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햇빛 한 바구니, 고양이 두 스푼-7화 (7/91)

-7-

빽빽한 나뭇가지 틈으로 햇살이 조금씩 비집고 들어와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어서 숲 한복판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그들은

피로와 배고픔 때문에 상당히 지쳐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엇이 덤빌지 몰라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한 명씩 불침번을 서기로 했지만,

누워있다고 해서 잠이 올 턱이 없었다.

그들 중에서 가장 강한 우준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서 정신을 잃고 있지,

불을 피울 수도 없지, 무기도 없지…

그 불안한 상황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다행히도 간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우준의 상태도 빠르게 호전해서 얼굴에 해가 뜰 무렵에는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비인과 가인, 강전이 밤새 돌아가면서 우준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혹시라도 쌀쌀한 기운 때문에 우준의 상태가 나빠질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준이는 좀 어때?"

우준을 안고 있는 가인에게 채민이 다가갔다.

밤새도록 채민에게만 집요하게 떨어져 내린 나뭇가지들 덕분에 채민의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깨끗했던 교복은 형편없이 더러워져 있었다.

"많이 나아졌어. 몸도 따뜻해지고… 하지만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 뭘 먹여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 먹을 게 너무 없어."

채민이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실 물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내가 좀 둘러보고 올게."

강전이 몸을 일으켰다.

강전은 어제 우준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

사실 우준이 행복을 찾아주겠다고,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할 때는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각호와 맞설 때의 우준은 자신의 안전보다 일행의 안전을 우선시 했다.

커다란 송곳니가 깊이 박혀 고통스러울 텐데도 절대로 팔을 놓지 않았다.

송곳니가 박혔을 때 빨리 손에서 힘을 뺐더라면,

피를 많이 흘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준은 그러지 않았다.

…머뭇거리지 말고 도망쳐. 날 구할 생각하지 말고…

그 말을 하던 우준의 눈빛이 가슴에 깊이 박혀, 밤새도록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우준을 살리고 싶었다.

우준으로 인해 강전의 마음에도 책임감과 동료애가 작지만 싹을 틔운 것이다.

"그럼 갔다 올게. 조심들하고 있어."

강전이 막 출발하려고 할 때, 심하게 쉬어버린 낮은 목소리가 강전의 발길을 붙잡았다.

"가지 마."

우준이었다.

"우준아!"

"깨어난 거야?"

"괜찮아? 우리 보여?"

다들 반가움에 우준에게 달려들자, 우준은 머리가 아픈 듯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응. 괜찮아, 이제…"

우준은 몸을 바로 하려고 했지만, 피를 많이 흘린 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우준이

깨어나자마자 몸을 가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다들 힘들어하는 우준을 안타깝게 쳐다봤다.

"목 마르지 않아?"

비인이 물었다.

"응. 목 마르네."

우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나 좀 찾아볼게."

강전이 말하자 우준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떨어지는 건 좋지 않아. 일단… 배부터 채우자.

물은 걷다보면 나오겠지."

"하지만… 먹을 게 없잖아."

가인이 조심스레 말하자 우준이 힘겹게 손을 올려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거 있잖아."

어제 그들이 죽인 각호였다.

"저, 저걸 먹자고?"

가인은 질린 표정으로 말했지만 강전은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아! 맞아. 그걸 생각 못 했네. 저것도 결국은 짐승인데…"

"하지만… 저걸 어떻게…"

"야, 우리가 지금 단 거, 쓴 거 가릴 때냐? 일단 먹고 봐야한다구.

안 그러면 괴물들한테 당해서 죽는 게 아니라 아사할지도 몰라."

"맞아. 우린 저걸 먹어야 돼."

채민의 대답에 다들 놀랐다.

"왜들 그렇게 쳐다봐?"

채민이 어색하게 웃자 비인이 대답했다.

"아니, 그러니까… 원래 여자애들은 저런 거 먹자고 하면 징그럽다고 소리부터 치잖아."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사소한 것에 소리칠 상황이 아니잖아.

아마 나도 멀쩡한 상황이었으면 소리를 쳤을 거야."

채민은 이렇게 대답했지만 다들 속으로,

'저 애, 생각보다 강한 애구나.'

라고 생각했다.

채민이라고 어찌 징그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채민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저걸 날 걸로 먹을 수는 없지 않아?"

여자인 채민도 수긍했지만 가인은 못내 못 견디겠다는 듯이 말했다.

"불을 피워야지."

우준이 말했다.

"불을 어떻게 피우지? 마땅한 게 없어."

"나무들 많잖아."

"설마 원시인처럼 나무끼리 비벼대자는 거냐?"

"아니. 강전이 너… 전기를 사용할 수 있잖아.

전기로… 나무를 태우자."

"아, 그러네."

다들 당황스러워서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우준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죽어가다가 깨어났으면서 바로 판단을 하고 해야할 것을 알려주는 우준이

그들에게는 신적인 존재로 보였다.

우준은 다르다.

그들을 생각했다.

이 애는 우리와 같은 또래 같지가 않아. 대단해.

"그리고 각호를 토막내야 하는데…"

"그건 내가 할게."

채민이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해?"

가인이 미안하다는 듯 말하자 채민이 웃었다.

"나 이래봬도 생물에 관심이 많거든. 과학부여서 해부를 해본 적도 몇 번 있고…

저것도 생물이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가죽은 단단해. 뱃가죽도 네가 벗기기엔 단단할 거야."

우준이 애써 몸을 일으키자, 채민이 우준의 팔을 잡아 억지로 다시 앉혔다.

"물론 우리는 널 의지하고 있고, 네가 우리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지만…

모든 것을 네가 짊어지려고 하지 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애처럼 느껴져서 견디기 힘들 거야."

채민의 눈은 단호했다.

흔들림 없는 채민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던 우준이 눈을 감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고마워."

"그 말은…"

채민은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해야하는 말이야."

각호의 위에서는 각호에게 당한 사람의 것인 듯한 뼈와 소화되지 않은 듯한 물건들이 나왔다.

아직 완전히 소화가 되지 않은 걸로 봐서는 우준 일행을 만나기 전에

이미 누군가를 먹고 왔다는 말이 되었다.

사람의 뼈가 나오자 채민은 토할 것 같았지만 애써 침을 삼키며 참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채민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비인이 가까이 와서 사람의 뼈와 안에서 나온 물건들을 옆으로 치웠다.

"불 붙였다!"

나뭇가지들을 모아놓고 애쓰던 강전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 세계로 와서 처음으로 듣는 밝은 목소리였다.

"와아! 정말?"

불이 타오르자 숲은 더 이상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었다.

아직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그들은 불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 큰 위안을 받았다.

"타는 냄새가 이렇게 기분 좋은 건지 몰랐어."

가인이 불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고기도 준비 됐어."

채민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상처투성이의 소녀가 양손에 피를 묻히고 웃는 모습은 상당히

공포스러운 모습이겠지만, 배고픔에 지친 그들에게는 그녀의 모습이 여신의 모습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강전과 비인이 고기를 날랐고, 가인은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나뭇가지들을 모아와서

손질된 고기들을 꽂아 불에 굽기 시작했다.

채민이 피묻은 손을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에 닦으려고 하는데,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우준이 채민의 손을 붙잡았다.

채민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우준은 여전히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왜?"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 나 지금 너무 바보 같았어.'

채민이 자신을 질책하는 동안, 우준은 채민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옷으로 가져갔다.

"아앗! 뭐, 뭐하는 거야? 내 손에 지금 피가 묻어있어."

채민이 힘을 주어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우준의 힘이 더 강했다.

우준은 채민의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의 옷에 문질러 닦았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꼼꼼하게 닦아주는 우준에게,

채민은 더 이상 반항할 수 없었다.

다 닦아낸 우준이 채민의 손을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가려고 하자,

채민은 기를 쓰고 우준에게서 손을 빼내려고 했다.

이번만큼은 보일 수 없다.

하지만 우준은 기어코 채민의 손을 끌어당겼고,

곧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역시… 물집이 잔뜩 잡혔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험한 일을 해보지 않았던 채민의 연약한 손은

각호의 단단한 가죽을 커터 칼로 자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각호의 가죽에 닿은 칼이 점점 무뎌져서 자르기 힘들어졌지만

채민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각호를 조각냈고,

그 결과 손바닥이 형편없이 짓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야, 정말 심하네."

강전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정말 고생했다, 채민아. 진짜 아팠겠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비인과 가인이 한 마디씩 했다.

채민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큰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지금껏 채민은 "저주 받은 존재", "가까이 가면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준이 채민의 손을 부드럽게 거머쥐었다.

"많이 아프겠다. 그래도 이렇게 애써줘서 고마워."

그 순간, 채민은 아까부터 참던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건… 그건 내가 해야할 말이잖아."

채민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씻지 못했어도 맑게 빛나는 곱고 부드러운 볼 위로 눈물이 흘러 자국을 남겼다.

"넌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나 때문에 이렇게 많이 다치고, 죽을 뻔했잖아.

고맙다는 말은 내가 해야하는데… 왜, 왜 고맙다고 하는 거야?"

"아무런 상관이 없다니…"

이제 엉엉 목놓아 우는 채민을 가만히 품에 안은 우준이

채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야. 우리가 만난 순간, 우리는 상관 있는 사이가 된 거잖아."

"흐으윽…"

"그러니까 내가 널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다쳐도, 그건 너 때문이 아니야.

그건 널 돕고 싶은 내 마음 때문이지, 절대로 너 때문이 아니야."

습기에 찬 눅눅한 숲이었지만, 우준의 목소리는 산뜻한 바람이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들 사이에 우정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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