좀… 부드러운 것 같아. 한 번 해봐야지."

"그럼 내가 할 일은?"

"나뭇가지가 물에 젖어 있어. 내가 이걸 찔러 넣는 순간,

각호가 몸을 날리면 나뭇가지를 붙잡고 전기를 집어넣어."

"응! 알겠어!"

"피하면 안 돼."

우준이 말했다.

"두려움은 잠시뿐이야. 순간의 두려움으로 피하면 안 돼."

"응. 안 피할게."

"하지만…"

우준이 힘겹게 말했다.

눈앞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나뭇가지를 찔러 넣는 것에 실패하게 되면… 도망쳐."

"뭐?"

"난 괜찮을 테니까… 절대 머뭇거리지 말고 도망쳐. 날 구할 생각하지 말고…"

"야, 어떻게…"

"시간이 없어. 내 말대로 해. 너희들은 아직 해야할 일이 있어."

"하지만…"

"지금…"

우준이 나뭇가지의 정확한 위치를 눈으로 쟀다.

"한다!"

우준은 강전이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각호에게서 손을 떼었다.

우준에게서 풀려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각호가 잠시 머뭇거리는 틈에

우준은 나뭇가지를 집어 정확하게 각호의 배에 찔러 넣었다.

단단한 것이 나뭇가지의 끝에 닿는 느낌이 났다.

'안 들어가는 건가…?'

그 순간, 팔이 쑤욱 뻗어나가는 것이 느껴졌고,

나뭇가지는 각호의 배에 푹 들어갔다.

'들어갔다!'

팔뚝만한 크기의 나뭇가지가 배를 찢고 들어간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크아아아앙!"

각호가 고통과 분노에 뒤섞인 울음소리를 내며 펄쩍 뛰어올랐다.

각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강전은 각호의 배가 잡기 편한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날려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파자자자자작-

크게 흥분해 있는 강전의 몸에서 나온 전기의 힘은 대단했다.

강한 전류가 나뭇가지를 통해 몸 안 깊숙한 곳으로 흘러드는 것은,

제 아무리 어마어마한 크기의 각호라도 견디지 못할 고통이었다.

"끄아아아!"

소름끼치도록 높은 각호의 비명이 숲을 울렸다.

그 소리에 숲이 몸을 떨었다.

소년, 소녀들까지도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소리였다.

하지만 강전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전기를 흘려보냈고,

전기는 각호의 몸안에서 세포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끄으…으…"

각호의 비명소리가 점점 작아지는가 싶더니, 각호의 몸이 축 늘어졌고,

그 후에도 조금 더 전기를 흘려보낸 강전은

각호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떼었다.

각호의 몸이 타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흘러나왔다.

"주, 죽었다! 우리가 이겼어!"

강전은 크게 외치며 우준에게 다가갔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다른 소년, 소녀들도 우준에게 다가갔다.

우준의 주위는 우준이 흘린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를 머금은 나뭇잎들이 하나하나 생명을 얻은 듯 질퍽거렸다.

"우준아…"

채민이 우준의 옆에 앉아 조심스레 우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감겨져 있는 우준의 눈꺼풀은 움직이지 않았다.

숨조차 쉬고 있지 않은 듯, 우준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것이, 마치 시체 같았다.

"우준아?'

비인이 떨리는 손으로 우준의 팔을 잡았지만 우준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주, 죽은… 건가?"

강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묻자, 가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직 살아있어. 우준이의 영혼이 빠져나오지 않았는 걸."

"정말? 정말이야?"

채민이 다급하게 묻자 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로… 하지만… 이 상태가 계속 된다면, 난 우준이의 영혼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어.

우준이, 지금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지금까지 흘린 피도 상당히 많은데…"

"지혈부터 해야겠다."

강전이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반으로 쫙 찢었다.

반을 채민에게 던진 강전은 다른 반쪽의 옷으로 우준의 어깨를 눌렀고,

채민은 우준의 팔을 옷으로 감쌌다.

정신적인 지주인 소년의 생명이 위태롭게 흔들려 불안해하는 그들의 위로

숲의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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